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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길 몬스타엑스 강동원 이준혁 성찬 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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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D YOU #02 ------------------------------------------

시작은 1년 전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반년 뒤였나-  뒤늦은 입시공부를 하더니,  떡하니 붙은 건 전혀 연상해 본적 없던 직업전문대 컴퓨터학과였다.  그것도 처음엔 컴퓨터학과인줄 알았더니 집에 과제 때문에 몇 번 데려온 친구들을 보고 영상학과라는 걸 나중에 제대로 알았다.  최소 사전에 나랑 상의 정도는 할 줄 알았는데. 



중고등학교가 붙어있는 예술학교를 졸업해서 어렸을 때부터 같은 친구들과 쭉 지내온 나와 달리- 꾹이는 어려서 서울로 올라왔고,  또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면서 체육학교에서 일반학교로 다시 전학을 한 탓에 오래보는 친구도 거의 없었고 집에 친구를 데려온 적도 없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꾹이에게  친구는 우리 가족과 하숙집 사람들이 거의 다였다.  그러던 녀석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과 특성때문인지 함께 작업하는게 많다며 집에 친구를 몇 번 데려왔었다.  친해지면 괜찮지만 워낙에 낯가림이 심한 녀석이라 애초에 친구 사귀는 걸 어려워하는 걸 잘 알아서인가- 집에 친구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라 반갑기도하고 해서- 이것저것 챙겨주며 잘 대해줬더니 어느 순간 그런 내가 부담스러웠는지 더이상 친구들을 데려오지 않았다.  정확한 이유를 물어봐도 말을 돌리며 대답을 해주지 않아 그냥 내가 짐작할 뿐이지만.



친동생이 아니어서일까.  평생을 가족처럼 살아온 녀석이 그렇게 조금씩 곁을 주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서운해지고 있었다.  멀어지는 거리가 서운해서 나는 점점 말이 많아지는 걸까.  제 키가 자라는 만큼,  점점 숨기는 게 많아지는 녀석.  그렇게 점점 나보다 키가 자라나면서 나는 어느새 조금씩 꾹이에 대해 모르는게 하나 둘 씩 생기기 시작했다.  워낙 잘 알던 사이라, 녀석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지켜야할 선이 선명히 보였다.  품 안의 새끼가 점점 독립해 나가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망개떡 오빠와 태평양의 손을 양손으로 하나씩 잡았다.





" 두 사람은, 나한테 거리두지 말아요."





뭐래, 땡그래진 눈을 하고 두 사람이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냐. 영화찍냐."





호랭이녀석.





"뭐야 일찍 들어왔네-"

"꾹이 알바 면접봤다며. 잘 됐어?"

"아 그거...."





꾹이는 다시 말을 얼버무리고 모자를 벗었다. 





"밥 다 먹었으면 얼른 치우지? 그렇게 계속 손잡고 앉아만 있을거야?"

"아...."





그제야 나는 양손에 잡힌 두 사람의 손을 놓았다.





"야, 오빠가 원두콩 직접 볶아서 커피 내려준대."

"그래 꾹아 너도 이따 한잔 만들어줄께."

"저는 커피 잘 안마셔요. "

"아 맞다. 꾹이는 쓴 거 못마시잖아. 덩치만 크지 아직 애기라서."

"내가 왜 애기야...."





메롱-. 내가 혀를 낼름 내밀자 꾹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라떼로 만들어도 돼. 가진아 우유있지?"

"네 있어요."

"그럼 내가 라떼 만들어 줄 수 있어."

"집에서 라떼도 만든다구요?"

"응... 제대로 만들려면 스팀기도 있어야하고... 아 어짜피 가게에 스팀기 있으니까......"





응?





"오빠 커피가게 다녀요?"

"아 그게...."





망개떡 오빠가 살짝 민망한 듯이 웃음을 띄웠다. 





"나 저 앞 골목에 가게 내거든.  원래는 케이크가게인데.  거기서 커피도 팔거라..."

""어? 그게 오빠가게였어요!?"

"아, 응..... 오래 비어있던 거라 권리금도 없고 싸길래 일단 질렀지."

"우와 그럼 오빠 바리스타에요?!"

" 취미라서 전부터 해온거긴 한데 바리스타 자격증 딴지는 얼마 안되고... 원래는 파티쉐지. "

"우와!"





신기해하는 나보다 앞서 태평양 녀석의 거대한 등짝이 눈 앞을 가렸다.





"형! 형! 나 케이크 먹으로 가도 돼요? 빵 남으면 막 싸오고 그러나? 응?"





이 녀석은 배때기에 그지가 들었나.... 누가 들으면 울 집에서 굶기는 줄 알겠네.  나는 눈앞의 등짝을 확 밀어 치우고 말했다.





"오빠 나 그럼 라떼 만드는거 가르쳐 주시면 안되요? "

"응? 아.. 응 가르쳐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저 서점에서 카페쪽으로 자리 옮겼는데- 커피 내리는게 너무 어려워서요."

