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사는 또 언제 캡쳐했대"
"아!!!"
놀래라.
진짜 진심으로 깜짝놀래 핸드폰을 그대로 툭 떨구고 파드득댔다.
핸드폰은 그대로 순영이 손에 들어갔다. 화면가득 들어찬 김민규얼굴에 얼굴이 화끈해졌다.
"잘생기긴 했지? 우리 멍구"
"우리 멍구는 무슨... 개새끼냐"
"벌써 단속하는거야? 으 김민규 개불쌍"
"돌았지? 드디어"
권순영 쭉 올라간 눈이 슬금슬금 내려오면서 비웃는데 저거 지금 재밌어 죽을거다.
COLOR BUS
소울메이트를 만나기 전까지는 세상이 흑백으로 보이다가 만난후에 색깔이 보이는 세계.
컬러버스 2 [민규/지훈]
쪽팔리게. 괜히 작업하다 집에왔다.
권순영놈이 한달만에 집에왔다니까 나름 반가워서 하던일도 내팽겨치고 왔더니
집앞에 덩치큰 남자가 지혼자 움찔대며 서있는거다.
자세히보니 옆집남자다.
처음볼때부터 까만머리에 까만옷만 입고 자꾸 기분나쁘게 빤히 쳐다봐서 변태새끼가 기어코 일을 치나싶었지.
지금이야 뭐 눈 때문에 색있는 옷은 잘 안입는건가 했는데 왜 자꾸 쳐다봤을까.
걔도 나랑 똑같은거 맞겠지?.... 아 모르겠다.
복잡하다.
아
까 받은 반찬들 정리를 하다 힘이빠져 거실소파에 주저앉았더니 노란 머리가 옆에서 자꾸 콕콕 찔러온다.
"민규 맞지?응?맞는거지?"
"그렇겠지. 지가 그랬잖아 나 때문에 보인다고 "
"으하아... 존나 로맨틱해"
로맨틱은 지랄..
'저 형때문에 색이 보여요'
귀를 파고드는 낮은 목소리에 다시 귀가 빨개진다. 웃는게 꽤 근사했다.
내 얼굴이 또 빨게 지니깐 권순영이 이번엔 거실을 꺅꺅대며 뛰어다닌다.
한심해 보이긴 하는데 이런거 엄청 좋아하는 애니깐.
권순영 폰에 한가득 담긴 너에게닿기를 애니가 생각나 이제는 아예 누워서 피식 피식 웃었다.
내 핸드폰으로 뭘 하는지 자꾸 움찔거리는 노란 뒤통수에 시선이갔다.
내 분홍색 머리도 가관이지만 얘는 학생이 머리를 이렇게 해서 다니냐.
날라리.
결이 나빠진 머리가 속상해 노란 머리칼을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아! 아파! 이새끼야!!"
"머리가 이게 뭐야.머리 다상했네"
"니 머리가 더. 그 나이먹고 존나 부농부농하시네여"
"아! 하고싶어서 한줄알어?"
"승철이형 짓이지?"
아 최승철 걔는 진짜 입 잘터는거같아...
쿠션에 얼굴을 박고 웅얼대니 순영이가 으핳핳 하면서 크게 웃어 댄다.
"그러게 거기는 왜나간다고 해서"
낄낄거리는게 엄청 얄밉다.
'머리색 이쁜데...'
갑자기 또 머리속을 울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마음이 복잡해져 반찬 정리를 하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자문으로 나가게 됬다니까 형이 억지로 시킨 분홍 머리였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불만이었는데.. 바꾸지 말까 싶다.
이런생각을 다하게 만드네.. 내가 다 놀랍다.
아 모르겠다. 그냥 다 너무 귀찮어. 눈꺼풀이 무거워 진다.
'야 너 작업은?'
아득하게 정신이 멀어져 가는 가운데 권순영 목소리가 들린다.
잘거야 깨우지마.
오랫동안 꾸던 꿈이었다.
항상 쪼꼬마난 권순영이 눈 앞에 나타나는것부터 시작한다. 오늘도 같은 꿈이다.
12살 권순영이 작은 손으로 날 끌고 어디론가 뛰어간다.
작은 손이 상처 투성이다. 낡은 바지를 입고 드러난 종아리에도 회초리 자국이 엄청났다.
이때가 언제 였더라.
아, 내 기억으론 내가그날 원장이 시키는 일을 잘 못해서 전날 저녁을 굶었었던것 같다.
그래서 권순영이 몰래 빵을 훔쳐왔는데 걸린 모양이라 아무것도 모르고 도망가는 중이었었다.
열심히 뛰어가는 머리통을 보다 고개를 내리니 순영이 작은손, 고개를 올리니 보이는 하늘은 회색이다.
