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_다 말해줘요!
집을 치우고 시간을 보았어. 말리고 오느라 늦는 건가.. 아무리 느리게 와도 15분 밖에 안 걸리는 거리인데..
조금씩 걱정이 되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리더라고. 오랜만에 듣는 초인종 소리에 나는 또 우리집 아닌 줄 알았어.ㅎ
"누구세요!?"
"저요."
경수 목소리에 문을 열어주었어. 내 가방을 든 채 미소를 짓고 있는 경수 뒤로 세훈이도 보이더라고.
"세훈이 안녕?"
"저는요?"
"경수도 어서와! 들어와 들어와. 뭐라도 먹을래??"
"아무것도 없으면서."
경수가 자연스럽게 들어오더라고. 그에 반해 세훈이는 조금 쭈뼛거리는 거야.
"그냥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들어와!"
"하긴, 진짜 내 집이 될 거니까여."
그제야 들어오더라고. 잠깐, 뭔가 이상한데?
"여기가 왜 너네집이 돼..?"
"몰라서 물어여? 곧 혼인신고서 챙겨서 다시 올게여."
"..경수야.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
"아님 내가 뽑아오죠 뭐."
....경수야? 애들이 왜 다 백현화 되고 있는 느낌이 들까..? 이런건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쌤 잘 산다기에 넓을 줄 알았는데 그건 또 아니네여?"
"공무원 월급이 얼마나 많다고.. 이것도 벅차.."
"왜여? 안 도와주셔여?"
"응. 스무살 딱 되자마자 독립심 기른다며 용돈도 끊고 그랬으니까."
오오, 라며 완전히 들어온 세훈이는 거실(원룸이라 거실이라 칭하기도 뭐하지만)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 있었어.
그에반해 경수는 소파에 앉아서 가방을 테이블에 내려놓더라고. 참, 경수 집 같다.ㅎ 내 집 아닌 것 같아.ㅎ
"니는 뭔데 이렇게 자연스럽냐?"
"몰라. 편해."
자기들끼리 하는 대화에 어이가 없어지는 건 나인가봐.. 테이블 위에 있는 가방을 책상에 얹어놓는데 뒤에서 경수가 현식이에 대해서 말하더라고.
"아 걔요."
"아!! 현식이!! 말렸어??"
"말린 건 아니에요. 나 가니까 이미 끝나 있던 걸요."
"아.. 그래? 막.. 싸우거나 하지는 않았지 세훈아?"
"네. 싸우진 않았져."
뭐야.. 저 불안한 대답은..? 세훈이는 곧 쭈뼛거리며 경수 옆에 앉았어. 나는 책상의자 끌어다가 앉았고.
이렇게 하니까 되게 상담하는 거 같다..ㅎ
"근데 선생님."
"응?"
"혈기왕성한 고딩 두명을 집으로 불러낸 이유가 뭐에여?"
나만 되게 순수하게 생각하고 있었나봐^^
"가방때문에..ㅎ"
"가방? 아, 도경수가 들고 있던 가방이여?"
"응!"
"난 또 여친 생겼나 했네."
"내가 그딴게 어딨어 호구야."
"거기서 왜 호구가 나와 됴꼬미야."
"시발 내가 그렇게 부르면 가만 안 둔다고 했지."
"가만 안두면 어쩔건데 됴꼬미야."
"....니는 이따 나가고 보자."
그래도 경수는 이성이 있는 편인가봐. 잘 참고.
"싸우지 마.. 친구끼리 좀 사이좋게 지내면 안 돼..?"
"이 호구가 잘 하면요."
"그전에 됴꼬미가 절 호구라고 안 부르면여."
글렀구나.. 멀뚱히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다보니 머릿속에 뭔가 딱 떠올랐어. 애들 뭐라도 줘야 하는데!! 집에 있는 거라곤.. 물과 김치정도..?
냉장고를 열어봤자 물이랑 김치밖에 안 나와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데 경수가 차분하게 물었어.
"궁금한게 있는데요."
"어? 뭔데?"
"쌤은 집에서 뭐 먹어요?"
