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백입니다 :)
여러분 지난 한 주동안 안녕하셨나요!
사실 12시 땡 하면 올리려고 했는데... 어제 오늘 살짝 잉여로움이 남았던 차에 조금 일찍 올리게 되었습니다 :)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뵈어서 분량을 길게 쓰려는 욕심에 글이 망글이 된 듯한 기분은... 기분 탓이겠죠 <
더불어 오늘은 요 밑에 닥터스 소개 사진을 같이 올려요! 처음에 닥터스 시작하기 전에 소개글 쓰면서 올렸던 건데, 여기에는 안올렸던 것 같아서 올려드립니다 :)
(표지와 소개사진까지 모두 만들어주신 하래윤 여신님 사랑합니다 b )
플러스로 잡담 조금만 더 할게요!
메일로 오, 나의 여신님 보내드렸는데 이걸 중편으로 늘릴까 고민 중이에요. 오, 나의 여신님에 대한 소견을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아 그리고 댓글에 대한 리댓글은 차차 달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게으른 저를 용서하세요....
그럼 여러분 모두 즐거운 감상시간 되시길 :)
+ 아 브금이 갑자기 에러를 먹네요ㅠㅠ 브금... 하..
* 의학 관련 종사자 분들 언제든지 댓글과 쪽지 남겨주세요! 언제나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적은 둥글게 둥글게.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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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스(The Doctors) Op. 3
“선생님, 여기 좀 와주세요!”
오후의 응급실. 여느 날처럼 응급실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밖의 날씨는 화창한데, 이 안은 마치 지옥처럼 불구덩이 같다. 여기저기서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사실, 응급실에 늘 중증 환자가 가득한 것은 아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응급실에는 항상 긴박함이 가득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감기나 장염, 소소한 외상 환자 등등. 보통은 경상 환자가 대부분이다. 보통 응급실에서는 문진을 한 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진단을 내리며 중증 환자의 경우 다른 과에 노티(알림)을 하는 것이 일이었다. 허나 그 와중에도, 분명히 위급한 환자들은 있었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과 의사들. 그리고, 가장 바빠 보이는 인턴 3인방. 성종은 이미 한 쪽에서 압뻬(맹장염) 환자를 보고 있었고 동우는 너스 스테이션(nurse station : 간호사실) 앞에서 차트 기록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드레싱(dressing : 상처 소독)을 하던 우현이 도구를 간호사에게 넘기고 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움직였다.
“무슨 일이에요?” “이 환자, 가슴에 통증 호소하고 있어요. 거기다 호흡곤란이에요!” “아… 그러니까…”
순간 당황해버린 우현이 우왕좌왕 하며 움직였다. 아, 그러니까, 뭐부터 해야하더라. ABC. A, airway. 기도. 기도확보. 아, 기도!
“기, 기관 삽관(기도 확보를 위해 기관 내에 관을 삽입하는 것) 먼저 할게요!”
우현의 말에 간호사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손에 도구가 쥐어지고, 우현이 천천히 환자의 입을 벌리게 한 후 안으로 관을 넣었다. 불빛이 밝게 비췄다. 우현의 턱 끝으로 땀이 흘렀다. 덜덜 떨려오는 손이 관을 통해 느껴졌다. 아, 안 들어가… 제발 들어가라, 제발…!
“뭐하냐, 너.”
흐익. 순간 우현이 온 몸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듯 온 몸이 찌릿하게 머리부터 발 끝까지 돌았다. 순간 그대로 멈춰서 지옥 문이라도 열린 마냥 그의 등 뒤에서 뜨겁게 불이 타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쩐지 등골에 식은 땀까지 흐르는 게, 이게 바로 헬 게이트라는 건가 하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 느껴져 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우현은 벌써부터 하루에 몇 십 번도 넘게 까이는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 예상하며 천천히 뒤돌았다. 역시, 악마였다.
“야, 넌 할 줄 아는 게 뭐냐.” “죄송하면 어쩔 건데.” “네?” “죄송하면 어쩔 건데. 죄송하기만 하면 돼? 그럼 숨 못 쉬던 환자가 갑자기 일어나 숨이라도 쉰대?”
