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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전정국] 그대야 안녕 16화 | 인스티즈 

 


 

 

 

기억 속으로 - 이규옥













16화
: 소원















 대망의 중간고사를 코앞에 둔 주말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처음으로 한 일은 핸드폰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핸드폰 알림이 고장이 난 것은 아닐까 하여 전원을 껐다 켜보지만 문자 알림창은 그대로 허전할 뿐이다. 문자가 아닌 카톡으로 할 걸 그랬나 싶고, 혹시 모르니 내 이름이라도 밝힐 걸 싶은 후회는 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슬프지 않았다. 답장의 유무와 상관없이 우리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으니까.



 투두둑-



 개소리 말라는 듯 밖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빗방울들이 내 머리를 강타하기 시작했고, 여름의 마른 땅을 적시는 속도를 보아하니 쉬이 그치진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결국 다시 우산을 가지고 내려와 질질 슬리퍼를 끌며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태형이가 좀 늦을 것이라 했으니 점심은 혼자 사먹어야 할 듯싶은데. 뭘 먹을까 고민하다 저기 빈자리가 보이는 편의점이 눈에 들어오고 생각만 해도 설레는 컵라면을 떠올려본다. 아무래도 오늘 점심은 건강에 좀 해로운 걸 먹어야겠다. 인도 블록 위에 자리하고 있는 물웅덩이를 까치발로 피하며 부푼 기대감을 안고 어느덧 편의점에 다다랐다. 축축해진 우산에서 혹시 물이 흐르진 않을까 몇 번을 더 털고서야 가신 물기에 안심하고 편의점 문을 열었는데.



 “...”
 “..안녕하세요.”
 “응.”



 방금 집에서 나오자마자 예상치 못하게 맞아버렸던 빗방울처럼, 오늘도 예상치 못하게 마주쳐버린 윤기 형. 저번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의 어색함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갑자기 마주쳐버린 눈에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네니 무심히 받아준 후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다시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 위를 후드티로 덮은 채 핫바 코너를 이리저리 뒤지는 모습이 흡사 지명수배범 같아 보이지만, 그 옆 거울에 반사되는 나의 모습을 보고 깨닫는다. 나는 더했다.



 “잠만.”



 어느새 계산대 앞을 가로막고 있던 내게 다가오며 살짝 피해가는 윤기 형의 목소리가 갈라져있다. 단지 피곤한 것인지 아님 어디 아프기라도 한 건지, 어딘가 힘이 빠져보이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뒷모습까지 눈길을 따라가니, 하얀 손이 계산대 위에 여러 가지 먹을 거리와 함께 감기약을 툭 내려놓는다. 내 생각의 후자가 맞았나 보다. 신속하게 계산을 끝내고 넓은 매장 저 안쪽으로 사라지는 윤기 형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다 생각에 빠졌다.



 ‘근데 있잖아. 작년에 그 반 돈 걷은 거. 그거는 그래서 누가 그런 거래?’
 ‘범인은 못 잡지 않았나. 근데 같은 반이었던 선배들이 짐작가는 사람 있던데. 그 왜 지금 이과에 유급한 형 있잖아. 우리 학년에 유일한.’



 며칠 전 분반 수업을 기다리다 쉬는 시간에 들었던 남자애들의 이야기. 처음 듣는 얘기였지만 과거의 화제를 다시 꺼낸 듯한 대화의 끝은 윤기 형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넘긴 말이었지만 지금 윤기 형을 가까이에서 지나치니 문득 생각이 스쳐간다. 우리 학년에서 유일한 유급생이라면 윤기 형이 맞지 않나. 같은 학년을 두 번이나 지낸다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니 분명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얘기일 텐데. 뭐.. 그간 한 마디도 나눠보지 않았을 뿐더러 친하지도 않으니 그 이유도 알게 될 기회가 없었고.. 새삼 궁금해져 생각에 빠진 채, 계산을 마친 삼각김밥 두 개를 들고 마지막으로 남은 2인 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가방을 뒤적이며 깊이 골몰해있다가도,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는 단순한 궁금증마저도 무례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른 잡념을 떨쳐버리려 수학 오답 노트를 꺼냈다. 역시 잡생각을 지워버리는 데는 수학 오답노트가 최고지. 우주 같은 양을 해치우고 나면 괴물처럼 내 하루를 이만큼씩 물고 달아나버리니 말이다. 샤프와 삼각김밥을 동시에 들고 나의 두뇌를 학습과 식사, 오로지 두 가지 방식으로 쓰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먹는 데에 더 몰두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늘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오답들을 정리하며 삼각김밥 한 개를 거의 다 먹어치웠을 무렵.