"아아... 그래 그럼 이따 같이 가게로 갈까? 거기서 가르쳐줄께. 사실 로스팅 기계를 중고로 샀더니 안좋아서 새거 다시 주문했거든.  버너랑 후라이팬이랑 생두랑 좀 챙겨가서 로스팅도 하고.... 그러면서 가르쳐줄께."

"우아! 좋아요"





신나서 박수를 딱 치는데 이번에 다시 검은색의 커다란 등짝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뭐야 이 새로운 태평양은...





"저도요."

"응? 꾹이도 배우게?"

"네. 저도 이번 주말부터 카페에서 일하거든요."

"응? 너도?"

"응."

"어디서?"

"누나 너 다음 타임.  한 세시간은 겹칠 것 같던데."

"면접보고 온게 그거야?"

"아니- 그건 다른거고...."





아니, 왜 또 말을 하다 마는건데. 





"빨래 다 걷었나?"

"아니 아직..."

"하여간 누나는..."





이 자식이 왜 나갔다오자마자 시비야?  무슨 빨래에 목숨건 사람처럼.































"자 잘 봐. 패킹하는 거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 줄께."

"하는 건 다 알겠는데. 아직 손에 잘 안익어선가 어려워요."

"아, 그래. 그럼 천천히 해봐. 내가 봐줄께."

"고마워요 싸부님~"

"싸부라니..."

"앞으로는 싸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너는 진짜.... "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망개떡싸부가 웃었다. 항상 저렇게 사람좋게 웃을 수 있다는 것도 참 능력인 거 같다.  열심히 커피를 내리는 나를 보며 미소짓던 싸부가 갑자기 더 큰소리로 빵 터졌다.





"푸하하.. 꾹아. 너 뭐하니"





벌개진 얼굴로 포터필터를 들고 있는 꾹이를 보고 나도 빵터졌다.  너무 힘줘서 눌러댄 탓에 필터가 분리되어 버려서 어쩔줄 몰라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우리 꾹이가 힘이 엄청 쎄네. "

"에이씨..."





나는 내려든 커피를 들고 가게 한 쪽에 쌓여있던 꽈배기를 집어들었다.





"그런데 케이크가게라면서 왜 꽈배기도 있어요? 전 처음엔 분식집 생기는 줄 알았어요."

"아 그게... 내가 이쪽 일 배우면서 처음 만들었던 거야. 손 놀리기 뭐해서 이것저것 만들다보니... "

"싸부님은 손도 작은데 못하는게 없네요. 이것도 되게 맛있어요"

"그래? 내가 남자치곤 손이 좀 작지? 어렸을 때는 콤플렉스였는데..."

"원래 재능있는 손은 작고 손끝이 뾰족하대요. 싸부 손이 딱 그러네."

"그런가?"





치익-





"거 참 말 되게 많네. 커피를 입으로 내리나."





아니 근데 이 자식은 왜 자꾸 삐딱선을 타는건데? 





"나 다섯잔이나 만들었거든?"





같이 삐딱선을 타려는 나를 보고 싸부님이 바로 끼어들었다.





"꾹이도 잘하네. 와서 이거 좀 먹어."

"저 꽈배기 안좋아해요"

"왜, 너 밀가루 귀신이잖아. 있잖아요 오빠, 아니  싸부님! 애가  어렸을 때 진짜 웃긴 일 있었는데..." 





싸부님이 팔짱을 끼고 테이블에 기대 앉은 채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꾹이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쭝쭝거리며 다시 커피를 내렸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꾹이는 뭘 먹고 이렇게 잘생겨졌어요? 하고 물어도 밀가루라고 대답하고. 뭘 먹고 이렇게 운동을 잘해요? 하고 물어도 밀가루라고 대답하고...  울 엄마가 얼마나 그게 각인 되셨으면ㅡ 명절에 튀김옷 만들때도 앵간하면 밀가루를 안쓰셨어요.  쌀가루랑 메밀가루 섞어서 쓰셨지.  그리고 애가 식탐이 얼마나 많은줄 알아요? 한번은 할머니가 고구마 구워주시는데 몰래 훔쳐 먹다가요...."

"하아....누나 너는 그 말부터 좀 줄여라. 아주 그냥 하루종일 쫑알쫑알쫑알쫑알....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내가 수다떠는거 하루이틀인가? 왜 자꾸 시비야? 나도 모르게 입술이 점점 삐뚤빼뚤거리며 튀어나오는데 그런 나를 보며  꾺이도 점점 부글부글 끓는 얼굴을 했다.  애가 뭘 잘못먹었나 아까까진 괜찮았는데.  면접본게 잘 안됐나.  





"이제 충분히 내린 것 같은데, 빵이랑 꽈배기랑도 좀 싸가서 하숙집에 좀 나눠줄까? "

"네! 우와 다들 좋아하겠어요."

"아, 그리고 오픈은 아직 좀 남았으니까. 시간 날 때 와서 연습 계속 해도 돼. "

"와 진짜요?! 싸부 짱이에요 ㅠㅠ*"

"꾹이 너도 와서 해."

"저는 괜찮아요. 한번 해보니까 뭐 다 알겠구만."

"네가 알긴 뭘 알아~ "

"누나는 뭐 그걸 그렇게 못해서 쩔쩔 매냐.  딱, 딱, 딱. 이렇게 하면 되겠구만."