아니, 그게 아니라… 우현이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며 고개를 푹 숙이자, 신랄하게 말을 내뱉던 명수가 표정을 차갑게 굳힌 채 우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인턴으로 들어왔으면서 니가 하는 일이 뭐냐. 밥 축내는 거? 아님 당직실 침대 하나 차지하는 거? 병원에 현장 체험 학습하러 왔냐?” “야.”
명수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우현이 순간 두 눈을 꽉 감았다. 예, 예 선생님! 우현이 고개를 숙인 채로 크게 대답하자, 명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꼬박꼬박 말대꾸하지마.” “…….” “대답.” “네? 아, 네!”
대답하지 말라며. 우현의 입이 순간적으로 삐죽 튀어나왔다. 우현의 고개가 위아래로 흔들리자마자, 명수가 우현의 어깨를 밀다시피 치고 지나갔다. 우현이 순간 퉁겨져 나와, 여전히 고개만 푹 숙인 채로 올려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간호사는 그 옆에서 어찌할 줄을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환자가 호흡 곤란 상태인데, 우현과 명수의 모습에 복장 터치는 것은 간호사였다. 베드에 누워있는 남자는 이미 꼴딱꼴딱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명수가 그제서야 베드로 다가가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다시 가져와요. 빨리.”
명수의 말에 간호사가 급히 삽관 도구를 들고 왔고, 명수가 신속하게 남자의 입을 벌리고 삽관을 시도했다. 순식간에 안으로 쑥 들어간 관과 튜브에 앰부(Ambu bag : 응급상황 시 호흡 기능을 보조하는 기구)가 끼워지고, 청진으로 소리를 듣던 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 이 환자 차트 좀 가져와. 이 환자 언제 들어온 환자야? 차트 어딨어?”
명수의 말에, 옆에서 동우의 손이 튀어나왔다. 손에 차트를 든 채 서있는 동우가 명수의 눈을 마주했다. 순간, 명수의 차갑게 내리 깔린 시선이 동우에게로 박혔다. 길게 찢어진 두 눈에서, 서리가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명수가 반응 없이 동우의 손에 들린 차트를 빼 들었다. 팔락 팔락, 장이 넘어가며 명수의 입이 다시금 열렸다.
“진료 기록 확인했어?” "네. pneumonia(폐렴) 있는 환자에요." "엑스레이는."
명수가 이내 차트를 동우의 손에 다시 넘겼다. 그의 표정은 전보다 많이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명수가 뷰박스 쪽으로 움직이자, 동우가 옆에서 따라갔다. 우현은 여전히 곁눈질로 흘긋흘긋 볼 뿐이었다. 가만히 서있다가, 결국 명수의 불호령에 앰부를 짜야 했지만. 여러모로 불쌍한 그였다. 명수는 옆 쪽에서 엑스레이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명수는 단박에 동우에게 지시를 내렸다.
“CT 찍어. 그리고 흉부외과 콜 넣어.” “네?” “못 들었어?” “아, 저 그게… 의심이 가는 사항을 말해야 레지던트 분들이 내려오시는데…”
동우의 망설이는 듯한 말에 명수가 째릿 노려보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차트를 들고 있는 동우에게 단 한마디만을 남겨놓고 자리를 나가버렸을 뿐이다.
“넌 눈이 없냐, 손이 없냐.” “…….” “니가 알아서 해.”
뒷감당도 알아서 하고. 팔락팔락 가운이 날리는 소리가 귓가에 박혀왔다. 동우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우현이 그제서야 빼꼼히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와… 진짜 대박. 우리 혹시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었냐? 알고 보니까 우리가 엄청 괴롭혔다거나.”
보통 콜을 하게 되면, 논문을 쓴다 던지 정규 수술을 한다 던지 등등의 본인의 일을 하다가 불려오는 경우가 많다. 한번 응급실로 불려오게 되면 환자를 보는데 30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만약 잘못 부르기라도 하면 그 날은 인턴이 아주 먼지 털 듯 탈탈 털리는 날이었다. 때문에 콜 할 때는 항상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하긴, 뭘 하든지 인턴은 늘 까이지만 말이다. 동우가 한숨을 푹 쉬고 있을 때 우현은 옆에서 열심히 앰부를 짜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 때, 옆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슴에 물이 찼잖아?”
