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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ㅇㅇ아."

"....."

"이제 일어나야 해, ㅇㅇ아."



뭐지, 김석진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



"일어나자. 아침 먹고 나가게."



미친. 진짜 김석진이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저 잘생긴 얼굴이요, 고개를 둘러보니 익숙한 내 방이 아닌 낯선 곳.

그나마 다행인 건 이불에서 김석진 향기가 폴폴 나서 뛰쳐나가진 않았다는 거.



그제서야 생각났다. 아, 나 어제 김석진 집에서 잤지.



아쉽게도(?) 아무 일도 없었다.


키스 후 날 끌어안고 있던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켜 내게 이불을 꼭꼭 덮어주더니, 진짜 손만 잡고 잤다.

진짜, 딱 손만 잡고.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얼른 자자."

"....."

"지금 자도 얼마 못 자겠다. 얼른 눈 감아."



본과 시절부터 다져온 나의 밤샘 능력을...

어필할 시간도 없이 진짜 그냥 잤다. 잠결에 누가 머리를 쓸어넘기는 듯했지만, 꿈결같았으므로 패스.


축축 처지는 몸을 간신히 침대에서 떼어서 일으켰다.



"얼른 세수하고 와. 아침 먹자!"






세수하고, 아침 먹고, 양치하고 남자 옷을 입고 갈 순 없으므로 어제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고.


엘리베이터 타고 주차장을 내려가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이 사람과 같이 잠들고, 눈 뜨자마자 얼굴을 보고, 같이 아침 먹고 같이 출근하고.

내 몸에서 이 사람과 똑같은 냄새가 나고.


기분이 참, 이상하다.








[방탄소년단/김석진] 다이렉트 - 13 | 인스티즈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해?"


"모르겠어요. 일이 얼마나 있을지... 오빠는 오늘 늦죠?"

"응. 아마 밤샘 촬영하지 않을까?"

"피곤해서 어떡해요. 또 잠 못 자겠네."

"괜찮아. 너랑 통화할 건데, 나."



어느새 병원 주차장이다.


생각보다 거리가 가까운 건지, 아니면 이 사람과 함께라서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건지.



역시 비싼 차, 좋은 차.

나는 밥도 잘 챙겨 먹고, 잠도 잘 잤는데, 이 사람은 잠도 많이 못 잔 것 같고, 아침부터 안 일어나도 되는데.



"안 피곤해요? 오전에 좀 자두라니까..."



촬영이 오후에 잡혀있어 늦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을,

나 때문에.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아침 준비하고, 나 깨우고, 밥 먹이고, 병원에 데려다주기까지.



"안 피곤해. 너랑 있으면 충전되는 기분인데, 나."

"그래도..."

"진짜야. 난 늦잠 자는 것보다 네 얼굴 조금이라도 더 보는 게 좋고, 너 먹는 모습 상상하면서 요리하면 행복하고."

"......"

"안 믿었는데,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게 뭔지 널 보면서 알게 되고, 자는 모습이 천사 같다는 말도 너 자는 거 보면서 알았어."

"......."

"그래서 나 잠도 거의 안 잤어. 자는 모습 보는데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나를 쓰다듬던 다정한 손길이, 내 이마에 다녀갔던 따뜻한 입술이.

잠결에 느꼈던 그 느낌들이 꿈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



"나 평소보다 훨씬 적게 잤어. 근데도 나 봐봐. 평소보다 컨디션 좋아."

"....."

"오늘 오후에 촬영 잘할 것 같아. 너 많이 봐서 충전 다 됐거든."

"....."

"난 네가 내 곁에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해."

"......"

"그러니까, 미안한 표정 짓지 마. 그렇게 고마우면 사랑한다고 한번 해주던지. 볼에 뽀뽀도 해주면 더 좋고."



아, 이 고마움을. 미안함을. 설렘을. 사랑을.

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구나 느꼈을 때.


뭐 어쩌겠어. 행동으로 옮겨야지.


손을 뻗어 볼을 잡고, 내 쪽으로 얼굴을 당겨와 입을 맞췄다.

볼이 아닌, 입술에.



"고마워요, 진짜. 미안하다는 말은 싫어하는 것 같으니까, 안 할게요."

"........."

"많이 사랑해요."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내가 그의 눈을 통해서 사랑받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처럼, 내 눈을 통해서 내 사랑이 전해지길.

내 속에 당신만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알아봐 주길 바라면서.



핸드폰이 울린다.

벌써 가야 할 시간인가 보다.


아쉽지만, 시선을 거두고 손도 내렸다.