나랑 권순영이있던 고아원은 강원도 어느 시골에 있었다. 그덕에 하늘은 정말 깨끗했는데 그 깨끗함이 정말 외로웠다.
빽빽하게 들어선 회색 나무들도 무섭게 느껴졌다.
다시 밀려오는 감정에 순영이 손을 꼭 잡았다.
주차장으로 다가가니 커다란 세단이 차를 대고 있었다.
다행이다.
원장은 손님이 오면 우리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무 뒤에 숨어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었다.
숨이 차 헐떡이면서 오늘의 손님이 궁금하긴 했다.
설마 우리를 데려가 주려나 싶어 약간의 기대감도 들었던것 같다.
차 안에서 한 가족이 내렸다.
키가큰 잘생긴 아저씨 상냥해보이는 아줌마.
또 내또래같이 작은 애를 본것 같았는데 왠지 긴장이되 눈을 꼭 감았다.
감았다 뜨니 작은 아이가 있었다.
단정하게 사랑 많이 받은것 같은 밝은 얼굴. 왠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떨려왔다. 그때는 숨이차 그런건 줄 알았는데...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
내입에서 나온 소리는 목이잠긴 작은 목소리가 다였다.
단정한 뒷머리, 그 새카만 색깔을 기점으로 색이 퍼져나간다.
마치 물에 탄 잉크 처럼.
서서히 초록색 나뭇잎 부터 순영이가 입은 노란색 티셔츠를 거쳐서 새파란 하늘까지.
파란색 하늘이 너무 포근했다. 하나도 외롭지 않았다.
정말 예뻤다.
김민규가 나한테 선물한 세상은 정말 예뻤다.
도망가는 것도 잊고 그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렸었던것 같다.
눈을 떴는데도 시야는 흐렸다. 꿈속뿐 아니라 실제로도 울었나보다.
볼이 축축했다.
느릿느릿 손을 들어 눈물을 닦으니 자고있는 순영이 얼굴이 떡하니 보인다. 또 권순영 무릎에서 잤구나.
그대로 몸을돌려 순영이 허리를 꼭 껴안으니 움찔하면서 애가 일어난다.
"일어났어?"
"그때 꿈꿨어"
"...그래? 어땠어?"
이번에도 좋았어.
너무 좋았어.
순영이 품에 소리가 먹혀들어간다.
천천히 머리를 쓰담어주는데 아직 꿈속같다. 아까의 파란 하늘이 주던 포근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너 그때 엄청 작았어"
"그래? 난 기억도 안나"
"작았어...나도 작았고 김민규도 작았고"
징그러워. 걔가 쪼끄맸다니
권순영의 중얼거림에 작게 웃었다. 엄청 귀여웠는데..
방금 그 생각 말하면 쟤 또 난리칠게 뻔해서 그냥 속으로 삼켰다.
"어..안녕하세요"
"..아..네"
순영이랑 낮까지 퍼질러 잤더만 승철이 형 부재중 때문에 핸드폰도 방전될뻔 했다.
일어나니 권순영도 옆에 없고. 방학인데 학교 갔나?
움직이기 싫어서 꾸물꾸물 준비하고 문을 여니 마침 옆집 문도 열린다.
그애다.
괜히 어제 꿈이 생각나 민망해졌다.또 왜 그렇게 두근대나 모르겠다.
진짜.. 미친거 같애.
"순영이랑 같은 과에요?"
예..에?
먼저 질문을 던지니 예상 못했다는듯 화들짝 놀란다.
얼마나 놀랐으면 삑사리도 낸다. 생긴거랑 다르게 엄청 허당이다. 그래서 권순영이랑 노나보다.
"아..아니요,같은 동아리에요."
"아아"
권순영은 자기 대학 얘기는 죽어도 안한다.
그렇게 친한후배가 있는줄도, 그 후배가 색맹이었단것도 어제 알았다.
분명 지 때문에 내가 학교 안간줄 알고있을거야. 권순영 착각은.
먼저 말걸어줘서 기쁜지 조잘조잘 입을 털어댄다.
간간히 대답을 해주다보니 어느새 1층까지 내려왔다. 나불대는거 꽤 재밌었는데.
차에 타고 인사를 하니 그 큰 팔을 휘적휘적 저으며 인사를 한다.
사이드 미러로 오랫동안 지켜보다 한번 웃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아 어디가는지 물어보고 태워줄걸 그랬다.
"그랬더니 걔가 글쎄"
"어어 글쎄"
작업실에 도착하니 권순영이 승철이형 앞에서 또 나대고 있다.
얘가 여긴 왜온거야.
문밖에 붙어있는 관계자외 출입금지 저건 안보이나보다.
"어 야 이지훈 잘왔다"
나를 발견하고 순영이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왜이래 무섭게..
어깨에 턱 손을 올리고 나름 진지한 얼굴로 말한다.