"나는.. 시켜먹지..ㅎ"
"맨날이여!?"
"아니, 주로 학교에서 먹고 오잖아.ㅎㅎ 그래서 집에서 먹을 때는 시켜먹어.."
세훈이 표정이 딱 말해줬어. 한심.. 아니, 내가 요리실력이 딸리는 게 아니야. 그저, 그저 귀찮을 뿐인건데..
더이상 말을 안하는 아이들 때문에 민망해진 나야. 변명을 하려 하는데 갑자기 경수가 말하더라고.
"집이 있으면서 왜 집밥을 안 먹어요? 요즘엔 홈서비스라고 클릭 몇번이면 배달을 오는데."
"아니면 쌤 프라이팬이나 냄비가 없는 거에여?"
"아니이.. 단지 귀찮을 뿐이야.. 거의 맨날 먹고 오니까.."
"주말은요?"
"주말은 거의 집에 가지."
"인스턴트나 배달 음식 같은 거 자주 먹지 말아요. 건강에 안 좋으니까."
"응..ㅎㅎ"
"쌤 주말에 집에 가시면 이 집은여?"
"이 집은.. 비우는 거지."
"그럼 쌤 주말에 저 여기서 자도 되여?"
세훈이 말에 순간 안되지!! 라고 말하려다가 쏙 들어갔어. 세훈이는 자기 집에 들어가기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잖아.
알다시피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집안이니까.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항상 어딘가를 다치던 세훈이야. 최근에 상담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앞머리가 이마를 덮고 있더라고.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나봐. 이걸 내가 어떻게 해주고 싶은데, 학기 초에 했던 첫 상담 때 세훈이가 말했었어. 그래도 부모님이라고.
그 생각이 나서 그러라고 할 수 밖에 없었어.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세훈이는 집에 안 들어가는 방법 밖에 없었거든.
"그러자."
"오,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안 건들게여. 약속해여."
새끼손가락을 건네기에 나도 건넸어. 자기 혼자 싸인에 복사에 코팅을 하더라고. 그러다 말길래 내가 보관을 했어.
눈이 땡그래져서 날 쳐다보는 세훈이 모습이 너무 귀여운거얔ㅋㅋㅋㅋ
"너네 이렇게 한다며? 그치?"
"아, 누가 알려준거에여?"
"응. 종대랑 종인이가!"
"아, 둥이들이."
헐.. 생각보다 별명이 너무 귀엽지 않아? 둥이들이라니.. 겁나 귀엽잖아..♥
"평소엔 썅종들이라 그러더니."
....그렇군.ㅎㅎ 그래. 왠지 이게 더 잘 어울려.ㅎㅎ 왜 이런게 익숙해진 걸까..? 익숙해진 내가 밉다...☆
먼산을 보기 위해 본 곳에 마침 시계가 있더라고. 벌써 7시야. 내 배도 고픈 것 같은데, 혈기왕성한 아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
"너네 저녁 안 먹었지?"
"네."
"뭐 시켜줄까??"
"네!!!"
세훈이가 아싸! 라며 건네준 전단지를 살피더라고. 비싼거 먹어도 되냐는 말에 당연하지! 라 대답했어.
"그럼 전 삼선짜짱 곱빼기여!!"
아.. 안쓰러운 한편으로 귀여워.. 비싼 거 먹어도 되냐더니 기껏 시킨게 삼선짜장 곱빼기라니..
"더 비싼 거 먹어도 되는데.."
"아니여. 여기서 더 비싸지면 배가 반응해여. 워낙 입맛이 싼편이라."
"다음에 쌤이랑 완전 비싼거 먹으러 가자.ㅎㅎ 경수는 뭐 먹을래?"
"저는.. 불짜장이요."
"난 짬뽕 먹어야지! 탕수육도 먹자!"
신나서 매일 시켜먹던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주문했어. 원래는 혼자 먹어서 볶음밥 밖에 못 먹었거든. 완전 신나ㅎㅎㅎ
주문을 끝내고 신난 상태로 아이들을 보니까 또 표정에 드러나는 거 있지? 한심이라고..