동우가 반갑다는 듯이 돌아보았다. 성종은 진단도 곧잘 하곤 했었다. 인턴이 건방지다는 소리도 많이 들은 그였지만, 그는 아직까지 오진을 내린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방지단 소리도 어디론가 쏘옥 들어가버렸다. 뭐, 수석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동우는 마치 구원의 빛이라도 얻은 것처럼 똘망똘망한 눈으로 성종을 쳐다보았다. 봐봐. 엑스레이 사진을 보던 성종이 펜으로 화면을 툭툭 건드렸다. 성종이 동우의 시선을 유도하며 말했다. 그가 가리키는 곳에, 하얗게 무언가가 칠해진 것처럼 차있었다.
“우측 폐가 찌그러졌잖아.”
어어, 야! 우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두 사람이 빠르게 움직였다. 일단 먼저 스트레쳐(이동식 베드)를 끌고 환자를 CT실로 옮겨야 했다. 동우가 다른 오더리(남자 간호사)와 함께 베드를 움직였다. 그는 우현에게서 앰부를 넘겨 받고, 그에게 말했다.
“미안. 흉부외과에 콜 좀 해줘.” “어, 야! 뭔 줄 알고!”
우현의 말이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동우와 오더리가 빠르게 스트레쳐를 끌고 환자와 함께 사라졌다. 우현은 순간 벙 쪄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성종은 어느새 사라져버린 건지, 머리털도 보이지 않았다. 우현은 한 숨만 푸욱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동우의 뒤를 쫓아가고 싶었지만 인턴이 둘이나 자리를 비우면 안되니 섣불리 자리를 이탈할 수도 없었다. 화장실도, 식사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바쁘게 돌아가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현은 자신의 한심함에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 인턴 생활을 한지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까지도 기관 삽관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다. 우현이 멀거니 서서 혼자 손만 꼼지락거렸다. 기관 삽관. 이렇게 관 넣고, 기도 찾고. 확인하고. 그럼 되는 건데, 할 수 있는데 나도. 왜 환자만 보면 못하는데 이 멍청한 몸은! 우현이 괜히 머리만 마구마구 두들겼다. 엑스레이나 마저 확인해야겠다. 우현이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뷰박스로 다가갔다. 가운이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앞에 서서 상체를 숙인 채 사진을 확인하던 그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그의 머리로 동우와 성종의 대화도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건…
“농흉이네.”
에? 순간 우현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엄마야. 순간 우현은 놀라서 상체를 뒤로 빼버렸다. 옆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이, 코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갈색 빛의 머리에 쪽 찢어진 눈. 하얀 피부. 우현의 눈에 하나하나 그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 잠시만. 갈색머리?
“농흉(가슴에 고름이 차는 것) 가지고 진단을 내리네 마네, 한 건 아니겠지.” “너, 지망 과가 어디야?”
뷰 박스를 보던 남자가 고개를 들어 우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찰랑이는 갈색 빛 머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현이 순간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는지 침을 꼴깍 삼켰다. 누군지도 모르는데 몸은 왜 자동으로 긴장하고 있는 걸까. 남자의 물음에 우현이 순간 머리가 포화 상태라도 된 듯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누구신데 그걸 물어보… 우현은 말하려다 말고 순간 머릿속을 스쳐는 장면에 입을 다물었다.
‘흉부외과 과장, 김성규.’ ‘한달 전인가, 새로 오셨다고 들었어.’
아! 우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뜸 허리부터 푹 숙였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녕하십니까! 저는 남우현이라고 합니다!”
다름 아닌, 흉부외과 과장 김성규였다.
“말고.”
네? 흉부외과 과장이라는 말에 순간 잘 보여야겠다! 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꾸벅 인사를 했지만 그와 동시에 들려온 성규의 낮은 중 저음의 목소리에 그는 순간 얼 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우현이 당황해서 다시 되물었다. 그의 말에, 성규의 쭉 찢어진 두 눈이 우현을 향했다.
“질문한 거 어디로 들었어? 지망 과가 어디냐고.” “흉부외과는 아니겠지.”
