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인 거 안다. 사람 보낼 테니까 집으로 오너라'
"아버ㅈ"
뚝-
또 아버지가 사람을 쓰셨나 보다. 어쩌면 지금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젠 짜증을 넘어서 해탈의 경지에 오를 지경이었다. 대충 폰과 가방만 챙겨 방에서 나왔다.
"가는 거야?"
"..."
"슈가? 지금 까? 조금만 더 있다 가지"
"..."
"슈... 가?"
"... 나한테 말 걸지 마"
그러고는 고아원을 나왔다. 나오자마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차에서는 항상 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언제 맡아도 아버지의 냄새는 항상 역겨웠다. 아버지를 싫어해서 일까 항상 아버지의 물건만 보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오곤 했다. 부산에서 대구까지 얼마 안 되는 거리지만 이 역겨움과 싸워야 한다는 게 싫어서 애써 잠을 청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차도 아버지의 서재도 아닌 내 방이였다. 누군가 나를 옮겨놓기 위해 내방에 들어와야 했을 것이다. 나를 옮겨준 건 둘째치고 그냥 외부인이 내방에 들어온 게 싫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문을 잠그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문고리와 침대를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찝찝함에 결국 이불을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는 듯 장롱을 열어 새 이불을 깔았다. 찐긴 이불은 방문 앞에 놓아두었다. 나중에 아주머니가 치워주실 것이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웠다. 허리 쪽이 불편해서 일어나보니 휴대폰이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다시 누워 액정을 확인했다.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이 문자를 보면 서재로 오너라.] 아버지였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든 빨리 끝내고 자고 싶었기 때문에 서재로 향했다. 아버지가 계셨다.
"무슨 일로 부르신 거죠?"
"이리 와 보거라"
"무슨 일이신데요"
"와보라니까"
나는 한숨을 쉬며 아버지의 옆으로 갔다. 아버지는 종이와 사진 여러 장을 건넸다.
"읽어보거라"
아버지가 건넨 종이에는 아까 고아원에서 봤던 박지민의 프로필과 사진 몇 장이 있었다.
"9년 전 그 일이 기억나느냐"
"..."
"그때 그 집에서 살던 아이라고 하는구나"
"..."
"그 고아원에서 산다고 하니 당분간 가지 말거라"
"... 싫은데요"
"그 아이가 너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몰라 그 아이가 기억하기라도 한다면 우리 회사에 그만큼의 피해가 올 수도 있어"
"왜 아버지는 항상 저보다 회사가 중요하세요?"
"뭐?
"할 말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기야, 민윤ㄱ..!"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서재를 빠져나와 내방으로 갔다. 그리고 내방 침대에 누워 프로필을 천천히 살펴봤다.
'이름:박지민
생년월일:1995.10.13 (만 14살)
질병:약간의 천식과 비염이 있음
특이사항:9년 전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3주 전에 있던 고아원이 망해 이 고아원으로 옮겨옴. 또래에 비해 어휘력이 떨어지며 지능이 낮음.'
나는 그 프로필을 보고 실소가 터졌다.
"아버지도 완벽하지만은 않네 안 보이는 것도 모를 정도면"
나는 다시 프로필을 훑어보았다. 프로필은 허접하기 그지없었다. 아마도 아버지 성격상 미처 조사를 끝내지 못한 프로필을 받아낸 것 같았다. 아버지는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이 조급해하셨다. 그리고 조급해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느긋하고 여유로운 척 연기를 하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주위 사람들은 다 나를 보며 저런 아버지를 두어서 행운이라고 했다. 나는 행운 보다 불행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을 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주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아마 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런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게 싫었다. 그럴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이 실망스럽고 또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그나마 피할 수 있는 곳이 고아원이었는데 그것마저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한숨을 쉬며 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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