"쌤. 정확히 말해봐여. 몇 살이에여?"
"나..? 나.. 먹을 만큼 먹었어.."
"아니야. 우리랑 동갑 같아여."
"아닐껄..? 외동이여서.. 더.. 그런 걸꺼야.."
"변백현이 맨날 걱정하는 거 알아요? 넘어졌으면 어떡하지, 못된 놈들한테 삥뜯기면 어떡하지."
"이래 봬도! 주점 가면 민증 검사 안 받아!!"
"쌤 친구분들이 쌤 나이처럼 생겼나보져."
"...아닐껄..?"
세훈이가 큭큭 거리며 웃더라고. 어느새 우리집에 익숙해진 건지 쿠션하나 끌어안고 즐거워하고 있어.
이렇게 진실되게 웃는 모습 뭔가 오랜만인거 같아서 좋았어.
"보기좋다. 웃는 모습."
"뭐야, 또 혼자서 청춘 드라마 찍어여?"
"혼자가 아니라 너가 주인공이라니까.."
"그럼 쌤이 여주해요."
"너 주인공 하기 싫으면 내가 주인공할래. 그럼 나랑 선생님이랑 잘 되면 되는 거지?"
"아 그딴게 어딨어!!! 싫어. 내가 주인공할거야!"
경수가 웃더라고. 약간 조련사 느낌이 나는거 나 뿐만이 아니지?
세훈이도 그걸 느꼈나봐. 부들부들 거리더라곸ㅋㅋㅋㅋ 그런 둘을 구경하다 보니까 음식이 왔나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지갑에서 돈을 꺼내 챙겨서 나갔지.
"16500원이요."
"여기요!"
"왠일로 이렇게 많이 시켰나 했더니... 아..?"
"누나 빨리요."
"누나!! 배고파배고파!!"
누나?? 황당함에 뒤를 돌아 아이들을 보다가 다시 배달원 아저씨를 보니까 되게 온화한 표정을 짓고 계시더라고.
아, 오해하셨나보다.ㅎㅎ 아이들이 눈치가 좋네.ㅎㅎ
"맛있게 드세요!"
"네! 감사합니다!"
문을 닫고 들어오니까 아이들이 바로 뒤에 있더라고. 아오, 놀래라. 기척 좀 내던가..
"가만보면 눈치 드럽게 없어여 쌤."
"인정해.."
"우리가 선생님 교육 좀 시키자. 맨날 받기만 했으니까."
"맞아. 그러자. 이 쌤 이거 심각해."
자기들끼리 말하면서 내 짬뽕도 들고 가더라고. 그건 고마운데.. 그래.. 고맙다..ㅎ
막 랩을 뜯고 있는데 경수가 아이들 이야기를 꺼내더라고. 생각해보니 우리끼리 할 얘기가 딱히 없잖아.
인정하기 싫지만 세대차이도 있고.. 공통된 관심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이번 대화의 주제는 아이들인가봐.
"김종인 집 갔냐?"
"응. 김종대 데리고 감."
"데리고 가?"
"네. 둘이 항상 같이 가잖아여. 몰랐어여?"
"저번에 종대 혼자 가길래, 자주 버리고 가는 줄 알았는데..?"
"제가 알고 있는 한 둘은 항상 같이 갔어여."
이상하다.. 저번에 종대가 나 데려다 줬을 때 뭐 챙길 거 있다고 혼자 간 것 같은데..
뭐, 이 날은 세훈이가 못 봤나봐. 그나저나 '제가 알고 있는 한'이면 어느정도 인거지?
"너네들은 언제부터 친구였어?"
"저희요? 유딩때부터요."
"헐?!!! 그렇게 오래된 거였어????"
그럼 그 동안 종대는 항상 종인이랑 함께 갔다는 거야? 빠짐없이?
왜??? 나 혼자 고민하기엔 답이 안나온다는 걸 알아. 근데 물어볼 수 없겠어. 개인적인 거니까.
"왜여? 얼마 안 된 친구들 같아여?"
"어? 어.. 얼마 안된 줄 알았어."
