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02
w. 일공공사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잘자아- 라고 말꼬리를 늘리던 정한은 항상 그랬던 것 처럼 내가 전화를 끊기 전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핸드폰을 베개 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그를 처음 봤던 때를 기억해낸다.
겨우 반년 전이였다.
나는 예비 고1이였고, 윤정한은 막 청소년을 졸업한 20살이였다.
생생하게 기억난다.
영어 학원에 처음 들어섰을때, 나는 울음을 참으려 볼 안쪽 여린 살을 씹고 있었다.
안쪽으로 찬 시계는 시침 소리를 요란하게 내고 있었다.
강의실 안에 들어서 짐을 책상에 풀어놓고 핸드폰을 꺼냈다.
[학원 잘 다녀와 ^^.]
엄마의 문자에 울음이 터져나올것 만 같아 볼을 씹고있던 이에 힘을 더욱 주었다.
눈 밖으로 흘러내릴것만 같은 눈물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눈물이 속눈썹을 타고 툭툭 흘렀다.
누가 볼새라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고 종이 위로 떨어진 눈물을 가디건 소매로 닦아내었다.
큰 강의실에 들어오는 선생님에 떠들던 아이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니, 어쩌면 정한때문이였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을 따라 들어온 보조 알바생이였던 그가 너무 이뻐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뒤로 돌아가 서는 그를 여자아이들이 곁눈질로 힐끔거렸다.
나는 뒤돌아보는 아이들 중 누구라도 내 눈물을 볼 수 없게 눈을 크게 깜빡였다.
수업이 끝났고, 나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구보다 빨리 가방을 싸고 일어선 나는 강의실을 벗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학원 밖으로 나가려는 때, 누군가가 내 손목을 잡았다.
아, 하고 고통에 찬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시계 밑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천천히 뚝, 뚝, 떨어지는 핏방울에 내 손목을 잡은 사람도 놀란듯 굳어버렸다.
동그랗게 뜬 눈, 울것 같은 표정,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는건 정한이였다.
말없이 내 시계를 푸르고 그 위에 손수건을 꽉 묶은 정한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건네주려고 했던 문제지를 내 가방에 넣어준 그가 잘가, 하고 작게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피가 물들어 버린 손수건을 바라보았다.
물에 여러번 씼었지만 여전히 얼룩이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목놓아 울어버렸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너무 따듯했기 때문이였다.
손목 가득한 상처가 물에 닿아 따가워졌다.
손목이 아파서 더 크게 울어버렸다.
울던 도중에 울리는 핸드폰에 놀라 울음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게 쉬려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익숙한듯 낯선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그였다.
[힘들어도 그러지 마요, 내가 들어줄게요.]
그의 다정하고 따듯한 목소리는 날 더 울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어버렸다.
목 놓아 엉엉 우는 나에도 그는 괜찮다며 나를 다독여주었다.
그는 정말이지 천사같은 사람이였다.
[암호닉]
일공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