 드르륵-



 테이블 위에 먹을거리가 쏟아짐과 동시에 내 앞에 누군가가 앉았다. 나간 줄 알았던 윤기 형이었다.



 “...”
 “...”
 


 자연스러운 기색으로 앉아 젓가락을 꺼내더니 쓰읍..하며 진지하게 컵라면 안을 들여다본다. 순간 내가 투명인간이 되었나 싶어 당황하여 말없이 지켜보고 있으니, 나의 낯선 눈빛을 해석한 듯 컵라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한마디 꺼낸다.



 “앉아도 되잖아.”
 “네..!”



 뜻밖의 놀람을 숨긴 채 대답한 후 얼른 눈길을 돌리니 뚜껑을 가차 없이 뜯어버린다. 그 후 놀라운 속도로 라면을 들이키기 시작하는데 전날 과음한 사람처럼 해장을 하는 감탄사에, 혹시 잘못 봤다가 또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용히 고개를 박고 오답노트를 쓰는 척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열심히 적는 척하며 모든 신경은 내 앞에 쏠려있는데, 컵라면을 하나 금방 마시고 다음으로 무언가 꺼내는 소리가 난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아름다운 자태와 먹지 않아도 느껴지는 이 살인적인 냄새. 핫바였다. 이건 반칙 아닌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핫바라니. 펜을 의미없이 움직이기도 잠시, 내 고개를 잡고 유혹하기 시작하는 미치겠는 냄새에 나도 모르게 앞을 향해 번뜩 눈을 들었을까.



 “...”



 핫바를 먹으며 몰래 내 노트를 보고 있던 윤기 형의 나른한 눈과 마주쳤다. 오늘만 몇 번째인지. 누구라도 먼저 피할 법한 눈길은 이상하게 그대로 유지되고, 그 사이 공기마저 굳어버릴 듯 어색한 눈빛이 오간다. 그러다 별안간 냄새를 쫓아 상기되어있는 내 표정을 이제야 알아차린 듯, 그렇게나 만사에 무신경해보였던 윤기 형이 피식 웃는다. 뭐지 싶다가도 파도처럼 밀려오는 서먹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이번엔 무슨 말이라도 걸어볼까 일단 계속 보고 있는데, 대뜸 의자 뒤에 걸었던 가방을 앞으로 가져오더니 그 안을 거침없이 뒤적거리기 시작한다.
 


 “집안 사정 때문이야. 유급한 거.”
 “..네?”
 “궁금해하는 거 같길래.”



 가방 안을 헤집다 말고 내게 건넨 말은 뜬금없었다. 난데없는 말에 무슨 뜻인가 싶어 그대로 보고 있으니 마침내 무언가를 찾아 내 앞에 두고 미련 없이 자리를 뜬다.



 “갚아.”



 내가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핫바 마지막 한입을 욱여넣으며 쓰레기를 모아 버린 후 터덜터덜 편의점을 나섰고, 난 그 뒷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다시 내 앞에 놓여져있는 것을 응시한다. 내게 주고 떠나버린 것은 딱 봐도 얼마 남지 않은 양의 수정테이프. 퀴즈를 던져주고 홀연히 빗속으로 사라진 윤기 형의 뒷모습을 다시 떠올려보다 문득 내 노트로 눈을 옮기니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유급?’