가방을 챙기면서, 차마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이면서.



"진짜 고마워요. 저 들어가 볼.."



차 문을 열려고 뻗었던 손목이 잡히고, 몸이 돌아갔다.


크고 따뜻한 손이 내 목덜미를 감쌌고, 어제 나를 덮쳤던 그의 향기가 또다시 나를 집어삼켰다.


차마 감지 못한 눈에 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입술에, 입에 느껴지는 따뜻함에 몸이 녹는 기분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입안을 휘젓던 그가 빠져나가고, 가만히 나를 보는 두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더 사랑해."

"....."

"진짜 보내기 싫다. 그래도 키스했으니까."



얼굴이 달아오른다.

아니 뭐 저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한담...



"나 촬영 빨리 끝낼게. 너랑 매일매일 붙어있고 싶어.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싶어."

"....."

"잘 다녀와. 무리하지 말고, 밥 잘 챙겨 먹고."

"... 네. 촬영 잘해요."

"응. 연락할게."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어찌나 몸이 무겁던지.



"얼른 먼저 들어가. 네가 보고 있으면 나 못 간다."

"... 네. 저 먼저 들어가요."



손을 한번 흔들어주고, 몸을 돌렸다.


시간이 늦지는 않았지만, 지켜보고 있으면 진짜 발이 안 떨어질 것 같아서.

가지 말라고 붙잡을 것 같아서, 떠나는 차를 따라갈 것 같아서.










"안녕하세요."


"여어, 하이 하이."


"어, ㅇㅇ이 왔어?"



"뭐냐, 너."

"뭐. 왜."

"너 왜 옷이 어제랑 똑같아?"

"어?"



망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선배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 저 새끼는 왜 이상한 타이밍에만 눈치가 빨라지는지.



"옷 다 빨아서. 입을 게 없어서."



빨리 화제를 돌리자.



"안경 바꿨냐? 괜찮네."

"오 역시. 동기가 최고지. 선배님 보셨슴까! 바로 알아차리는 거 봐여. 얘가 맨날 저한테 틱틱거려도 젤 관심이 많아니까요? 감동이다, 친구야. 넌 알아봐 줄 거라 생각했어."


단순한 새끼. 한 숨 돌렸다.



"저 수술복 갈아입고 올게요."

"아침부터 수술 있어?"

"네. 이 교수님... 회진 끝나자마자..."

"아침부터 빡세네. 점심 못 먹겠네. 뭐 먹을래? 사놓을게."

"괜찮아요. 다녀올게요!"


선배의 눈을 피하곤 얼른 몸을 움직였다.

아침부터 스릴 넘쳤다. 위험했다, 진짜.











병원에서의 하루하루는 별 차이가 없다.

큰 사고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시간은 빠르고, 내 몸은 하나로 부족하다.



"야, 응급실!!"



호출기가 울리면 미친 듯이 뛰어야 하고,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면 또다시 뛰어야 하는, 그런 일상.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그런 하루인데. 왠지 오늘따라...



[오늘도 많이 바빠?]_09:25


[많이 바쁜가 보네ㅜㅜ]_9:42

[나 이제 촬영 들어간다. 금방 다녀올게!]_9:43




벌써 한 달 전이다. 김석진 얼굴을 본 게.

아무 일 없이 하룻밤을 같이 보내고,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한 달.


나는 나의 일상을,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일상을.

촬영을, 수술을.



보고 싶다. 오늘따라.











그런 날 있지 않은가.


늘 있는 똑같은 하루였는데,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날.


똑같은 일, 똑같은 말이 더 힘들게, 더 아프게 와닿는 날.

몸은 쳐지고, 걸음은 무겁고, 마음은 힘든,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날.





"고생하셨습니다."

"퇴근해?"

"아, 네. 그러려고요."

"오늘 괜찮아?"

"네. 괜찮은데."

"집에 가? 태워줄까?"

"아뇨, 누구 만나기로 했어요."

"아, 그래? 그럼 거기까지 데려다줄게."

"바로 앞이에요! 저 먼저 가볼게요!"





후다닥 빠져나왔다.


오늘은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선배 앞에서 무너질 수는 없으니까.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차마 전화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매번 퇴근할 때마다 통화하곤 했는데, 오늘은 자신이 없었다.

괜찮은 척 조차 못할 것 같은.


목소리 듣자마자 울어버릴까 봐. 꼴사납게 길거리에서 울면 안 되니까.