"쌤은 우리에 대해 아는 게 뭐에여? 좀 알도록 노력해봐여. 다 대답해드릴테니까."
"나는.. 선생님이잖아. 너희의 개인적인 거까지 다 말해줄 필요는 없는데.."
"선생님이니까 알 필요가 있는거죠."
거의 모든 학생들은 개인사정 선생님한테 말하는 거 꺼려하지 않아? 나의 비밀을 적게는 1년도 안 되는 시기만큼 볼 사이인 사람에게 말하는 거잖아..
물론 스승과 제자라는 사이가 된다면 10년이고 20년이고 함께할 테지만.. 난 그만큼 아이들에게 믿음을 준적도, 존경스러운 행동을 보인적도 없잖아.
"난, 왜 너희들이 이렇게 잘해주는 지 모르겠어."
"좋으니까여. 쪽팔리게 이렇게 말해야겠어여? 이게 다 쌤이 눈치가 없어서 그래여."
세훈이가 괜히 툴툴거리며 말해줬어. 좋으니까.. 그게 선생님으로써 일까 아니면 이성으로써일까.
이왕이면 전자였으면 좋겠지만.. 조금 무리가 있겠지?
"잘먹겠습니다."
"잘먹을게여."
"어? 응. 맛있게 먹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까 괜히 내가 막 뿌듯하더라고.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때. 아이들이 나를 호감으로 보는 게 중요한 거지.
다들 배부르게 먹었는지 배를 부여잡으며 소파에 기댔어. 소파에 올라가서 앉지, 배불러서 그것마저도 귀찮은가봐.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테이블을 치웠어. 다들 깨끗이 먹었더라고. 마지막으로 남은 군만두(서비스로 주셨어!!)를 입에 넣고 그릇들을 모았어.
"저희가 할게요. 사주셨으니까."
"맞아여. 만두 먹으면서 좀 쉬어여."
내 팔을 잡아 끌어당긴 세훈이가 날 소파에 앉히더니 경수랑 치우더라고. 크으, 잘 키운 제자 2명이 100명의 남자 부럽지 않도다..♥
이럴때만큼은 또 듬직하고, 착해보이고.. 이런 애들이 어째서 학교에서는 그런 취급을 받는건지..
"밖에 내 놓으면 되져?"
"응!"
"저거 내놓고 저희는 가 볼게요."
"응?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나오지마세여."
"그래도오.."
"이제 다 컸어요. 가 볼게요. 내일 봬요."
"응? 응! 집 도착하면 꼭 문자나 전화 줘야한다!! 하다 못해 톡이라도!"
"네."
"...네."
경수보다 대답이 늦게 나온 세훈이야. 아..! 아.. 세훈이 어쩌지..? 집에는 못 갈텐데..
"세훈아 오늘 친구네 집에서 자."
"네. 그럴게여."
"약속이다? 넌 특별히 사진도 찍어보네."
"데이터나 켜 두세여. 카톡으로 둘이서 찍은 셀카 보낼테니까."
"응! 잘가 얘들아! 내일 보자!"
"네."
동시에 대답한 둘이 서로를 째려보더니 픽 웃어. 이렇게 보니까 오래만난 애들 같긴 하더라.
그러다가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살짝 닫고 나가더라고.
우와, 애들 가니까 공허해. 이게 자식새끼 시집, 장가보낸 부모님의 마음인가..?☆ 엄마, 아빠.. 더 자주 찾아뵐게요..☆
생각난 김에 전화나 걸어야지!ㅎㅎㅎ 엄마께 전화를 걸다가 안 받아서 아빠께 전화를 걸었어. 금방 받더라고. 엄마가.ㅎ
-여보세요?
"엄마!!!! 나야!!!!"
-왜 이렇게 호들갑이야. 뭔 일 있어? 용돈은 안된다고 8년전부터 말했다.
"하.. 엄마는 나의 감수성을 죽였어.. 왜 아빠가 안 받고 엄마가 받아??"
-느이 아빠 지금 씻어.
"엄마 폰은?"
