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Mark Lee / Jeno
I
혼란 속으로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은 사흘이 되고, 사흘은 나흘이 되었다. 이민형과 말도, 시선도 그 무엇도 섞지 않은 것이 나흘이 되었단 소리이다. 붙어있기엔 더운 날씨에도 내 뒤꽁무니를 졸졸 좇던 이민형이 며칠째 자신이 속한 슬리데린의 학생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자 이동혁과 나재민은 나에게 무언의 눈길을 주었다. 말로 하지 않아도 내용을 빤히 알 수 있는, 그런 눈길들이었다. 너 이민형이랑 무슨 일 있지? 보나마나 저 질문을 하고 있을 터였다. 또한 그 질문에 담긴 의심은 나흘째 되는 날 확신이 되어버린 듯 했다. 아니, 이동혁은 진즉에 알아챈 것 같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그와 나 사이 미묘하게 바뀐 기류를 호그와트 내의 학생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제노까지도.
“여주야.”
“왜?”
“나 이것 좀 알려줘. 내가 이해했는게 맞는지 몰라서.”
저번에 함께, 나란히 앉아 들었던 그 연금술 수업 이후로 이제노와의 사이는 다시금 화기애애해졌다. 그래 그 몇년 전 내 유년시절처럼. 타임터너를 한바퀴 돌린 것처럼, 그 몇년의 간극은 뛰어넘은 것처럼 이제노는 나에게 친근하게 굴었다. 연회장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교실에서도, 복도에서도. 호그와트 어느 곳에서도 그는 나를 알은 체 하면서 반겼다. 방금도 마찬가지였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고, 숙제나 할겸 겸사겸사 도서관에 앉아 있던 참이었다. 가벼운 아침 인사 뒤에 누군가는 읽고, 또다른 누군가는 베고 잤을 두터운 책 하나를 펼쳐 내밀며 이제노는 머쓱한 미소 하나를 입꼬리에 매달았다. 그래, 그러지 뭐. 깃펜 끝을 잘근잘근 씹던 나는 가타부타 별 말없이 내미는 책을 받아들었다. <고급 변신술 입문서>. 이제노가 편입 비스무리한 걸 해서 호그와트에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급하게 선배의 책 하나를 빌린 듯 싶었다. 책을 건네받자 며칠 전 배웠던 내용이 눈 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뭐가 헷갈리는데?” 애니마구스(동물로 변할 수 있는 마법사를 일컫는 말)로 변하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을 쳐다보다 이제노에게로 시선을 돌리니 녀석은 볼 언저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겨우 번역했는데….”
“엉.”
“애니마구스는 자기 패트로누스랑 같은 동물으로 변하는 거야?”
“대부분 그렇지. 보통은. 내가 애니마구스가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나? 말 끝을 흐리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대부분 그러지 싶은데. 맥고나걸 교수님도, 제임스 포터도, 시리우스 블랙도. 다 자신의 패트로누스와 같은 동물로 변신했다고 알고 있다. 예외는 있겠지만 그 예외에 속하는 사례가 마법 사회 내에서, 발생한 경우는 아직까지 없으니까.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있고. 불분명한 설명에도 이제노는 아, 소리를 내며 고개를 두어번 주억였다.
“그러면, 패트로누스는 바뀔 수도 있어?”
“이런건 수업 시간에 안배우지 않냐….”
그가 다시 던진 질문은 퍽 생뚱맞고, 또 새로운 질문이라 쉽사리 답을 주지 못하고 어물쩍대었다. 바뀔 수가 있을까. 이번에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혹시나 하고 다음 책장을 넘겼다. ‘패트로누스는 개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또는 사랑하는 사람의 패트로누스를 닮기도 한다. 이는 가장 즐거웠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주문을 외워야 하는 것과 연관이 있다.’ 한 대목이 이끌리듯 망막에 아로새겨졌다. 발견한 그 문장을 콕 집어 이제노에게 읽어주자 그제야 모든 궁금증이 풀렸다는 듯이 말끔한 표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 녀석을 보면 영어가 아직까지 상당히, 많이 어색한 듯했다. 아무렴 몇년을 덤스트랭에서 생활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것도 당연하지.
