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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석진
"헤어지자."
이별은 생각보다 쉬웠음. 내가 여지껏 만난 남자들 중에서도 만난 게 후회 안 될 정도로 괜찮은 남자였고.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집착이 너무 심하다는 거. 하나를 가지고 싶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가졌음.
나는 이별통보를 받고 고개를 끄덕였음. 나한테는 그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았고, 서로 행복했으니까.
집에 가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가만히 가로등 밑에서 눈물을 닦았음.
눈물을 다 닦고 나서 바닥만 퀭하게 보는데 내 뒤에 뭔가 그림자가 드리워져서 뒤를 돌아봤더니 얘가 있었음.
매일 소리 없이 다가와서 이 정도는 익숙해졌었음. 내가 무슨 용건이냐고 물으니까 아까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처럼 웃었음.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후회 없어서 좋았다고 말하려는데 얘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음.
손목을 잡더니 넘어지면 입술 부딪힐 거리만큼 다가와서는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봄.
"이제 좀 괜찮네. 죄책감이 조금은 사라지겠다."
뭔가 불안해서 얘가 잡은 손목을 빼려고 하니까 얘는 손에 힘을 더 줬음.
우린 헤어진 사이라고 이러면 안 된다고 말하니까 얘는 픽픽 웃으면서 내 다른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 쥠
뭔가 소름이 돋아서 노려보니 갑자기 얘는 입을 맞췄음. 술냄새는 엄청 진동하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아무런 미동 없이 고개만 끄덕이니까 바보같다면서 내 머리를 한 번 헝클었음.
그리고 잠시 나한테서 떨어진 뒤에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폈음. 사귀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음.
담배를 피면서도 얘는 계속 나를 주시했음.
"왜 도망 안 가?"
"나만 가지고 싶고, 나만 만지고 싶고, 나만 보고 싶어."
"이렇게 애착이 가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그러니까, 부탁 하나만."
"죽어서도 내 옆에 있어줘."
2. 전정국
"누나 오늘도 그 이상한 사람한테 문자 왔어요?"
안지 한 1년 된 친한 동생임. 싹싹하고 착해서 주위에 얘를 좋아하는 사람이 엄청 많음.
근데 얘는 유독 나한테만 잘 해주고, 챙겨줘서 과 후배들한테 내가 미움을 좀 사는 편.
근데 얘를 알고 난 후부터 나한테 모르는 번호로 이상한 문자들이 온다는 거임.
오늘 낀 목걸이 예뻐요 라거나 너는 하얀색이 잘 어울려요 라거나. 물론 나는 언제나 무시했음.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얘랑 약속을 잡고, 약속 시간보다 좀 전에 도착 하려고 가고 있는데 문자가 옴.
'오늘은 누구 만나러 가요? 그리고 너한테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왜 딸기 스무디만 먹어요? 난 딸기 엄청 싫어하는데~'
'이쯤 되면 내가 누군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나라면 궁금해 미쳤을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
또 오는 문자에 짜증이 엄청 났음. 그래서 버릇처럼 머리를 뒤로 넘기니까 또 문자가 옴. 그래서 짜증나서 확인하려고 했더니 얘가 옴.
"누나 먼저 와있었네요? 왜 이렇게 일찍 와요, 진짜."
얘랑 나는 매일 가는 것 처럼 카페에 갔음. 그리고 난 딸기 스무디를 시켰고.
오늘따라 연속으로 온 문자 때문에 화가 나서 뾰루퉁하게 테이블만 쳐다보는데 뭔가 이상한 거임.
원래 얘가 폰이 두개였나. 매일 가지고 있던 아이폰6 이랑 또 다른 2G폰이 있었음.
언제 폰을 바꿨냐고 물어보니까 얘는 당황한 듯이 웃었음. 그리고 타이밍에 맞춰 주문 한 것들이 나와서 얘는 그걸 가지러 갔음.
"누나, 근데 저 누나한테 궁금한 게 하나 생겼어요. 아니, 두개."
이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음. 왜 몰랐을까, 문자 속 말투는 얘 말투랑 정말 판박이었음.
그 궁금한 게 뭘냐고 한 번 말 해보라고 하니까 얘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었음.
그리고 살짝 얼굴을 굳힌 후에 내가 시켰던 딸기 스무디를 자기 앞으로 가져간 후에 빨대로 계속 빙빙 돌려만 댔음.
"첫째, 왜 누나는 딸기 스무디만 먹어요? 난 딸기 엄청 싫어하는데."
"그리도 둘째, 왜 나 만날 때는 하얀 옷 안 입어요? 그 형 만날 때는 입으면서."
"이 짓도 조금만 하다가 끝내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는 거 있죠. 왜인 줄 알아요?"
"누나는 겁에 질린 표정이 제일 예쁘거든."
3. 김남준
"정신이 좀 들어요? 저희 집 앞에 쓰러져 계시더라고."
분명히 산 속으로 납치가 됐었던 것 같음. 도망치려다가 넘어져서 의식을 잃은 것 같았는데 깨보니까 이 남자네 집
남자는 엄청 살갑게 웃으면서 몸은 좀 어떠냐 뭐 이런 거 묻고 밥 해줬는데 존맛 꿀맛이었음
그러다가 남자가 티비 좀 보자 그래서 티비 켜서 뉴스 보는데 요즘 화재인 살인마 얘기가 나옴
그 살인마한테서 도망친 여자가 한 명 있는데 여자의 진술로 따르면 엄청 친절하고, 순하게 생긴 상. 그리고 행동거지도 친절하다 그럼
어쩜 세상이 저럴까 하고 남자를 슥 쳐다봤는데 아무런 표정 없이 뉴스를 보고 있었음. 존나 섬뜩
그냥 며칠 동안은 남자가 하자고 하면 다 고분고분 다 하면서 지냄.
"근데 그 쪽은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된 줄 몰라요? 진짜, 아무것도 몰라?"
ㅇㅇ 모르는 걸 어쩌라고 ㅎㅎ.. 그냥 암것도 모르겠다는 표정 지으니까 씩 웃음
그리고는 맨날 했던 것 처럼 티비 틀어서 뉴스채널 틂
뭐 어쩌란 거지? 하면서 뉴스만 계속 보고 있었음
'일명 친절한 살인마라고 부르는 김남준. 그의 몽타주가 나왔습니다. 만약 보신 분이 계신다면 꼭 가까운 경찰서로….'
"저 얼굴이 누구 얼굴로 보여요?"
걍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음; 나도 이제 죽는건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무섭고 슬퍼서
남자는 티비를 보고 있다가 눈동자만 돌려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봄
"죽이지는 않을게, 니가 좋아졌거든요. 진짜로."
"내가 말 했죠. 너 우리 집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니가 도망쳐 나온 집도 우리 집이었어요. 못 알아들어요? 너는 납치범한테 다시 납치 된 거야. 바보같긴."
"그래서, 저녁은 뭐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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