꾹이는 맨 손으로 기계 앞에서 커피내리는 시늉을 했다. 





"하긴, 우리 꾹이가 재주가 많지. 웬만한 건 다 잘하고. 만능 황금손이지."





으쓱. 꾹이가 눈을 갸름하게 뜨고 잘난척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쵸, 공부머리빼곤."





꾹이가 다시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며 나를 째려봤다. 메롱이다 이놈아. 그런 우리 둘을 보며 망개떡 싸부는 계속 눈이 감기도록 웃었다.































































똑똑.





"꾹아 자니?"

"왜?"

"들어가도 돼?"





쿠당탕탕탕-.  한참을 뒤집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왜 그러는데."

"줄 거 있어서."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꾹이가 방문을 열었다.





"들어와라. 뭔데?"





나는 뒷짐진 손에 들고 있던 통장을 건냈다.





"이거. 너꺼다."

"이게 뭔데?"

"네 통장."

"나 통장 누나한테 맡긴 적 없는데?"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네 통장이야."

"이모가 왜...."

"엄마가 너한테 돈 받는거 미안하다고 너네 부모님한테 오는 집세 조금씩 떼서 여기다 따로 모았어. 처음부터 모은 건 아닌데... 너 운동 그만 둔 다음부터 모은거야. 그래도 금액 꽤 된다?"

"이걸 왜..."

"너 돈 필요하다며."





꾹이가 멍한 표정을 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은 아니지만, 뭉클하게 요동치는 녀석의 감정이 눈 안에 차고 넘쳐서 그대로 보였다.  





"괘...괜찮다. 신경쓰지마."





10년을 서울에서 살아도 안고쳐지는 저 사투리도 그렇고.  평소엔 그냥 무뚝뚝한 구어체 말투인가 싶은데 조금만 흥분하거나 당황하면 여지없이 튀어나오는 튀는 억양이 참 한결 같았다.  이렇게나 투명하게 뭐든지 다 보이는 앤데. 





"어떻게 신경을 안쓰냐-  아빠도 너 요새 무슨일 있냐고 하시더라. 이거 너 갖다주라고 한것도 아빠다?"

"아무일도 없다니까 왜..."

"네가 가족 같으니까 그렇지.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꾹이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새까만 눈동자가 이렇게 투명하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사실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너 아들이라고 맨날 그랬잖아.  그래서 너 대학갈 때 주자고 하고 모으신거래.  근데 너 첨엔 대학 안간다고 했다가, 작년에 간 대학은 국비로 다닌다고 하니까...  "





꽉 차보이기도 하고 텅비어보이기도 하는 까만 눈동자가 천천히 나선형으로 돌아가는 은하를 속에 품은 우주처럼 고요히 흔들렸다.  이럴 때는 애가 무슨 생각하는지 진짜 1도 모르겠다.  





"받아 어서. "

"그래도..."

"너꺼만 있는거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하나씩 있어. 물론~ 네꺼가 가장 금액이 크지만. 아, 그건 비밀이다?"

"......"





꾹이가 자신의 명치 끝에 와 닿는 통장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꾹아, 너 말야...."





나는 통장을 조심스레 꾹이에게 들이 밀면서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나쁜 일 있는건 아니지?"





꾹이가 다시 동그란 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을 다다다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 야 내가 진짜 걱정되서 그런단 말야. 너 알바한답시고 뭐 다단계 이런거 빠진건 아니지? 요샌 학교에도 가짜학생처럼 침투해가지고 막 애들 홀리고 그런다더라 그게 막..."

"아씨 진짜 누나야 너는 쫌 ..... 쓸떼없는 상상 좀 그만해라. 하여간..."





그제야 웃음을 터트리며 꾹이가 통장을 다시 내 쪽으로 밀었다.





"너라니 하늘같은 누나한테..."

"그런 거 아니다. 걱정하지 마."

"그럼 뭔데. 뭔데 돈이 필요한데-"

"비밀."

"그럼 아까 면접 본 알바는 또 뭔데."

"면접까진 아니고 그냥 알아보러 간거다. 신경쓸 거 아냐."

"그게 뭔데........"

"진짜 이상한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통장은 가져가."

".......이건 어쨌든 네 꺼다.  그럼 내가 계속 관리해줄께 "

"머 그러든가. "

"너 그러다 내가 이거 꿀꺽하면 어쩌려고..."

"그래도 된다. 그냥 평생 누나가 해라."

"어떻게 평생 관리하니? 너 장가갈 때 줄께 그럼.  장가 밑천에 보태라."

"그러든지..."





나는 그제야 안심이 되어서 뒤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누나, 잠만"

"응? 왜?"

"이거 받아라."

"뭔데 이게?"

"오다 주웠다."





오다 줍다니.  내가 고물상이냐?





"뭔데."

"서점에서 일할 때 입으라고. 까페에서는 직원 옷 안입고 앞치마하는대신 흰색 상의 입는거라며...  내꺼 사오면서 누나꺼도 하나 샀어."

"아 맞다, 너 진짜 까페에서 일해? 언제부터?"