“넌 패트로누스 뭐야?”
“나? 불러낼 수는 있는데 동물이 뭔지 모르겠어.”
“수업 시간에 배운 걸로 알고 있는데.”
“야, 잠깐 배운게 다야. 그러는 너는.”
“…늑대.”
늑대? 짧게 나온 대답을 곱씹었다. 그러면서 이제노를 빤히 쳐다보았다. 늑대, 늑대라…. 저를 보며 두 눈을 깜빡이는 내 저의를 파악한건지, 파악하지 못한 건지 이제노는 두 눈을 찡긋거리고선 다시 책에 고개를 파묻었다. 수업에서도 패트로누스는 완전체로 불러일으키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레질리먼시와 오클러먼시의 뒤를 잇는 고등 정신계 마법이라며, 호그와트 내에서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드물다고 맥고나걸 교수님이 얘기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고등 마법을 이제노가 한다고? 어릴 때도 내가 보기에 어려운 마법을 단숨에 익히고 적용하긴 했었지만… 뭐랄까. 패트로누스를 완전체로 불러낼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한 그 말은 그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단 소리였다. 더군다나 늑대라니. 내가 보기엔 순둥하니 강아지나 어울릴 것 같은데. 늘 그랬지만, 알다가도 모르겠는게 이제노에 대한 것들이다.
*
“…너 숙제 안해?”
아. 깜빡했다. 자기는 수업이 있다며 가방을 챙기는 이제노에게 책을 돌려주고 나서도 양피지에 낙서를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였다. 밀린 숙제를 친히 상기시켜주는, 이동혁과 나란히 앉아 있던 나재민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다급히 몸을 일으켜 필요한 책을 찾으러 빽빽한 서가 사이로 들어섰을 때였다.
“….”
“….”
난데없는 이민형의 등장이었다. 이제는 마크 리라고 불러야 맞겠지만, 내 속마음은 미련스럽게도 이민형이라는 이름부터 먼저 떠올렸다. 가만히 마주보는 그 시선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어색해서, 입술을 질끈 깨물며 시선을 피했다. 저번에는 네가 먼저 피했으니 이번에는 내가. 치졸한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며 양피지 귀퉁이에 작게 적어놓은, 찾아야 하는 책 제목을 중얼거리며 몸을 돌려 서가에 가득 꽂힌 책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어떠한 말은 오지도, 가지도 않았다. 그저 저번처럼 정적이 그와 나 사이를 가득 메우고 있을 뿐이었다. 조만간 숨통을 억누를 것처럼, 무겁고 깊은 그런 정적 말이다.
꼭 이럴때만 책 없더라. 훑었던 책들을 다시금 눈에 꼭꼭 집어넣으며 속으로 찾아야하는 책을 중얼거렸다. 찾는 사람이 얼마나 많길래 대출 가능한 책이 없냐 이말이다. 그리고 왜 하필, 이민형이랑 마주쳤냐 이말이지. 마주치게 되더라도 다른 곳에서 마주쳤으면 붙잡아 아무 말이라도 쏟아낼 테지만,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사서인 핀스 부인이 상주하는 호그와트의 도서관이었다. 그러니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을 터였다. 물론 그 어떠한 말 속에 포함된 건 변명과 핑계… 뭐 그런 종류밖에 없겠지만. 책을 뒤적이는 손 끝이 점점 떨리고 있었다. 이민형은 아무런 기척도, 움직임도 없이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그 고요한 시선이 와닿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리고 그 시선을 나는 온 힘을 다해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눈을 마주했다간 어떤 날선 말이 내밀어질지 몰라서. 바보같이 볼은 또 빨개져버렸다.
“…Here.”