뚝. 순간 우현이 말하려던 입을 다물어버렸다. 성규의 표정에 떠오른 마치 ‘니가?’ 하며 멸시하는 듯한 표정에 우현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아하니 처음부터 응급실에서 자신의 허둥대는 모습을 지켜본 모양인데, 거기다 대고 ‘흉부외과 지원합니다!’ 라고 말하면 당장에 안 돼. 라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우현의 얼굴에 먹구름이 가득 꼈다. 오, 어머니. 저를 왜 이렇게 낳아주셨나요.
“설마 흉부외과겠어. 아무리 사람이 궁하다고 하지만 어중이떠중이가 지원할 과가 아닌데.” “예?”
성규의 비아냥 섞인 말에 우현이 ‘어떻게 알았지’ 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쳤다. 그의 티나는 표정에 성규가 비웃듯이 말했다.
“병원에 소문이 파다하던데. 실습생보다도 못한 1년차 인턴이 비인기 과인 흉부외과를 지원할거라는 소문이.” “…….”
그의 갈색 머리가 흐트러졌다. 순간 우현의 시선이 그의 하얀 얼굴로 갔다. 하얀 얼굴에 곱상하게 생겼는데, 그의 붉은 입술에서는 독설이 마구 튀어나왔다. 마치 가시처럼 우현의 가슴을 쿡쿡 찔러온다. 그의 두 눈이 한껏 가라앉았다. 물론 알고 있다. 자신이 얼마나 무능력한지, 얼마나 한심한지도. 환자만 보면 두근두근 뛰어오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는 얼마나 바보 같은 의사인지도. 아니, 사실은 내가 의사인지도 모르겠다. 우현은 말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그의 턱 끝으로는 어느 새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늘 환자만 마주하면 긴장감 때문에 늘 온 몸을 땀으로 샤워하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사람 앞에서도 긴장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동경하던 흉부외과의 과장이 앞에 서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단박에 ‘넌 안돼’ 하고 직격탄을 맞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만 가 봐.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아니면 계속 거기 서있다가 환자 다 죽이고 너도 쫓겨나던지.”
무미건조한 그의 말이 우현의 심장을 마구 쑤셨다. 명수에게 혼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에게 혼날 때는 그저 한바탕 욕설을 듣는 기분이라면, 성규에게 듣는 말은 정곡을 찌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명수에게 독설을 들을 때보다 더욱 가슴이 아팠다. 우현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밑으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땀인지 눈물인지,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는 허리를 숙여 성규에게 인사하고는 타박타박 걸어서 자리를 벗어났다. 성규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엑스레이 사진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작게 우현의 모습이 점점 멀어져 갔다. 그리고, 성규의 옆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긋나긋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심하게 하실 필요는 없잖아요.”
길게 흩뜨린 머리를 한 채 가운에 손을 찔러 넣고 서 있는 성열이었다. 그는 양 손에 커피를 든 채 서있었다.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과일 음료. 신경 꺼. 성규가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레 말한 후 뷰 박스에 시선을 꽂은 채로 말 없이 성열이 주는 커피를 받았다. 흘긋 보던 그가 성열을 돌아보았다. 그의 피곤한 듯한 두 눈이 가늘게 찢어졌다.
“왠 과일 주스.” “그냥요. 비타민이라도 섭취해볼까 하고.”
의사라는 놈이. 음료에 얼마나 비타민이 들어있다고. 생과일 먹어, 그럴 거면. 성규의 건조한 말에 성열이 쪼로록 음료를 마시며 퉁명스레 대답했다. 내가 바보에요, 그것도 모르게.
“달잖아요, 음료가.” “Xiphodynia(칼돌기 통증 : 칼돌기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것)인데, 제거수술이랑 국소마취제 주사 치료 사례 정리 끝났어요. 계속 교수님 찾아 다니다가 여기 계신단 소리 듣고 왔죠.”
성열이 길에 늘어진 앞머리를 입 바람으로 불어 넘기며 말했다. 논문은 봤어? 성규의 말에 성열이 퉁명스레 대답했다. 어련히 알아서 할까봐. 이미 참조했죠. 성규는 말 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빨대를 입에 물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올렸다. 에, 퉤. 뭐야, 시럽 안 넣었어?
“무슨 아메리카노에 시럽이에요. 애도 아니고.” “애 맞으니까 다음부터 시럽 넣어서 와.” “그럼…” “시럽 반 커피 반이면 죽는다.”
