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인 과거-안녕, 오랜만이야>
그를 처음 본 건-이것 또한 나중에 인식한 것이지만-여덟 살 때였다. 내가 갓 SAG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나도 몰랐던 내 천재성을 감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남들은 쉽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절대 그렇지 않은 훈련들을 지속해왔다. 나는 그저 뛰라는 대로 뛰고, 날아서 넘으라는 대로 넘었고, 총을 쏘라는 대로 쏘았스며 방어하라는 대로 방어했을 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길바닥에서 굴러먹던 중 유일하게 주워먹던 눈치라던지, 민첩함이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심지어 나는 고아원에서도 도망친 상태라 검사를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나에게 센티넬의 유전자는 절실했다. 내가 살던 세상을 벗어날 유일한 희망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센티넬이었고, SAG에 들어와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꽤 우수했다. 나는 살아남는 방법에는 도가 트여있는 꼬맹이여서, 정말 죽을만큼 열심히 했다. 다른 아이들은 일년 내에 정해진 교육과 훈련과정을 이수하면 그만이라지만, 나는 그 어린나이에 꽤 절실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거리로 쫓기면 어떡하지, 어린 마음이었다.
여름 쯤이었나. 그날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기 보단 선명한 느낌으로 기억된다.
맑은 푸르름이 훈련장에 가득했고, 하늘도 내 잠옷보다 선명하고 파랬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어쩐지 쩅한 감이 있었고.
그 햇살 때문이었다. 나보다 덩치가 두배는 큰, 나이도 세살이나 많은 11살 형과의 대련이 있었다. 힘은 세지만 기술은 없는 상대였는데, 역시나 체급이 문제였다. 그 형의 그림자가 나를 가리자, 나는 고개를 쳐들고 잽싸게 그늘을 빠져나왔지만, 그늘을 벗어난 순간, 내 까만 눈동자에 수직으로 꽂히며 부서지는 햇살이 있었다. 나는 눈두덩이를 움켜쥐다가 발을 헛디뎠고,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비록 연습용 검이지만 여덟살짜리 아이에게 가벼운 상처를 줄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교관 선생님은 처음으로 내 상처를 뜯어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병동에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내 또래 아이들 뿐만 아니라 SGA의 모든 청소년 센티넬과 가디언들 사이에서는 병동을 기피하는, 어떠한 습관같은 것이 있다. 뭐라고 콕 찝어 말할 수는 없지만, 병동에 다녀오면 약자라는 인식이 생기는 것 같았다. 센티넬과 가디언의 세계는 완벽한 약육강식의 세계였기 때문에, 약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먹힐 가능성을 스스로 높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한 어린 아이들 특유의 고유한 자존심같은 것은 이 습관에 큰 힘을 가해서, 몇몇 아이들은 훈련 중에 생긴 가볍지 않은 상처를 방치해 두다가 일을 크게 벌리기도 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나는 병동에 갔다. 썩 내키지 않은 마음으로.
병동에 아무도 없길 바랬다. 심지어 간호사님도. 그럼 교관 선생님께 '간호사님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정도 상처는 혼자 견딜 수 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병동에는 정말 간호사님이 없었다.
한 아이가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는 나보다 훨씬 어린 줄 알았지만, 이 건물 안에 여덟살보다 어린 아이는 없기에, 나와 동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또 센티넬 그룹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가디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상대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하얀 침대보 위에, 반쯤 덮은 이불위로 살포시 얹어진 손, 침대맡에는 큰 창이 있고, 그 창으로는 내 상처의 근본적인 원인인, 그 쨍한 햇살이 은은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햇빛은 창을 통해 스미면서, 반짝이는 부스러기처럼 부서졌는데, 그 부스러기는 그 아이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 부스스 떨어졌다. 남은 조각은 얼굴로도 떨어졌다. 반드레하게 빛나는 볼에서 시선이 벗어나지 않았다.
검은 눈동자도 빛나고 있었다. 햇살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상처는 치료가 끝나 있었다. 그 아이는 살래살래 손을 흔들며 잘가라고 인사했다. 나는 멍청하게 되받아 인사하다가 퍼뜩, 그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며, 몇 살이야?"
멍청한 말이었지만. 어쨌든 뱉어나왔다.
"아홉 살."
하며 살풋 웃는 얼굴에, 궁궁궁궁 심장이 뛰었다. 어마어마한 덩치의 상대가 칼을 들고 달려오는 것처럼.
그 날 이후로
모든 아홉 살의 합숙소를 돌아다녔다. 나보다 한 살 많은 찬열이 형, 그러니까 아홉 살인,은 이리저리로 발이 넓었다. 나는 하얗고, 동그랗고, 그리고....그의 얼굴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를 묘사할 말들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 몰라, 그냥 하얗고, 동그랗고...천사같앴어.
찬열이 형은 고개를 갸웃하며 힘 닿는 대로 찾아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별 소득은 없었다.
"야, 내가 위험을 무릎쓰고 가디언 교실까지 갔다왔다는 거 아냐. 근데 그런 앤 없던데."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환영이었나, 유령이었나.
그가 치료해준 상처는 작은 흉터를 남기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좀 더 더디게 나았으면,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를 찾지는 못했지만, 시간은 쉼없이 흘러갔다. 나는 나이를 먹어갈수록 더 강도 높은 훈련들을 이겨내야 했고, 나 스스로도 그러고자 했다. 좀 더, 좀 더 열심히, 잘 하면, 그도 내 소식을 듣지 않을까. 뭐, 그가 자신을 알 거라는 확신조차 없었지만, 어릴 때와 얼굴이 많이 변하지 않았으니까 기억 할 수도 있지. 희망적인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나는 중요한 대련이 있을 때마다, 사실은 거의 매일, 병동 창문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
커튼은 걷혀지지 않았다. 그의 그림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