[아직 퇴근 안 했어? 오늘 퇴근한다 그랬는데...]_7:23

[갑자기 일 생긴 거야? 나 너랑 통화하려고 기다렸는데... ㅜㅜ]_7:25



집에 가서. 가서 연락해야지.










씻지도 않고, 옷도 못 갈아입고.


소파에 가만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혔다.

걱정할 테니까, 연락은 해줘야 하니까.


심호흡 두 번 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그 사람 목소리다.

울지 말자.



"... 여보세요."

"응. 퇴근 안 했어? 병원이야?"

"퇴근했어요. 집이에요."

"뭐야. 차 타고 왔어?"

"아뇨. 걸어왔는데, 연락한다는 게 깜빡했어요. 죄송해요."

"그래? 괜찮아. 너 잘 들어갔으면 된 거지."



그래. 차분하게. 천천히. 아무렇지 않게.



"근데 목소리 왜 그래."



당황했다.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목소리가 떨릴까 봐.



"무슨 일 있어?"



아, 나는 이 사람 앞에서는 어떤 것도 숨길 수 없겠구나.



"ㅇㅇ아, 왜 그래."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지금 울면 안 된다.



"아니에요. 괜찮은데."

"거짓말."

"......"

"문 열어. 나 앞이야."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촬영 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똑똑.

내 귀가 이상한 게 아니라면, 이건 우리 집 현관에서 나는 소리가 맞는데.

설마..


핸드폰을 여전히 귀에 댄 채로,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자....



"안녕"



귀에 댄 핸드폰과 앞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을 쥐고 있던 팔이 떨어지고, 동시에 고개가 떨어졌다.

손쓸 틈 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나 많이 보고 싶었구나?"



고개를 숙이고 눈물만 떨어뜨리는 나를 당겨안은 품에서 찬 바깥 냄새가 흩어진다.



"왜 연락 안 했어."

"....."

"전화해서 당장 오라고 투정이라도 부리지."

"......"

"내가 말했잖아, 다 받아주겠다고. 나 때문에 힘든 거 아니라도 다 받아줄 수 있는데."



팔을 들어 올려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셔츠가 내 눈물로 젖어가는 게 느껴졌지만, 그냥 파고들었다. 그러고 싶었다.



"괜찮아. 나 여기 있잖아."



날 좀 숨겨주길 바랐다. 품속에 숨고 싶었다.


나를 좀 더 꽉 껴안는 팔힘이 느껴진다.


내가 무너지지 않게 지지해 주는 이 몸이, 받쳐주는 두 팔이 꽤나 반갑다.

나는 혼자 무너지기 싫었나 보다. 누군가가 날 찾아주길 바랐을지도.



"계속 옆에 있을게. 미안해. 늦어서."



고개를 저었다.

절대 늦지 않았기 때문에.






얼마나 품에 얼굴을 묻고 서있었을까.



"저는요..."



이 사람은 괜찮겠지.

이 사람은, 완전한 내 편이겠지.



"저 진짜 열심히 살았거든요?"

"....."

"지기 싫었어요.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것도, 항상 뒤로 밀리는 것도 싫었어요."



여자가 무슨 외과냐며 반대하던 부모님도, 편한 과 놔두고 왜 사서 고생하냐 하던 지인들도.


실습 조를 짜면 남학생 위주로 돌아가고, 남학생들에게 우선순위를 주던 과 부터

대놓고 우리 과는 여자 안 받으니까 지원하지 말라던 교수님까지.


그런 환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공부로, 결과로 이겨내는 것뿐이었다.



"첨에 외과 지원했을 때도, 대부분 다들 그러셨어요. 네가 얼마나 버티겠냐, 제대로 할 수 있겠냐. 우리는 여자 특혜 같은 거 없다, 여자라서 봐주거나 그런 거 없다."

"...."

"나는 단 한 번도 특혜를 바란 적도 없고, 봐달라고 말 한 적도, 원한 적도 없는데. 저는 벌써 그런 걸 바라는 사람처럼 된 거예요."

"....."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당직 서고. 단 한 번도 빼거나 빠진 적 없어요."

"....."

"실수도 안 하려고. 실수하면 여자라서, 소리 들을까 봐. 더 완벽하게, 더 독하게 했는데,"

"....."

"근데, 왜...."



"남자 의사 불러와!!!"

"환자분. 환자가 의사를 고를 수 없습니다. 치료 안 받으실 거예요?"

"남자 데려오라고! 여자가 뭘 안다고 난리야!"

"하 진짜... "

"실력도 없는 게!! 어!! 얼굴 하나 믿고 가운 입으면 다 의사야!!! 남자 의사 불러줘!! 나 치료 못 받아!"