하여튼 눈치도 빠르셔. 성열은 피식 웃으며 성규의 갈색 머리를 바라보았다. 그 머리 좀 다시 염색하면 안돼요? 병원에서 보기 싫게. 그는 너스 스테이션에 기대 서서 성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성규는 일부러 더 보라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커피를 든 채로 상체를 들어 뷰 박스에서 눈을 떼고 커피를 마시며 걸어 나오자, 성열이 흘긋 뒤의 사진을 보았다. 쪼옥 쪼옥 그의 입술은 여전히 빨대를 잘근잘근 물고 있었다.
“어라, 폐가 찌그러졌네요. 고름도 차고.”
성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의 붉은 입술이 빨대에서 떨어졌다. 이 정도는 보통 교수가 나서서 하지 않는 편이었다. 농흉 정도는 레지던트들이 주로 하곤 했는데, 직접 한다니 성열이 놀라 되물었다. 성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성열을 지나쳐갔다. 성열이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 붙으며 물었다.
“그냥 저한테 넘겨주셔도 되는데.” “너 못 믿어.” “아 좀, 시끄러워. 흉관 삽입해서 끝날 거면 맡겼지. 늑간신경차단술(가슴 수술 중 미리 통증을 감지하는 감각 신경을 무디게 하여 통증을 덜 느끼게 하는 방법) 병행해서 수술해야 해. 할 일 다했으면 환자나 봐.”
성규가 귀찮다는 듯이 성열을 밀어내었다. 한가해? 성규가 쪽 찢어진 눈으로 성열을 째려보았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성열을 뒤로 하고 응급실 문 앞에 섰다. 그 와중에도 몇 번 흘긋흘긋 돌아보던 그는, 입 모양으로 성열에게 말했다. 따 라 오 지 마. 성규의 모습에 괜히 못 말린다는 듯 웃던 성열이 쪼르륵 빨대만 쭉쭉 빨아댔다. 허나 내심 걱정 됐는지, 꽤나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성규를 쳐다보았다.
“교수님, 진짜 괜찮으시겠어요?” “또 뭐가.” “수술이요.”
순간, 성규의 얼굴이 굳어졌다. 문을 잡고 있던 손이 돌처럼 굳은 듯 멈췄다. 성열은 그제서야 아차- 하며 입을 턱 하고 막았다. 그리고 눈동자를 떼굴떼굴 굴리며 말 없이 서 있는 성규의 눈치를 보았다. 요, 방정맞은 입 같으니라고. 성열은 괜히 입을 찰싹찰싹 때리며 어휴, 하고 슬쩍 성규를 쳐다보았다. 성규의 손이, 꽉 쥐어졌다. 마치 보란 듯이.
“커피 잘 마셨다.”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와 동시에 한 마디만을 남겨놓고 그는 성열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교수님! 성열이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나가버린 그였다. 성열은 괜히 푹푹 꺼질 새라 한숨만 쉬어댔다. 괜히 상처를 건드린 기분이었다. 그나마, 성열이었기에 성규가 아무 말도 없이 넘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성열과 성규는 예전부터 아는 사이었다. 4년 전, 성규가 교통 사고로 의식을 잃었을 때 그는 지금의 이 병원으로 실려왔었다. 그 당시 그의 복부와 가슴, 그리고 팔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상태였고 수술 직후 회복기에 만난 것이 성열이었다. 성규의 피검사부터 각종 검사까지 도맡아 했던 성열은 그와 자연스레 친해졌다. 그 당시 기억으로는, 그는 정확한 자신의 상태를 몰랐기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이었다. 무척이나 밝고 장난기도 많았다고 해야 하나, 팔에 대해 정확한 진단을 들은 후부터 달라졌지만. 어쨌든 그 때 친해진 둘의 인연이 지금까지 닿아있는 것이었다. 평상시에는 형이라고 불렀지만, 병원 내에서는 교수님이라고 불렀다.