"아까 말했잖아, 주말부터라고."

"희한하네... 너 나 내려가는거 미리 알고 따라 내려오는거 아냐!?"

"뭐, 뭔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내가 뭘 알고 따라 내려 가. 어떻게 알아 그걸."

"왜 말을 버벅거리냐? "





짜식이 숨기려면 아직도 멀었네. 아직도 윤가진 껌딱지구만?  나는 녀석이 건내는 쇼핑백을 건네 받고는 1층으로 내려왔다.  쇼핑백 안의 흰색 후드티가 보였다.  오늘의 운세에서 행운의 색이 초록색하고 흰색이라고 했지. 초록색은 갈색의 볶은 원두콩처럼 변해버렸지만 흰색은 맞았나보네.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망개떡 싸부한테서 커피내리는 거 연습도 받고,  저 든든한 녀석도 주말부터 같은데서 일하고.  흐믓하게 나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틀 뒤 주말에 닥쳐올 불행은 알지도 못한채.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좋은 일이 생겨도 너무 기뻐하지 말고 안좋은 일이 생겨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좋은 일 뒤엔 나쁜일이 오고 그 다음엔 다시 좋은일이 온다고.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언니 안녕~ 여기 많이 바빠?"

".......네가 여긴 왠일이니?"





그리고 왜 자꾸 말까니? 내가 너보다 두살 언니인데?





"어우, 주임님이 나도 다음주부터 여기서 일하래잖아~ 여기 요새 너무 바쁘다고. 그래서 일 배우러 왔는데.... 언니 나 많이 가르쳐줘야 돼?"





내가 누굴 피해 내려왔는데. 아우 열받아.





"뭐야, 알바 또 구했어?"

"어머 안녕하세여~ 저 다음주부터 여기서 일해요. 있잖아요, 여기가 너무 바쁘대서.... "





그래봤자 안통해.  꾹이는 낯가림이 겁나 심해서 그런 막무가내 애교는 안통하는 애거든. 쯔쯔쯔.... 나는 혀를 반토막 씹어먹은 불여시에게는 시선도 안박는 꾹이를 보면서 뭔가 속으로 통쾌해졌다.  새옹지마가 맞네. 바로 이렇게 속이 시원해지다니. 크크크...





"어머 너무 시크하다. 호호호...."





어우 토할 것 같아.  애 뭐야? 꾹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표정으로 내게 말을 했다. 나는 쿡쿡 웃으며 불여시 보란듯이 다정하게 꾹이에게 대답했다.





"여기 꾹이 너 타임이랑 내 타임이랑 세시간 겹치는 걸로는 손이 부족한가 봐. "

"아 그래? 그럼 정확히 몇시부터 몇시까지 하는건데?"

"몰라 점장님한테 물어볼...."

"저 11시부터 7시까지여, 그때까지 하래~"





불여시가 내 말을 툭 끊고 끼어들어왔다.  저 말꼬리 끊어먹는 것 부터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저래 발음을 잘라먹으며 애교를 피워대니 손님들한테 친절해보이는걸까 싶기도 하고.  그보다 나한테보다 어째 꾹이한테 더 혀가 짧아진다?  쯔쯔즈.... 굳이 여기로 기를 쓰고 내려온 이유가 혹시 꾹이 때문인가?





"나 창고 좀 다녀올께. 출근하자마자 박스랑 이것저것 챙겨두라고 그랬어."

"어 그래 다녀와-"





꾹이가 사라지자마자 불여시가 나에게 달라붙었다.  





"둘이 많이 친해? 같이 일하면서 친해진거야? 우웅 부럽다아..."

"아니 원래 알던 애야."

"아아......"





갑자기 불여시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를 위아래로 훑다가 까르르 웃었다.





"어머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때?"

"뭔소리야?"

"그때 나 말구.... 굳이 다른 사람 찍길래 왜그런가 했더니 아는 사이라서 써준거구나?"





이게 무슨 미친 소리야.





"어머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내가 뭐 잘못했나 속상했잖아~ 아 그런거였구나.."





네가 잘 못해서 나로 바뀐거맞거든요?





"맞아 그랬구나, 어쩐지...."





아 진짜 이따위 몇 시간 안되는 알바 때려치고 그냥 하숙집에 집중을 해?! 





"그러엄~ 둘이 사귀는거야?"

"아 사귀긴 뭘 사귀어 진짜...."





빈정거리는 코맹맹이 목소리 듣는게 너무 짜증이 났다.





"그렇잖아, 누가봐도 내가 나오기로 했는데  그렇지 않으면 왜 ...."

"내가 연극동아리 인거 알아서 그런거야."

"머 연극동아리라고 다 연기하나. "





다시 한 번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도 너무 짜증이 났다.  





"아니, 주임님이 그러는데 언니 한번도 주연한 적도 없고 맨날 엑스트라라고..."'

"아니거든? 나 내년 1월에 하는거 주연 맡았거든!?"

"어머 그래? 그럼 나 보러가도 돼?"

"돈내고 보러 오든가."

"으응~ 아는사이인데. 언니 초청표 같은 건 없어?"





