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긴 연애 동안 싸워본 적이 없다. 1 여러 채널을 돌려도 재미없는 것만 한다. 유튜브를 연결해 노래를 틀어두고 휴대폰을 만지작대고 있으면 도어락이 열리고 재현이가 왔다. 비에 쫄딱 젖은 채로. “비 맞고 왔어?” “역에서 내리니까 비 오더라. 별로 안 오길래 뛰어가면 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후두두 떨어져성...” 현관 앞에 서있기만 하는 정재현에게 얼른 수건을 가져다 줬다. 이게 무슨 일이야... 비가 오면 나한테 연락을 하지 그랬어. 정재현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웃었다. “나 씻고 올게.” 젖은 양말을 벗고선 재빨리 화징실로 들어가버린다. 따뜻한 유자차라도 해놔야겠다. 대충 몸만 닦은 건지 샤워기 소리는 금방 멈췄다. 문을 살짝연 정재현이 얼굴만 내밀고서 말한다. “여주야 나 속옷 좀.” “으구 들어갈 때 가지고 가지!” “깜빡했어.” 거의 동거급으로 불어난 정재현의 짐들에 수납칸을 마련한건 저번 주였다. 세번째 서랍에 다섯 개는 넘게 있는 남성 속옷. 그 중에 빨간색을 골라들었다. 그냥... 정재현은 피부가 하얘서 빨간색이 잘 받더라. 앞에 뒀엉. 정재현은 손만 내밀어 속옷을 가지고 들어갔다. 유자차를 글라스에 따랐다. 스퍼커에 휴대폰을 연결해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노래를 틀었다. 재현이는 가운을 걸친 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왔다. “식탁에 유자차 올려뒀어. 마셔.” “땡큐. K네?” “웅. 너 이 노래 좋아하잖아.” “요새 자주 듣긴 했지.” 정재현은 식탁 위에 올려진 스피커 볼륨을 높인다. 나는 거실 탁자에 놓인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였다. 요새 머스크 향을 꾸준히 태우다 보니 집안에서 머스크 향이 났다. 정재현은 유자차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대뜸 말했다. “여주야, 나 그냥 짐 싸서 너네 집으로 들어올까?” “맘대로 하세용. 난 지금도 충분히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아. 너가 망할 비행을 밥 먹듯이 하는 것만 아니면.” “직업인데 어뜩하냐...” 정재현은 컵을 내려놓고 내게 걸어오더니 대뜸 큰 몸으로 푹 안긴다. 정재현 잠깐만, 나 이거 작업하던 거 ㅜㅜ 안 돼 날아간단 말이양. 애써 맥북을 저만치로 치워두구 큰 리트리버 정재현을 껴안는다. “졸려 여주야.” “잘까? 자러 갈래?” “아, 너 그거 고딩 때 밥 먹듯이 했잖아 그 말. 길 걷다가 모텔 나오면 자동반사처럼.” “아, 얘가 또 옛날 얘기를... 그때는 수줍어서 그랬지.” “어이가 없네... 그럼 지금은 뭐라 그러는데?” “섹스? 섹스!” 하아... 정재현은 이마를 짚었다. 2 “정재현 나가서 분리수거 좀 하구 와.” “아 귀차낭... 나 손님이잖아.” “여기 내 집이니까 니가 갔다 와.” 정재현이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그렇게 봐서 어쩔 건데... 지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귀찮음이다. 베란다에 모아두었던 플라스틱과 종이팩을 현관 앞에 얹어두었다. 맥북을 만지작대던 정재현이 한숨을 푹 쉬고 일어났다. “아~ 맨날 나 올 때마다 분리수거 시키고 음식물 버리라고 시키고~” “울 겸둥이 분리수거 하고 오면 재현이가 좋아하는 갈비 해줄게용~” 재현이는 해탈한 듯 썩소를 지었다. 양손에 종이 박스를 쥔 채 슬리퍼를 챙겨신는 정재현의 엉덩이 위에 양손을 얹었다. 그냥... 너무 귀엽길래. 흠칫 놀란 재현이가 뒤를 돌아보면 엉덩이를 쪼물딱댔다. 귀 빨개졌다. “아 머해. 만지지 마.” “정재현 걍 분리수거 하지 마. 너 엉덩이 수거 먼저 좀 해야겠다.” “아 머래 진짜. 나 간당.” 정재현은 재빨리 현관문을 나선다. 3 언젠가부터 재현이는 자기 전 독서를 했다. 글자를 봐야 잠이 잘 온다나,,, 나는 재현이 옆에서 휴대폰을 만지작댔다. 인스타그램 돋보기에 올라온 여러가지 게시물들이니 구경하는 정도. 띠링- 그러다 갑자기 동혁이에게 스토리 답장이 왔다. - 누나 머하세여 나 자려고 왜? - 저 심심해서영 정재현은 읽던 책을 엎어두고 휴대폰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검은색 머리통을 밀쳐내는데도 끝까지 버팅기고선 몇 자 나누지 않은 디엠을 쳐다본다. “누구야?” “과 후배 동혁이.” “남자야?” “엉... 남자긴 하지...?” 갑자기 정재현이 토라진 표정을 한다. 아무래도 삐진 것 같다. 엎어둔 책을 다시 펼쳐서는 소리 내서 읽는다. “카인과 그 표적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재훈~ 왜 구랭...~”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한 가지 깨달음이...” “삐졌엉...?” “감지되었다. 그것은 신부님이...” “내일 재혀니 좋아하는 에그타르트 먹으러 갈까...?” “약속.” 뭔가... 말린 느낌이 들지만 뭐 일단 삐진 정재현을 풀어줬으니 됐다. 정재현은 책을 다시 엎고 내 목과 베개 사이로 팔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그윽한 눈빛으로. “여주. 우리 아까 낮에 갑자기 전화 와서 못한 거 있잖아” “그게 뭐였더라.” “아 왜 그거 있잖아.” 티셔츠 속으로 정재현의 손이 들어왔다. 따뜻해서 돌아가바리실 지경이다. 머리 끝에 걸친 손가락이 바지 밴딩 속으로 꿰차고 들어가고 입술이 다가오면 왠지 약올리고 싶은 마음에 고개를 휙 비틀고 팔목을 잡았다. “뭘 봐.” “... 나 지금 약올려?” 억울한 표정으로 내려다 보는 정재현이 너무 귀엽다,,, 잡은손목을 가슴 위로 끌고 올라가면 비례해서 올라가는 정재현 입꼬리. 아아... 사랑스럽다. 0 님들아 이거 원래 하나밖에 안 쓸 작정이엇는데 내 예상 밖으로 댓글이 달려버려서... 다급하게 하나 더 적어봣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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