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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 기억의 조각
나는 너에게, 한없이 나쁘기만한 사람이었음을.
나쁜 사람
written by. 공화국
나쁜 사람(Bad Boy) 세번째 이야기
집 비워달라고 말했을텐데.
싸늘한 목소리가 경수의 몸 위로 내려앉았다. 이주일이라는 시간이 벌써 지난 모양이다. 몸을 웅크리고 누워있던 경수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온 몸이 땀에 흠뻑젖어 찝찝했다. 이마 위로 송글송글하게 맺힌 땀을 대충 훔쳐낸 경수가 중앙에 서 있는 종인을 제 눈에 한껏 담아냈다. 오늘도 여전히 김종인은 멋있었다. 수트를 갖춰입은 모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 너 때문에 열쇠공까지 불렀잖아. ”
“ …… ”
“ 비밀번호는 왜 네 멋대로 바꿨어. 여기 네 집 아냐. 내 집이지. ”
모든 게 불쾌하다는 듯한 목소리였다.
“ … 준비도 안됐는데, 나가라고 했던 건 너잖아. ”
땀에 흠뻑젖어 몸을 움직이는 것 조차 힘겨워보이는 경수에 종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차분히 말을 가다듬는 종인에 경수는 힘겹게 울음을 참아냈다.
“ … 우리 여기서 8년을 같이 살았잖아. ”
“ …… ”
“ …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
그런 집을, 갑자기 비워달라고 하면 ……… 갑자기 나가달라고 하면 …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하니. 응, 알았어. 금방 비워줄게. 라고 말해야 하니? 아니면, 네 발을 붙들고 싫다고 애원해야만 하니. 너는 왜 이렇게까지 망가진 나를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아하는거야. 왜, 타인을 보듯이 쳐다보는거야. 왜.
팔년간 날 사랑했던 김종인 맞니? 날 죽도록 사랑하겠다고 약속했던 김종인 맞니.
“ 되도 않는 추억 더이상 들먹일 거 없어. ”
“ …… ”
“ 경수야. ”
“ …… ”
“ … 이제 우리도 그만할 때 됐어. ”
지친 기색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경수는 절망했다.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구나.
“ … 그만하자. ”
“ …… ”
“ …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
“ …… ”
“ … 너 아닌 다른 사람을 … ”
그 순간이었다. 경수가 귀를 막은 채, 소리치며 온 몸을 뒤틀었다. 왜 그래, 나한테. 종인아. 나한테 이러지 않았잖아. 나한테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좋은 사람이었잖아 … 너, 그런 사람이었잖아.
왜 그래. 너만보고 달려온 내 시간을 왜 헛된 일로 만들어버리니.
“ 내가 뭘 잘못했어,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길래 나한테 이래! ”
잘못한 걸 알려주기라도 했으면, 고쳐라도 볼 수 있는거잖아 …
“ … 너만 보고, 오로지 너만 보고 팔년을 살았는데, 너만 보면서 그 시간들을 살아온 나한테, 어떻게 이래 … 어떻게 … ! ”
경수의 몸이 앞으로 엎어졌다. 버티지 못한 몸이 힘없이 들썩였다. 짐승처럼 울음을 토해내는 경수를 내려다보던 종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차가운 겨울 바다를 닮은 눈이 경수의 몸 위로 아슬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순간.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툭툭,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 그러게 왜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어 경수야. ”
“ …… ”
“ 그러게 왜 사랑을 진부하게 만들었어. ”
“ …… ”
“ 왜 재미없는 연애를 하게 만들었어. ”
그래서, 내가 지친 거잖아. 경수야.
김종인은 행복했던 연애 시절의 다정한 목소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들을 차근차근 내뱉고 있었다.
“ … 왜 널 영원히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었냐고. ”
경수가 이내, 숨을 멈추었다. 이내 경수는 뿌연 시야 사이에 서 있던 종인과 마주했다. 차가운 시선이 저를 향해 낮게 내리깔려 있었다. 경수는 다시 울음을 토해내고만 싶었다.