침묵은 이민형의 말으로 작게나마 깨어졌다. 그는 그 말 한마디와 함께 내가 찾던 책 하나를 내밀었다. 아… 바보같은 탄성을 입 밖으로 쏟으며 어기적어기적 그 책을 받아 손에 쥐었다. “고마…,”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전에, 이민형은 휙 뒤를 돌아 서가를 빠져나갔다. 더 이상의 대화는 불필요하다는 듯이. 책을 쥔 손가락 끝에서 힘이 쑥 빠지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시큰거리는 마음 한 구석이, 홧홧한 열기가 오르는 눈두덩이가 한꺼번에 느껴졌다. 그가 주고 간 책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속이 온통 홧홧하고, 쑤시는 기분이 들어 입술을 되는 대로 힘껏 이로 짓눌렀다. 기어코 찢긴 입술이, 피가 겹쳐져 알싸했다. 기어코 눈물이 고여 시야를 가득 흐렸다.
*
하늘에 꾸물대며 먹구름이 모여드는 것이 꼭 비라도 한바탕 뿌릴 기세였다. 별로 좋지 않은 날씨 탓에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 좋지 않은 기분의 이유가 꼭 날씨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날씨의 영향도 꽤 있다고 봐야지. 어제 저녁 반나절을 했던 퀴디치 연습을 되새김질하며 앞에 놓인 티본 스테이크와 알리고 치즈 감자를 열심히 우물댔다. “야, 잘하고 와. 그런데 상대팀이 참….” 나재민은 말 끝을 얼버무리며 잔에 담긴 호박주스를 원샷했다. 응,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상큼 터지는 노랫말이 머릿속에서 열심히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래, 참 할말 없게 만들긴 하지. 상대팀이. 그래…. 잘게 잘린 스테이크 한 조각을 콕 찍어 입 속으로 밀어넣었다. 초록색과 은색만 봐도 넌덜머리가 날 지경이었다. 시작하면 더 징하게 볼 건데 굳이 미리 봐서 좋을 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바로 뒤의 테이블에선 야유 섞인 함성이 간간이 들려오고 있었다.
“쟤넨 어째 나아진게 한 개도 없냐.”
“그러게요.”
“야, 얼굴 풀어. 괜찮아.”
주장인 영호 오빠가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그러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되나요 어디…. 두 눈을 꿈벅이며 깔끔하게 한 접시를 비웠다. 슬리데린의 선수들도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도 가자.” 추격꾼을 맡고 있는 이동혁은 벌써부터 일어나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꼬리 두 쪽을 말아올리고서 내게로 손바닥을 내미는 나재민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준 뒤 이동혁과 함께 경기장으로 향했다. 하늘을 빈 틈 없이 메운 먹구름 아래의 공기는 생각보다 더 텁텁하고 습했다. 이런 날씨 딱 질색인데. 탈의실로 향하면서도 영 얼굴을 피지 못하는 내게 이동혁은 별 말을 다 해줬지만 무엇하나 위로가 되는 것이 없었다.
추격꾼 셋, 몰이꾼 둘, 파수꾼 하나, 수색꾼 하나. 각자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있지만 그 영향력이 수색꾼만큼 지대할까. 한번에 150점을 떠먹여주는 골든 스니치를 잡을 수 있는, 잡아야 하는 포지션인만큼 영향력도 책임감도 엄청났다. 또한 그 골든 스니치는 찾기도, 잡기도 굉장히 어려워서 날씨가 어느정도 도와줘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날씨가 이 모양이라구요…. 퀴디치복을 갈아입는 내 머리 위에까지 먹구름이 드리우는 듯했다.
“조심해. 날씨도 그렇고, 쟤네도 그렇고.”
탈의실을 나서자 이동혁이 옆에 붙어 소곤댄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를 알아서 하는 말이었다.
“너도 조심해. 한 순간에 간다.”
“야, 나는 추격꾼이고. 너는 하나밖에 없는 수색꾼이고.”
이마를 톡 치며 던진 이동혁의 말에 눈을 세모꼴로 뜨며 녀석을 노려보았다. 그러다 요란한 소리가 터져나오는 관객석으로 시선을 주었다. 초록색과 은색으로 한껏 치장을 한 슬리데린의 학생들 틈바구니에 앉아있던 이제노는 눈이 마주치더니 선선히 눈을 휘며 웃었다. ‘잘 해.’ 또박또박 한 자를 눌러 입모양을 보이는 그 얼굴에 어정쩡한 미소를 지은 뒤 나무 상자를 발치에 둔 후치 부인에게 다가갔다. 주장들은 서로 악수를 하라는 그녀의 말에 영호 오빠와 슬리데린의 주장이자 파수꾼인 이태용이 손을 서로 맞잡았다. 나는 그 뒤에 서 있는 몰이꾼인 이민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아무런 내색도 않고, 손에는 나무 방망이를 쥐고 그저 자신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이동혁을 쳐다볼 뿐이었다.