"오늘 저 수술은 전정국이 네가 들어가."

"아, 네."

"여자는 좀 하기 힘들 거야. ㅇㅇ이 너는 응급실이나 내려가줘라."

".... 네."




"나도 의산데, 똑같은 의산데."

"...."

"똑같이 시험 쳐서 면허 따고, 똑같이 공부하고 실습하고 수술하고. 다른게 없는데."

"....."

"처음 듣는 말도 아닌데. 오늘따라 너무... 머리에서 잊히질 않는 거예요."



오늘따라.

유난히 와닿았던 날. 진짜 내가 여자라서, 그래서 그런가.



"아니."

"....."

"오늘따라 아니고, 늘 상처받았어, 너."

"...."

"애써 무시하고, 괜찮은 척하고. 그렇게 지냈던 거야. 괜찮았던 게 아니고, 척."

"....."

"이제야 터졌네. 그동안 어떻게 참았대."



내 등을 토닥토닥. 또다시 눈물이 터진다.


내 상처는 얼마나 깊을까.

얼마나 곪아있을까.



"고마워. 나한테 말해줘서."

"....."

"혼자서 얼마나 힘들었어. 좀 더 빨리 올걸. 미안해."



지금 여기 내 앞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얼마나 힘이 되는지.

감히 당신은 상상도 못할 테지.









"저녁은, 안 먹었지?"


날 소파에 천천히 앉혀주고는, 내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내 눈을 맞추며 얘기한다.

고개를 도리도리.



"뭐 먹을까."

"... 별로 안 먹고 싶은데.."

"그래도 저녁은 먹어야지."


으쌰,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가려는 그의 옷소매를 잡았다.

갑자기 잡힌 그가 몸을 돌려 나를 내려다본다.



"왜?"

"... 오늘 언제 가요?"

"왜. 나 가지 말까?"

".... 네."



오늘은 정말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필요했다. 이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했다. 나를 잡아줄, 나를 안아 다독여줄 그가 필요했다.



"... 안 갔으면 좋겠어요."



말도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진짜 가지 말았으면 했다.

말하면서도 난감해 하는 얼굴을 보기 미안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우리 집 바닥에 먼지가 몇 개 있을지 셀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따뜻하고 큰 손이 내 볼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 봐. 왜 안 봐."


또 그의 눈 속에, 검은 눈 속의 나만 오롯이 비친다.


쪽.

그의 입술이 짧게 내 입술에 다녀갔다.



"나 안가."

"...."

"원래 안 갈 생각이었긴 한데, 네가 가지 말라고 해주니까 더 가기 싫어졌어."

"...."

"가지 말란 말 되게 좋네."


정말 안 가도 되는 걸까.



"안 가도 돼. 내일 너 쉬잖아. 너랑 쉬는 날 맞췄어."

"못 쉰다고..."

"응. 못 쉴 것 같았는데, 내가 빨리 끝냈어."

"....."

"너 봐야지. 너 오래오래 봐야지. 그러려고 돈 버는데, 나."


"나 안 갈게. 그러니까 걱정 말고 들어가서 씻고 나와. 저녁 먹자. 간단하게 해놓을게."








안 넘어가는 밥을, 한 숟가락에 반찬 하나씩 올려줘가며 먹인 이 사람 덕분에 그래도 반은 비웠다.


평소처럼 설거지로 실랑이하고, 사이좋게 나란히 서서 양치도 하고.


아, 이 사람은 정말 오늘 자고 가려고 작정하고 왔는지, 편한 옷도 챙겨왔더라.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

그는 나에게 팔을 내어준 채로, 나는 그의 팔을 베고.



"ㅇㅇ아."

"... 네."

"아까부터 해주고 싶었는데, 너 멋져."

"....."

"너 충분히 멋있어. 네 일을 사랑하고,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네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네가 멋있어."

"....."

"내 여자라서가 아니고, 너 그 자체로. 의사 ㅇㅇㅇ 그 자체로 진짜 멋있는 사람이야. 실력 있는 의사고."

"....."

"내 생각엔, 네가 지금 이렇게 속상해하고 화내는 것도 네가 더 올라가려고, 더 높은 곳으로 가려고. 그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려고 욕심내서. 그래서 그런 것 같아."

"...."

"나쁜 뜻 아니고, 누구든 자기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욕심낸다는 건 대단한 거야."



내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최고가 될 수 있을까.



"네가 못 할 일은 없어."

"...."

