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는 끝났다
bgm : 인피니트 - 왜 날
너가 남긴 그 쪽지를 본 이후로 이미 내 관심은 거기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내 앞에 앉은 지수가 본인의 회사에서 있었던 일,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풀어가고 있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지수의 이야기에 작게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그 정도 수준의 반응이었다. 지수도 그런 나의 상태를 슬슬 눈치를 챈 건지, 밥을 어느 정도 먹은 이후에는 내게 피곤해보인다며 얼른 집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가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건네왔다. 일부러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지수가 사과를 하도록 만들어버린 셈이다. 오랜만에 본 친구에게 이 정도의 반응 밖에 못한다는 점이 너무나 미안했지만 지금 내 상황에서 여기 있는 것이 지수에게 더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어 다음을 기약하고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지수네 집과 반대 방향인 지하철에 몸을 싫고 다시 돌아가는 길. 퇴근 시간도 어느 정도 끝이 나 아까와는 달리 조금 여유로워진 지하철이었다.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은 뒤, 아까 가방에 구겨넣었던, 너가 남긴 쪽지를 다시 꺼내보았다. 무슨 의도로 쓴 말이었을까, 대체 왜 그만 써도 괜찮다고 했을까, 그리고 언제 너는 이 쪽지를 썼고 내 가방에 넣고 갔을까. 당장이라도 너를 찾아가 묻고 싶은 질문들 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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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신으로 지하철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겨우 집으로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로 가방도 내팽겨치고 침대에 누웠다. 너랑 마주친 시간은 고작 1분도 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 여파는 너무나도 컸다. 너를 본 이후로 아무런 일에도 집중을 할 수 없었고, 마치 어딘가에 혼이 팔린 사람 같았다. 오죽하면 지수가 몸이 안 좋아보인다고 했을까.
침대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벽에 기대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노력했다. 일단 가장 궁금한 점은 너가 어떻게 그 현장에 나타났느냐, 그것이었다. 음, 그건 너랑 나랑 어쩌다 동선이 겹쳤다고 결론을 내려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워낙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 너도 신논현 쪽에 친구들을 만나러 자주 오곤 했으니까. 그렇다면 너가 나에게 건넨 쪽지는? 그 립스틱을 넌 어떻게 찾았지? 쪽지부터 다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가방에서 그 쪽지를 다시 꺼냈다.
너는 늘 나에게 쪽지를 주길 좋아했다. 항상 너의 가방에는 포스트잇과 펜이 있었다. 그 습관이 여기서도 나타났겠지. 때로는 나는 너에게 왜 직접 말로 하지 않고 굳이 포스트잇에 글로 쓰냐고 했지만, 너는 그게 더 마음이 잘 전달되는 것 같아서 좋다고 대답해왔다. 그리고 점차 나도 그거에 익숙해졌고, 너와 연애를 할 당시에 나의 수첩에는 너가 준 쪽지들로 가득했다. 너의 투박한 글씨도, 능숙하게 그리지 못해 매일 다른 모양의 하트도 좋았다. 아니, 그냥 너라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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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야,"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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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길래 내가 불러도 답이 없어."
카페에 마주하고 있는 너와 나. 우리는 항상 카페 데이트를 즐겼다. 날씨가 춥든 덥든 상관이 없었다. 카페 가기를 좋아하는 너와 디저트를 좋아하는 내게 가장 적합한 데이트였다. 우리는 항상 예쁜 카페를 찾아 방문해 거기서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고 그랬다. 그 날도 늘 그랬던 것처럼, 전날에 서로 가고 싶은 카페들을 찾아 카톡방에서 공유했고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그 곳에서 만났다. 가장 유명한 디저트를 시키고 자리를 잡고 앉아 수다를 떨었다. 근데 유난히 그 날, 너와의 대화에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왜였을까, 그 날 나는 왜 그랬지.