이게 진짜... 백치미 설정 한계치 넘어선 건 아니, 너? 





"오픈 준비 안해?"

"아, 알았어 알았어~ 왜 화를 내에....."





까르륵 웃으며 다시 앞치마를 메고 들어서는 불여시를 보자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해맑게 웃으면서 사람 멕이는 것도 기술이지.





"아니, 이틀전에 미리 와서 한 번 배웠다면서-  출근하면 먼저 타임이 쓴 그라인더랑 스팀기 청소 잘됐나 확인부터 하랬잖아. 도대체 뭘 배운거야"

"아아~ 나는 전 타임이 하고 가는 줄 알았는데에...."





그렇게 알고 싶었겠지.  도대체 왜 넌 내려온거니? 손 많이 가는 까페자리에. 그냥 윗층에서 바코드나 찍지.





"좀 배워두라고. 한 귀로 듣고 흘리지말고. 왜 자꾸 해야할 일을 안하고....."

"응~ 아 근데에..."

"또 뭐."

"언니도 저거 냅킨이요, 저거 정리 아직 안했는데?"





이건 또 뭔 소리래.





"으응, 그래서 내가 그거 접고 있었는데에.... 그래서 그라인더 확인 못한건데에...."





해맑은 미소를 흘리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불여시를 보고 있자니 혈압이 올랐다.  냅킨은 이따가 꾹이가 창고에서 물품 가져오면 같이 하려고 냅두고 있는거고!!!!!  지금 중요한 건 냅킨 몇장 접는게 아니라 커피머신관리하는게 먼저라고 이#@##$%^$%*%야!!!!!!  안보이고 힘든 일은 안하고 쉽고 보이는 일만 하면서 머리 굴리지 말라고!!!! 





"그럼 내가 그거 마저 접을테니까.... 이건 언니가 하면 좋겠다. 언니가 더 잘아니까. 그쳐?"





아무래도 안되겠다. 계속 여기있다간 저 불여시 머리끄댕이 내가 한번 잡고 말 것 같다.





"우아아아 오빠 힘 짱쎄다~"

"짱쎄다요!!!"





계단 쪽에서 시끌한 소리가 나서 보니 꾹이가 한쪽어깨에 커다란 박스를 얹고 한쪽 손으로는 계단을 올라오는 꼬맹이들 손을 잡아주고 있었다. 양갈래 머리를한 여자아이와 그보다 한두살 터울진 것처럼 조금 더 큰 여자아이 둘이- 꾹이의 한쪽 손을 동시에 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앞으로 계단 올라갈 땐 조심해.  아까처럼 넘어지면 다쳐. 알았지?"

"네 오빠아 감사합니다"

"네 오빠아아~"





계단 끝에 올라오자마자 손을 놓고 두 아이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어 주는데 그 뒤로 아이들의 엄마처럼 보이는 여자가 따라 올라오며 아이들을 야단 치듯이 추궁하는게 보였다.





"오빠 일하시는데 힘들게!"

"괜찮아요."

"죄송해요. 애들이 애교가 넘쳐선가 사람만 보면 이렇게 매달려서... 짐도 들고 계신데."

"아하하... 괜찮아요. 제가 한 힘 해요."





고개를 끄덕이고 아이들을 향해 한번 더 손을 흔들자 꼬맹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다시 꾹이의 앞치마에 매달렸다.  투툭.  꾹이의  앞치마가 아이들손에 풀어졌다.   아이고, 꼬맹이들아......  하고 가서 처리하려는데 뭔가가 눈앞을 홱 지나갔다.





"어머 앞치마 뜯어진거 아닌가몰라아~"





아씨 저 불여우가...ㅡㅡ^  카운터에서 접던 냅킨을 집어던지고 후다닥 달려가더니 아이들 손에서 앞치마를 받아든 불여시가 아이들 엄마에게 대신 사과를 받으며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혀를 차며 바닥에 흐트러진 냅킨을 주웠다.  지금 거기 달려갈 때니? 냅킨접는다며?!





"어머 이거 어떻게 한다...  제가 주임님께 잘 말해볼께요  걱정하지마세요~"

"어머 너무 친절하시다.  고마워요~"

"에이 뭘요~ 호호호. 애들아 오빠한테 장난치면 안돼요 알았지?"

"네"

"네"





내가 그만두면 저 불여시랑 꾹이 둘이서 일하게 되는 건가.  아 그 꼴도 너무 보기 싫을 것 같다.  꾹이가 불여시를 슥 스쳐보고는 그대로 내쪽으로 걸어왔다.





"미안, 처음이라 창고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오래 걸렸어. 이거 어디다 둬?"

"아 그거 여기 안 쪽에.."



내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불여시가 또 끼어들었다.





"어 이리 주세여, 저 주세여-  제가 도와드릴께요~ 우리 오빠 애기들때문에 힘들었을텐데~ "





꾹이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나를 보고, 고개를 돌려 불여시를 한 번 더 보더니 들쳐메고 온 상자를 그대로 어깨 위에 올려 둔 채로 가만히 멈춰섰다.





"무겁지 않아여? 우와 힘 진짜 쎄다, 애기들이..."