-...잊어먹었어. 어떤 놈인지 몰라도, 남의 폰을 주웠으면 충전을 해서 단축번호로 전화를 하던가. 아주 근본이 글러먹었어. 호랑말코같은 녀석.
혹시 덜렁거리는 게 유전 돼? 그렇지 않고서야..! 하필 그런게 닮다니..ㅠ
아! 우리 엄마는 욕은 안해. 보시다시피 근본에 대해 논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손찌검 한 적도 없고 혼을 낸 적도 없어.
그만큼 좋으신 분이야..♥
"나도 계속 전화해 봐야 겠다!"
-따알!!!! 아빠 여깄다!!!!
-아오, 좀 비켜요 좀. 아오 몰라. 니 아빠랑 통화해.
-딸, 아빠 안 보고 싶어? 아빠는 너무 보고싶어.. 왜 저번주에 안 왔어?
우리 아빠는 저렇게 무르셔. 혹시 그것도 유전인가..?! 이상한 것만 물려받은 느낌이 든다..☆
무튼 아빠는 나 하면 끔뻑 죽으시고.. 날 위해서는 거의 모든 일을 해주셔. 나의 독립심을 위해 이 집을 사주기만 하셨거든..☆
"저번주는 학생들 시험기간이라 전화가 많이 와서 못 갔어. 나도 아빠 보고싶다아.. 이번 주말에 갈 것 같아요!"
-그래.. 꼭 와..! 아빠는 언제나 준비되있어. 금요일부터 와도 된단 말이야.
"네네. 금요일부터 가겠습니당.ㅋㅋㅋㅋㅋ"
-그래그래, 학교생활은 재밌고?
"응! 요즘엔 재밌어!"
-다행이네. 초에는 힘들어 하더니. 그러게 내가 말했지, 선생님이고 공무원이고 좋은게 아니라고..
편하게 우리 회사에 들어오라니까.. 굳이 선생님을 고집하고...
하아.. 어째서 엄마보다 아빠가 더 잔소리가 심할까..? 그렇게 5분이나 계속된 잔소리에 엄마가 급하게 끊어주시더라고.
하여간 인생 참 버라이어티하게 사셔..ㅎ 그게 유전된건가..? 뭐지 이 묘한 느낌은..?
씻고 와서 가방에서 꺼낸 서술형 답안지를 책상 위에 놓았어. 미리 가방에 넣어두길 잘했다.ㅎㅎ
끄어어어..! 시작해볼까?! 그래도 8반 중에 4반꺼만 맡아서 얼마 없어..ㅎ 120명 정도..?
5반부터 채점을 시작했지. 참 기상천외한 답 많다..ㅎ 난 이런걸 가르친 적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런 말을 듣고 답안으로 쓴 거지..?
그 와중에 편지쓴 건 뭐지..? 근데 나름 편지쓴 거 읽는 맛이 있더라고.ㅎㅎ 귀여워..♥
드디어 5, 6반을 끝내고 우리반 차례야. 출석번호 1번부터 놀란거 알아? 다른 반들은 한 두 문제 정도 빈 곳이 있었단 말이야.
근데 우리반은 1번부터 뭔가 빼곡히 적혀있었어. 부분점수가 있어서 이런건가..? 와아, 감동이야..♥
진짜 다른 반 들은 1시간이면 채점이 끝났는데, 우리반은 2시간이 더 걸렸어. 다들 뭘 써놓은 게 많아서..
그리고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 무리들 중 2개 이상 틀린 애들이 없다는 거야. 다 맞거나 하나 틀렸더라고.
와.. 공부를 그렇게 못하던 아이들이 이렇게 잘하다니.. 아나 감동의 눈물이 막..☆
우리 반 아이들은 총 25점 중에 19점 밑이 없어.. 대단하지 않아? 다들 특별반이라고 부르는 우리반 아이들이 이렇게 잘 봤다니까?
물론 다른 과목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우리반 아이들 되게 잘했다고 생각해. 애들 뭐라도 사줘야지ㅎㅎㅎ
우리반에게 기력을 다 쏟아서 기지개를 키고 있는데 종대에게 전화가 왔어. 무슨 일이지?
"여보세요?"
