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05
애초에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아프진 않았겠지.
**
전원우와 눈이 마주쳤던 그날 이후,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저 눈만 마주쳤을 뿐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인다고 해야 하나. 알 수 없었던 그 애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보충 수업을 들을 때면 너무나도 불편했다. 내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전원우가 그 때의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까봐. 혹시라도 전원우가 그 때의 일을 언급을 한다면 그냥 지나가다가 눈이 마주친 거라고 대답하면 되는 거였지만, 나는 어째서인지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다르게 전원우는 내게 말을 건다든가 하지 않았다. 그저 원래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각자 수업을 듣고, 수업이 끝나면 집으로 향했을 뿐. 하루 이틀은 전원우 때문에 마음을 졸이다가도 평상시처럼 행동하는 그의 모습에, 나만 혼자 신경을 쓰는 것이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마음을 비우고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 됐어. 따지고 보면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그냥 나 혼자만 너무 과민반응이었던 거니까. 이제 쟤랑 엮일 일은 없겠지.
그러나, 전원우와 다시 얽히게 된 건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이 흐른 뒤였다.
*
급한 일이 있다며, 얼른 휴게실로 와보라는 김민규의 문자에 나는 어기적 어기적 방을 나섰다. 급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천천히 나가냐고 묻는다면, 분명 급한 일이 아닐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김민규가 칭하는 급한 일은 밥 먹으러 가자든지, 공책을 사러 가자든지, 혹은 문제집을 사러 간다든지 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걸 모르고 깜짝 놀라서 달려갔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겨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귀찮아서 나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저번에 한 번 그냥 씹었다가 자신은 안중에도 없냐며 몇 시간동안은 삐져 있었던 김민규였기에 나는 하품을 찌익 하며 휴게실로 향했다. 김민규 삐지는 거 풀어주는 것보다 그냥 한번 이야기 들어주는 게 더 나았으니까.
휴게실에 들어서니 김민규가 왜 이제야 왔냐며 나를 타박해왔다. 왜. 뭔데. 내 말에 김민규는 있잖아… 하며 뜸을 들인다. 별 거 아닌 게 분명했기에 기대도 되지 않았다. 빨리 말해. 나 가기 전에. 내 말에 김민규가 입을 열었다.
"공책 사러 가자."
이럴 줄 알았어. 노트 필기를 하다가 공책을 다 썼다며, 자기랑 같이 문방구에 가자고 내 팔을 잡으며 징징대는 김민규에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일단 문방구는 독서실에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고, 밖이 워낙 춥기 때문에 따뜻한 독서실에서 나가기가 싫었다. 아니. 얘는 이런 건 혼자 다녀오면 되지, 왜 이렇게 나를 못 데려가서 안달이야. 혼자 갔다오라는 나의 말에 김민규는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할 거냐고 오히려 내게 따졌다.
"야. 누가 너한테 해코지를 하겠냐?!"
"야. 몬난아. 너는 얼굴이 무기라서 괜찮겠지만, 나는 아니거든?"
"죽고 싶냐?"
"아. 같이 가자. 나 너무 외롭단 말이야."
"웃기지 말고 빨리 갔다 와!"
"으. 매정한 것."
그래! 나 혼자 갔다 온다! 흥! 하며 나가는 김민규를 보며 나는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분명 남자앤데 하는 짓은 꼭 여고생 같단 말이야. 나는 휴게실 테이블에 엎드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저 의미 없이 인터넷만 보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가 휴게실에 들어왔다. 나는 그 인기척에 휴대폰에서 그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어?"
그때와 같은 만남.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 혼자만 그를 바라봤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서로가 알아본다는 것. 책상에 엎드려 있던 나는 전원우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전원우도 나를 보고 적잖이 당황을 했는지 내 얼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너도 이 독서실 다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해서 어버버 하고 있는데, 전원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으, 응! 바보같게도 나는 말을 더듬으며 대답을 했다.
"그렇구나…. 언제부터 다녔는데?"
"얼마 안됐어. 12월 31일부터…?"
"오. 나도 그 때 여기 처음 왔는데."
이제는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이유로 김민규랑 독서실에 온 거였으니까.
"뭔가 좀 신기하다. 여기서 이렇게 만난다는 게."
"그러게…."
"공부하다가 쉬러 나온 거야?"
"뭐… 그치. 너는?"
"나는 물 뜨러."
제 손에 들린 검은색 텀블러를 톡톡 치며 전원우는 말했다. 그 때, '김여주!' 하면서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는 김민규에 나는 놀래서 몸을 움찔했다. 야, 조용히 좀 다녀. 놀랬잖아! 내 말에 김민규는 그렇게 간이 콩알만해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냐며 위로답지 않은 위로를 건넸다. 뭐래.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하자 내 옆에 앉은 김민규는 공책을 들고선 자랑을 했다.
"이것 봐. 이쁘지?"
"어…. 정말 이쁘다."
"뭐야. 그 미지근한 반응은."