"오빠 아니잖아요."

"네?"

"그쪽 나보다 나이 많잖아요. "



"풉"





나는 급하게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나는 키도 크고 해서.... "

"키 크면 다 어른인가." 

"아니 또... 가진언니랑 막 반말하길래.."

"반말은 너도 하잖아요.  가진누나한테."





꾹이는 정색을 하며 불여시를 쳐다보았다. 불여시의 귓볼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아니, 나는 애기들이 오빠라고 하는 거 흉내 낸건데..."

" 스물 훨씬 넘으신 분이 다섯살짜리를 따라하시는 건 좀..."

"아, 그..그... 애기들 엄마도 오빠라고 했으니까아..."

"그건 애기들한테 말하는거니까 애들 말투 맞춰준거잖아요. 전 애기도 아닌데, 굳이 저한테 그런 이상한 애기 목소리 흉내낼 필요는 없는데..."

"아... 이..이상하게 들리시는구나.."

"네. 엄청 안어울려요."





아씨, 진짜.....  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올 뻔한 환호성을 겨우 삼켰다.  그저 뒤돌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으로 소심하게 어퍼컷을 날리며 침묵의 표효를 날릴 뿐.























"우웅... 너무해...."





나는 불여시가 뛰쳐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뿌리고 간 말을 흉내내며 양 어깨를 뒤틀었다.  꾹이가 미간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뭐하냐"

"불여시 흉내. 크크크큭 . 아씨 진짜...." 





흐믓한 표정으로 꾹이의 양 어깨에 두 손을 올렸다. 턱, 하니 올려지는 내 두손을 찝찝하게 쳐다보는 꾹이를 보며 나는 계속 흐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 진~짜 싸랑하는거 알지?"

"뭐...뭐꼬..."

"뭐긴 뭐야 임마"





나는 신나서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꾹이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너무 신나해서 그런가, 꾹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우 진짜 너무 이뻐.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아까 너무 통쾌해서 죽을뻔했거든."





꾹이가 웃음섞인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다시 커피머신 주변을 행주로 닦았다. 하여간 저 깔끔병은 집에서나 알바에서나 똑같네 똑같아.





"누나도 좀 그만해라. 이제. 그런 사람 상대해서 좋을게 뭐라고."

"무시가 돼야지. 눈에 딱 보이는데. 아씨 다시 윗층으로 올라간다고 하면 주임님이 화낼까?"

"......올라가게?"

"내가 왜 내려왔겠냐. 서점보다 힘들거 뻔히 보이는데."

"됐어 그냥 저러고 일도 안배우고 갔는데 올라가도 자기가 올라가겠지. 안그래도 바쁜데 일까지 가르치느라고 더 힘들텐데 잘됐다. 없는게 낫다 걔는."





냅킨을 접으며 꾹이의 뒤에 대고 계속 쫑알거리는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다도 떨고 안 바쁜가보네. 사람 괜히 더 뽑았나?"

"어? 안녕하세요 주임님"

"주말인데 왜 나오셨어요?"

"지나가다 들렀어."





주임님이 종이백을 카운터에 올려두고 매장 안쪽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일 배우러 나온다고 해서 내가 알바시간 추가 수당 준다고 했는데 왜 안나왔어?"

"아 그게요..."

"너 또 걔 괴롭혔냐?"

"제가 뭘 괴롭혀요.... 아 진짜..."





주임님까지 왜 그러세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잉 너무해애~ 하면서 제 애교에 제가 찍혀 뛰쳐 나간 애한테.





"뭐야 둘이 옷은 또 왜 똑같아. 둘이 커플티 맞췄어?"

"커플티는 무슨...."

"똑같은데? 둘이 사귀냐?"





사귀긴 뭘.... 하아.





"네에네에- 사귑니다. 오늘부터 1일입니다아~"

"젠장. 커플들 따위 지옥으로 다 꺼지라그래."





주임님이 종이백에서 꺼내던 샌드위치를 다시 집어넣었다.





"아이 주시려던 건 주셔야죠."

"닥쳐.  일이나 해."

"네에....."





주임님은 진짜로 가져왔던 샌드위치를 다시 가져가 버렸다.





"뭐야. 저거 혼자 다 드실건가.  와 진짜 웃기네.  안그러냐 꾹아?"





꾹이가 대답이 없다.  뭐야 앤 또 왜그래.





"야, 꾹아 머하냐? 그만 닦아. 깨끗하구만 뭘 그렇게 열심히 닦냐."

"응? 아. 응. "

"너 어디 아프니? 왜 얼굴이 그렇게 벌겋냐?"

"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이ㄹㅣ와 봐"





아까 그 불여시만큼 달아오른 얼굴이 걱정스러워 손부터 갖다 댔다. 





"아, 괜찮..."





탁. 꾹이가 반사적으로 내 손을 쳐냈다.  나는 쳐진 손이 당황스러워 그 자세 그대로 꾹이를 올려다보았다.





"아, 미안. 그게...  그러게 왜 갑자기 얼굴을 만지는데..."

"내가 너 얼굴 만진게 처음도 아니고. 뭐냐, 왜 그러냐 갑자기."

