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 뉴욕.
할렘가를 지나 인적이 드문 곳을 따라 한없이 들어가면 작은 산새가 나오는데,
그 곳을 지나면 사람의 발길조차 닿지 않을 곳에 커다란 궁전식의 저택이 아름답게 위치하고 있는 곳.
"저는 보스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여!!"
그가 웃을 때 자연스럽게 패이는 눈가의 주름이 더 할 나위 없이 멋있어보였다.
남자는 자신의 다리에 매달려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소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
"나도 네가 정말 좋단다. 만약 내가 없게 된다면 꼭 지훈이 옆에 붙어있어줘야한다?"
"지훈이? 아… 저랑 같은 나이인 보스 아들이요? 잘 지내볼게요… 하지만 보스가 없는 건 싫은걸요…"
"만약에, 만약에를 말하는거야. 순영아, 고개 들어야지?"
금새 풀이 죽어버린 소년을 향해 남자가 눈높이를 맞추려 다리를 구부렸다.
눈가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있었지만 안간힘을 다해 인상을 쓰며 참아내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다.
울먹이는 자신의 얼굴을 들키는 게 부끄러운지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홱 돌리는 소년을 웃으며 지켜보던 남자의 뒤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약간은 굳어진 얼굴로 뒤를 스윽 쳐다보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연스럽게 소년의 고개가 위로 올라갔다.
"다녀올게. 순영아, 넌 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이란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네에……"
"지훈이를 잘 부탁해"
점점 멀어져가는 그의 등이 한없이 커보였다.
그는 소년의 전부였고 버팀목이었다. 그 커다란 등이 소년의 마음을 안심시켜주기에 충분하기는 했다만 그래서인지 더 걱정이되기도 했다.
넓으면 넓을 수록 더 많은 것을 짊어질 수 있으니까. 그게 소년이 본 남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이젠 얼굴조차 생각나지 않는 가장 좋아했던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에이 동맹이라니…"
"어쩔 수 없잖아. 요즘 케이트 패밀리쪽이 난리도 아니래. 조금 자존심 상하긴 하는데 A.C.T에서 별 다섯개를 붙였다나 뭐래나"
"어, 우린 몇개지?"
"세개……"
흠… 세개라… 머리를 긁적이며 지훈이 창가쪽으로 의자를 빙글 하고 돌렸다. 그러고선 눈이 부신지 콧잔등을 찡그리더니 이내 아기사자처럼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편다.
그 옆에선 손톱을 물어 뜯으며 아 뭔가 불안한데… 를 중얼거리던 순영이 책상을 쾅 치며 지훈을 쳐다봤다.
"뭐 안보여?"
"어, 싸움날 거 같네"
"아!!! 거 봐!!! 내 이럴 줄 알았어!!!!!! 언제?? 언제??? 가까워??"
머리를 쥐어 뜯으며 발악하던 그가 미친 듯이 혼잣말을 하다가 이내 지친 듯 소파에 털썩 하고 주저 앉았다.
생기 없는 멍한 눈으로 지훈을 바라보며 그가 무미건조하지만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묻자… 혹시 걔네가… 멀더냐?"
"몰라 자세한 건 묻지마. 멀더일지 타오후크일지 아님 케이트일지 내가 어떻게 아냐고. 아님 요즘 성장중인 지오네 패밀리라던가?"
"…참 여유롭다 보스님?"
귀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중얼중얼거리는 지훈에 속이 터져버릴 지경인 순영이었다.
지훈에게는 두가지 능력이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물체의 약점을 점안해내는 능력'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멀지 않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
그 두 능력 덕분에 물론 엄청난 호위병들 사이에서 자라긴 했으나 7살의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루이지 패밀리' 라는 거대 마피아 조직의 보스 칭호를 지켜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안심이 되는 순영이었지만 여전히 '전쟁' '싸움' 등의 단어가 지훈의 입에서 거론되는 날에는 밤잠을 설치곤 했다.
뭐 이번에도 별거 아니겠지~ 하며 찻잔을 돌리는 지훈의 옆의 수화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여보세요?"
- 형, 나야!
"…버논?"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에 지훈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그의 이름을 듣는 순영도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 를 중얼거리며 굳어있던 표정을 조금씩 풀었다.
-나 어디게?
"…응??
뜬금없이 자신의 위치를 물어보는 버논에 조금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익숙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대고서 웃고있는 그가 보였다.
