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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명! [ 김석진을 정뚝떨어지게 하라. ]

Talk.









'두번째는... 아재개그야.'

'뭐?? 그런거 존나 재미없잖아... '

' 야 그러니까 더 효과가 있는거야! 니 평소 성격도 안그래도 노잼인데 그런 몹쓸 개그까지 치면 얼마나 더 노잼으로 보이겠어! '

' 아~ 그러네! '

' 네가 개그치고 네가 웃는 게 포인트야. 알았지??'





친구가 일러준 말들을 떠올리며, 계획을 실행했다. 나는 떨리는 맘으로 약 30분가량 인터넷에서 아재개그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고, 내가 봐도 쫌 오..ㅋ 싶은 것들을 추려 정리했다. 그리고, 문자를 장전하는 동시에 김석진에게 바로 톡이 왔다. 와 내가 질문해놓고도 재미없어. 김석진도 이 드립을 들으면 솔직히 좀 깨겠지?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거야말로 김석진이 내게 정을 떨어트리는 확실한 방법일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시발. 그쪽이 어떻게 이걸 알아. 김석진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선수치고 답을 말해버렸다. 덕분에 내가 친 개그에 내가 웃지도 못하고 뻥져서 그만 머리가 새하얘져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건 내 예상밖의 일이라고!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다. 계속 해? 말아? 연달아 울리는 김석진의 답장에 서둘러 침착하고 머리를 굴렸다. 


진정해. 이거 유명해서 알고있던 걸 수도 있잖아. 그래. 빨리 다음 거, 다음 거를 말해야겠어. 이건 뭐.. 모르겠지!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김석진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이건 백퍼 모르는 눈치다! 나는 신이 나서 얼른 타자를 답장을 했다.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아니 시발.





 





이걸 대체 왜 다 알고있냐고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그리고 이어지는 김석진의 말에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망연자실했다. 김석진에게 뭐가 씌인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뭔 말만해도 저렇게 자기 생각대로 꼬아들을 수 있겠어! 그냥 이 방법 별로 안통하는 거 아냐? 어쨌든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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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심란한데 왜 뜬금없이 저런 말을 하는거지... 

나는 거의 해탈 상태로 김석진의 말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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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그만 그대로 카톡창을 꺼버렸다.



안통하는 거 아니냔 말 취소다. 확실히, 김석진이 내게 정이 떨어지진 않아도 방금 내가 김석진에게 정이 뚝 떨어지려 한 것 같으니깐.











* * *







점심에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김석진에 대한 내 열변을 토했다. 친구 역시 내 얘기를 듣고는 김석진을 향해 따봉을 날렸다.



" 굉장해. 다른 의미로 철벽이네. "

" 아....죽겠다. 요즘엔 매일 회사 퇴근길에 데려다주셔.. "

" 헐. 야 너무 남자친구 행세 하는 거 아냐? "

" 그런가?.. 아 모르겠어. "

" 근데 덕분에 교통비는 줄었겠다? "



그건 그래.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아니야! 라며 고함쳤다. 친구는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며, 하긴 나같아도 그렇게 잘생기고 돈많은 남자가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해. 하고 나를 공감해주었다.



" 이대로 어떡해야하는 걸까.. "

" 대놓고 거절은 진짜 못하겠어? "

" 나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알잖아....... "



그리고 김석진씨 화나면 ...... 문장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그러면? 하고 내 대답을 재촉했다. 웃을땐 세상 순진하긴 한데, 갑자기 정색 빨면 존나 무서운 거 알지? 그게 딱 김석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는 내가 몇 번 돌려말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어왔는데, 그 순간엔 솔직히 과장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진다.



" 그 남자가 싫어하는 거 뭐있는지 몰라? 만난지 꽤 됐으니까 대충 뭐 알 거 아냐. 싫어하는 행동. "

" 싫어하는 거..? 몰라... 심장 약하다고 무서운 거 싫어한다 한 것 밖엔... "



어째 기억을 떠올려봐도 저런 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냐. 언젠가 회사에서 창단식을 열어 잔뜩 꾸미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도 김석진이 찾아왔었는데, 갑자기 날 보며 뜬금없이 심장을 부여잡고는 아..! 하고 아픈 시늉을 하는 것이다. 진짜로 놀란 나는 무슨 일이냐 다급하게 물었는데, 김석진은 여주씨가 오늘 너무 예뻐서...심장에 무리가 와요! 라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티엠아이를 주절 주절 늘어놓는데 그때 너무 황당하게 알게 된 사실이, 김석진은 심장이 약해서 무서운 거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김석진은 그러면서 내 존재가 지 심장에 약하지만, 나는 계속 보고 싶다며 자길 이렇게 만든 여자는 처음이라어쩌구 저쩌구..... 어쨌든 결론이 참 이상했었다. 갑자기 든 그 말이 낯간지러워서 나는 얼른 머릿속에서 김석진의 얼굴을 지우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됐네 그럼! 공포영화 같이 보자고 해. "

" 김석진씨랑 단 둘이? "

" 응. "

" 에이... 그런 거 싫어하니까 다른 거 보자고 막 그러지 않을까? "

" 어차피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야. 네가 보고싶다고 먼저 데이트 신청하는 건데, 안가고 배기겠어? "



그런가? 아 그래도 만나서 영화는 좀..  고민하는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리치던 친구는 이왕 만나서 정 확실히 떨어트려버려. 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또 한번 친구가 말해주는 정 떨어트리기 법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

.

.






" 여주씨! "



이제 막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는데, 웬일로 팀장님이 날 부르셨다. 갑작스런 호출에 팀장님 자리로 갔는데, 팀장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영문 모를 봉투를 건네는 것이다. 헉! 팀장님... 설마 이건.. 저만 챙겨주는 보너스? 침을 꿀꺽 삼키며, 이게 뭔데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 웃으시면서 열어봐~ 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을 권하길래 내심 떨리는 맘으로 봉투를 열었다. 설마 진짜 돈은 아니겠....



" 짜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무료 티켓! "



아... 그럼 그렇지. 사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데 이거 왜 주시는 거에요? 하고 물었다.



" 꽁짜 티켓을 얻었는데, 내 나이에 가기도 좀 그렇고, 우리 팀에서 제일 젊은 여주씨가 생각나서 말야! "

" 아.. 감사합니다. 두장이네요? "

" 그래~ 여주씨 남자친구랑 같이 가라고! "



내가 인심 좀 썼어. 어때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부장님의 말에 나는 감사인사도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남..자친구요? 설마 꽃다발때문에 김석진씨를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 언제 내 남자친구가 된거야!



" 하하. 저 남자친구같은 거 없는데요.. "

" 여주씨! 다 알아~ 매일 퇴근하고 남자친구가 차 태워주는 거. "



헉. 난 진심으로 놀라 입을 벌렸다. 그걸 봤단 말야? 다 안다는 건 회사사람들이 다 안다는 건가? 생각치도 못한 팀장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 아.. 아니....그걸... 언제... "


" 그래 여주씨. 숨기지 말고 말해. 어떻게 만났어, 그렇게 돈많은 남자를? "


" 네?? "


" 차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던데?? 여주씨 능력 좋아~ " 



이젠 옆에서 듣고 있던 팀원들까지 덩달아 합세해, 내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떻게 꼬셨어? 어떻게 만났어? 하는데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할지 몰랐다. 설사 오해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얼굴들 같았다.



" 여주씨 조만간 결혼 소식 기대해도 되는 거야? "

" 아우, 좋겠다.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도 가고. "



진짜 그런 사이 아니에요, 하고 연신 손사래를 치다 겨우 상황을 빠져나와 퇴근을 했다. 정말 정신 없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로비를 지나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김석진씨의 차가 빵 거리며 나를 붙잡았다. 여주씨, 하고 차문을 열고 웃는 얼굴. 불현듯 아까 팀장님의 말이 떠올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퇴근하던 몇몇 팀원들이 슬쩍 이쪽을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중엔 여주씨 응원해요!! 하고 입모양으로 친절히 말해주는 분까지 계셨다. 시발...그게 아니라구요.






" 여주씨, 안타요? "



나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김석진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타요! 타! 타서 말할거야! 결국, 오늘도 꼼짝없이 김석진씨의 차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 요즘 여주씨랑 부쩍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



아. 그러시구나. 저는 ..뭐ㅎㅎ 그렇게 느끼시다니, 더욱 착잡해질 따름이네요. 물론 속마음만 그렇게 말했다. 입으로 나오려는 말들을 겨우 참느라 혼났다. 



" 저는 이렇게 퇴근할 때 데려다주는 것도 너무 좋은데, 이제는 주말에도 막 만나고 싶고.... "

" 네? 주말이요..? "



김석진이 넌지시 꺼낸 말에 내포된 숨은 뜻을 왠지 알아차린 것 같아 착잡해졌다. 핸들을 잡던 한 손을 떼고 잠시 목부근을 긁적인 김석진이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여주씨 회사랑 여주씨네 집이 너무 가까워서요. 김석진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동네쪽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안데려다주셔도 되는데... 중얼거리는 말을 못들었는지, 김석진씨가 이거 봐. 몇 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잖아요. 전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여주씨만 괜찮다면 주말에 데이트... 안하실래요? " 



김석진은 가만보면 내가 거절을 못할 걸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한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저, 주말에 일이 있어가지요. 하고 처음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췄다. 오, 미친. 괜한 오기가 용기를 불러일으켰나보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애써 겉으로는 표정을 숨기는데, 그런 내 말에 김석진씨가 무슨 일이요? 하고 물어왔다. 물론, 주말에 일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 어....... 부, 부, 부모님 집에 내려가봐야 해서요. 오, 오랜만에 뵙는다고.. "

" 어? 여주씨 부모님 서울 사신다고 그러시지 않았어요? "



김석진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미친,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했다고??? 아무래도 처음 김석진과 밥을 먹었을 때, 뭣모르고 김석진이 묻던 말에 이것저것 다 말해버린 것 같다.




" 아, 그니까! 부모님의...부모님을! 얘기하는거죠! 제 말은. 하하. "

" 아~ "



간신히 위기를 해결했다 싶어 한숨을 내쉬는데, 별안간 김석진씨가 이상하다- 라며 뜻모를 말을 남겼다.



" 그때 분명, 부모님이랑 삼촌, 동생,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이렇게 같이 대가족으로 산다고 엄청 자랑하셨던 것 같은데. "

" ...제가... 그런 것까지 다 얘기했었나요? "

" 네. 여주씨가 직접 다 얘기해 줬었죠. "

" 그걸 ... 다 기억해요? "

"  뭐랄까, 그때 그 얘기를 여주씨가 하고 있을때.. 되게 신나보여서요. 가족 얘기를 막 해주시는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제가 또 반했죠. 김석진은 그 말 뒤에, 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네 댁에 가시는 거겠죠? 여주씨가 설마 저한테 '거짓말'을 할리도 없고~ 하고 사람좋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서늘해도 한참 서늘해서 나는 더이상 일말의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시발. 저거 백퍼 내가 구라치는 거 눈치 까고 말하는 거야. 여기서 어떻게 뭘 더 말해.. 괜히 둘러댔다. 괜히 둘러댔어.