-쌤 저 종대에요.
"어 종대 안녕? 무슨 일이야??"
-아까 대답 못 해 드린게 생각나서요.
"응? 아까??"
-네. 변백현 왕따주도요.
"아... 응! 말해줘."
-선생님이 느끼셨을지 모르겠는데.. 변백현은 알다시피 주관이 거의 없는 애에요.
그런 애에게 주도라는 말은 뭔가 이질감이 들지 않으세요?
아.. 아...! 와, 나 왜 그생각을 못했지? 맨날 백현이는 팔랑귀라고 했으면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어. 그런 나의 상태를 알기라도 하는 듯 종대가 계속 말했어.
-변백현이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변백현네 담임이 변백현 진짜 싫어했거든요.
그러다가 변백현네 같은 반 애들이 한 아이를 왕따시켰는데 그걸 또 백현이 짓으로 보고 그러신 거예요.
"아..? 백현이가 싫다 그러면 됐잖아."
-변백현이 싫을 게 뭐 있어요. 우리가 이미 7반으로 확정난 상태였는데. 박찬열이 너도 걍 와! 한마디 하자마자 바로 7반으로 진학 하겠다고 한 거예요.
아.. 이정도로 주관이 없었어? 그래서 그냥 덮어 쓰고 이 반에 진학을 결정한거야?
와아.. 생각보다.. 되게 심각하잖아.. 그 담임선생님이란 사람.. 너무하다. 애 말은 듣지도 않고..
-그리고 이건 그냥 참고하라고 말씀 드리는 건데요. 작년 2반. 그러니까 변백현 반 왕따 주도자가 이현식이였어요.
2반 담임이 현식이한테 물었데요. 백현이 짓 맞냐고. 얘는 아니라고 할 게 뭐 있어요. 바로 맞다고 그런거지.
"허.. 그럼.. 그럼 이번에 또 덮어씌운 거야?"
-또? 아. 김준면한테 당하고 김준면은 사회적으로나 뭐로나 우위니까 친한 친구 괴롭힌답시고 변백현으로 과녁을 바꿨나봐요. 선생님 말씀대로 또 덮어 씌운 거죠.
그러니까 그 새끼 믿지 마요. 적어도 내가 보기에 애들은 선생님께 뭐든 진실만을 말할 아이들이에요.
와.. 나 진짜 뭐하는 교사야? 그래.. 우리반이 특별반이잖아. 분명 하나하나가 문제가 있는 또는 있던 아이들일거라고 왜 생각을 못했을까?
난 당연히 그 무리들이 튀니까 그 무리들만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했어. 실제로 다른 아이들은 그 무리들 기에 눌려 얌전했고.
난 그런것도 모르고.. 백현이한테 차갑게 대했어.. 그렇게 착한 아이 앞에 두고 현식이를 감싸면서.. 민석이가 계속 했던 말이 사실이었던거야.
이제야 모든 것을 깨달으니까 애들한테 너무 미안해지더라고. 진짜 그 아이들은 나에게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흡연하고 있다고, 끊기 어려우니까 프로그램 같이 해달라고 나에게 말했었고. 술마신다고, 가출했다고, 조직이라고 다들 나한테 거짓없이 말해줬어.
그런 애들에게 나는.. 난 뭘 준거지..?
-쌤 잘못 없어요. 알아요. 선생님으로써 학급 아이들 다 이끌고 가고 싶은 거. 그게 교사로써 맞는 행동이라는 거.
그러니까 자책할 필요 없어요. 적당한 선만 지키면서 아이들을 품어주세요.
"적당한 선..?"
-특별반이라는 거 명심해 두라구요.
"응.. 말해줘서 고마워 종대야. 진짜 많은 도움이 됐어."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네요.ㅎㅎ 일찍 주무세요.
"응. 종대도 일찍 자고, 잘자."
-네.
전화가 끊어졌어. 그리고 전화부에 들어가 백현이 번호를 찾아보았어.
바로 찾긴 찾았는데 누르지도 못하겠더라. 미안함에.. 그러다가 용기내서 눌러보았어. 신호가 얼마 안 갔는데 받더라고.