"난 널 믿어. 넌 할 수 있어. 여자라서 못한다? 그건 딱 그 사람들 수준인 거야. 널 못 알아보고, 네 실력을 못 알아보고. 그냥 자기한테 온 복을 걷어차는 거야, 그 사람들은."

"....."

"그러니까, 너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

"그러다가 한 번씩 너무 지치면, 오늘처럼 너무 힘들면."

"....."

"나한테 와. 오늘처럼 나한테 다 풀어."

"....."

"나는 항상 네 옆에 있을 거니까."



이 사람은 알까.

본인이 나에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얼마나 큰 버팀목인지.



"나는 그거면 될 것 같아. 네가 나 찾아주는 거."




몸을 옆으로 돌려 껴안았다.



"오빠는 몰라요."

"... 어?"

"오빠가 나한테 얼마나 큰 힘인지, 얼마나 큰 위로인지."

"...."

"존재 자체로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얼마나 든든한지 절대 모를걸요."



당신은 절대 모를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얼마나 큰,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지.



"저 처음이에요."

"....."

"누군가의 앞에서 무너진 것도, 이렇게 다 털어놓은 것도."

"......"

"처음에는 진짜 아무도 나를 못 깔보게 높이 올라가야지, 최고가 되어야지.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게 만들어야지 그랬었는데, 지금은."

"...."

"지금은 그냥, 오빠한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오빠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냥 그거면 행복할 것 같아요."



그렇게, 미친년처럼 욕심내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이 사람만 곁에 있다면.



"그냥, 오빠만 옆에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보고 싶었다.


나를 내려다보고 있던 그와 눈이 마주쳤고, 그의 얼굴이 나에게 내려왔다.


내 입술을 머금고, 이내 혀가 얽히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긴, 진한 키스였다.


한참을 맞대고 있었을까, 입술이 떨어졌다.



"하..."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평소보다 한층 더 진하다.



팔을 뻗어 그의 목에 두르고, 당겼다.


이번엔 내가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그의 목에 두른 팔을 꽉 당기고, 마음껏 입술을 맛봤다.


그의 손이 내 티셔츠 속으로 들어와 옆구리를 쓸었다.


낯선 느낌의 나도 모르게 움찔했나 보다.


바로 손을 빼고 입술을 뗀 그의 눈이 이렇게 깊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진하다.



"... 미안."



말려올라간 내 티셔츠를 정리해 주는 손을, 붙잡았다.


붙잡아서, 티셔츠 안으로 집어넣었다.

눈이 커진다. 놀란 표정이 꽤나 귀엽다.


그의 손을 잡아 옆구리에 올려두고, 다시 그의 목에 팔을 감아 당겼다.

코 끝이 맞닿아있는 가까운 거리의 얼굴.



"... 우리 애 아닌데."



하.

눈을 감고 한숨을 쉬더니,

바로 고개를 꺾고는 격하게 입을 맞춰온다.



처음 느껴보는 다급함이 담긴 키스.


손이 옆구리를 쓸다가, 위로.

아주 천천히, 위로 올라왔다.


손이 잠깐 멈칫하더니, 곧이어 입술을 떼고 날 쳐다본다.



"..... 괜찮겠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니까. 김석진이니까.



"네가 나 유혹한 거다."



다시 입이 맞물렸다.

그렇게 기나긴 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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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 작가님은 그저 사랑입니다... 오늘도 예쁘고 좋은글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2
오늘 글 정말 화끈화끈하네요 좋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여주가 마음을 열어가는 것같아서 좋아요ㅠㅠ
4년 전
독자3
와 너무 불타내요... 작가님 이번은 아쉽게도 그냥 안넘아가는 밤이겠네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리고 작가님 오늘은 왜 안오시나 걱정했습니다 ㅠㅠㅠ 이렇게 또 좋은글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4년 전
독자4
작가님... 그저.. 사랑...
4년 전
독자5
진짜 석진이같은 직진남 ㅠㅠㅠㅠ 너무 멋있어요 ㅠㅠㅠ 내가 힘든걸 딱 알아주고 위로해주고 ㅠㅠ 너무 힐링이네요 ㅠㅠㅜ
4년 전
독자7
이런 다정함..정말 최고에요...석진이의 얼굴과 이런 다정함의 조화는...만물의 조화이다..
4년 전
독자8
크 짱이에요
4년 전
독자9
흐억규ㅠㅠㅠ 너무 설레지 말입니다 다정한 얼굴 다정한 말투 다 갖췄다 ㅇ<-<
4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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