나는 이제 내가 드디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김석진의 눈치를 계속 보고, 매일 전전긍긍할 바엔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우려했던 것은 아까 회사 팀원들의 말마따나 그렇게 사귀는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김석진은 존나 부자고, 잘났고, 나는 그거에 비하면 그냥 일반인이니깐. 회사 사람들도 분명히 알게 모르게 뒤에서 나와 김석진을 비교하고 있었을 게 뻔했다. 그래.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야해.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차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 여주씨. "

" ... "

" 부담스러우면, 그냥 안 나오고 싶다고 하셔도 돼요. "



행여나 또 얼음공주 뺨치는 아이스 김석진씨로 변해있을까봐 얼른 확실히 해명하려 하는데, 김석진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예상 외의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김석진씨가 갑자기 왜그러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김석진씨를 바라봤다. 어라... 가만보니 김석진씨의 눈썹이 엄청 내려가있었다. 입술도 평소보다 더 삐죽 고개를 내민 것 같았다. 김석진과 함께 한 약 며칠간의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는..... 띠링♪ [ 김석진 지금 매우 속상함 ]의 상태가 틀림없었다.



" 해요. "

" ....네? "

" 하자구요, 데이트.. " 



잔뜩 숙여서 거의 핸들에 닿을 것 같았던 김석진의 머리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거듭 묻는 모양새는 누가봐도 놀란 상태였다.




" 주말에, 같이 놀이공원 가요. "




마음이 약해져 결국 또 내 확실한 거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첫 데이트이자, 마지막 데이트로 내가 기필코 꼭! 만들 것이다.





















세번째, 데이트할 땐 무조건 생얼로! 옷도 완~전 후리하게! 독서실 패션 알지? 독서실 패션! 친구의 말을 한 번 더 떠올리며 그의 말대로 입긴 입었는데 ... 이거 후리해도 너무 후리한 거 아니야?! 자다 막 일어난듯한 얼굴에, 대딩시절 시험기간 향기 물씬 나는 두줄 팬츠에, 후드티를 입은 거울 속의 나를 보고 걱정이 들기 시작했디.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인데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친구가 일러준 말이 또 한 번 떠올랐다. 


' 너 혹시라도 예의 아니다 어쩐다 운운할 생각이면 평생 못내친다! 너 보자마자 충격먹어서 집가자 할 걸? 야 내친김에 약속시간 지각도 해버려. '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역시 이게 맞는 선택인 것 같다. 






"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게 나왔죠.. "


원래 김석진과 만나기로 했던 시간은 1시였는데, 약속시간 10분 전에 미리 문자로 안될 것 같다고 2시에 만나자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렇게 약속시간은 2시로 변경됐지만, 난 일부러 10분이나 더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김석진씨를 보며 과연 이 방법이 통할까 싶었다. 그리고, 약속을 안 지킨게 계속 맘에 걸려 무거웠다. 화내는 거 아냐? 그러나, 김석진은 허둥지둥 나오는 나에게 인사하다가, 이내 나를 보곤 슬쩍 위아래로 스캔하면서 그저 까닭모를 표정을 짓는 것이다.



" 제가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상태가 좀 그렇죠? "

" 아, 그랬어요? "

" 왜요?... 혹시 기분 나쁘시거나... 저한테..막 정...떨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 네? "



김석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눈친데.... 정말 정 떨어진 건가?! 하긴, 내가 봐도 약속도 안지키고 이런 차림은 좀 심하긴 했어...! 묘하게 들뜬 맘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김석진씨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정말 소리소문도 없이 내 앞으로 우뚝 다가와 손을 뻗어오는 거다. 뭐, 뭐지, 하고 긴장해서 뒤로 주춤거리면 어느새 김석진의 커다란 손이 나의 눈 위로 살포시 안착했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 앞머리를 비비작거리는 이상한 모션을 취했다.


설마... 지금 눈꼽 떼주는 거야? 

황당한 얼굴로 김석진을 쳐다보는데, 올라간 입꼬리를 유지한채로 그럴리가요, 하고 아까 물은 말에 대답하는 김석진이었다.



" 여주씨가 늦으면 더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

" ... "

" 아예, 저녁에 만나서 자정까지 있는 것도 좋구.... "

" 자, 자, 자정이라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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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아재개그야.'

'뭐?? 그런거 존나 재미없잖아... '

' 야 그러니까 더 효과가 있는거야! 니 평소 성격도 안그래도 노잼인데 그런 몹쓸 개그까지 치면 얼마나 더 노잼으로 보이겠어! '

' 아~ 그러네! '

' 네가 개그치고 네가 웃는 게 포인트야. 알았지??'





친구가 일러준 말들을 떠올리며, 계획을 실행했다. 나는 떨리는 맘으로 약 30분가량 인터넷에서 아재개그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고, 내가 봐도 쫌 오..ㅋ 싶은 것들을 추려 정리했다. 그리고, 문자를 장전하는 동시에 김석진에게 바로 톡이 왔다. 와 내가 질문해놓고도 재미없어. 김석진도 이 드립을 들으면 솔직히 좀 깨겠지?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거야말로 김석진이 내게 정을 떨어트리는 확실한 방법일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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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발. 그쪽이 어떻게 이걸 알아. 김석진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선수치고 답을 말해버렸다. 덕분에 내가 친 개그에 내가 웃지도 못하고 뻥져서 그만 머리가 새하얘져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건 내 예상밖의 일이라고!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다. 계속 해? 말아? 연달아 울리는 김석진의 답장에 서둘러 침착하고 머리를 굴렸다. 


진정해. 이거 유명해서 알고있던 걸 수도 있잖아. 그래. 빨리 다음 거, 다음 거를 말해야겠어. 이건 뭐..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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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이건 백퍼 모르는 눈치다! 나는 신이 나서 얼른 타자를 답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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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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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니 시발.





 





이걸 대체 왜 다 알고있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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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김석진의 말에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망연자실했다. 김석진에게 뭐가 씌인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뭔 말만해도 저렇게 자기 생각대로 꼬아들을 수 있겠어! 그냥 이 방법 별로 안통하는 거 아냐? 어쨌든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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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심란한데 왜 뜬금없이 저런 말을 하는거지... 

나는 거의 해탈 상태로 김석진의 말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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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그만 그대로 카톡창을 꺼버렸다.



안통하는 거 아니냔 말 취소다. 확실히, 김석진이 내게 정이 떨어지진 않아도 방금 내가 김석진에게 정이 뚝 떨어지려 한 것 같으니깐.











* * *







점심에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김석진에 대한 내 열변을 토했다. 친구 역시 내 얘기를 듣고는 김석진을 향해 따봉을 날렸다.



" 굉장해. 다른 의미로 철벽이네. "

" 아....죽겠다. 요즘엔 매일 회사 퇴근길에 데려다주셔.. "

" 헐. 야 너무 남자친구 행세 하는 거 아냐? "

" 그런가?.. 아 모르겠어. "

" 근데 덕분에 교통비는 줄었겠다? "



그건 그래.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아니야! 라며 고함쳤다. 친구는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며, 하긴 나같아도 그렇게 잘생기고 돈많은 남자가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해. 하고 나를 공감해주었다.



" 이대로 어떡해야하는 걸까.. "

" 대놓고 거절은 진짜 못하겠어? "

" 나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알잖아....... "



그리고 김석진씨 화나면 ...... 문장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그러면? 하고 내 대답을 재촉했다. 웃을땐 세상 순진하긴 한데, 갑자기 정색 빨면 존나 무서운 거 알지? 그게 딱 김석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는 내가 몇 번 돌려말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어왔는데, 그 순간엔 솔직히 과장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진다.



" 그 남자가 싫어하는 거 뭐있는지 몰라? 만난지 꽤 됐으니까 대충 뭐 알 거 아냐. 싫어하는 행동. "

" 싫어하는 거..? 몰라... 심장 약하다고 무서운 거 싫어한다 한 것 밖엔... "



어째 기억을 떠올려봐도 저런 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냐. 언젠가 회사에서 창단식을 열어 잔뜩 꾸미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도 김석진이 찾아왔었는데, 갑자기 날 보며 뜬금없이 심장을 부여잡고는 아..! 하고 아픈 시늉을 하는 것이다. 진짜로 놀란 나는 무슨 일이냐 다급하게 물었는데, 김석진은 여주씨가 오늘 너무 예뻐서...심장에 무리가 와요! 라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티엠아이를 주절 주절 늘어놓는데 그때 너무 황당하게 알게 된 사실이, 김석진은 심장이 약해서 무서운 거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김석진은 그러면서 내 존재가 지 심장에 약하지만, 나는 계속 보고 싶다며 자길 이렇게 만든 여자는 처음이라어쩌구 저쩌구..... 어쨌든 결론이 참 이상했었다. 갑자기 든 그 말이 낯간지러워서 나는 얼른 머릿속에서 김석진의 얼굴을 지우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됐네 그럼! 공포영화 같이 보자고 해. "

" 김석진씨랑 단 둘이? "

" 응. "

" 에이... 그런 거 싫어하니까 다른 거 보자고 막 그러지 않을까? "

" 어차피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야. 네가 보고싶다고 먼저 데이트 신청하는 건데, 안가고 배기겠어? "



그런가? 아 그래도 만나서 영화는 좀..  고민하는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리치던 친구는 이왕 만나서 정 확실히 떨어트려버려. 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또 한번 친구가 말해주는 정 떨어트리기 법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

.

.






" 여주씨! "



이제 막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는데, 웬일로 팀장님이 날 부르셨다. 갑작스런 호출에 팀장님 자리로 갔는데, 팀장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영문 모를 봉투를 건네는 것이다. 헉! 팀장님... 설마 이건.. 저만 챙겨주는 보너스? 침을 꿀꺽 삼키며, 이게 뭔데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 웃으시면서 열어봐~ 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을 권하길래 내심 떨리는 맘으로 봉투를 열었다. 설마 진짜 돈은 아니겠....



" 짜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무료 티켓! "



아... 그럼 그렇지. 사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데 이거 왜 주시는 거에요? 하고 물었다.



" 꽁짜 티켓을 얻었는데, 내 나이에 가기도 좀 그렇고, 우리 팀에서 제일 젊은 여주씨가 생각나서 말야! "

" 아.. 감사합니다. 두장이네요? "

" 그래~ 여주씨 남자친구랑 같이 가라고! "



내가 인심 좀 썼어. 어때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부장님의 말에 나는 감사인사도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남..자친구요? 설마 꽃다발때문에 김석진씨를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 언제 내 남자친구가 된거야!