 퀴즈의 정답이었다. 빼곡한 수학 해설들 사이에 무수한 동그라미와 함께 무려 물음표까지 붙어있는 단어. 잡생각 떨치기 위해 꺼낸 오답노트였지만 어느새 샛길로 빠져버린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 윤기 형이 그걸 보고 말았다. 아차 싶어 고개를 푹 묻었다. 내가 묻지 않은 말에 답을 해준 이유가 있었다. 하나도 안 친한 내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개인적인 것에 의문을 가졌고, 또 그 생각을 또 들켜버렸으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오답노트랍시고 열심히 쓰고 있었지만 진짜 오답은 내 생각 속에 있었구나. 떠올릴수록 스스로가 한심해져 약하게 이마로 노트 위에 방아를 찧었다. 자책을 거듭하며 노트에 내 이마자국을 선명하게 남기고서야 화끈해진 얼굴을 드니, 설상가상 노트에 이상한 것들이 후두두 떨어져있다. 가까이서 보니 믿고 싶지 않은 소금과 김가루다. 이건 분명 삼각김밥의 것인데. 설마. 그제야 자각을 한 후 얼른 입을 털어대니 내 앞니 크기만한 김 조각 하나가 그림처럼 나풀나풀거리며 노트 위에 안착한다. 못볼 걸 본 것처럼 놀란 맘에 급하게 휴지를 찾아보지만 내 앞의 휴지 케이스는 이미 가벼워진 지 오래였고, 다른 사람들의 테이블까지 눈을 돌려보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탄식과 함께 돌렸던 눈길을 다시 내 앞으로 가져오면 새하얀 것을 발견함과 동시에, 내 머릿속도 도화지에 실수로 떨어뜨린 물방울처럼 새하얘진다. 수정테이프에 가려 이제야 보이는 것은 밑에 깔려있던 티슈. 이제야 물건을 모두 발견한 후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이 닥쳐오는 깨달음에, 무의식적으로 가만히 움켜쥐니 남아있는 양이 적당하다. 꼭 누군가의 성격처럼.












 

 내적 이불킥을 연발하고 나서야 터덜터덜 편의점을 나섰던 아까 점심. 금방 온다고 한 태형이가 저녁이 되어도 감감무소식이라 전화를 해보니 다시 잠들어 그제야 일어났단다. 얼른 준비하고 나오라는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은 후, 오늘은 집에 조금 일찍 가볼까 하는 생각에 가방을 챙겨 독서실 근처가 아닌 학원 근처 공원에 도착했다. 해가 질 때쯤 되니 비가 그쳐 다행이지만, 맨발로 신은 슬리퍼가 그 잠깐 걷는 사이에 축축히 젖어버린 건 다행이 아니었다. 오는 길에 젖은 발도 아까 독서실에서 겨우 말렸는데.. 운동화를 신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노을빛 하늘을 그대로 반사하고 있는 바닥의 동그란 캔버스를 감상할 여유도 없이 피곤한 눈을 깜빡였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중간고사와 더불어 그 직후 바로 열리는 토론대회 준비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든 나날이 연속되고 있던 탓이었다. 다른 때보다 더 힘이 빠져 마치 방전된 사람처럼 힘없이 걸어가고 있는데 저 앞에 덩그러니 서있는 자판기. 정신 차리게 사이다나 마셔볼까 하는 생각에 가까이 다가가니 그제야 ‘고장’이라고 써있는 쪽지가 눈에 보이고.



 ‘사이다는 나옴’



 그 밑에 어디선가 본 듯한 글씨로 쓰여있는 여섯 글자 또한 눈에 띈다. 목에 걸려있는 카드지갑에서 납작하게 접어놓은 천원짜리를 꺼내며 이 익숙한 글씨는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보는데, 그때 귀 옆으로 누군가의 인기척이 훅 끼친다.



 “그거 정호석이야. 쓴 거.”
 “깜짝아.”
 “미안. 놀랐어?”



 놀라 반사적으로 옆을 보니 한눈에 봐도 부은 눈의 태형이가 눈을 힘들게 끔뻑이며 서있다. 반쯤 뜨인 눈으로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온 건지. 앞이 보이기는 하나 싶어 태형이 눈 앞에서 손을 휘휘 저으니, 내 손을 내리고 멋쩍은 듯 웃으며 눈을 비빈다. 그러고는 오늘 늦은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그 모양새가 퍽 부자연스럽다. 부쩍이나 미안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니.. 진짜 어제 윤기 형이 꼬시지만 않았어도..”



 윤기 형 이야기를 꺼냄과 동시에 노을지는 하늘을 향해 시원하게 기지개를 켠다. 하늘을 덧칠해놓은 주황색 파스텔이 새삼 예뻐 나도 모르게 괜찮다는 말 대신, 미소를 지어보이니 너도 안심한 듯 웃으며 나와 같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윤기 형이 왜?”
 “어제 같이 게임했거든. 늦게까지.”
 