성열은 괜히 머리만 긁적였다. 그 때에, 성규의 팔은 거의 신경이 죽은 상태였고 잘라낼 위험까지도 있었다. 다행히 절단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었지만 그 때의 후유증으로 인해 성규는 지금까지도 간간히 재활과 치료를 동반하고 있었다. 거의 완치 되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씩 그의 팔에는 마비가 찾아왔다. 그것을 아는 성열이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성규가 팔 때문에 수술도 잘 하지 않고 연구실에만 박혀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병원에서의 소문 역시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잘못된 이야기라고 직접 말해주고 싶었지만, 괜한 오지랖을 떠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깝게 지켜볼 뿐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수술이 본인에게로 넘어와 밤낮 구분도 없이 일해야 했지만 결코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외과 의사에게 있어 손을 다친다는 일이란 어떤 것인지, 어떤 기분인지 알기 때문에.
“에이씨.”
성열이 머리를 벅벅 마구 헤집으면서 으어, 하는 괴상한 소리를 냈다. 교수님 원망은 안 해요, 안 하는데… 너무 피곤한 건 사실이라. 흐윽. 성열이 앓는 소리를 내며 너스 스테이션 위로 엎어졌다. 간호사들의 시선 따위 느껴지지 않는 듯,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엎드려 있었다. 할 일이 태산이었지만,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까 생각하는 그였다. 당직실에라도 가서 조금이나마 자고 싶었다. 휙 고개를 들고 시뻘개진 눈을 부릅 떴다. 흉부외과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나라도 힘내야지. 그는 당직실로 올라갈 생각으로 상체를 들었다. 그 순간,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마자 그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눈 앞에 나타난, 한 사람 때문에.
“뭐하냐.” “…어.”
또랑또랑하고 맑은 눈. 깊은 눈매. 명수의 눈이 보였다. 성열은 순간 놀라 얼굴을 뒤로 뺐다. 어라. 어라? 김명수 너,
“너 지금…”
나한테 말 걸은 거야?
“오해 하지마. 원해서는 아니니까.”
성열의 얼 빠진 반응에 명수는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성열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로 그는 손에 들고 있는 차트로 시선을 박았다. 뭐? 성열이 순간 저도 모르게 뛰어오는 심장을 느꼈다. 아주 짧은 그 순간에, 그의 말 한마디에 뛰던 심장을.
“64세. 남성. 협심증 같다.”
그리고, 그의 말 한마디에 식어버린 심장을.
“BP(Blood pulse : 혈압)도 높고. 고혈압에 항고혈압제 복용하고 있었고. 전형적인 증상을 호소해. 심장 초음파 찍어보면 알겠지만.” “…응.”
명수의 말에 성열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명수에게서 차트를 건네 받았다. 커피를 마신 것도 아닌데, 괜히 입 안이 쓰다. 뭐라 말할 새도 없이, 명수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성열이 한 손에 차트를 쥔 채로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언제쯤, 언제쯤 가까워질까. 언제쯤 우리는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까. 성열의 두 눈이 애처롭게 휘어졌다. 기억의 파편이 조각조각처럼 그의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의 등이 성열의 두 눈에 박혔다. 마치 거짓말처럼, 환청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 “우린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어.”
절대로. 명수의 말이 성열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마치 착각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 듯 했다. 쓰다, 쓰리다. 성열의 입가가 바람 빠진 듯 처졌다. 두 눈이 밑으로 천천히 내려 앉았다. 알고 있는데도, 네가 하는 말은 언제나 독하구나. 정말로, 마치 독이라도 되는 듯해. 성열의 입가에 억지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응, 알아 나도. 마음과 다르게 제 멋대로 움직이는 입술이 말한다. 명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한 번이라도, 뒤돌아보지.
입은 거짓말을 하지만, 눈은 거짓이 아닌데. 성열의 두 눈가에 눈물이 차 올랐다. 뿌얘진 시야로 멀어져 가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애써 부끄러움을 숨기기 위해 두 손에 쥔 차트로 얼굴을 가렸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이 종이를 적셨다. 이성열, 멍청하긴. 언제까지 질질 짤 거야. 성열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의 시야 끝은 아직도 명수를 붙잡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돌아보지마.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 너는, 그렇게 네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너스 스테이션 앞 쪽에 서 있는 성열의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성열 혼자 멈춰버린 것처럼. 그는 한동안 그곳에 홀로 서 있었다. 차트에 눈물로 번진 잉크 자국이 천천히 마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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