"아니야. 진짜 이뻐."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공책이 이쁘다고 말을 하지만, 김민규는 영혼이 없다며 입을 쭈욱 내밀었다. 그냥 하늘색 공책일 뿐인데 뭘 얼마나 이쁘다고 해야하는 건지. 입을 쭈욱 내밀고 있는 김민규에 나는 테이블 위에 놓여져 있는 필기구꽂이에서 네임펜을 꺼내들어, 김민규의 공책에 그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항상 뭐든 내게 이름을 적어달라는 김민규였기에 이제는 마치 의무처럼 나는 그의 모든 것들에 이름을 적곤 했다. 됐다. 이름을 적고 그에게 다시 공책을 건네니 뭐가 그리 좋은지 김민규는 헤헤 웃었다.
"나 갈게."
순간 들려오는 전원우의 목소리에 그를 쳐다보았다. 어느새 물을 다 담은 건지 전원우는 내게 내일 보자. 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에 나도 그래, 내일 봐! 하니 전원우는 씨익 웃으며 휴게실을 나섰다. 방으로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민규가 내게 얼굴을 들이밀며 물었다.
"너 쟤 알아?"
"어? 어."
"어떻게 알아?"
"쟤랑 같이 문학 수업 듣거든."
"으음…."
쟤가 문학을 듣는다고? 좀 의외네. 김민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뭔가 전원우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이 말하는 김민규에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너는 쟤 알아?"
"전원우? 당연히 알지. 쟤 유명하잖아."
"왜?"
"쟤가 이과 탑이거든."
아… 역시. 전원우가 공부를 하던 모습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가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과 탑이었구나. 그럼 너보다 공부 잘하겠네? 내 말에 김민규는 발끈하며 말했다.
"야! 나도 못하는 편은 아니거든?"
"알지. 장난이야."
"아, 자존심 상해. 나 간다. 공부할거야."
김민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책을 들고, 휴게실에서 나가 제 방으로 휙 들어가버렸다. 집에 가기 전까지는 이제 김민규 못 만나겠네. 분명 열 받아서 공부에 올인할테니까. 나는 기지개를 쭈욱 피다가 아까 전원우랑 이야기를 했던 게 떠올랐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하더라도 나는 걔가 너무나도 불편했는데, 아까는 전혀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다. 어색하기는 했지만 마음은 편했다고 해야 하나. 전원우랑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인연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었으니까. 그리고 휴게실에서 나가기 전, 나를 보며 씨익 웃던 전원우가 떠오르자, 뭔가 그를 불편하게 생각하게 했던 경계심이 풀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은 거 같아."
내가 너무 혼자 오바했던 거야. 정작 전원우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나는 기지개를 마저 피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랜만에 남자랑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왜 이렇게 두근거리지.
*
다음날. 자존심이 상해서 안되겠다며, 학교에 일찍 가서 공부를 하겠다는 김민규의 문자를 본 건 아침 7시 40분 경이었다. 원래는 항상 김민규가 나를 깨워주었기 때문에 평소처럼 그냥 자고 있었는데 이게 웬 날벼락. 수업이 8시에 시작이었기 때문에 나는 허겁지겁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배드민턴 한다는 놈이 가방도 안 들고 다녔으면서 뜬금없이 뭔 공부야…! 원래 아침은 꼭 먹고 다니던 나였지만, 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 아침 식사란 나에겐 사치였다. 나는 집에서 달리고, 또 달려서 8시가 되기 3분 전에 겨우 세이프를 할 수 있었다.
"안녕."
알고 보니까 더 반갑네. 의자에 털썩 앉아 뛰어오느라 가픈 숨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전원우가 내게 인사를 해왔다. 지금 꼴이 말이 아닌데…. 조금 민망했지만 나도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머리가 덜 마른 탓에 찬기가 더욱 느껴져 코를 훌쩍이자, 전원우가 주머니에서 뭘 뒤적거리더니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날이 얼마나 추운데. 그러다 너 감기 걸린다."
전원우가 내 손에 쥐어준 건 핫팩이었다. 방금 흔들었는지 무척이나 따끈따끈한 핫팩에 나는 그걸 볼에 갖다 대며 고맙다고 말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다가 전원우는 픽 웃으며 내 젖은 앞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의 손길이 내게 닿자마자 몸이 굳어버린 듯,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전원우는 파이팅, 하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나도 얼른 가방에서 책을 꺼내들고,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머리와는 다르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어떡해.
나 미쳤나 봐. 또 두근거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ㅠㅠㅠㅠㅠㅠ
일단 제가 이제 글은 거의 금요일에 올릴 것 같아요!
그때가 제일 시간이 널널하기 때문에 금요일마다 올리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이번주에 너무 바빠서 이번주는 못 올리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가 독방에서 그런 댓글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이 작품을 믿고 본다는 어떤 댓글을요ㅠㅠㅠㅠㅠ
간간히 제 작품을 언급해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그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늦게나마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ㅠㅠㅠㅠㅠㅠ
그런데 지금 약간 제정신이 아니어서 이야기가 조금 이상한 거 같기도 하고
너무 그냥 생각나는대로 적은 건 아닌가 싶기도 해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ㅠㅠㅠㅠ
다음에는 더 열심히 준비해서 올게요!
암호닉 : 지유님, 일공공사님, 악마우님, 치킨님.
그리고 많은 독자님들 너무 감사드립니다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