 아까 만난 윤기 형의 컨디션이 안 좋아보였던 실마리가 여기서 풀렸다. 급히 나왔는지 곧 떨어질 것 같은 태형이 가방을 뒤에서 고쳐 메주며, 오늘 보았던 윤기 형의 이야기를 해주니 별안간 얼굴에 배신감이 가득 차올라 입을 벌린 채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한다. 분명 자기한테는 오늘 공부를 쉰다고 했다면서, 열변을 토하는 태형이의 표정을 구경하며 천천히 공원을 걷기 시작했다. 얘가 이런 표정도 있었나 싶어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데 무언가 서로 부딪히는 투박한 소리가 어디선가 들리기 시작한다. 태형이가 하는 말에 열심히 반응해주며 곁눈질로 소리의 진원지를 찾기 시작하니 금방 찾은 곳. 태형이의 가방이었다. 혹시 호석이가 골탕 먹이려는 속셈으로 돌 같은 것을 몰래 넣어놓은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던 때 박자를 타던 소리가 멈췄다. 태형이의 걸음이 멈춘 것이었다.



 “쉿.”



 바다가 머무는 곳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자세를 낮추며 매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하는데, 글쎄 하는 말이 이상하다. 들어주기만 한 사람한테 쉿이라니. 잠깐 어이없기도 잠시, 어느새 긴박한 스릴러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있는 태형이를 따라 나도 자세를 낮추고 발소리를 줄였다. 저 구석으로 다가가자 희미하게나마 들리기 시작하는 앳된 고양이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천천히 풀숲 뒤쪽을 살펴보니 사람을 피하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 울고 있는 바다를 찾았다. 아무래도 아까 내린 비를 피하지 못한 것인지 쫄딱 젖은 채 울고 있는 게 마음이 아파, 태형이도 나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예전에 호석이 손에 이끌려 정국이랑 같이 봤던 바다가 너무 작은 게 눈에 밟혀 가보자 했더니 이런 모습일 줄이야. 가여운 맘에 알레르기가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얼른 가방에 있던 담요를 덮어 쓰다듬어주니 울음소리를 멈추고 가만히 내 손길을 받아들인다. 야위어있는 몸을 보니 자꾸만 눈물이 날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참고 있는데, 태형이가 내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아 작은 사료 봉지를 꺼낸다. 그 앞에 살포시 놓아주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는 바다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켜보던 태형이의 표정은 풀리지 않은 채 손이 머뭇거린다. 쓰다듬어주려다 멈칫한 손길이었다.



 “바다도 알아줄 거야.”



 답을 내려달라는 듯 날 애처롭게 바라보며 잔뜩 고민하던 태형이는 결국 미안해 바다야, 하고 올렸던 손을 다시 무릎 위로 힘없이 내려놓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태형이의 눈시울이 붉어져있는 것을 보고 눈길을 돌렸다. 먹구름이 가득해진 하늘에 조만간 비가 내릴 것이 분명했기에.



 “네가 오늘 오자고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러니까. 이런 줄 몰랐어. 네가 사료 갖고 와서 다행이야.”
 “내일 또 와보자.”
 “그래.”



 코를 한번 훌쩍이며 아무 일 없었던 듯 내일 한 번 더 와보자고 하는 태형이의 말에 몰래 눈가를 훔치고 흔쾌히 대답했다. 신경을 못 써주고 있었던 게 태형이도 나도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쭈그려 앉아 무릎을 안은 채 그렇게 오래도 바다를 보며 생각했다. 바다한텐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어느새 제법 선선해진 비 온 뒤 공기가 걷고 있는 우리의 도처를 맴돌고, 검푸른 색으로 번진 한여름의 말간 밤하늘이 머리 위를 드리운다. 이제 태형이는 독서실로,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학원 건물 쪽으로 돌아왔다. 더러워진 손을 닦으러 각자 화장실에 들른 후 내가 먼저 나와, 태형이를 기다리는 동안 편의점에 들렀다. 부은 눈에 가려 늦게 알았지만 나만큼이나 피곤해보이던 태형이를 생각해서였다. 커피를 먹으면 조금은 나아진 상태로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시간에 공부하러 가기도 싫겠다 싶어 캔 두 개를 들고 하릴없이 제자리를 걸으며 서있는데, 저 앞에 익숙한 애가 손의 물기를 털며 등장한다. 손이 시린지 으.. 하며 어깨를 한번 떨고서 나를 발견한 후 반가운 듯, 안 그래도 큰 눈이 더 커져 내게 향한다. 마치 오늘 나를 처음 보기라도 한 것처럼.