“…셋, 둘, 하나!”
후치 부인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선수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나는 퀴디치가 사라진 방향으로 빗자루를 몰며 눈을 가늘게 여몄다. 이민형의 까만 머리카락이 시야 끝에 걸리는 것도 같았지만 스니치를 찾는게 급선무였다.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사방으로 시선을 돌릴때, 문득 볼 언저리에 빗방울 하나가 떨어져내렸다. 비가 내릴 모양이었다. 저도 빗방울을 맞은건지 이동혁이 옆을 스쳐지나가며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둥의 말을 흘렸다. 예예. 점점 많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에 다급히 손으로 볼을 훔칠 때였다.
“……!”
누가 봐도 스니치인 물체가 저 멀리서 빛을 발하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야를 좁히며 속력을 높이자 슬리데린의 수색꾼도 덩달아 속도를 높였다. 조금만, 조금만 더…. 다와갈 때쯤 있는 힘껏 손을 뻗었다. 물기로 손이 미끌거리려는 참이었다.
“…야! 김여주!”
그래, 잡았는데…. 어디서 날아온지 모를 블러저가 무게중심을 잡고 있던 어깨를 후려치는 바람에 휘청 몸이 기우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손에는 스니치 하나 쥐고, 낙하산도 그 무엇도 없는 상태로. 점멸하는 시야에도, 떨어지는 빗물만큼은 선명했다. 귓가에는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이동혁을 비롯한 같은 팀 선수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또 아레스토 모멘텀(사람이나 물체가 떨어지는 속력을 늦춰 추락으로 인한 상해를 줄이는 마법)이라고 주문을 외우는 누군가의 소리가, 정신 사납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는, 어둠밖에 남지 않았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까만 암흑이 나를 에워쌌다. 그리고 끌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깊고, 더 깊은 저 밑으로. 끝도 없이 그렇게.
next prev;
야. 슬리데린 걔, 마크.
징계먹었어.
/
예고라 하기엔...대사 하나...머쓱;
암호닉 없으면 나중에 메일링 안해드랴요 댓글 적으실때도 꼭 암호닉 적어주시요...(비회원분들도 해주세요)
+ 댓글 한번도 안다신분들 메일링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울 코코 센티넬 기반 글으로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뵐게요 :D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암호닉 |
이유노잼 / 구름 / 졔졔 / 쀼 망고정우 / 정재현처돌이 / 윤제이 / 체리 정우세상 / 피J / 말랑 / 바다 핑크공주 / 사크야 마랑해 / 여울 / 썬코 뀨링 / 비나이다 / 코코가 미래다 / 데요요 물복딱복 / 유잼 / 굴려굴령 / 주접이 이스위티 / 희희J / 너를 위해 / 오웅스윝희 열음 / 엔도시입주민 / 수박웨이 / 차차 애옹이마크 / 99 / 휴나 / 솔직히약간진짜이제 OR / 채채 / 발렌타인 보이 / 사랑둥이 라지피자 / 오늘도 이마크처럼 / 백일몽 / 자몽타르트 누눙 / 나나의 하루 / 복숭아잼 / 망고쨈 윤오왕댜님 / 호빵 / 부침개 / 마크의꾸망 / 첫사랑 머리땅땅 / 녹차라떼 / 오이52 / 단델 뇩 / 귤 / 또잉또잉 / 재현아 사랑해 김정우 처돌이 / 블랙버블 / 꾸꾸 / 또라에몽 스누피포챠코 / 김용안 / 스누피젱 / 애오옹 째니 / 케도도 / 아아 / 정순한 청우 윤54랑 / 유노정윤오 / 구밀 / 동돌곰혁 태양 / 교토맨 |
신청은 아래 글에서만 받습니다:D
https://instiz.net/writing/84262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