" 하하. 저 남자친구같은 거 없는데요.. "

" 여주씨! 다 알아~ 매일 퇴근하고 남자친구가 차 태워주는 거. "



헉. 난 진심으로 놀라 입을 벌렸다. 그걸 봤단 말야? 다 안다는 건 회사사람들이 다 안다는 건가? 생각치도 못한 팀장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 아.. 아니....그걸... 언제... "


" 그래 여주씨. 숨기지 말고 말해. 어떻게 만났어, 그렇게 돈많은 남자를? "


" 네?? "


" 차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던데?? 여주씨 능력 좋아~ " 



이젠 옆에서 듣고 있던 팀원들까지 덩달아 합세해, 내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떻게 꼬셨어? 어떻게 만났어? 하는데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할지 몰랐다. 설사 오해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얼굴들 같았다.



" 여주씨 조만간 결혼 소식 기대해도 되는 거야? "

" 아우, 좋겠다.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도 가고. "



진짜 그런 사이 아니에요, 하고 연신 손사래를 치다 겨우 상황을 빠져나와 퇴근을 했다. 정말 정신 없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로비를 지나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김석진씨의 차가 빵 거리며 나를 붙잡았다. 여주씨, 하고 차문을 열고 웃는 얼굴. 불현듯 아까 팀장님의 말이 떠올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퇴근하던 몇몇 팀원들이 슬쩍 이쪽을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중엔 여주씨 응원해요!! 하고 입모양으로 친절히 말해주는 분까지 계셨다. 시발...그게 아니라구요.






" 여주씨, 안타요? "



나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김석진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타요! 타! 타서 말할거야! 결국, 오늘도 꼼짝없이 김석진씨의 차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 요즘 여주씨랑 부쩍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



아. 그러시구나. 저는 ..뭐ㅎㅎ 그렇게 느끼시다니, 더욱 착잡해질 따름이네요. 물론 속마음만 그렇게 말했다. 입으로 나오려는 말들을 겨우 참느라 혼났다. 



" 저는 이렇게 퇴근할 때 데려다주는 것도 너무 좋은데, 이제는 주말에도 막 만나고 싶고.... "

" 네? 주말이요..? "



김석진이 넌지시 꺼낸 말에 내포된 숨은 뜻을 왠지 알아차린 것 같아 착잡해졌다. 핸들을 잡던 한 손을 떼고 잠시 목부근을 긁적인 김석진이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여주씨 회사랑 여주씨네 집이 너무 가까워서요. 김석진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동네쪽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안데려다주셔도 되는데... 중얼거리는 말을 못들었는지, 김석진씨가 이거 봐. 몇 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잖아요. 전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여주씨만 괜찮다면 주말에 데이트... 안하실래요? " 



김석진은 가만보면 내가 거절을 못할 걸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한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저, 주말에 일이 있어가지요. 하고 처음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췄다. 오, 미친. 괜한 오기가 용기를 불러일으켰나보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애써 겉으로는 표정을 숨기는데, 그런 내 말에 김석진씨가 무슨 일이요? 하고 물어왔다. 물론, 주말에 일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 어....... 부, 부, 부모님 집에 내려가봐야 해서요. 오, 오랜만에 뵙는다고.. "

" 어? 여주씨 부모님 서울 사신다고 그러시지 않았어요? "



김석진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미친,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했다고??? 아무래도 처음 김석진과 밥을 먹었을 때, 뭣모르고 김석진이 묻던 말에 이것저것 다 말해버린 것 같다.




" 아, 그니까! 부모님의...부모님을! 얘기하는거죠! 제 말은. 하하. "

" 아~ "



간신히 위기를 해결했다 싶어 한숨을 내쉬는데, 별안간 김석진씨가 이상하다- 라며 뜻모를 말을 남겼다.



" 그때 분명, 부모님이랑 삼촌, 동생,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이렇게 같이 대가족으로 산다고 엄청 자랑하셨던 것 같은데. "

" ...제가... 그런 것까지 다 얘기했었나요? "

" 네. 여주씨가 직접 다 얘기해 줬었죠. "

" 그걸 ... 다 기억해요? "

"  뭐랄까, 그때 그 얘기를 여주씨가 하고 있을때.. 되게 신나보여서요. 가족 얘기를 막 해주시는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제가 또 반했죠. 김석진은 그 말 뒤에, 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네 댁에 가시는 거겠죠? 여주씨가 설마 저한테 '거짓말'을 할리도 없고~ 하고 사람좋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서늘해도 한참 서늘해서 나는 더이상 일말의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시발. 저거 백퍼 내가 구라치는 거 눈치 까고 말하는 거야. 여기서 어떻게 뭘 더 말해.. 괜히 둘러댔다. 괜히 둘러댔어.


나는 이제 내가 드디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김석진의 눈치를 계속 보고, 매일 전전긍긍할 바엔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우려했던 것은 아까 회사 팀원들의 말마따나 그렇게 사귀는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김석진은 존나 부자고, 잘났고, 나는 그거에 비하면 그냥 일반인이니깐. 회사 사람들도 분명히 알게 모르게 뒤에서 나와 김석진을 비교하고 있었을 게 뻔했다. 그래.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야해.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차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 여주씨. "

" ... "

" 부담스러우면, 그냥 안 나오고 싶다고 하셔도 돼요. "



행여나 또 얼음공주 뺨치는 아이스 김석진씨로 변해있을까봐 얼른 확실히 해명하려 하는데, 김석진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예상 외의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김석진씨가 갑자기 왜그러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김석진씨를 바라봤다. 어라... 가만보니 김석진씨의 눈썹이 엄청 내려가있었다. 입술도 평소보다 더 삐죽 고개를 내민 것 같았다. 김석진과 함께 한 약 며칠간의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는..... 띠링♪ [ 김석진 지금 매우 속상함 ]의 상태가 틀림없었다.



" 해요. "

" ....네? "

" 하자구요, 데이트.. " 



잔뜩 숙여서 거의 핸들에 닿을 것 같았던 김석진의 머리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거듭 묻는 모양새는 누가봐도 놀란 상태였다.




" 주말에, 같이 놀이공원 가요. "




마음이 약해져 결국 또 내 확실한 거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첫 데이트이자, 마지막 데이트로 내가 기필코 꼭! 만들 것이다.





















세번째, 데이트할 땐 무조건 생얼로! 옷도 완~전 후리하게! 독서실 패션 알지? 독서실 패션! 친구의 말을 한 번 더 떠올리며 그의 말대로 입긴 입었는데 ... 이거 후리해도 너무 후리한 거 아니야?! 자다 막 일어난듯한 얼굴에, 대딩시절 시험기간 향기 물씬 나는 두줄 팬츠에, 후드티를 입은 거울 속의 나를 보고 걱정이 들기 시작했디.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인데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친구가 일러준 말이 또 한 번 떠올랐다. 


' 너 혹시라도 예의 아니다 어쩐다 운운할 생각이면 평생 못내친다! 너 보자마자 충격먹어서 집가자 할 걸? 야 내친김에 약속시간 지각도 해버려. '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역시 이게 맞는 선택인 것 같다. 






"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게 나왔죠.. "


원래 김석진과 만나기로 했던 시간은 1시였는데, 약속시간 10분 전에 미리 문자로 안될 것 같다고 2시에 만나자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렇게 약속시간은 2시로 변경됐지만, 난 일부러 10분이나 더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김석진씨를 보며 과연 이 방법이 통할까 싶었다. 그리고, 약속을 안 지킨게 계속 맘에 걸려 무거웠다. 화내는 거 아냐? 그러나, 김석진은 허둥지둥 나오는 나에게 인사하다가, 이내 나를 보곤 슬쩍 위아래로 스캔하면서 그저 까닭모를 표정을 짓는 것이다.



" 제가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상태가 좀 그렇죠? "

" 아, 그랬어요? "

" 왜요?... 혹시 기분 나쁘시거나... 저한테..막 정...떨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 네? "



김석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눈친데.... 정말 정 떨어진 건가?! 하긴, 내가 봐도 약속도 안지키고 이런 차림은 좀 심하긴 했어...! 묘하게 들뜬 맘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김석진씨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정말 소리소문도 없이 내 앞으로 우뚝 다가와 손을 뻗어오는 거다. 뭐, 뭐지, 하고 긴장해서 뒤로 주춤거리면 어느새 김석진의 커다란 손이 나의 눈 위로 살포시 안착했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 앞머리를 비비작거리는 이상한 모션을 취했다.


설마... 지금 눈꼽 떼주는 거야? 

황당한 얼굴로 김석진을 쳐다보는데, 올라간 입꼬리를 유지한채로 그럴리가요, 하고 아까 물은 말에 대답하는 김석진이었다.



" 여주씨가 늦으면 더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

" ... "

" 아예, 저녁에 만나서 자정까지 있는 것도 좋구.... "

" 자, 자, 자정이라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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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아재개그야.'

'뭐?? 그런거 존나 재미없잖아... '

' 야 그러니까 더 효과가 있는거야! 니 평소 성격도 안그래도 노잼인데 그런 몹쓸 개그까지 치면 얼마나 더 노잼으로 보이겠어! '

' 아~ 그러네! '

' 네가 개그치고 네가 웃는 게 포인트야. 알았지??'





친구가 일러준 말들을 떠올리며, 계획을 실행했다. 나는 떨리는 맘으로 약 30분가량 인터넷에서 아재개그에 대해 시장조사를 하고, 내가 봐도 쫌 오..ㅋ 싶은 것들을 추려 정리했다. 그리고, 문자를 장전하는 동시에 김석진에게 바로 톡이 왔다. 와 내가 질문해놓고도 재미없어. 김석진도 이 드립을 들으면 솔직히 좀 깨겠지? 나는 이렇게까지 하는 내 자신이 한심했지만 이거야말로 김석진이 내게 정을 떨어트리는 확실한 방법일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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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시발. 그쪽이 어떻게 이걸 알아. 김석진은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선수치고 답을 말해버렸다. 덕분에 내가 친 개그에 내가 웃지도 못하고 뻥져서 그만 머리가 새하얘져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건 내 예상밖의 일이라고! 나는 눈동자를 굴리다가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했다. 계속 해? 말아? 연달아 울리는 김석진의 답장에 서둘러 침착하고 머리를 굴렸다. 


진정해. 이거 유명해서 알고있던 걸 수도 있잖아. 그래. 빨리 다음 거, 다음 거를 말해야겠어. 이건 뭐.. 모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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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진의 반응을 보니 확실히 이건 백퍼 모르는 눈치다! 나는 신이 나서 얼른 타자를 답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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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제목없음> 1 | 인스티즈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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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니 시발.