 “항상 느끼는 건데 학원은 어떻게 한여름에도 물이 이렇게 차갑게 나올까.”
 “따뜻한 걸로 살 걸 그랬나?”
 “나 주는 거야?”
 “응. 힘내라고.”
 "고마워."



 내가 건넨 커피를 고맙다며 받아들고서 웃음기를 가득 머금은 채 망설임 없이 캔 뚜껑을 따는데, 이상하게 다시 내게 건넨다.



 “근데 미안해. 내가 커피는 써서 잘 못 먹어."



 어쩔 수 없이 거절해버린 타인의 호의에 대해 많이 미안했는지 내 반응을 살피려는 시선이 느껴진다. 하여간 맘이 약해서. 오히려 몰랐다며 미안해하니 본인이 더 미안해하길래 이제야 가방 속 생수의 존재가 생각이 나 꺼내줬다. 이내 꿀꺽꿀꺽 들이키는 시원한 소리가 귀를 강타하고 내 더위마저도 가시게 해주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가만히 보고 있는데, 금방 원샷을 마친 태형이가 갑자기 호기롭게 눈을 빛낸다.



 “저기 넣는다. 못 넣는다.”
 “못 넣는다.”
 “넣으면 뭐 해줄 거야?"
 "소원 들어줄게. 근데 저건 너무 멀어.”



 글쎄 뜬금없이 한다는 소리가 제법 멀리 있는 쓰레기통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테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 한마디로 뭐 해줄 거냐고 묻더라. 적어도 거리가 족히 5미터는 되어보였기에 터무니 없는 소원권을 들이미니, 안그래도 자신감으로 초롱초롱하던 눈가에 불이 붙어 타오른다.



 “..진짜 소원?”
 “응 진짜. 근데 저거는 힘들.."
 "예쓰." 



 ....골인. 자석이라도 숨어있는 듯 어렵지 않게 안으로 쏙 들어가는 생수병을 보며 놀람과 동시에 방금 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어졌다. 



 "소원권이랬지?"



 성취감에 가득 찬 태형이는 뿌듯하게 허리춤에 손을 얹고서 광대가 씰룩거리는 걸 참지 못한다. 무슨 소원일까. 굉장히 후회스럽다. 



 "큰 거는 안 할게."



 믿는다 태형아 제발.. 그동안 나영이랑 안해도 잘살았을 괜한 내기를 하며 악몽 같은 추억을 차곡차곡 누적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마음에 눈을 질끈 감으니 대뜸 들려오는 말.



 "얘기해주기."
 "뭘?"


 난데없는 말에 내 몸무게라도 말해주길 바라는 건가 싶어 자괴감이 몰려오려는데.
 


 "..좋아하는 사람 생기면. 나한테 제일 먼저 얘기해주기."
 "...."
 "...."
 "...."
 "응?"
 "그래 그럴게."


 
 너의 결정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나의 거짓말엔 시간이 필요했다. 대답까지 받아내고 나서야 안심한 듯 시선을 거두고 내 걸음을 보며 천천히 걷기 시작하는 태형이. 진위를 가릴 수 없는 순진한 소원을 걸어두며 기대에 가득찬 모습이, 꼭 크리스마스에 양말을 걸어놓은 채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의 마음 같았다. 무슨 선물을 바라는지 얘기해주지 않는 아이의 마음 옆에는 애써 몰라주는 부모님의 마음도 함께였다.



 “그나저나. 뽀뽀는 언제 보러 올래?”
 "...."
 “다음 주에 와라. 뽀뽀 보러.”
 “그래. 그땐 시험도 끝났으니까.”
 “아 그리고 나 다음주에 이코노미야끼 만드는데 놀러올래? 많이 줄게.”
 “...오코노미야끼?”
 “아무튼 그거. 꼭 와.”