"뭐.. 뭐가..."

"너 요새 진짜 이상하다고. "





눈을 게슴츠레 뜨고 의심의 눈초리로 꾹이에게 한발 다가섰다.  그러고보니 아까부터 좀 이상하긴 하다.





"뭐뭐뭐 뭐 왜 이카는데-  저리 가라- "

"왜 그래 진짜-"





히들껍하며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귀여워서 웃음을 삼키고 한발 더 다가섰다.





"내가 비키라 했다?"

"안비키면 어쩔건데에에~?"





나는 불여시 목소리를 흉내내며 또 한발 다가섰다.  내가 다가설수록 시선 둘 곳을 못 찾는 눈이 댕글해진게 너무 귀여워서 나는 두 손을 쭉 뻗어 꾹이의 얼굴을 부여잡았다. 내 얼굴이 슥 다가갈 수록 꾹이의 커다란 눈동자가 더 크게 흔들렸다.





"정국아 아이고 시상에 내 새끼~"

"아  쫌-  누나...."

"겁나 귀여버죽겠네"

"누나 그만하라고-"

"안할건데~ 계속 할건데~"

"야 윤가진. "





턱. 꾹이가 있는대로 얼굴을 꾸겨대며 장난치는 내 손을 잡았다.  





"그만하라고."





실실 웃으며 팔을 비틀어 빼내려는데 쉽지않다.  맞다. 이녀석 근육덩어리인 걸 깜빡했네. 어어어...하는 새에 녀석이 내 두 손목을 잡고 아래로 잡아당겼다. 어정쩡하게 내려가는 팔을 따라 저절로 녀석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야야- 알았어 알았어. 항복, 항복."





고개를 들며 말을 잇는데 꾹이가 바로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정색을 하고 있었다.





"진짜로. 하지 말라고 했다. "

"어... 어 알았어;;"





또 심각해지네. 나는 당황스러워 입가에 웃음을 지웠다. 내가 장난이 심했나? 아니, 장난이랄 것도 없는데.  누가 얼굴이 그렇게 빨개지래? 귀엽게스리.....  





"이봐이봐 사귀는 거 맞네. "





헉. 주임님 아직 안가신 건가?





"샌드위치 주고 가려고 했는데 진짜 이것들이 하라는 일은 안하고 연애질이나 하고."

"어, 주임님 아니에요. 저희 사귀는 거 아니에요"

"아까 1일이라며?! 지금 둘이 뽀뽀하려고 하는거 아니었어? 좀 숨어서 하든가. 이것들이 신성한 직장에서 말야"

"아 그건 그냥 한 말이고 이거... 이건 얘가 장난치는 건데..."





그대로 허리를 숙인 채로 손을 흔들며 놓을려고 하는데, 꾹이가 놓아주질 않는다.  주임님의 눈이 점점 도끼눈이 되어가는데 꾹이는 그런 건 아랑곳도 없다는 듯이 꿈쩍도 안한다.  이 눈치없는 녀석아,  기든 아니든 간에 요즘의 주임님 눈에 꽁냥분위기 자체가 띄는 건 좋지 않다고!!!!  나는 낑낑대며 꾹이에게 속삭였다.





"야, 왜 그래. 얼른 놔"

"앞으로 그런 장난 하지마라. 약속 안하면 안놔준다."

"아니 뭔, 뭔 장난을 했어 내가....;;;"





내가 뭔 장난을 했지? 뭐 장난이랄 것도 없구만....





"알았어. 알았어 안그럴께 약속약속"





그제야 내 손을 내려 놓더니 휙 돌아서서 다시 커피 머신 앞에 서는 꾹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렇게 정색을 하고 그래.  내가 뭐 잘못했나? 뭘 잘못했지?  아, 사귄다고 그래서 그러나? 그거야 하도 사람들이 오해하니까 그런거고. 기분 나빠서 그러나? 얼굴은 시뻘개져서...  사람 민망하게 정색이나 하고.  



나는 자꾸 앞으로 튀어나오려는 입술을 꾹꾹 눌러물고는 커피머신 앞에 서있는 꾹이를 보았다.  흰색 후드티에 검은 앞치마를 메고 매대와 기계 사이에 길쭉하게 서있는 옆모습이 한 눈에 안들어온다. 그사이에 키가 더 컸나.... 대학생이 되고도 아직도 키가 크고 있는 모양이었다. 꾹이는 키도 키지만, 팔다리가 긴 편이라 뭘 입어도 옷태가 나는 편이었다.  그래서 저렇게 아기같은 하얀색 후드티를 대충입어도 멋있어 보이는건가. 그 불여시가 들이댈 정도로. 이렇게 옆모습을 보니까 콧대도 꽤 높네. 왜 여지껏 몰랐지. 꾹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조건적으로 저 까많고 커다란 눈동자부터 보여서 그랬나.  그냥 눈만 큰게 아니라, 눈동자도 정말 커다랗고 새까매서 꼭 만화에 나오는 사람같다고 생각했었지.  어렸을 때, 처음 본 순간에도 무슨 사람이 저렇게 눈이 큰가 하고 신기했었다.  워낙에 눈이 동그랗고 큰데다 피부도 뽀얀 편이라 아기같다고만 생각했는데.  