 





이걸 대체 왜 다 알고있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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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지는 김석진의 말에 나는 머리를 감싸안고 망연자실했다. 김석진에게 뭐가 씌인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내가 뭔 말만해도 저렇게 자기 생각대로 꼬아들을 수 있겠어! 그냥 이 방법 별로 안통하는 거 아냐? 어쨌든 이 방법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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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심란한데 왜 뜬금없이 저런 말을 하는거지... 

나는 거의 해탈 상태로 김석진의 말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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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



그만 그대로 카톡창을 꺼버렸다.



안통하는 거 아니냔 말 취소다. 확실히, 김석진이 내게 정이 떨어지진 않아도 방금 내가 김석진에게 정이 뚝 떨어지려 한 것 같으니깐.











* * *







점심에 친구와 밥을 먹으면서, 김석진에 대한 내 열변을 토했다. 친구 역시 내 얘기를 듣고는 김석진을 향해 따봉을 날렸다.



" 굉장해. 다른 의미로 철벽이네. "

" 아....죽겠다. 요즘엔 매일 회사 퇴근길에 데려다주셔.. "

" 헐. 야 너무 남자친구 행세 하는 거 아냐? "

" 그런가?.. 아 모르겠어. "

" 근데 덕분에 교통비는 줄었겠다? "



그건 그래.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래도 아니야! 라며 고함쳤다. 친구는 내 말에 곰곰이 생각하며, 하긴 나같아도 그렇게 잘생기고 돈많은 남자가 들이대면 부담스러울 것 같긴 해. 하고 나를 공감해주었다.



" 이대로 어떡해야하는 걸까.. "

" 대놓고 거절은 진짜 못하겠어? "

" 나 그런 거 잘 못하는 거 알잖아....... "



그리고 김석진씨 화나면 ...... 문장을 잇지 못하는 나를 보고 친구는 그러면? 하고 내 대답을 재촉했다. 웃을땐 세상 순진하긴 한데, 갑자기 정색 빨면 존나 무서운 거 알지? 그게 딱 김석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는 내가 몇 번 돌려말할 때마다 그런 표정을 지어왔는데, 그 순간엔 솔직히 과장해서 오금이 저릴 정도로 공기가 차가워진다.



" 그 남자가 싫어하는 거 뭐있는지 몰라? 만난지 꽤 됐으니까 대충 뭐 알 거 아냐. 싫어하는 행동. "

" 싫어하는 거..? 몰라... 심장 약하다고 무서운 거 싫어한다 한 것 밖엔... "



어째 기억을 떠올려봐도 저런 것 밖에 기억이 나질 않냐. 언젠가 회사에서 창단식을 열어 잔뜩 꾸미고 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날도 김석진이 찾아왔었는데, 갑자기 날 보며 뜬금없이 심장을 부여잡고는 아..! 하고 아픈 시늉을 하는 것이다. 진짜로 놀란 나는 무슨 일이냐 다급하게 물었는데, 김석진은 여주씨가 오늘 너무 예뻐서...심장에 무리가 와요! 라는 되도 않는 말을 지껄이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 티엠아이를 주절 주절 늘어놓는데 그때 너무 황당하게 알게 된 사실이, 김석진은 심장이 약해서 무서운 거를 싫어한다는 거였다. 김석진은 그러면서 내 존재가 지 심장에 약하지만, 나는 계속 보고 싶다며 자길 이렇게 만든 여자는 처음이라어쩌구 저쩌구..... 어쨌든 결론이 참 이상했었다. 갑자기 든 그 말이 낯간지러워서 나는 얼른 머릿속에서 김석진의 얼굴을 지우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됐네 그럼! 공포영화 같이 보자고 해. "

" 김석진씨랑 단 둘이? "

" 응. "

" 에이... 그런 거 싫어하니까 다른 거 보자고 막 그러지 않을까? "

" 어차피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야. 네가 보고싶다고 먼저 데이트 신청하는 건데, 안가고 배기겠어? "



그런가? 아 그래도 만나서 영화는 좀..  고민하는 내 말에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내리치던 친구는 이왕 만나서 정 확실히 떨어트려버려. 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또 한번 친구가 말해주는 정 떨어트리기 법을 전수받기 시작했다.






.

.

.






" 여주씨! "



이제 막 퇴근을 하려고 일어서는데, 웬일로 팀장님이 날 부르셨다. 갑작스런 호출에 팀장님 자리로 갔는데, 팀장님이 싱글벙글 웃으며 영문 모를 봉투를 건네는 것이다. 헉! 팀장님... 설마 이건.. 저만 챙겨주는 보너스? 침을 꿀꺽 삼키며, 이게 뭔데요?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저 웃으시면서 열어봐~ 하고 직접 확인하는 것을 권하길래 내심 떨리는 맘으로 봉투를 열었다. 설마 진짜 돈은 아니겠....



" 짜잔!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무료 티켓! "



아... 그럼 그렇지. 사실 말도 안되는 상상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데 이거 왜 주시는 거에요? 하고 물었다.



" 꽁짜 티켓을 얻었는데, 내 나이에 가기도 좀 그렇고, 우리 팀에서 제일 젊은 여주씨가 생각나서 말야! "

" 아.. 감사합니다. 두장이네요? "

" 그래~ 여주씨 남자친구랑 같이 가라고! "



내가 인심 좀 썼어. 어때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부장님의 말에 나는 감사인사도 못하고 입을 떡 벌렸다. 남..자친구요? 설마 꽃다발때문에 김석진씨를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 언제 내 남자친구가 된거야!



" 하하. 저 남자친구같은 거 없는데요.. "

" 여주씨! 다 알아~ 매일 퇴근하고 남자친구가 차 태워주는 거. "



헉. 난 진심으로 놀라 입을 벌렸다. 그걸 봤단 말야? 다 안다는 건 회사사람들이 다 안다는 건가? 생각치도 못한 팀장님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 아.. 아니....그걸... 언제... "


" 그래 여주씨. 숨기지 말고 말해. 어떻게 만났어, 그렇게 돈많은 남자를? "


" 네?? "


" 차가 그냥 좋은 수준이 아니던데?? 여주씨 능력 좋아~ " 



이젠 옆에서 듣고 있던 팀원들까지 덩달아 합세해, 내게 질문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어떻게 꼬셨어? 어떻게 만났어? 하는데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디서부터 오해를 풀어야할지 몰랐다. 설사 오해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얼굴들 같았다.



" 여주씨 조만간 결혼 소식 기대해도 되는 거야? "

" 아우, 좋겠다.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도 가고. "



진짜 그런 사이 아니에요, 하고 연신 손사래를 치다 겨우 상황을 빠져나와 퇴근을 했다. 정말 정신 없는 상황이었다. 빠르게 로비를 지나 회사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김석진씨의 차가 빵 거리며 나를 붙잡았다. 여주씨, 하고 차문을 열고 웃는 얼굴. 불현듯 아까 팀장님의 말이 떠올라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는데 아니나 다를까 퇴근하던 몇몇 팀원들이 슬쩍 이쪽을 쳐다보며 걷고 있었다. 그중엔 여주씨 응원해요!! 하고 입모양으로 친절히 말해주는 분까지 계셨다. 시발...그게 아니라구요.






" 여주씨, 안타요? "



나는 세상 순진한 얼굴로 물어오는 김석진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타요! 타! 타서 말할거야! 결국, 오늘도 꼼짝없이 김석진씨의 차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 요즘 여주씨랑 부쩍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



아. 그러시구나. 저는 ..뭐ㅎㅎ 그렇게 느끼시다니, 더욱 착잡해질 따름이네요. 물론 속마음만 그렇게 말했다. 입으로 나오려는 말들을 겨우 참느라 혼났다. 



" 저는 이렇게 퇴근할 때 데려다주는 것도 너무 좋은데, 이제는 주말에도 막 만나고 싶고.... "

" 네? 주말이요..? "



김석진이 넌지시 꺼낸 말에 내포된 숨은 뜻을 왠지 알아차린 것 같아 착잡해졌다. 핸들을 잡던 한 손을 떼고 잠시 목부근을 긁적인 김석진이 잔뜩 부끄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여주씨 회사랑 여주씨네 집이 너무 가까워서요. 김석진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동네쪽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안데려다주셔도 되는데... 중얼거리는 말을 못들었는지, 김석진씨가 이거 봐. 몇 분 안된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잖아요. 전 더 같이 있고 싶은데...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여주씨만 괜찮다면 주말에 데이트... 안하실래요? " 



김석진은 가만보면 내가 거절을 못할 걸 알고 저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한 걸 보면 말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저, 주말에 일이 있어가지요. 하고 처음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췄다. 오, 미친. 괜한 오기가 용기를 불러일으켰나보다. 스스로에게 감탄하면서 애써 겉으로는 표정을 숨기는데, 그런 내 말에 김석진씨가 무슨 일이요? 하고 물어왔다. 물론, 주말에 일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 어....... 부, 부, 부모님 집에 내려가봐야 해서요. 오, 오랜만에 뵙는다고.. "

" 어? 여주씨 부모님 서울 사신다고 그러시지 않았어요? "



김석진의 말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미친,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했다고??? 아무래도 처음 김석진과 밥을 먹었을 때, 뭣모르고 김석진이 묻던 말에 이것저것 다 말해버린 것 같다.




" 아, 그니까! 부모님의...부모님을! 얘기하는거죠! 제 말은. 하하. "

" 아~ "



간신히 위기를 해결했다 싶어 한숨을 내쉬는데, 별안간 김석진씨가 이상하다- 라며 뜻모를 말을 남겼다.



" 그때 분명, 부모님이랑 삼촌, 동생, 그리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까지 이렇게 같이 대가족으로 산다고 엄청 자랑하셨던 것 같은데. "

" ...제가... 그런 것까지 다 얘기했었나요? "

" 네. 여주씨가 직접 다 얘기해 줬었죠. "

" 그걸 ... 다 기억해요? "

"  뭐랄까, 그때 그 얘기를 여주씨가 하고 있을때.. 되게 신나보여서요. 가족 얘기를 막 해주시는데,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셨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



그래서 제가 또 반했죠. 김석진은 그 말 뒤에, 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네 댁에 가시는 거겠죠? 여주씨가 설마 저한테 '거짓말'을 할리도 없고~ 하고 사람좋게 웃었다. 근데 그 웃음이 서늘해도 한참 서늘해서 나는 더이상 일말의 변명도 할 수가 없었다. 시발. 저거 백퍼 내가 구라치는 거 눈치 까고 말하는 거야. 여기서 어떻게 뭘 더 말해.. 괜히 둘러댔다. 괜히 둘러댔어.