 어딘가 어색해진 분위기를 나만 느끼는 게 아닌지 갑자기 속사포로 말을 쏟아내는 태형이의 얼굴이 약간 달아올라있다. 많이 더운가보다 하며 부채질을 해줄까 하다가 나도 미묘해진 분위기를 풀어보려 괜히 비싼 척을 해봤다.



 "보고."
 "왜.. 바빠?"
 "장난이야. 갈게."



 내 말에 상기된 기색으로 말을 이어가던 태형이의 낯이 구름이 드리운 듯 어두워져 얼른 장난이라고 둘러대니, 입이 나옴과 동시에 나를 살짝 째려본다. 별안간 기억의 필름이 태형이의 첫인상과 겹쳐보이며 1초동안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스쳐간다.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오던 태형이가 생생해졌다.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친해질지 몰랐는데.



 "째려보지 마. 째려보면 학원에서 우리 처음 봤을 때 생각나. 사실 그때 살짝 무서웠어."



 넌 아마 기억 못할 거라는 생각에 웃자고 한 말이었지만 내 말을 들은 너의 얼굴에 웃음기가 점차 빠지고 걸음이 느려진다. 말실수를 했나 싶어 되짚어보며 고민에 빠진 채 아무렇지 않은 척 횡단보도로 향하지만 해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그때 진지했던 너의 얼굴에 별안간 커다란 두개의 전구가 켜진다. 너의 진지함은 기억해내기 위함이었나 보다. 



 "아 혹시 그전에 로비에 너 혼자 앉아있었을 때?"
 "응응 그때."



 생각해보면 신기했다. 우리 나이는 어느덧 관심사가 같지 않으면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는데, 그저 같은 학원과 독서실을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벌써 이렇게 친해진 건 충분히 신기한 일이었다. 그때의 우린 친하지 않아서 그렇게 어색했던 적도 있었다는 게 재밌었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얼굴 보고 웃을 수 있는 게 너의 친화력 덕분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했다. 모든 게 낯설었던 그때 그래도 같은 교복을 봐서 반가웠다고 하려는데, 잠깐 무언가 망설이는 듯했던 너의 말이 내 말보다 빠르게 귓가에 든다. 횡단보도에 빨간 불이 들어오고 걸음을 멈췄다. 



 “기억이 흐물흐물하긴 한데 아마 째려본 건 아닐 거야.”
 “...”
 “..예뻐서 봤겠지.”


 
 가만히 멈춰 날 빤히 내려다보는 네 눈빛이 너무 깊어서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스쳐간 네 말실수는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섣불리 어느 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아, 괜히 툭 인도 블럭을 한 번 건드리니 깨져있던 자그마한 덩어리가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눈을 돌렸다. 그런 장난은 비참하다며 태형이 팔을 가볍게 때리며 속없이 웃었다. 누군가의 마음도 툭 나와버린 것도 모른 채.  



 “..저번에 말했잖아. 너 예쁘다고.”



 장난스러운 내 반응에도 넌 옅게라도 웃어주는 법이 없고 진중하게 눈을 마주치고 있는 우리 사이의 공기가 굳었다. 순간 길을 잃은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애꿎은 혀를 굴리니 아침부터 나있던 혓바늘이 이제야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띠리링-

1개의 읽지 않은 알림
정국이

웅 안녕!     
 -19:33








 찌릿찌릿 조금 아파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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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잇나잇
많이 늦었습니다.. 댓글 덕에 용기냈어요
3년 전
독자1
작가님 ㅜㅜㅜㅜㅜㅜㅜㅜ 전 글에 댓글남겼던 암호닉없는 독자입니다ㅜㅜㅜㅜㅜㅜㅜ 진짜 신알신울리자마자 읽기전에 호다닥 먼저 댓글남깁니다. 내적 반가움에 바로 달려왔어요 작가님 감사합니다! 작가님은 제 1순위입니다. 천천히 오셔도됩니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 이제 읽으러 가겠습니다💜
3년 전
독자2
진짜 작가님 천천히 어셔도 되요ㅠㅠㅠㅠㅠ 목록 보다가 놀래서 들어왔습니다ㅠㅠ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고 수고하셨어요ㅠㅠ
3년 전
비회원134.48
선생님 소중한 글 잘 읽었습니다 글 자체가 너무 예쁘고 읽을 때마다 기분이 몽글몽글 해지네요:) 용기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다음 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3년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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