"멋있네."





꾹이가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뭐가?"

"뭐긴 뭐야. 너 말하는거 아냐."





내가 장난을 쳐서 기분이 나빴나보네. 옛다, 칭찬.  





"내가 뭐...뭐가"

"커피 내리는 게  멋있다고."





빤히 쳐다보며 기분좋게 웃으라고 평소답지 않게 칭찬을 뿌린건데, 꾹이는 생각도 못했던 반응을 보였다.





"뭐.... 망개떡싸부만 하겠어. 어제보니까 아주 둘이 좋아 죽더만."





다시 홱 돌아선 잘생긴 옆 얼굴에, 나 삐졌소.하고 써 있었다. 꾹이가 커피를 내리며 움직일 때 마다,  작은 링귀걸이가 꾹이의 귀끝에서 달랑였다.





"내가 옷도 사줬는데  다시 올라갈 생각이나 하고. " 





초등학교때, 처음 우리집에 하숙하러 올라왔을 때 이후로- 나는 늘 이 녀석을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진짜 올라갈거야?"





꾹이는 감정을 숨기는 걸 잘 못한다.  낯가림이 심해서 그렇지 친해지면 세상 둘도 없이 해맑고 장난끼 많은 아이다. 어떨 때는 애가,  내가 여자라는 걸 까먹은 건 아닐까 싶을만큼 심한 장난도 잘친다.  남들에게 못되게구는 애는 아니지만 좋고 싫음이 분명하고 솔직해서 오해도 가끔 받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본인 입으로 말할 정도로 만능 황금손 답게 관심 갖는 것은 금방 후딱후딱 쉽게 해내는 편이라 나름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꾹이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 가족이나 하숙생들을 만날때면 다들 신기함 반, 부러움 반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럴거면 그렇게 열심히 배울건 또 뭐래..."





치익- 커피를 내리는 꾹이의 뒷모습에 망개떡싸부의 가게에서 툴툴거리던 녀석의 모습이 겹쳐졌다. 





-누나 너는 그 말부터 좀 줄여라. 아주 그냥 하루종일 쫑알쫑알쫑알쫑알....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저랑 이야기할 때는 그런 말 한마디도 안하다가 말도 안되게 투덜거리는 게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종소리가 울리던 까페 안에서 내가 달달하고 느끼한 바닐라라떼를 마시며 흥분하자 자신이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내 앞으로 밀어주던 모습도 떠올랐다.  생각해보니 꾹이는 아예  커피 자체를 안좋아하는데.  언제부터 였는지 모르겠다, '이건 진짜 맛있긴 한데 느끼해서 먹다보면 질려'하면서도 늘 바닐라라떼를 마시던 나를 향해 자신이 마시던 아메리카노를 내게 밀어주곤 하기 시작한게.





-그래도 된다. 그냥 평생 누나가 해라.





통장을 밀어내며 웃어주던 얼굴도 떠올랐다.  정색하며 내 손목을 잡아끌던 방금처럼-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가 알수 없는 눈빛으로 흔들리던 것도.  그런 까만 눈으로 내밀던 하얀색 후드티도.  나는 나도 모르게 앞섭에 늘어진 후드티의 끈을 잡았다.  손 끝에 작게 적힌 브랜드명이 보였다.





-오다 주웠다.

-뭐야 둘이 옷은 또 왜 똑같아. 둘이 커플티 맞췄어?





꾹이 뒤돌아보았다.  며칠 전처럼.  블랙홀처럼 까만 눈동자를 하고.





"뭐해? 멍때리고 서서. 일 안하냐"





 나는 계속 말없이 꾹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나를 보고 꾹이가 한숨을 푹 쉬더니 바로 토끼처럼 앞니를 드러내며 애기처럼 웃었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큰 보폭으로  내 앞으로 두세걸음 다가왔다.  그렇게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나를 매대 앞으로 휙 돌려 세웠다.





"주문 안받아?  손님 기다리잖아."

"응? 응...."





에이, 설마. 나는 짧게 고개를 털었다.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냐.





"아참, 누나 이따가 나 퇴근 할 때 잠깐  나오면 안돼? 장 봐가지고 가자. 집에 식용유도 없고 쌀도 다 떨어졌더라. 그리고 세제랑 섬유유연제도 사고..."





뒤에서 내 어깨 위로 긴 팔을 뻗어 방금 내린 커피를 매대 위 쟁반에 내려주고는 다시 커피를 내리러 가버리는 꾹이를 보았다.  내 왼쪽 어깨 위로 세탁기를 돌릴때마다 하도 부어대서 향수만큼이나 익숙하게 꾹이를 따라다니던 섬유유연제 향기가 머물러 있었다.  그래. 에이 설마.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남았다고, 내가 드디어는 미쳤구나. 





"그래, 이따가 나갈께."





내가 아무리 금사빠라해도 이건 아니지. 이런 애를 데리고 이런 착각을 잠깐이라도 하는 건.......... 뭐랄까.  그래, 패륜. 패륜이지. 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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