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으로 들려오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와 날 괴롭혔다. 이 숨막히는 공간에 잠긴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그 행복에 들뜬 웃음이 너무나도 부러웠고, 그 부러움은 내 안에 가득 차고 흘러 넘쳐 증오로 끓어올랐다. 왜 너희들은 그렇게 행복한거야. 나는 이렇게 좆같은 생활 속에서 벌레처럼 살아가는데. 나는 미친듯이 울부짖었고, 미친 듯이 웃었다. 울음과 웃음 속에서 싹을 틔우던 새싹같은 희망은, 또 다시 뿌리를 뽑혀야 했다.
*
"00아, 밥 먹을 시간이야."
김지원은 방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아있는 내 팔을 잡고 날 끌어올렸다. 하얀 이를 내보이고, 눈꼬리를 접어 내보이는 웃음이 징그러웠고. 역겨웠다.
"안 먹어."
내 한 마디에 웃음을 머금던 김지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김지원은 내 팔을 더 세게 부여잡고는 날 끌어당겼다. 그러면 안되지 00아.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는데. 안 먹으면 안 돼.
차가운 복도를 걷는 동안, 김지원은 말이 없었다. 부엌에 가 식탁에 앉자. 식탁 밑에 있던 김지원의 애완견이 내 발목을 핥았다. 소름끼치는 축축함에 입술을 세게 깨물어 올라오는 욕지거리를 삼켜냈다. 김지원은 내 앞에 김이 피어오르는 밥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려주었다. 김지원은 물 한잔을 따라 밥그릇 옆에 두고는 날 마주보고 앉았다.
"먹어."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게, 역겨웠다. 나는 숟가락을 들고 달걀 노른자를 잘라냈다. 내가 노른자를 잘라내자. 김지원은 내 앞으로 몸을 숙여 노른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우물거리며 노른자를 씹는 김지원은 날 바라보곤 씩 웃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걸 밥을 밀어넣어 삼켜냈다.
김지원은 내가 밥을 다 먹을때까지 내 앞에 앉아있었다. 이 상황이 끔찍하게 싫어서, 김지원와 마주한 이 공간을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밥을 꾸역꾸역 삼켰다. 내가 밥을 다 먹자 김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 먹은 식기들을 들어 싱크대에 가져다 놓더니 내 팔을 잡고는 욕실로 가 양치를 했다. 김지원이 내 칫솔 위에 짜 놓은 불투명한 초록빛 치약마저 혐오스러웠다. 나는 양치를 하는동안 거울을 바라봤고, 김지원은 그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봤다.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초췌했다.
양치를 끝내고, 김지원은 나를 데리고 내 방으로 되돌아갔다. 복도를 걸을 때 울리는 발소리가 집안을 울렸고, 그 울림이 마치 내 비명 같아서 기분이 아려왔다.
방문 앞에서 김지원은 내게 입을 맞췄다. 키스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입맞춤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김지원과 내 사이에 '키스' 라는 단어가 엮인다는 게 엿같아 인정을 하지 않았다. 김지원은 혀로 내 입안을 탐했고 내 턱으로는 김지원의 타액이 흘러내렸다. 김지원은 입술을 깊게 빨아들이고는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곤 날 방 안으로 밀어넣었다.
"잘 자."
밖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김지원의 발걸음 소리가 희미해지자마자 쓰레기통을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씨발, 역겨워. 씨발, 씨발. 휴지를 뜯어 김지원과 입술을 부볐던 내 입술을 미친듯이 문질렀다. 한 쪽 구석에 있던, 언제 버렸는지 모르겠는 칫솔을 들어 입 안을 닦아냈다. 입 안이 벗겨져 비린 피 맛이 느껴질 때서야 나는 칫솔을 내던졌다.
좆같아.
*
잠을 한 숨도 못잤다. 눈을 감으면 날 바라보는 김지원의 소름끼치는 눈동자가 보여서. 눈을 감으면 날 보고 웃는 김지원의 징그러운 입꼬리가 떠올라서.
창문 틈으로 옅은 햇살이 내려왔다. 하얀 햇살이 내 얼굴에 내려앉았고, 기분이 좋았다. 쓰레기같은 생활 속에서 내가 그나마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얼굴에 닿아 부서지는 햇살이 부드러웠다.
"일어났어?"
어느새 들어온 김지원이 날 끌어안았다. 온 몸이 경직됬고, 온 몸에 흐르는 피가 굳는 기분이었다. 당장이라도 김지원을 내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러면 안됬다. 나를 여기서 내보내 줄 수 있는 건, 김지원 뿐이니까.
"지원아"
김지원을 부르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힘없이 갈라졌다. 김지원은 여전히 날 끌어안고 있었다. 목에 김지원의 뜨거운 숨결이 닿았다.
"왜 날, 이렇게. 가둬?"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고, 나도 모르게 나가려는 말들을 삼켜내고, 다시 뱉었다. 내 말을 듣던 김지원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차가운 김지원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널 사랑하니까. 00아."
날 사랑하니까? 그 누가, 세상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이렇게. 죽고싶게 만들어 지원아.
"나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돼?"
내 목소리가 흐느꼈다. 흐느낌은 잘게 쪼개져서 방 안을 맴돌았다. 그 흐느낌은 점점 짙어져 내 발목을 감아왔고, 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짙은 흐느낌에 내가 잠겼다. 김지원은 나를 더 깊게 끌어안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때 놓아줄게."
"아마, 평생 여기 있어야 할거야."
암호닉 준회 님 사랑해여. ㅋ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