-
"우리 보스는 루이지 아니면 싫다고 했어. 그리고 그 말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해"
"흠… 그건 그렇네 우린 아직 공적으로 동맹을 맺은 패밀리들이 아니니까"
커피잔을 요리조리 돌리다 한입 후루룩 마시고는 밀려오는 쓴 맛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는 버논.
그런 그가 우스운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리다가 지훈이 소파 뒤로 몸을 기댄 채로 옆에 서 있는 순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순영아 나 립퍼스트 가볼래"
"…혹시 미쳤어요? 지금 그 쪽 보스도 동맹을 원하면서 여기 발도 안들였는데 지금 맘대로 움직이겠다고??"
"뭐 어때. 내가 원우랑 하루 이틀 안 사이야??"
"아니 저기요……"
버논이까지 물개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치는 탓에 머리가 어지러울지경인 순영이었다.
"호시이~"
"…아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훈이 재빠르게 순영의 뒤로 달려가 그를 꼭 끌어안고는 자신만이 부르는 애칭으로 순영을 달콤하게 불렀다.
아 이렇게 나오면 맘 약해지는데… 뒤에서 꼼지락대는 지훈의 손을 잡아 홱 돌리고선 얼굴에 힘을 주고 지훈에게 혼내 듯 순영이 말했다.
"내가 여태껏 보안 관리를 잘 해서 니 얼굴이 밖에 나돌아다니는 일은 없을거야. 그래도 버논이를 알아보는 사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얼굴 꽁꽁 싸매, 알았어??"
"네네~"
"난 여기 남아 있어야 하니까! 요새 밑에 놈들이 더럽게 사고를 많이 쳐요!! 넌 그것도 몰랐지???"
"응응~ 왜냐면 호시가 다 해주잖아"
"아오!! 이걸 확 그냥!!! 너 보스 아들 아니었으면 한대 때렸어!!!"
"지금은 내가 보슨데??"
됐다 됐어 말을 말자… 제 머리를 마구 헝클던 순영이 아직도 커피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버논을 발견하고서 달려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형, 나 게이 아니에요"
"미친 나도 그런거 아냐. 버논아, 아니 한솔아… 지훈이 잘 부탁한다 알았지? 형 너만 믿어???"
"걱정마요. 지훈이 형은 지나가던 갈매기가 홱 낚아챌 거 같아서 나도 주의깊게 보게 된다구요"
"야야 갈매기라니……"
"아 맞다, 만약 우리와 동맹을 맺게 되면 인력공급을 해 줄 생각이야. 몇일 전 신입이 들어왔는데 잘난 구석이 많아서. 이미 우리도 정을 줄대로 다 줘버렸는데
루이지랑 동맹 맺는다는데 그만한 선물이 없지. 원우 ㅎ… 아니 보스도 그렇게 생각하고있어."
마피아 세계에선 사실 패밀리라는 말은 허우대에 불과하다. 모든 마피아 집단이 자신들 조직 뒤에 '패밀리' 를 붙이지만 정작 이름값하는 집단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 중 하나가 루이지 패밀리이고, 더 커다란 가족애를 자랑하는 집단이 바로 '립퍼스트 패밀리' 버논의 소속 집단이자 보스인 '전원우'가 이끄는 패밀리였다.
내 사람 챙기고 남주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상 일원 하나를 주겠다는 말은 지훈에게 커다란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뭐야 원우형 꽤나 날 좋아하잖아??"
"근데 2년동안만이라는 계약조건을 달까 말까 생각중이던데"
"그런게 어딨어. 근데 걘 이름이 뭐야?"
"형보다 한 살 어려. 이름은 김민규."
김민규…라… 낯익은 듯한 이름에 입가에서 맴도는 그 이름을 참지못하고 중얼거리는 지훈이었다. 아는 사람이야? 모르겠어.
작은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고민하는 듯한 모습에 버논이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일단 가자. 얼른 보고싶다. 그 김민규라는 애"
"뭐야, 벌써 이름만으로도 매료된거야? 하긴 그 형 매력은 넘치더라고~"
"순영아 나 갔다올게! 전화기 꼭 붙들고 전화 벨소리 3번 울리기 전에 꼭 받고 마스크 꼭 끼고 여기 선글라스도 챙겼어!"
코트를 주섬주섬 주워 입으며 자랑하듯 말하는 지훈을 보며 너털웃음을 짓던 순영이가 작게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