나는 이제 내가 드디어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김석진의 눈치를 계속 보고, 매일 전전긍긍할 바엔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다. 솔직히 내가 제일 우려했던 것은 아까 회사 팀원들의 말마따나 그렇게 사귀는 오해를 받는 것이었다. 김석진은 존나 부자고, 잘났고, 나는 그거에 비하면 그냥 일반인이니깐. 회사 사람들도 분명히 알게 모르게 뒤에서 나와 김석진을 비교하고 있었을 게 뻔했다. 그래.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야해. 어느새 집 앞에 다다른 차 안은 이상하게도 조용하기 짝이 없었다.



" 여주씨. "

" ... "

" 부담스러우면, 그냥 안 나오고 싶다고 하셔도 돼요. "



행여나 또 얼음공주 뺨치는 아이스 김석진씨로 변해있을까봐 얼른 확실히 해명하려 하는데, 김석진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예상 외의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이다. 김석진씨가 갑자기 왜그러지. 나는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김석진씨를 바라봤다. 어라... 가만보니 김석진씨의 눈썹이 엄청 내려가있었다. 입술도 평소보다 더 삐죽 고개를 내민 것 같았다. 김석진과 함께 한 약 며칠간의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결과로는..... 띠링♪ [ 김석진 지금 매우 속상함 ]의 상태가 틀림없었다.



" 해요. "

" ....네? "

" 하자구요, 데이트.. " 



잔뜩 숙여서 거의 핸들에 닿을 것 같았던 김석진의 머리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거듭 묻는 모양새는 누가봐도 놀란 상태였다.




" 주말에, 같이 놀이공원 가요. "




마음이 약해져 결국 또 내 확실한 거절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첫 데이트이자, 마지막 데이트로 내가 기필코 꼭! 만들 것이다.





















세번째, 데이트할 땐 무조건 생얼로! 옷도 완~전 후리하게! 독서실 패션 알지? 독서실 패션! 친구의 말을 한 번 더 떠올리며 그의 말대로 입긴 입었는데 ... 이거 후리해도 너무 후리한 거 아니야?! 자다 막 일어난듯한 얼굴에, 대딩시절 시험기간 향기 물씬 나는 두줄 팬츠에, 후드티를 입은 거울 속의 나를 보고 걱정이 들기 시작했디. 아무리 그래도 데이트인데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 생각을 하다가 친구가 일러준 말이 또 한 번 떠올랐다. 


' 너 혹시라도 예의 아니다 어쩐다 운운할 생각이면 평생 못내친다! 너 보자마자 충격먹어서 집가자 할 걸? 야 내친김에 약속시간 지각도 해버려. '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역시 이게 맞는 선택인 것 같다. 






"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게 나왔죠.. "


원래 김석진과 만나기로 했던 시간은 1시였는데, 약속시간 10분 전에 미리 문자로 안될 것 같다고 2시에 만나자고 미리 일러두었다. 그렇게 약속시간은 2시로 변경됐지만, 난 일부러 10분이나 더 늦게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나는 김석진씨를 보며 과연 이 방법이 통할까 싶었다. 그리고, 약속을 안 지킨게 계속 맘에 걸려 무거웠다. 화내는 거 아냐? 그러나, 김석진은 허둥지둥 나오는 나에게 인사하다가, 이내 나를 보곤 슬쩍 위아래로 스캔하면서 그저 까닭모를 표정을 짓는 것이다.



" 제가 너무 급하게 준비하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상태가 좀 그렇죠? "

" 아, 그랬어요? "

" 왜요?... 혹시 기분 나쁘시거나... 저한테..막 정...떨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죠?! "

" 네? "



김석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황한 눈친데.... 정말 정 떨어진 건가?! 하긴, 내가 봐도 약속도 안지키고 이런 차림은 좀 심하긴 했어...! 묘하게 들뜬 맘을 숨기지 못하고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김석진씨가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정말 소리소문도 없이 내 앞으로 우뚝 다가와 손을 뻗어오는 거다. 뭐, 뭐지, 하고 긴장해서 뒤로 주춤거리면 어느새 김석진의 커다란 손이 나의 눈 위로 살포시 안착했고, 엄지손가락으로 내 눈 앞머리를 비비작거리는 이상한 모션을 취했다.


설마... 지금 눈꼽 떼주는 거야? 

황당한 얼굴로 김석진을 쳐다보는데, 올라간 입꼬리를 유지한채로 그럴리가요, 하고 아까 물은 말에 대답하는 김석진이었다.



" 여주씨가 늦으면 더 기다려줄 수 있었는데.. "

" ... "

" 아예, 저녁에 만나서 자정까지 있는 것도 좋구.... "

" 자, 자, 자정이라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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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냥, 여주씨 편하게 입은 거 보니까, 이왕하는 거 집데이트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



나는 순수한 표정으로 말하는 김석진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 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자정까지 집데이트라니....얼굴에 잔뜩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뭐 사람이 저렇게 다 관대해! 아무래도, 이것 역시 실패다. 














" 한 분이시죠? "


놀이공원 입구에서 티켓을 보여주고 끊으려고 하는데, 대뜸 이렇게 묻는 직원의 말에 네? 하고 반문했다. 그제야 나는 내가 김석진과 차림새가 극명하게 나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요, 저까지 두명이에요. 김석진의 말에 당황한 직원이 아.. 이렇게 두 분이요? 하고 바로 티켓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나는 큼흠, 하고 서둘러 놀이공원 안으로 쏜살같이 향했다. 이런 꼴로 찾아오니 김석진과 일행으로 전혀 보이지 않기는 한가보다. 어느새 김석진이 내 옆으로 달려와 소리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 여주씨 왜이렇게 얼굴이 빨개요ㅋㅋㅋㅋㅋㅋㅋ "

" 아...아니거든요! 누가 얼굴이 빨갛다고 그래요. "

" 엄청 빨간데요? "

" 밥...밥이나 먼저 먹으러 가요! "



나는 황급히 식당을 가리키고 걸음을 옮겼다. 



이로써 네번째 계획이었다. ' 야, 너 밥먹는 게 꼴보기 싫어서 헤어지자는 말 많이 들어봤지? 그만큼 식사예절이 중요하단거야. 특~히나 한국같은 밥심 사회속에선! 그러니깐, 최대한 꼴보기 싫게 먹어. 막, 막 드럽게 먹어! ' 친구의 말을 듣고 난 이거다! 했다. 그래. 밥먹는 거 꼴보기 싫은 것만큼 정떨어지는 일은 없지. 내가 아주 오늘 제대로 꼴보기 싫은 먹방을 보여준다!


식당 안으로 의기양양하게 들어간 나는, 김석진과 자리를 잡고 메뉴를 고르기 시작했다. 다 골랐어요? 김석진의 말에 한참 고민하다가 치즈 돈까스를 가리켰다. 김석진은 누가 부잣집 아니랄까봐 스테이크를 골랐다. 그런 고급진 레스토랑것만 먹다 이런데 오면 입맛 버리는 거 아냐? 어쩌면 밥먹는 나를 보기 전부터 벌써 정이 떨어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음식이 나오고, 김석진은 예상 외로 아주 맛있게 먹었다. 나한테 눈길도 안주고 먹는 것 같은데 ... 나도 모르게 김석진의 먹는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지 어느 순간 고개를 든 김석진과 눈이 마주치자 당황했다. 왜요? 하고 묻는 말에 바로 눈을 내리깔고 아니에요 드세요 라고 말했다. 이윽고, 김석진이 수저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 아, 제가 센스가 없었네요. "

" 갑자기 그게 무슨 .. "


무슨 뜬금없는 말인가 했더니, 어느새 내 돈까스를 가져간 김석진이 나이프로 고기를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썰어주기 시작했다.


" 이런 건 아무말 없이 먼저 했어야 했는데,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

" 아, 아니... 그런 건.. 아닌데.. "

" 여주씨 집에선 지금까지 이런 거 다 가족들이 썰어주셨죠? "


흐뭇하게 웃은 김석진은 돈까스를 다 썰고는 내 앞으로 다시 그릇을 놔주었다. 지금 되게 나 애 취급하는 것 같은데.. 김석진은 이내 뿌듯한 표정으로 날 잠시 바라보았다. 내가 뒤늦게 눈치를 채고 아, 고마워요..! 라고 말하자 그제야 만족스럽다는듯 다시 본인의 식사에 열중하는 김석진이다.


근데... 너무 잘게 썰은 거 아냐?? 마트에서 파는 치즈큐빅만큼이나 작고 네모반듯한 모양새로 잘려있는 돈까스를 보며 착잡한 심경에 빠졌다. 이렇게 되면 고기를 통째로 집어 게걸스럽게 먹으려던 내 계획이 틀어지고 만다. 절대 게걸스럽게 먹을 수 없잖아?? 난 잠시 고민하다가 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소리내면서 먹자. 부잣집 사람들은 그런 거 신경 오지게 쓰겠지?


쩝쩝쩝.


나는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었다. 사실, 크게 나는 건지 마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크게 낸다고 냈다. 그런데 김석진은 그닥 신경이 안쓰이는 건지, 아무렇지 않게 밥을 잘 먹었다. 지금 밥이 잘 넘어가요? 내가 이렇게 먹고있는데?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김석진에게 레이저를 쏘면, 또 어느새 나와 마주치고 웃는 김석진이었다.


" 그러다 닳겠어요. 여주씨. "

" ...저, 저 김석진씨 본 거 아닌데요. "


진짜 아닌데요! 아니, 맞긴하지만.. 김석진은 내 강경한 부정의사에도 아랑곳 않고 웃으며 고기를 씹었다. 어쩐지 김석진의 귀가 빨개진 것 같다. 뭐야. 또 왜 빨개지는데. 덩달아 나까지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이러니, 정말 밥이 코로 넘어가는 건지, 귀로 넘어가는 건지.. 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는지 내 접시는 어느새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헉. 뭐야. 이러다 네번째 계획도 실패하게 생겼다. 김석진이 하필 작게 썰어놓은 덕에 간에 기별이 오는 건지 실감도 못하고 막 집어넣다보니 확 줄어있었다. 나는 빨리 생각해야해.. 하며 머리를 굴리다가, 이내 구상해두었던 다섯번째 계획이 번뜩 떠올랐다.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다!




" 아! 혹시 김석진씨, BTS아세요? "



' 덕후 티내면 끝장이야. 사람들 그거 다 싫어해 레알. 자기는 잘 모르지, 관심도 없지. 근데 상대가 계속 어떠냐고 하면서 최애들 자랑해. 지가 모르는 얘기를 막 해. 관심도 없는데, 막 우리 최애좀 보세요! 하면서 10분동안 열변을 막 토해! 그거 진짜 정떨어진다? 아 이 사람 오덕이구나 하고 정 뚝 떨어지는 거지! '



다섯번째 계획은 바로 덕질 얘기 하기다. 역시나, 김석진이 물음표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또 이 분야에 대해선 잘 안단 말이지. 물론 내가 BTS의 팬은 아니었지만 친구가 뼛속까지 덕후였어서 많이 시달려봤다. 그들의 나노단위로 앓는 그 패턴들은 꽤나 익히고 있었다. 아, 제가 사실.. 말을 안하고 있었는데요, 제가 진짜 BTS 팬이거든요! 


