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잔잔히 밀려오던 해변길을 걸어다가 멍하니 서있던 한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치던 순간 파도가 거세게 몰아쳐 나를 집어 삼켜버렸다. 자꾸만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그 순간에도 나는 그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그리고 잠에서 꺤 내 눈앞에 날 보며 인상을 쓰던 널 봤다.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거렸을 나를 얼마나 속이 타게 바라봤을까, 걱정스런 눈으로 날 쳐다보다 다시 내 옆에 누워 내 등을 쓰다듬어주는 너의 따스한 손길에 취해서 너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다.
근데, 내 옆에 있는 너, 이름이 뭐였지 … ?
가끔씩 기억의 파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나랑 숨바꼭질이라도 하자는 건지, 요새들어 자꾸 도망간다. 그럼 나는 아무 표정 없이 멍하니 앉아있다. 너가 전화통화 하던 사람이 부르던 이름에 나는 그것이 너의 이름인것을 꺠닫고, 너가 불러주는 날 보며 말하는 이름에 그것이 나의 이름인걸 깨닫고, 너가 하는 행동을 보며 자연스러운 척 하려 노력하고, 아니면 아예 피로한 사람처럼 하루종일 기억이 날 그 순간까지 누워있는 날도 있었다. 근데 오늘은 이상했다.
"종인아 … "
너무 선명하게 모든게 기억이 났다. 평소완 다르게 너의 이름이 익숙했고, 내가 하는 짓들이 너무 당연했고, 심지어 너와 만난 그 날까지도 기억이 났다. 그리곤 예전처럼 두 팔을 벌려 너의 이름을 부르니 그가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온다. 아… 그에게서만 나던 향기가 너무 좋다, 내 기분을 자꾸 편안하게 해준다. 종인의 어깨에 기대 텔레비전을 보고, 날 위해 요리하는 종인의 뒤에서 껴앉아보기도 하고 서로의 마주보고 서서 양치질을 하고 배를 바닥에 깔고선 만화책을 산처럼 쌓아놓고 보기도 했다. 자꾸 마음 한 구석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감정을 행복이란 단어로 정의해놓고 계속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꾼 꿈처럼 바다보다 더 깊은 기억의 파도에 잠겨버린 나는, 다시 너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하루만에 시무룩해진 날보며 내 곁에서 나의 볼을 쓰다듬는 너의 손이 어색하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눈이 무섭고, 그리고 너에게서 나는 향이 … 징그럽다.
잠깐 … 내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나는? 지금 내가 있는 이 곳은 … ?
파도가 밀려왔다. 나를 잡아먹고선 그걸로 모자란건지 야금야금 나의 기억을 잡아먹는다.
+)사실 천엘(틴탑/천지엘조)쓰다가 더이상 안써져서 쓴 카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