“ 왜 내 말을 믿었어. ”
“ …… ”
“ 영원할 거라는 약속을, 왜 믿었어. ”
……… 이 순간, 나는 숨쉬고 있음을 절실히 원망했다.
“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거 알면서 왜 믿었어. ”
“ …… ”
“ … 사랑에 무식했던 건 너잖아, 경수야. ”
머리가 새하얗게 질려버리고야 말았다. 무슨 말을 뱉어야 할지도, 그리고 어떻게 널 바라보아야 할지도. 나는 도저히 갈피가 서지 않았다. 내 시야에 담겨있는 너는 평소와 같았다. 평소와 같이 단정하고,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네 목소리에는 고민이 없었다. 떨림도 없었다. 그래서 남겨진 내 자신이 안타깝고 비참했다.
“ …… 종인아. ”
“ …… ”
“ … 이럴거면, 그냥 날 죽이지 그랬니. ”
“ …… ”
“ … 차라리, 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죽여 없애버리지 그랬어. ”
왜 죽지도 못하게 만들었어.
“ …… 넌 끝까지. ”
“ …… ”
“ … 날 멍청하게 만드는구나. ”
“ …… ”
“ … 결국, 내 손에 잡혀주지 않을거면서. ”
“ …… ”
“ … 사랑을 말하고, 이제는. ”
이별을 말하고.
“ 잘 지내 도경수. ”
“ …… ”
“ … 난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서 지금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
…… 더 잔혹해졌구나.
나 따위의 슬픔같은 건, 안중에도 담지 않을만큼, 강해졌나보구나.
“ 그리고 넌 날. ”
“ …… ”
“ 끝까지 나쁜 놈으로 만드네 도경수. ”
네 앞, 그리고 모두의 앞에서 무너지는 건.
네가 아니라 나였음을.
낮인가, 밤인가.
이제는 구분하기도 어려웠다. 오늘이 몇일이더라 … 넘기지 않았던 달력도 늘 같은 곳을 맴돌고 있었다. 한동안 켜놓지 않았던 휴대폰의 전원을 꾹 눌렀지만 켜지지도 않았다. 배터리가 다 나갔나보다. 경수가 깊은 숨을 내뱉는다.
무슨 마음이었을까. 경수는 급히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바꾸고 집의 문을 걸어잠궜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백현이 찾아와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어주지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난 후의 잔해는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조금만 움직여도 날이 선 것들에 의해 온 몸을 난도질 당할 것만 같았다.
그 이후로 종인이는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약속한 이주일이 가까워졌음이 대충 느껴졌다. 경수의 두 눈이 어두운 집 안을 훑어내려갔다. 어디하나 제 흔적이 남겨지지 않은 곳은 없었다.
소파 위로 몸을 뉘이기가 무섭게 강아지가 폴짝 뛰어 경수의 몸 위로 올라왔다. 얼굴을 핥아올리는 혓바닥에 경수가 힘없이 웃었다. 형아 아파, 그러니까 가만히 있자 … 응? 경수가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어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경수의 말을 알아들은건지 요란하게 흔들리던 꼬리도 잠잠해졌고, 정신없이 움직이던 얇은 다리도 경수의 배 위에 착, 내려앉았다.
“ … 종인이 … ”
“ …… ”
“ … 우리 깜이한테 내 이야기 하는 게 취미였는데. ”
“ …… ”
“ ……… 언제부터였을까. ”
너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않기 시작한 게 …
“ … 괜찮아. ”
“ …… ”
“ … 괜찮아. ”
“ …… ”
“ … 아니, 괜찮다고 말하다보면. ”
“ …… ”
“ … 언젠가, 괜찮아지겠지. ”
거실 위로 싸늘하게 내려앉은 공기는 겨울이라는 것을 완벽히 암시했다. 멀지 않은 곳의 너와 나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이별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