그래요? 내 말에 김석진은 내 얘기를 들어주려는지 밥상에서 시선을 떼고 팔짱을 끼며 눈을 맞춰왔다. 나는 잔뜩 신이 나서 이제 김석진을 어떻게 하면 짜증낼 수 있을까, 하고 내가 짜증나게 싫어했던 친구들의 덕후질들을 떠올렸다.



" 너무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하고, 그냥 태어날 때부터 아~ 얘는 아이돌 하려고 태어났다 싶은게 바로 BTS 란 말이죠. 혹시 아세요? "

" 알죠. 가수잖아요. "

" 아시는구나~ 근데 잘은 모르시죠? 이게, 그.. 진짜 다른 아이돌들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깐요? 제가 3년 전부터 빠져가지고 월급타면 맨날 다 여기다 쏟아부어요. 그래서 요즘 통장이 마이너스더라구요. 근데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게 다가 아니고, 인성까지 너무 좋은 거에요. 그리고 보시면... 여기 배경화면도 해놨어요! 제 최애는 태형이라는 친군데요! "



사실 태형밖에 몰라서 태형으로 배경화면을 미리 해놨었다. 핸드폰을 딱 보여주니, 김석진이 관심을 가지며 쳐다봤다. 나는 처음으로 웃음이 나왔다. 게획대로 되고 있어. 우리 태형이가요~ 엄청 순하고, 끼도 많고, 팬들한테도 맨날 사랑한다고 해줘서 잇몸 마를 날이 없다니깐요?! 또 선도 예뻐가지고 손짓 한번만 해주면 그냥 끝나요. 그 날 저 설레서 잠 못들어요. 아! 진짜 설레는 게 뭐냐면, 자기 팀 멤버 입에 음식이 막 묻어있는데, 그걸 손으로 닦아주고 자기가 먹는 거에요. 보통 자기 핏줄인 사람한테도 이렇게 못해주는데. 저는 거기서 알았죠. 아 김태형은 다정의 끝판왕이구나 하구요!



" 정말 제 이상형이에요.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본다니깐요? "



김석진의 미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질세랴, 더 거들었다. 어쩜 이렇게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다 들어간건지, 또 엄청 남자답게 선이 굵고, 엄청 화려하게 생겼어요. 아마 전생에 신라시대 화랑이었을 지도 몰라요! 한참 주절 주절 떠드는데, 갑자기 숟가락을 식탁에 떨어트리는 소리가 굵직하게 들렸다. 나는 그 소리의 주범인 김석진을 깜짝 놀란 눈으로 쳐다봤고, 이내 눈에 띄게 굳어진 그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렸다. 성공인가? 드디어 정이 떨어진건가?



" 그래서, " 



 깼네, 깼어. 지금 나한테 완전 깼어. 꿀꺽. 긴장한 채로 김석진을 쳐다보는데. 




" 지금 제 앞에서 다른 남자가 좋다고 떠드는 거에요? "




... 깨기는 개뿔. 


내 정신이 깼다. 




" 그....그게 좋...좋다기보다는...다, 당연히 좋긴..좋죠! "




허. 김석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늘게 뜬 시선이 내 배경화면을 향하는데, 어쩐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바로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 저보다 잘생겼어요? "

" ... "

" 저보다 돈 많아요? "

" ... "

" 저보다, 저 기생오래비같이 생긴 사람이, 좋다고요? "



이거 서, 설마 질툰가? 아니, 왜 갑자기 질투를 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김석진의 반응에 난 또 한 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김석진의 표정은 이제껏 봤던 것 중에 제일 무서워서 별다른 반박을 못했다. 오, 시발.. 역대급인데.



" 아니.. 왜 그렇게 무섭게 얼굴을... 해요. "



거의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잔뜩 꼬리를 내리며 말했더니, 갑자기 김석진은 제가 언제 무서운 얼굴을 했다고. 하며 다시 사람 좋은 척 웃어보였다. 와, 김석진씨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네. 지금 눈은 그대로고, 입꼬리만 대충 올린 것 같은데요!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며 김석진의 눈치를 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거야.



" 석진씨... 화났어요? "



" 여주씨가 좋아한다는 그 DTS인가 뭔지 하는 사람들 얘긴 여기까지만 듣죠. "



빡쳤네, 빡쳤어. 진심이야.



" 더하다간 증권사에다 루머 퍼뜨려서, 다시는 연예계에 발도 못들이게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니깐. "



왠지 김석진은 진짜로 그럴 수 있을 같아서 곱게 입을 다물었다.






깨작깨작.. 밥을 먹는데,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번엔 진짜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깐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김석진씨가 화가 난 상태에서 내가 남은 돈까스마저 게걸스럽게 먹는다면..? 확실히 정이 떨어질 지도 몰라. 그 생각을 왜 못하고 있었지? 나는 거의 다 찬 배에, 겨우 4조각 남은 돈까스를 더럽게 먹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스를 푹 찍어서 어설프게 입술에 묻히고 쩝쩝 소리가 나게 우글우글 씹어댔다. 더럽게 먹으니깐, 왠지 더 맛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김석진에게선 확실한 반응이 나왔다. 접시를 다 비운 김석진이, 먹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으니깐. 네번째 계획, 다시 실행한다! 나는 고기 네조각을 모두 그런 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고기를 묻히며 씹었을 땐... 살짝 현타가 왔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속에선 두개의 자아가 싸우는 것만 같았다. 김여주 아무리 그래도 존나게 드럽게 먹는거 아냐? 나 좀 자존감 떨어질려고 그래. 아니야! 이렇게 해야 확실히 정이 떨어진다니깐? 봐봐. 김석진이 놀라서 너한테 눈을 못 떼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깨끗해진 접시 위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석진을 천천히 바라봤다. 김석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 하고 뭔갈 깨달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석진이 한 손으론 테이블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입술에..... 뭐? 잠만 이거 뭔가 이상한데.



" ...!! "



나는 곧 이어진 김석진의 행동에 경악하며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지..지금.... 김석진씨의 손가락이... 내 소스를....그리고...김석진씨가 혀로 핥.....



지금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내 입주위에 묻은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낸 김석진이 혀를 내어 소스를 맛보는 장면. 그리곤 곧 짓궂게 웃는 표정. 이게 정녕 꿈이 아닌가? 실환가? 김석진은 백퍼센트 아까 내가 태형을 칭찬하며 말했던 일화를 따라한 거였다. 나는 폭풍 후회를 했다. 어쩌자고 BTS 태형의 막 그런 tmi까지 주절주절 떠들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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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제 앞에서 다른 남자가 좋다고 떠드는 거에요? "




... 깨기는 개뿔. 


내 정신이 깼다. 




" 그....그게 좋...좋다기보다는...다, 당연히 좋긴..좋죠! "




허. 김석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늘게 뜬 시선이 내 배경화면을 향하는데, 어쩐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바로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 저보다 잘생겼어요? "

" ... "

" 저보다 돈 많아요? "

" ... "

" 저보다, 저 기생오래비같이 생긴 사람이, 좋다고요? "



이거 서, 설마 질툰가? 아니, 왜 갑자기 질투를 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김석진의 반응에 난 또 한 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김석진의 표정은 이제껏 봤던 것 중에 제일 무서워서 별다른 반박을 못했다. 오, 시발.. 역대급인데.



" 아니.. 왜 그렇게 무섭게 얼굴을... 해요. "



거의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잔뜩 꼬리를 내리며 말했더니, 갑자기 김석진은 제가 언제 무서운 얼굴을 했다고. 하며 다시 사람 좋은 척 웃어보였다. 와, 김석진씨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네. 지금 눈은 그대로고, 입꼬리만 대충 올린 것 같은데요!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며 김석진의 눈치를 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거야.



" 석진씨... 화났어요? "



" 여주씨가 좋아한다는 그 DTS인가 뭔지 하는 사람들 얘긴 여기까지만 듣죠. "



빡쳤네, 빡쳤어. 진심이야.



" 더하다간 증권사에다 루머 퍼뜨려서, 다시는 연예계에 발도 못들이게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니깐. "



왠지 김석진은 진짜로 그럴 수 있을 같아서 곱게 입을 다물었다.






깨작깨작.. 밥을 먹는데,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번엔 진짜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깐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김석진씨가 화가 난 상태에서 내가 남은 돈까스마저 게걸스럽게 먹는다면..? 확실히 정이 떨어질 지도 몰라. 그 생각을 왜 못하고 있었지? 나는 거의 다 찬 배에, 겨우 4조각 남은 돈까스를 더럽게 먹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스를 푹 찍어서 어설프게 입술에 묻히고 쩝쩝 소리가 나게 우글우글 씹어댔다. 더럽게 먹으니깐, 왠지 더 맛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김석진에게선 확실한 반응이 나왔다. 접시를 다 비운 김석진이, 먹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으니깐. 네번째 계획, 다시 실행한다! 나는 고기 네조각을 모두 그런 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고기를 묻히며 씹었을 땐... 살짝 현타가 왔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속에선 두개의 자아가 싸우는 것만 같았다. 김여주 아무리 그래도 존나게 드럽게 먹는거 아냐? 나 좀 자존감 떨어질려고 그래. 아니야! 이렇게 해야 확실히 정이 떨어진다니깐? 봐봐. 김석진이 놀라서 너한테 눈을 못 떼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깨끗해진 접시 위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석진을 천천히 바라봤다. 김석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 하고 뭔갈 깨달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석진이 한 손으론 테이블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입술에..... 뭐? 잠만 이거 뭔가 이상한데.



" ...!! "



나는 곧 이어진 김석진의 행동에 경악하며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지..지금.... 김석진씨의 손가락이... 내 소스를....그리고...김석진씨가 혀로 핥.....



지금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내 입주위에 묻은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낸 김석진이 혀를 내어 소스를 맛보는 장면. 그리곤 곧 짓궂게 웃는 표정. 이게 정녕 꿈이 아닌가? 실환가? 김석진은 백퍼센트 아까 내가 태형을 칭찬하며 말했던 일화를 따라한 거였다. 나는 폭풍 후회를 했다. 어쩌자고 BTS 태형의 막 그런 tmi까지 주절주절 떠들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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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제 앞에서 다른 남자가 좋다고 떠드는 거에요? "




... 깨기는 개뿔. 


내 정신이 깼다. 




" 그....그게 좋...좋다기보다는...다, 당연히 좋긴..좋죠! "




허. 김석진이 헛웃음을 지었다. 가늘게 뜬 시선이 내 배경화면을 향하는데, 어쩐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바로 핸드폰의 전원을 껐다. 