"저 형 때문에 색 보여요"
아 김민규 얘기 중이었나.
어설프게 따라하는 권순영 옆에서 승철이 형이 꺄악 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 형 토할뻔 했어.
"아 그새끼 진짜 내가봐도 멋졌어...거의 결혼하잔 소리 아닙니까"
"존나 프로포즈지...하 개 설레"
"근데 문제는 저 이지훈이가, 천하의 이지훈이 얼굴이 씨뻘게 진거"
"헐 대박. 14년동안 찾아다닐때 부터 알아봤다"
아 뭘 빨게졌다고 그래.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애써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발로 켰다.
저 둘은 진짜 쓰잘데기없이 너무 잘 맞단 말야.
헤드폰을 쓸려니까 승철이 형이 앉아있던 의자를 슝밀어 내자리 가까이로 왔다.
"우리 이피디 드디어 시집가는거야?"
"아 진짜 그만좀 해요"
짜증내니까 승철이 형이 할아버지 처럼 허허 웃으며 자기 기계로 돌아갔다.
다 늙어서 사람 놀이는거 참 좋아한다. 짜증나.
근데 문득 든 생각
"순영아"
"엉?"
"근데...내가 김민규를 찾았잖아?"
"그치그치. 내가 찾아줬지"
"근데"
그다음엔..?
순영이가 순식간에 굳었다. 그래 이게 근본적인 문제였다.
내가 김민규를 그렇게 찾아다녔다 쳐. 근데 그래서..?
"내가 걔랑 사겨야 되는것도 아니잖아"
"......아니지?"
"그래 뭐가 있긴 있겠지. 흔한일은 아니니깐"
"아닌데...?"
"그냥..뭐 이렇게 끝난거지뭐. 찾았으니까 게임은 끝"
gg몰라? 굿 게임.
순영이 표정이 팍 식는다. 흥미없어보이는 내가 싱거울테지.
솔직히 어제고 아까고 느꼈던 설렘은 할말없긴 한데 애써 부정하고싶은 것도 컸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는데 또 그런 힘든관계를 시작하고 싶진않다.
걔 앞에서 빌어먹게 겁나 두근대고 그래 걔를 좋아한다고 쳐. 근데 걔가 그러라는 보장도 없고.
심지어 김민규는 남자였다.
무서웠다.
"야 니가 왜 그렇게 걔를 기다렸는데"
옆에서 보고있던 승철이 형이 답답한지 다가온다.
"걔 꿈은 또 왜그렇게 꿨고"
"그야 그냥..."
"보고싶으니까 그렇지"
아
"걔가 좋든 말든 그냥 보고싶으니까 15년 가까이를 찾아댔지"
저형은 참
"보고싶으면 보러가면 되고. 굳이 사귀라는게 아니라"
짜증나게 정확하다.
그래 그냥 인정 하기로 했다.
지금 눈앞에 술병이 초록색인걸 아는것도 ,그 잿빛속의 고아원에서 파란하늘이 포근하게 느껴주게 해준것도 고맙고
우리 순영이 학비번다고 지랄하는 와중에 기집애처럼 작은 희망을 갖게 해준것도 고맙고, 그 희망이 잘 자라서 눈앞에 나타난것도 고마운거 맞다.
그래서 이때까지도 지금도 보고싶은거 인정한다.
하는데
"나 걔 안좋아한다고오"
"알았어 알았어"
"아 진짜로. 왜 못믿냐아"
권순영 저거 못믿는 얼굴이다.
내가 암만 술을 먹었다 해도 그정도 생각할 머리는 있단 말이다.
근데 권순영이 자꾸 삐뚤게 보인다.
아 눈이 감기는데
'야 자지마! 야!'
아 잘거라니까 깨우지 말래도.
권순영 저건 진짜 말 안듣는다.
머리 진짜 찢어질거 같다.
어제 그렇게 먹고 그냥 잤나보다. 승철이 형도 없이 권순영 엄청 힘들었겠는데.
순영이 무릎을 배고 있는거 같은데 눈은 뜨기 귀찮았다.
집안 가득 북어국 냄새다. 와 권순영이 해장국 꿀맛인데..
착해 죽겠어. 우리 순영이.
항상처럼 허리를 꽉 안고 나른하게 기댔다. 역시 포근하다.
어 근데 뭔가 다르다.
볼에 닿아오는게 순영이 말랑한 뱃살이아니라 딱딱한 근육이다.
둘레도 한참 큰거같고..
"야 너 워크샵에서 운동했냐?"
"...."
"아닌데? 어제 안이랬잖어"
"..저.."
"야..너 뭐하냐"
뒤돌아보니 순영이가 경악한채로 서있다.
잠깐만 그럼 얜 누구야.
"...."
헐
"아..안녕하세요"
헐
"김민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