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야?"
뜬금없는 태민의 물음에 종인이 무뚝뚝한 시선을 그에게 두었다.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꽤나 오랜시간이 걸렸다.
칭밖을 바라보는 태민의 눈동자는 조금 떨리는것 같기도 했고 담담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태민은 무표정했다. 종인과 마찬가지로.
침묵이 어색하진 않았지만 친구냐고 묻는 태민의 물음이 꽤나 괴로웠는듯 종인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무슨 뜻인데."
"말 그대로,우리 친구냐고."
종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리에 앉아서 보던 자습서를 탁- 소리나게 덮어버리고 교복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어폰을 꺼내들고 휴대폰에 연결한뒤 자신을 등지고 멍하니 창가에 서있는 태민에게 다가갔다.
종인은 잠깐동안 그의 긴 속눈썹이 음영드린 그늘진 짙은 쌍커풀진 눈가를 바라보다가 태민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이어폰을 귀에 꼽아 주었다.
태민이 갑작스런 종인의 행동에 당황스러운듯 이어폰을 빼려고했으나 종인의 손이 더 빨랐다.
종인은 두 손으로 이어폰을 단단하게 고정시키고 태민과 한참동안 시선을 교차했다.
종인이 무어라고 말하자 태민이 그의 말을 알아들으려 애쓰는 사랑스러운 눈을 했다.
부드러운 선율속에 그의 입술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전혀 알아 들을 수 없었다.
그의 따뜻한 짙은 갈색의 눈동자에서 자신을 발견한 태민은 묘한 기분에 휩싸여서 반쯤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해,많이.
종인이 말한 다섯 글자를 무언의 말로 읽어낸 태민이 입술을 다물었다. 서로의 얼굴을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건 처음이었다.
잔잔한 선율조차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이어폰을 감싸던 종인의 손이 자연스럽게 태민의 볼로 내려오고 곧 태민은 벽에 기댄채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울줄은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부드럽고 따뜻해서 태민이 두 팔로 그의 어깨를 감싸서 목을 어루어만졌다.
한참을 오후의 햇살에 녹아내리고 있던 깊은 분위기가 익숙한 얼굴이 교실로 들어섬에 부터 바뀌었다.
태민이 급하게 그의 목을 졸라버렸다. 진짜 깬다. 종인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태민의 어깨를 밀쳤고 태민이 끼고있던 이어폰은 보기좋게 떨어져나갔다.
"너희 점심 안 먹고 뭐했니."
종인과 태민을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여선생이 물었다. 태민이 종인이 앉는 책상에 걸터 앚으며 서투르게 웃어보였다.
여선생의 눈은 집요했지만 태민과 종인은 서로를 바라볼뿐 웃음만 꾹 참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해사하게 웃는 둘을 보며 여선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시 교실 밖으로 걸음을 향했다.
종인이 책상에 걸터앉은 태민에게 다가가서 다정하게 웃었다. 그의 말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대답은 유추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는 키스하지 않으니깐, 너를 내버려 둔거야.
그 날 태민은 하루 종일 수업에 집중 할 수 없었다. 곧잘 수업에 집중하던 태민의 공책에는 '보고싶다,좋아한다.'라는 주어없는 문구가
가득 적혀져있었다. 태민이 종인이 앉은 뒷자리를 힐끗 쳐다보자 구제불능인 종인은 따스한 바람에 못이겨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아이가 짜증스럽게 태민의 어깨를 두드리며 구깃구깃한 종이를 건넸다.
스프링공책을 찢은건지 영 예쁘지 않았지만 태민은 머쓱하게 구깃한 종이를 천천히 펼쳤다.
[너 신발 누가 훔쳐갔더라. 업어 줄께 너희 집까지.]
태민이 못 말린다는듯 바람빠지는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그리고 종이 구석에는 졸음에 못이겨 들쭉날쭉한 크기의 글씨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신발 내가 훔쳤어.]
태민이 교복 주머니에 종이를 조심스레 넣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다시 담을 수 없다고.
태민은 느꼈다. 그 현재를 느끼는게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종인과 태민은 아직까지 학창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