" 저보다 잘생겼어요? "

" ... "

" 저보다 돈 많아요? "

" ... "

" 저보다, 저 기생오래비같이 생긴 사람이, 좋다고요? "



이거 서, 설마 질툰가? 아니, 왜 갑자기 질투를 해?! 도통 종잡을 수 없는 김석진의 반응에 난 또 한 번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눈 앞에 보이는 김석진의 표정은 이제껏 봤던 것 중에 제일 무서워서 별다른 반박을 못했다. 오, 시발.. 역대급인데.



" 아니.. 왜 그렇게 무섭게 얼굴을... 해요. "



거의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잔뜩 꼬리를 내리며 말했더니, 갑자기 김석진은 제가 언제 무서운 얼굴을 했다고. 하며 다시 사람 좋은 척 웃어보였다. 와, 김석진씨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네. 지금 눈은 그대로고, 입꼬리만 대충 올린 것 같은데요!  소리없는 아우성을 외치며 김석진의 눈치를 보며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왜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는거야.



" 석진씨... 화났어요? "



" 여주씨가 좋아한다는 그 DTS인가 뭔지 하는 사람들 얘긴 여기까지만 듣죠. "



빡쳤네, 빡쳤어. 진심이야.



" 더하다간 증권사에다 루머 퍼뜨려서, 다시는 연예계에 발도 못들이게 해버리고 싶은 심정이니깐. "



왠지 김석진은 진짜로 그럴 수 있을 같아서 곱게 입을 다물었다.






깨작깨작.. 밥을 먹는데,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에 이번엔 진짜 밥이 잘 넘어가질 않았다.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깐 어쩌면 이건 기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 김석진씨가 화가 난 상태에서 내가 남은 돈까스마저 게걸스럽게 먹는다면..? 확실히 정이 떨어질 지도 몰라. 그 생각을 왜 못하고 있었지? 나는 거의 다 찬 배에, 겨우 4조각 남은 돈까스를 더럽게 먹기 위해 무던히 애를 쓰기 시작했다. 소스를 푹 찍어서 어설프게 입술에 묻히고 쩝쩝 소리가 나게 우글우글 씹어댔다. 더럽게 먹으니깐, 왠지 더 맛없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김석진에게선 확실한 반응이 나왔다. 접시를 다 비운 김석진이, 먹고 있는 나를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으니깐. 네번째 계획, 다시 실행한다! 나는 고기 네조각을 모두 그런 식으로 먹기 시작했다. 마지막 고기를 묻히며 씹었을 땐... 살짝 현타가 왔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지. 속에선 두개의 자아가 싸우는 것만 같았다. 김여주 아무리 그래도 존나게 드럽게 먹는거 아냐? 나 좀 자존감 떨어질려고 그래. 아니야! 이렇게 해야 확실히 정이 떨어진다니깐? 봐봐. 김석진이 놀라서 너한테 눈을 못 떼잖아.


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깨끗해진 접시 위로 수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김석진을 천천히 바라봤다. 김석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 하고 뭔갈 깨달았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순식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석진이 한 손으론 테이블을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론 내 입술에..... 뭐? 잠만 이거 뭔가 이상한데.



" ...!! "



나는 곧 이어진 김석진의 행동에 경악하며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지..지금.... 김석진씨의 손가락이... 내 소스를....그리고...김석진씨가 혀로 핥.....



지금 내가 대체 뭘 본거지? 나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내 입주위에 묻은 소스를 엄지손가락으로 닦아낸 김석진이 혀를 내어 소스를 맛보는 장면. 그리곤 곧 짓궂게 웃는 표정. 이게 정녕 꿈이 아닌가? 실환가? 김석진은 백퍼센트 아까 내가 태형을 칭찬하며 말했던 일화를 따라한 거였다. 나는 폭풍 후회를 했다. 어쩌자고 BTS 태형의 막 그런 tmi까지 주절주절 떠들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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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려고 그런 말 했던거였어요? "



그럼, 뭐 용서가 되고. 다시 순진하게 웃는 양으로 돌아온 김석진을 보며 나는 속으로 소리질렀다.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그런 행동을 했던 내 자신에게 급 부끄러워져서 화장실로 달려가 입술을 벅벅 닦았다. 후. 정신차려야해. 휘말리지 말자. 












결심과는 달리 기죽은 모습으로 김석진에게로 향했다. 가요. 하고 내 가방을 건네주는 김석진의 모습에, 아, 아니 계산은요? 하고 물었더니, 티켓은 여주씨가 줬는데, 밥은 제가 사야죠 하고 말하는 김석진이었다. 그치. 돈도 많은 김석진이 그냥 넘어갈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예전엔 놀이기구만 봐도 설렜는데, 이젠 별다른 감흥이 들지 않았다. 나도 늙었구나 싶긴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김석진 때문이었다. 김석진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다.


이대로 가다간 훈훈하게 진짜 데이트를 보내겠어. 어쩌지. 어떡하지. 나는 발을 동동 굴렸다.


" 여주씨, 뭐 타고 싶은 거 없어요? "


그리고 나는 발을 멈췄다. 저거다. 나는 눈을 반짝이며 김석진을 쳐다봤다.


" 네! 있어요! "


저거요! 하고 힘차게 가리킨 손 끝에는, 비명소리와 함께 시속 104km의 엄청난 속도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가 보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김석진씨의 눈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 저걸, 타자고요? "

" 네! 저 진~짜 저거 타고 싶었어요. "

" 아... 그래요? 다른 거 먼저 타고 천천히 타면 돼죠. "

" 안돼요! 저거 사람 너무 많아서 엄청 오래 기다려야한단 말이에요. 지금 가서 기다려야 한 번 타고 또 타죠! "


김석진의 눈이 꿈틀거렸다. 또, 타요? 나는 잔뜩 눈을 빛내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 저 저거 탈려고 여기 온거지. 아니었음 주말에 나오지도 않았어요! "

" 아.. 그렇게 타고 싶어요? "

 " 네! ...석진씨 혹시 무서운 거 못 타시는 거 아니죠?? "


저 그럼 혼자 타야는데... 말꼬리를 늘리며 대답했다. 제발. 제발. 이 정도까지 했으면 넘어올 만 하잖아. 한참 머뭇거리던 김석진이 특유의 웃음을 다시 지으면서 아니요. 여주씨랑 타는 건데 무서울리가 없잖아요. 하고 먼저 발걸음을 뻗었다. 뭐야. 생각보다 자신있는 말투에 잘 타는건가? 못 타는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심장 약하다 하길래 롤러코스터도 못타지 않을까 싶어서 찍어봤는데.


그러나, 역시 내 예상이 틀리진 않은 건지 김석진은 줄이 줄어들 때마다 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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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 뭐야. 여주씨 이거 왜이렇게 줄이 빨리 줄어들어요? (동공지진) "

" 어, 그러게요? 오늘은 사람이 없나봐요! 너무 다행이다! 원래 진짜 줄 긴데. "



김석진은 바로 앞에서 롤러코스터가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하게 움찔거렸다. 이거 타다 죽은 사람 없대요? 우리 너무 위험한 거 아니에요? 나는 김석진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걱정 말아요~ 이거 진짜 몇번 떨어지고 끝나요! 재밌다니깐? 내 말에 김석진은 여주씨 말만 믿을게요.. 하고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줄은 정말 금세 줄었다. 그리고, 우리 차례도 금세 다가와 어느새 기구의 바로 앞 줄 까지 왔다. 두 분이세요~ 소지품은 저기에 놓고 안 쪽으로 들어가서 앉으세요~ 안내원의 말에 따라, 김석진과 나는 드디어 기구에 앉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석진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땀을 어찌나 흘린 건지 손이 축축했다.


" 석진씨, 왜그래요? "

" 아, 아니, 그냥. 이렇게 잡고 타고 싶어서요. "

" 무서워서 그래요...? 혹시 안타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내려가세요. 저 혼자 탈게요..! "

" 그런 거, 그런 거 아니에요. "


내 말에 김석진씨가 드디어 자리에 착석했다. 보기보다 이런 곳에 자존심을 세운단 말야. 진짜 괜찮은 건가? 김석진의 얼굴을 보려고 했는데, 그 순간 안내원이 말했다. 출발할게요~





결과는 아주 뻔했다. 김석진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명을 멈출 줄 몰랐다. 끝나고 나올 땐 다리를 후들거리며 내 손부터 급하게 잡았다. 괜찮았죠?! 내 말에 김석진은 붙잡은 손을 꽉 쥐며 네, 네. 재밌던데요 뭘. 하고 능청스럽게 굴었다. 재밌기는..안색이 안 좋은데요. 그에 반해 나는 너무 오랜만에 타서 감흥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밌어서 아주 손을 놓고 타기까지 했다. 중간에 김석진은 그런 나를 보고 여주씨! 손 내려요!! 죽어요!! 하고 소리를 지르기 까지 했다. 진짜 재밌었는데. 나는 애써 김석진의 상태를 외면하고 다른 거 타요! 하고 화제를 돌렸다.



" 네.. 그래요.. 뭐 탈까요? "

" 음.. 이번엔 저거요! "



나는 자신있게 자이로드롭을 가리켰다. 김석진의 안면이 더 굳어지고 있었다. 저.거.요? 딱딱하게 물은 김석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걸음을 재촉했다. 김석진은 궁시렁 궁시렁 나를 설득하면서도, 잘 따라왔다.


" 이거 타기 싫어요? "

" 아뇨, 그건 아닌데.. "

" 아, 그래요..? 저는 석진씨랑 같이 타고 싶었는데. "


내 말에 김석진씨가 눈을 크게 떴다. 그럼.. 뭐.. 타야죠. 뭐. 하고 뒷목을 긁적이며 앞서나가기까지 했다. 역시 이상한데서 자존심을 부린다니깐? 나는 점점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계속 무서운 거 타자고 눈치없이 행동하면 정 떨어질만도 하겠지? 나는 그런 식으로 석진씨를 3번이나 더 강제로 놀이기구에 끌고 갔다.



" 이번엔 뭐 탈까요!! "

" 하... 저, 여주씨 좀만 천천히. "


바이킹 끝자리까지 태우고 나오는 길에, 김석진씨가 뒤따라오던 걸음을 멈추고 무릎에 손을 짚어 숨을 골랐다. 어느새 진짜로 신나서 앞서나가고 있던 나는, 김석진씨가 안오자 허둥지둥 다시 뒤로 달려갔다.


" 석진씨, 왜그래요?? "


아니나 다를까, 김석진의 표정이 정말 안좋았다. 얼굴빛이 파란색이었다. 깜짝 놀라 김석진의 어깨를 붙잡고, 근처 벤치로 데리고 가 앉혔다.