계속해서 집중력 없이 대화를 못 따라오는 내가 답답했을 법도 한데, 너는 늘 나에게 보였던 그 예쁜 미소로 나를 부르고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어왔다. 그 당시에 그 행동에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아무런 일도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아마 그 날 너는 생각했겠지, 이게 내가 보내는 신호라고. 근데, 승우야. 이제서야 말하지만, 절대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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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네,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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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뭐야. 누나 오늘 친구 만나러 간다면서."
"아, 어. 근데 몸이 안 좋아서 그냥 일찍 왔어."
"그래? 알겠어, 나 라면 먹으려고 하는데 누나 먹고 싶으면 내려오던가."
"난 안 먹을래, 너 다 먹어. 근데 너 저녁 안 먹었어?"
"응, 못 먹어서 지금 먹으려고. 무튼 알겠어, 확인-"
잠시 승우에 대한 기억을 더듬고 있었을까. 갑자기 들린 노크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쳐다보니, 동생 요한이가 문 앞에 서서 있었다. 옷차림을 보아하니 외출 후 곧장 내 방으로 온 것 같았다. 아마 밖에 나간다고 했던 누나의 신발이 현관에 있으니 무슨 일인가 싶어서 왔겠지. 라면을 먹을거냐는 질문에 괜찮다고 대답하자 요한이는 별로 놀랍지 않다는 반응으로 알겠다고 대답을 남기고 문을 닫아주었다.
부엌 쪽으로 향하는 요한이의 발소리가 들렸고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원래 더듬고 있던, 더듬어야만 하는 기억 속으로 돌아가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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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네, 여주 여보인데요?'
"아, 한승우 진짜."
'뭐 해, 자기야.'
맥주를 사러 집 앞 편의점으로 향하던 길. 갑자기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에 놀라 전화를 받으니, 역시나. 항상 나를 놀리길 좋아했던 너는, 내가 '여보세요'라고 할 때마다 '여주 여보인데요'를 반복했고 그날도 역시 그랬다. 누군가는 오글거린다고 했지만 그게 우리에게는 소소한 재미이고, 애정표현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게 우리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고.
"나 지금 맥주 사러 편의점 가는 길."
'맥주? 맥주 마시고 싶어?'
"응. 갑자기 생각이 나서."
'요한이는?'
"요한이? 갑자기 요한이는 왜?"
'요한이 없으면 너네 집 가도 돼?'
우리의 집은 10분 거리였기에 서로의 집에 놀러가는 것은 익숙한 일 중 하나였다. 자취인 너와 달리, 나는 동생과 같이 살고 있기에 주로 너의 집이 우리의 아지트였다. 그래도 너는 내 동생이 외출하거나 엠티를 가거나 하는 그런 날들을 기다리며, 비어있는 날이면 내 손을 이끌고 우리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간다고 해서 뭔가 특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평소 혼자 시켜먹기에 부담스러웠던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미뤄뒀던 영화들을 보거나, 간단히 술을 마시거나. 그냥 늘 그랬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그만큼 우리는 서로의 삶, 그 속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었으니까.
"오늘은 요한이 있어. 대신 내가 맥주 사서 너네 집으로 갈게."
'아, 김요한. 집돌이야, 집돌이.'
"엊그제 왔었잖아, 너. 얼른 갈게."
'빨리 보고 싶기는 한데 천천히 와, 넘어지지 말고. 건물 입구에서 기다릴게.'
너는 항상 나에게 다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해 나는 표현하는 방법도 잘 몰랐고, 그 자체에 서투른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런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사랑해준 사람이 너였다. 너에게 이를 다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많이 사랑했고 함께 했었던 매 순간이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사이에는, 아니, 나에게는 바꿀 수 없는 단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하나가 우리의 로맨스를 결말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여름의이브입니다 생각보다 첫 글에서 좋은 반응과 예쁜 댓글들을 많이 남겨주셔서 정말 감동했답니다! 그래서 더 으쌰으쌰해서 1편을 들고 왔어요 혹시라도 내용에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다면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 앞으로 풀어갈 내용이 아니라 알고 계셔야 이해하기에 좋은 내용이라면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되세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