-쌤!!!! 쌤이 웬일로 전화를 다 거셨어요?? 기분 완전 좋게!
"어? 아.. 그냥."
-그냥? 무슨 일 있구나? 무슨 일이야. 말해봐.
"아니야아. 오늘.. 내가 너무 차갑게 대한 것 같아서.."
-차갑다고? 왜. 그 모습마저 매력있던데. 선생님은 어떤 짓을 하든 매력있어요.
"그럴리가 없잖아아.."
-애들한테 무슨 이야기 들었구나? 그치? 그 말 신경쓰지마요.내가 또 입단속 시킬게.
"무슨말?"
-그 새끼가 쌤에 대해 한 말 말하는 거 아니였어? 오우, 말 실수 할 뻔 했네.
그러고보니 민석이가 그 말 듣고 또 이성 놓았던 건데.. 그렇게 심한 말을 한건가..?
"심한 말이었어..?"
-응. 너무 심해서 쌤이 들으면 또 울었을거야. 우리 쌤은 연약하니까. 이젠 내가 지켜줄게요.
"그런게 어딨어.. 내가 어른인데.."
-쌤은 어른이야. 어른이. 완전 어린애 같잖아.
"아니야아! 나 완전 어른이야!!"
-그래 어른이.
"아아! 어른이라고!!"
-오구오구 알았어. 쌤 어!른! 이야. 됐지?
....이.. 이 묘한 기분은 뭐지? 분명 '어른'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곧 백현이가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하여간 나 놀리는 데에는 도가 터가지고..
-일찍 자요 쌤. 걱정일랑 내일의 나로 미뤄버리고. 오늘은 편안하게 자요. 내일부터는 아무일도 없을거니까.
"그걸 너가 어떻게 알아?"
-쌤 요즘 그 새끼 때문에 힘들었잖아. 이제 다 해결했으니까 내일부터는 아무일도 없을거야.
"아, 응.. 잘자 백현아."
-내꿈꿔요.
"너도... 아니. 아 속았어.."
-아싸아, 나도 쌤 꿈 꿀게!!
아.. 이런.. 속았어.. 젠장.. 전화를 끊고 등받이에 편하게 기댔어. 내일부터는 아무일도 없을거야..
별말 아닌데도 되게 믿게 되고, 바라게 되더라고. 기분도 한결 나아지고. 가만보면 그 무리의 아이들은 손에 손 잡고 나를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어.
초임교사인데에 비해 나에게 믿음을 주고, 학교생활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참 좋은 아이들이야..
아! 백현이랑 전화 끊고 카톡 와 있길래 확인해보니까 세훈이더라.
자존심 쎄다고 해서 안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가서 다행이다..ㅠㅠㅠㅠㅠ
진짜 아무걱정없이 마음 편히 잘 수 있었어.
역시 |
아이들은 착해요..♥ 내가 더 심쿵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셨을지 모르겠는데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세훈이 카톡 위부분 보면 '가고있어여'가 보여욬ㅋㅋㅋㅋ 항상 지각을 하던 세훈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닿ㅎ 전 이런 디테일함이 좋더라구요ㅎㅎ 이런거 발견하면 재밌지 않으신가여..? 전 웹툰보면서 내용도 집중하지만 뒤도 집중하는 편이에욯ㅎㅎ
+카톡 시간.. 모르겠다.. 나중에 시간 나면 바꿔야겠어요..ㅎㅎ
나의사뢍 암호닉!♥(언제나 받고 있으니까 가장 최근편에 [제로콜라]요런식으로 다가와 주세요!) 똥잠/콜덕/쌍수/매매/라임/체리/게이쳐/모카/빵/바람둥이/죽지마 코끼리/구금/메리미/세젤빛/나호/스젤졸/안녕/양양/체블/Luci 꽯뚧쐛뢟/찌즈/우리니니/뭉이/도비/곰탱이/하트./삼디다스/바닐라라떼 허니/타오네엄마/똥강아지/오호랏/우유퐁당/민석아찬열해/우유/워더 청포도/뀰/카프/세젤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