" 괜찮아요? 안색이 완전 안좋아요. "

" 아... 무리했나봐요. "

" 진짜 괜찮아요? 여기 병원 있던데, 걸로 데려다줄까요? 아니 그냥 나갈까요? "


눈을 감은 채 힘겹게 숨을 고르던 김석진은 고개를 저었다. 진짜 심장이 안좋은 건가? 병원 가봐야하는 거 아냐? 안되겠다며, 병원으로 김석진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김석진이 내 팔을 붙잡고 다시 앉혔다. 그리고는 내 가슴팍 위로 머리를 쿵. 하고 기댔다.



" 그냥. 잠시만 이렇게요. "



당황해서 얼음이 됐는데, 정말 아파보여서 차마 뗄 수가 없었다. 목 언저리에 김석진의 불규칙적인 숨이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진 나는 목구멍으로 자꾸 침을 삼켰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괜찮아요? 하고 넌지시 물었다. 아.. 이러니깐 조금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들리는 그의 대답에 나는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 정말 나때문에 병원 신세라도 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괜찮다니 다행이긴 한데.... 뭔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아니, 근데 이 남자는 타란다고 진짜 다 타나. 바보 아니야?













결국 몇 개 더 타지도 못하고, 벤치에 앉아 쉬면서 퍼레이드 지나가는 걸 구경하다 놀이공원을 나왔다. 운전하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 저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데. 김석진은 내 말에 극구 부인하며, 여주씨가 간호해줘서 이제 괜찮아요! 하고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 진짜로 멀쩡해보이긴 했다. 그건 그거대로 심기가 거슬린단 말이지..


김석진의 차에 타 안전벨트를 한 나는, 몹시 심란해졌다. 김석진씨가 내게 정말 단 한움큼이라도 정이 떨어진 것 같지 않아서였다.



" 여주씨,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나와줘서 너무 고마워요. "



이것 봐. 룸미러 사이로 비추는 김석진의 웃음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 재밌는 하루를 보낸 사람 같았다. 이럴수록 심란한 건 나였다. 이제 친구가 말해준 방법도 다 떨어졌는데, 어떡하지. 고민을 하는데, 김석진이 자요? 하고 묻길래 난 바로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더는 김석진의 말에 응하기가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그냥 코 골아버릴까? 눈을 감으면서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오, 괜찮은데? 솔직히 코 골면 완전 깨지. 난 더이상 쪽팔린 맘도 없이 코골이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 컹... 커엉....커어엉.. 킁. "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곘지만, 어쨌든 피곤하기도 했고, 남은 술수는 이것 뿐이고, 난 포기하지 않을 뿐이요. 이런 심정으로 코골이를 진행하는데, 이상하게 김석진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뭐야. 왜 아무 말도 안해? 하다 못해 웃겨서 웃는 반응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 짓거리를 해야하나 싶다가,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아, 이러다 진짜 잠들 것 같다. 이러다 진짜 잘 것 같아. 이러다 진짜 자는 거 아냐? 진짜 이러다가 ....



" 여주씨? "



하고 부르는 소리에, 나는 놀라 다시 정신차리고 코를 골기 시작했다. 커엉... 킁...컹....커어억. 그랬더니, 김석진의 푸스스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음. 여전히 저 웃음은 재수가 없군. 내 꼴이 웃기긴 한가보다. 조금은 안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 위로 따뜻한 무언가가 덮였다. 응?... 뭐지? 짐작하다가 부드러운 촉감에 김석진이 내게 담요를 덮어줬다는 사실을 알았다.



" 여주씨, 오늘 좀 귀여웠어요. "

" … "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당황한 건 나였다. 이, 이게 아닌데. 더 크게 코골이를 했다.



" 애쓰는 게 보여서. "



김석진의 의미심장한 말이 귓가에 들렸다. 어쩐지 평소보다 나긋나긋한 말투인 것 같고, 바깥도 어둠이 내려앉은지 오래이고, 서늘한 밤공기에 따뜻한 담요,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의 엔진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몽롱하게 만들지 않는 게 없어 점점 의식이 가출할 뻔 한 것을 간신히 채왔다. 비싼차라 그런가. 더럽게 편안하네….



" 이제 눈 뜨죠. "

" ... ? "

" 나 여주씨랑 눈 마주치면서 얘기하고 싶은데. "



화들짝 놀라 감은 눈꺼풀에 지진이 났다. 뭐야, 김석진씨.. 마치, 내가 깨있는데 자는 척 하는 걸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는! 나는 어느새 솔솔 오던 잠도 다 간지 오래이고, 김석진의 말이 신경쓰여 이도 저도 못하고 자는 척만 했다. 진짜 자는 거에요? 김석진의 목소리가 아까보다 좀 더 가까이서 들려왔다. 바로 내 옆으로 온 것 같았다. 나는 이 상황에서 눈을 떠야하나, 말아야 하나 굉장히 고민이 많이 들었다.




 어? 진짜 안 일어나네. 

 ... 

자꾸 이러시면 저 뽀뽀할지도 모르는데.





번쩍. 반사적으로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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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그래도 바로 귀 가까이에서 낯간지러운 소리가 들려서 미치겠는데, 눈을 뜨자마자 김석진의 얼굴이 보여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내, 나와 눈을 맞추고 씨익 웃은 김석진이 다 왔어요, 여주씨. 하고 말하길래 그제서야 난 꿈에서 현실로 돌아온 것 처럼 주위가 내 집 동네라는 걸 인식했다. 혓바닥에 침이 고여 안 삼킬 수가 없었다. 




" 네.. 감, 감사합니다. "




여전히 나에게 시선을 엮어오고 끊어낼 줄 모르는 김석진에 나는 또 한번 눈치껏 물었다. 잔뜩, 긴장된 목소리로.




" 저.. 가도 되죠? "

" 가지 말라고 해도 갈 거면서. " 




예.. 그건 그렇죠 뭐. 킁. 코를 한 번 훌쩍인 나는 괜히 더운 마음에 헛기침도 한 번 했다. 그럼, 저 이제 가볼 게....

거기까지만 말했는데, 붙잡혔다. 김석진의 손이 내 팔을 잡았다가 아래로 내려와 손을 맞닿았다. 자꾸 왜 그러는거야. 아까는 땀 범벅이어서 잘 느끼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따뜻하고 땀기는 하나도 없어서 괜히 뽀송뽀송하게까지 느껴지는 손의 감촉이었다. 입술을 연신 깨물던 김석진은 한참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 귀엽긴 한데, 이제부턴 그러지 마요. "

" 예??? "




상상도 못했던 말에 나는 고개를 들어 반문하고야 말았다. 덕분에 김석진과 또 시선이 맞닿았다.




" 여주씨가 아무리 그래도.. "

" ... "

" 저는 하루하루 여주씨가 더 좋아지고 있거든요. "




그 말이, 그러니 앞으로는 되도않는 개수작 부리지 마세요 라고 들려왔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몰라 그저 붙잡히지 않은 반대쪽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나긋나긋한 음성이 또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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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제가 여주씨가 싫어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게 아닌데. 존나 망했어.


그니까, 왜 망했냐면, 김석진이 내 얕은 술수를 다 파악하고선 내가 싫어지는 일이 없을 거라고 못박아서가 아니라, 자꾸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김석진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점점 심장이 떨려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연재하던 게 아니라 단편을 먼저 올려서 죄송하단 말씀을 드리구....👉🏻👈🏻

제가 쓰기 차단을 갑자기 당하는 바람에 흐름이 뚝 끊겼어요ㅋㅋㅋㅋㅋㅋ 비축분을 쌓아놓긴 했지만 맘에 안들어서 고치는 중입니다 ... ㅠ.ㅠ 빨리 올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대신 석진 단편올려요!!

사실 저는 차가운 것보다 이렇게 들이대는 설정을 더 좋아해요!! ;0v0;ㅋㅋㅋㅋㅋㅋㅋ 무로맨틱 로맨스의 정호석이 최애임다 ....ㅠㅠㅠㅠ

무로맨스 쓰면서 냉한 김석진만 보다가 이런 석진 보니까 괜히 저도 좋습니다 하하하하(자급자족하는 글)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넘 감사해욥!!!




+

<제목없음> 1 | 인스티즈

글에서 여주가 묘사한 장면은 이거였어요!
사실 저는 아직도 짤 속 태형이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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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헝...작가님 사랑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완전 직진 흑 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2
오늘 처ㅇ음 무로맨틱 다 보고 으엏앟하헣 하고있었는데 이렇게 따수운 김석진이라니...ㅠㅠ엉엉 감사합니다ㅠㅠㅠㅜㅜㅜㅜ
4년 전
독자3
하 대박 너무 조아요ㅠㅠㅠㅠㅠ
4년 전
비회원217.178
헐헐 ㅜㅜ 지금 학원에서 정신나가가지고 핸드폰 계속 하다가 봤는데ㅜㅜㅜㅜ 이거 다음편은 더 없는 건가유ㅜㅜㅜ 넘 재밌어ㅛ 심장 폭행 당하고 갑니다😭😭🥕
4년 전
독자4
진짜..저 무로맨틱읽다 이거읽으니까 석진이 더 좋아져요ㅠㅠㅠ흑흑 이거 너무재밌어여ㅠㅠ
4년 전
독자5
진짜 이런 직진남 참 사랑합니다ㅠㅠ들이대는거 넘 댕댕이같고 귀여워요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6
김석진 ㅠㅠㅠㅠㅠㅠㅠ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7
하 진짜... 무로맨틱 로맨스 김석진이랑 전혀 달라서 너무 좋아... 세상에.. 이게 진짜 석진이 모습이죠..흡ㅠㅠㅠㅠㅠ
너무 햇살 같은 캐릭터네요... 이제 여주도 그만 포기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은 여주가 쪼끔 미웠습니다ㅋㅋㅋ
석진이가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석진이를 끊어내기엔 너무나도 매력적인 남자니깐요~
넘나 해바라기인 것.. ♥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작가님 감사해요 좋은 글 써주셔서요~♥

4년 전
독자8
저두 조아요 자까님 ㅠㅠㅠ 얼른 무로맨틱 석진이두 ,,, 들이대는 날이 오길 ,,,
4년 전
독자9
헉 작가님 너무 재밌어요 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10
이거 뭔데요... 이걸로 끝인건가요ㅠㅠ? 너무...하잖...ㅇ..아여...
4년 전
비회원245.121
아 너무 좋아요...ㅠㅜㅜㅜ 까짓것 식까지 올립시다!!!
4년 전
독자11
뭐에요...결혼까지 해줘요..... 나 지금 눈에서 물 흐르는데 이거 결혼하는 편 나올때까지 흐를 것 같은데
4년 전
비회원225.84
이게 끝일 수는 없는 거죠ㅠㅠㅠㅠㅠ 다음 편 정말 시급해요 이게 단편일 수는 없어요ㅠㅠㅠㅠㅠㅠ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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