― 그곳에 파랑새가 있었다니까요?
― 얘, 너 한 마디만 더 그 소리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 버릴 줄 알아!
― 내가 이 두 눈으로 봤다는데 왜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해요?
로빈, 너 정말……! 여인은 할 말을 잃었는지 팔짱을 낀 채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파랑새가 멸종된 지가 언제인데 제 하나뿐인 아들이 며칠 전부터 파랑새를 봤다느니, 자신을 향해 손짓을 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완고했다. 본인의 말에 의하면 본 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게 더 이상했다. 로빈은 자신의 얘기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엄마가 야속했다. 차라리 어린 아들의 말에 속아 주는 척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그녀는 아무리 아들의 환상이라고 해도 허구를 인정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됐어요, 믿기 싫음 말아요. 결국 한 발짝 물러선 로빈은 다시 파랑새를 만나러 가겠다는, 엄마한테 말하면 혼날 만한 다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 엄마도 내 말 안 믿고, 다니엘 걔는 나보다 어린데 왜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어린 소년의 머리에서 나온 논리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의 말을 믿어야 한다’ 는 것이었다. 그래 봤자 겨우 두 살 많은 게 전부였지만 로빈에게 그 두 살은 중요했다. 자신보다 두 살 많은 키 큰 형들이 얼마나 세상에 많은지는 절대 셀 수 없을 거라고 믿는 게 그였다. 기분이 상해서 나왔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소년을 자극하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바로 다가올 것은 아니지만 멀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벌써부터 반기는 듯 적당히 찬 바람이나, 어두움과 밝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하늘이 그랬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빨리 숲에 가서 새만 보고 와야지. 짧은 다리였지만 열심히 걷고 나니 숲의 입구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로빈은 숲에 들어가자마자 초롱초롱해진 눈으로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 bluebird! 나 왔어, 로빈!
― 로빈이다!
제일 키가 큰 나무 위에서 무언가 반짝이더니, 로빈의 앞까지 날아왔다. 그가 그렇게 줄기차게 부르던 파랑새였다. 파랑새는 심지어 말도 할 수 있었다. 로빈, 왜 이제 왔어! 맑은 목소리를 내며 말하는 이것은 분명 파랑새가 맞았다. 로빈이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로빈은 미안하다며 파랑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사랑스러운 그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은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이름을 불러 주는 것밖에는 없었기에. 로빈은 갑자기 우울해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줄리안, 엄마가 너의 존재를 안 믿어 줘. 어떡해?
― 어른들은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로빈만 날 믿어 주면 되니까!
― 그래도 엄마한테 너를 보여 주고 싶은데……
― 그러면 나를 그려서 보여 드리면 어떨까? 완전 자세하게 그려서 내가 정말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야!
그럴까? 시무룩하던 로빈의 얼굴이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로빈은 자신이 그림을 그냥 못 그리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까먹은 채 줄리안의 생김새 하나하나를 담으려 애썼다. 줄리안은 그런 로빈이 귀여웠는지 흐뭇하게 웃다가, 그가 ‘이제 완벽하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말할 때쯤 그의 손이 닿지 않을 높이로 날아올랐다.
― 있지, 로빈.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
― 응? 뭔데?
―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으니까 웃으면서 말할게. 이제 날 보러 올 수 없을 거야.
― 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널 왜 못 보러 와?
로빈은 그 말을 부정하고 싶었다. 줄리안을 알고 난 후, 그를 보러 오는 게 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큰 낙이었다. 그런데 그런 줄리안을 앞으로는 볼 수 없다니, 로빈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 숲을 공사할 거래. 여기가 아니면 나는 있을 곳이 없거든.
―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러면, 그러면 차라리 우리 집으로 같이 가자. 그러면 좋은 거 아니야?
― … 나는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는 살 수 없는걸.
줄리안은 그게 자신의 운명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고, 그런 자신을 로빈이 볼 수 있는 이유도 이 숲에서는 신기한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이 평범한 일은 아니었다는 것을, 로빈은 너무도 익숙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홉 살이라는 나이에 이별을 경험하게 된 소년의 표정은 참으로 어두웠다. 줄리안은 그런 로빈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지, 어떻게든지 만나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로빈.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파랑새는 서서히 사라져갔다. 어디 가, 줄리안! 가지 마! 어디 가는데! 어느새 얼굴에는 눈물이 범벅인 채로 줄리안의 이름을 몇 번이나 외쳤지만, 사라진 새는 다시 대답하지 않았다. 정말로 꿈이었던 걸까? 엄마의 말이 맞았던 걸까? 숲 가운데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울던 로빈은 눈물을 닦지도 못한 채로 집으로 터덜터덜, 힘없이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생각했다. 파랑새 너를 만났던 것은, 내 인생에서 제일 기쁜 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
그렇게 약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학교에서는 다들 곧 있을 축제에 대해 들뜬 기분으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로빈은 매년 축제 무대에 잠깐이라도 오를 때마다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막상 본인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올해 축제는 어떻게 내빼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요란스러운 학생들 사이로 중년의 남성이 문을 활짝 열었다. 비록 그에게 관심을 주는 이는 많아야 대여섯 명이 전부였지만.
― 이것들은 선생님이 왔는데 축제에 눈이 멀어서는 인사도 안 하고, 선생님 서러워서 못 하겠네.
― 에이, 그게 아니죠! 어떻게 하면 선생님과 함께 축제를 잘 즐길 수 있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 말만 잘하지. 그게 중요한 게 아냐. 우리 학급에 전학생이 왔다!
전학생? 떠들던 학생들이 단번에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문 밖에 서 있던 금발의 소년을 교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소년은 새로운 학교가 마음에 들었는지 해맑게 웃고 있었다.
― 자, 자기소개를 하고 들어가자. 자리는… 로빈 데이아나 옆에 앉으면 되겠네. 인사하고 저 자리에 앉도록.
― 안녕, 만나서 다들 반가워. 내 이름은 줄리안 퀸타르트고, 앞으로 다들 잘 부탁해!
순간 로빈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줄리안? 어디서 들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너무 예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전학생 줄리안은 고개를 한 번 꾸벅인 뒤, 로빈의 옆에 있던 빈 의자를 빼고 앉았다. 그리고는 로빈을 향해 다시 손을 흔들었다.
― 니가 로빈 데이아나구나, 이름이랑 얼굴이랑 잘 어울린다. 잘 부탁해. 나 모르는 거 있으면 너한테 다 물어볼 거다?
― 물론이지. 내가 잘 도와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학교 구경도 시켜 줄게.
― 짝 잘 만난 것 같아서 기분 좋다. 로빈,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해도 돼?
― 무슨 말인데?
로빈은 줄리안의 웃는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 언제든지, 어떻게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잖아. 약속 지키러 왔어.
그리고 그는, 그제서야 줄리안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었던 건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로빈은 그의 손을 잡았다. 참으려 해도 웃음이 계속 나왔다. 앞에서 선생님이 뭐라고 하든, 또 주변에서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 Hello, my bluebi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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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단편 전개 빠른 건 알아주네요... ^^... 뭔가 로줄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줄로라고 하기도 어려워서 줄로줄! 로 했는데 읽으시는 분들에겐 어떠셨나요? 줄리안이 오리인데, 갑자기 새가 떠올라서 파박 쓰고 나니까 이렇게 됐네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 은 무슨 그냥 새와 소년의 이야기인 걸로 결론이 나 버렸어요 역시나 죄송해요 ㅠㅠㅠ 아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커플링으로 찾아오려고 해요 그것 역시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실력은 별로여도 노력은 많이 할 테니까요!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사랑한다는 말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