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너를 만난다면 10
[내일 꼭 예쁘게 하고 와요]
"응! 그럼~"
[아니다. 원래 예쁘니까 평소처럼 하고 와요]
왜 저래...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네.. 어쩜 저렇게 능글거리는 말을 자연스럽게 잘 뱉는지 정국이는 선수의 피가 흐르는 게 분명했다.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게 참 바람직해서 좋네.
[내일 일찍부터 일어나야 되니까 오늘은 둘 다 일찍 자자]
"지금 8신데...?"
[너무 이른가?]
"엄청 이르지"
[그럼 더 통화해]
말로만 가자 가자 하다가 드디어 딱딱 계획을 짜고 본격 부산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항상 당일 치기로 잠깐잠깐 구경만 하고 오는 게 대부분이었어서 계획을 짜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정국이는 무슨 계획이냐며 여행은 원래 즉흥적으로 가야 재밌다고 미뤄댔지만 내가 그렇게 해서 망한 게 얼마나 많은데... 하여간 이상한 것만 어디서 배워왔는지.
[와 드디어 내일이다]
"그러게"
[실은 나 설레서 잠도 안 와]
"나도!"
[꿈만 같다. 내일 눈 뜨면 더 그렇겠지? 아직도 내일 우리가 부산에 간다는 게 실감이 안 나]
"바로 내일인데 아직도 안 나면 어떡해! 이번 주 내내 그 소리 하더니~"
보이진 않는데 들리는 목소리로 정국이의 들뜬 기분이 내게까지 전해졌다. 평소보다 목소리도 업 되어서 정말 기대가 되는구나 정말 신났구나가 느껴졌다.
하긴 나도 그렇긴 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놀러 가는 게 처음이니까. 게다가 1박 2일이라니. 엄청 기대가 되었다.
[근데,]
"응?"
[내일 비 올지도 모른다는데 진짜 비 오면 어떡하지?]
"그러게... 분명 날씨 좋을 거라고 해서 내일로 잡은 건데 갑자기 왜 그럴까..."
모든 게 완벽했는데 멀쩡하던 일기예보에선 갑자기 내일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해왔다. 우리 둘은 그게 걱정이었다. 이곳저곳 가기로 한 곳이 많았는데.
날씨마저 딱 맞아주면 얼마나 좋겠어. 그거 하나가 딱 아쉬웠다. 확실히 비가 온다고는 안 했으니까 안 오길 빌어야지 별수 없다.
"아 맞다, 정국아!"
[응]
"지민이가 자꾸 너 데리고 오라고 술 사준다고"
[싫은데]
말도 끝나기 전에 싫다는 말이 나왔고 괜히 빵 터져서 끅끅거리며 웃음을 토했다.
여전히 흘러나오는 웃음을 누른 채 이유를 물었다.
"왜 싫은데?"
[그 사람 좀 이상해요]
"왜 그래. 걔는 너 맘에 든다는데"
[그래서 더 이상해. 얼마나 봤다고 내가 마음에 들어? 그리고 그 사람은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시끄러워요]
"하긴 그렇긴 하지"
핸드폰을 붙들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평소의 박지민을 떠올리면, 쉬지 않고 입을 놀려대는 모습이 바로 튀어나왔다. 덕분에 내 머릿속도 시끄러워졌다.
게다가 얼른 약속을 잡으라는 박지민의 카톡도 텍스트일 뿐인데 참도 시끄러웠다.
[그렇게 먹고 싶으면 남준이 형이랑 둘이 먹으라고 해요]
좋은 변화였다. 남준이 형.
그 후로도 내가 가끔 셋이 만나는 자리를 더 만들었는데 만날 때마다 날 까는 대화로 친목을 다지더니 이제 저런 호칭으로까지 바꿔 부르더라.
남준이가 일부러 한 발짝씩 더 느리게 행동을 하고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때는 정국이에게 눈치까지 주면서 날 챙기는 걸 미뤄주었다.
그리고 확실한 사건 하나가 있는데 대체 내가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둘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서로 마주 보며 이상한 웃음들을 짓는데 그 후로 더 친해진 것 같아 보였다. 근데 그게 뭔지 물어도 답을 안 해주니 답답할 뿐이었다.
역시 남준이었다. 사람을 다룰 줄 알았고 워낙 애가 좋고 진국이니. 그렇게 밉다고 해대던 정국이 마음까지 돌린 걸 보면 남준이의 매력이 참 넘치는 거다.
나로서는 좋은 일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그렇게 자기 전까지 정국이와 수다를 떨며 통화를 했나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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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갔었어? 왜 없었어?"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얼른 달려가 다짜고짜 물었다. 한번뿐이었는데. 딱 한번 보이지 않았던 게 마음에 자꾸 걸렸었다. 혹시나 이게 끝인가 해서.
하지만 다시 왔고, 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미안해. 나 기다렸어?"
"응..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그 아이는 내리쬐는 태양만큼 따뜻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내가 없으니까 어땠어?"
"슬펐어! 너무 슬퍼서 울뻔했잖아. 이제 너 다시는 못 보는 줄 알고"
당연한 걸 물어오는 너에게 잔뜩 힘을 주어 말했다.
"나도 니가 없으면 슬퍼"
"그러면 어떡해... 어차피 난 또 눈 뜨면 널 못 보고 너도 날 볼 수가 없는데..."
내 표정은 울상이 되었고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니 표정이 굳어졌다.
"그럼 나랑 여기 계속 있을까? 가지 말고 나랑 같이 여기 있어도 괜찮아?"
"응! 너랑 같이 있고 싶어! 니가 나랑 갈 수 없다면, 내가 여기서 너랑 같이 있어도 되는 거야? 그래도 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넌 다시 저쪽으로 갈 수가 없어"
"괜찮아! 너랑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난 다 괜찮아"
"그래. 그럼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