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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w.앵







바보야, 거길 새끼 손가락으로 짚으면 부드럽게 넘어가질 않잖아.
아아. 
약지로 짚고, 엄지로 넘어가야지.


부드러운 목소리에 진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친 선생님처럼 이것저것 가르치려 드는 게 많은 종현이었지만, 어쩐지 하는 말 마다 다 맞는 소리일 뿐만 아니라 말투나 어조도 장난스럽고 어찌보면 사랑스럽기까지 해서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진기는 종현의 말대로 자꾸 어긋나는 마디를 다시 한번 쳐보며 오오,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거 봐, 잘 되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종현에게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한 진기는 건반위에서 손을 떼 종현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종현은 눈을 감고 진기의 손길을 느끼며 미소지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찬란한 햇빛이 조그마한 피아노 방을 밝게 비춘다. 떠다니는 먼지가 눈에 보일만큼 밝았다. 종현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눈을 간지럽히는 햇빛을 손으로 가렸다. 진기야, 커튼 쳐 줘. 종현의 말에 눈이 부셔서 그런가보다 하고 얼른 가서 커튼을 친 진기는, 제 허리를 끌어안는 손을 마주 잡았다. 곧 가까이 다가오는 종현의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눈을 감는다.


…진기야.
응?


아니야. 고개를 저어버린 종현의 뺨을 쓰다듬으며 진기가 왜에, 하고 묻는다. 종현은 다시 한번 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진기, 피아노 더 쳐야하지 않아? 공연 계획 있다며. 종현이 화제를 돌린다. 진기는 그냥 가볍게 넘기고 응, 하고 웃어보였다. 나 내 이름걸고 공연하면, 제일 앞 자리에 네가 있어줄거지? 진기에 말에 종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진기는 가만히 앉아 피아노를 치는 종현을 바라보았다. 연주도 완벽했지만 사실 그의 외모도 완벽해서, 진기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두운 방에서 홀로 피아노를 치는 종현은 숨막히게 고혹적이었다. 진기는 그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으며 자뭇 떨리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쇼팽 에튀드,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겨울바람. 진기의 입시곡이었다. 손이 부르트는 건 기본이고 건반을 잘못 짚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이 살짝 휘기까지 했던, 한동안은 죽을만큼 싫어했던 곡이다. 하지만 종현의 손에서 완성되는 겨울바람은 정말 아름다워서, 진기는 그저 감탄을 할 뿐이었다. 멋있다.


진기야.


연주를 끝낸 종현이 살짝 고개를 돌려 진기를 보았다. 멍하니 저를 보는 진기의 약간은 멍청한 표정에 하하 소리내어 웃은 그는 진기의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정신차려. 종현의 말에 그제야 눈을 깜빡이며 작게 대답한다. 진기는 천천히 일어나 종현의 옆에 앉았다. 커버를 깔지 않은 피아노 의자가 딱딱해서 엉덩이가 배겼지만 옆에 붙어있는 종현이 제 허리를 감아오는게 느껴져 그냥 잠자코 앉아있는다.


진기야, 너는 어쩌다가 피아노를 하게 됐어?
음… 그냥. 어릴때 엄마가 시켜서 배웠는데, 잘 맞았어. 재미도 있었고.


그래서 그냥 다른 길을 볼 시간도 없이 피아노만 생각하고 살았지. 진기의 조근조근한 말에 종현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너는 어쩌다 시작했는데?


진기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종현의 눈동자가 심연을 담은 듯 했다. 살짝 눈을 내리 깐 종현이 진기의 허리를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가 허공에서 파스락, 부서진다. 진기는 왠지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힘겹게 다시 입을 여는 종현에게 진기가 고개를 저어보인다. 말하지 않아도 돼.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말에 종현이 웃는다. 


괜찮아. 아주 오래된 이야기니까.


나도, 너랑 똑같았어. 정말 어릴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그 외의 길은 존재조차 몰랐지. 다른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때 나는 집에서 공부를 했고, 다른 아이들이 놀러 나갈때 나는 해외에서 온 피아노 선생님께 개인 교습을 받았어. 평생을, 나는 피아노와 함께했어. 천천히 이어지는 종현의 목소리가 마지막 대목에서 눈에 띄게 떨렸다. 나는, 피아노밖에 모르고 살았어. 진기는 문득 절망을 담은 종현의 얼굴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그의 오른손을 쳐다보았다. 여태까지 몰랐던게 이상할 정도로 크게 뭉개진 손이, 그의 눈에 들어와 진기는 헉 하고 제 입을 틀어막았다.


나는 피아노밖에 모르고 살았어.
종현아, 너 손이…
그래서, 피아노를 잃었을 때, 견딜 수 없었어.


갑작스레 진기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그의 온 얼굴을 적시고 온 몸을 적시고 바닥을 채워나간다. 까만 점이 무수하게 피아노 방을 덮어간다. 점멸하는 종현의 얼굴이, 이쪽으로 휘었다가, 저쪽으로 휘었다가, 마침내 으그러져 쨍하고 바스라진다.


진기야.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려, 진기는 눈을 비비고 다시 종현을 바라보았다. 웃는 종현의 얼굴이 마치 진기가 잠깐 꿈을 꾼 것 마냥 밝아서, 진기는 숨을 몰아쉬다 침을 꼴깍 삼켰다. 여전히 젖은 얼굴을 종현이 제 손으로 닦아낸다. 진기야, 만일 그때 네가 내 곁에 있었더라면… 종현은 무어라고 말을 하려다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바래버린 날은 속으로 묻어두기로 한다. 혼란스러운 진기의 눈 위에 살짝 입을 맞추고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다갈색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사이에 감겨온다. 까맣게 일그러진 혐오스러운 손가락이, 어쩐지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종현아, 너 혹시 무한도전 봐?
그게 뭐야?
TV 프로그램! 그것도 몰라?
몰라.


정말 모르겠다는 태도여서 진기는 잠깐 당황했다. 그럼 런닝맨은? 진기의 물음에 더욱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지푸린 종현이 고개를 젓는다. 몰라. 진기는 으음, 하고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겼다가 곧 입을 열었다.


그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뭐야?
나는 테레비 안 봤어. 노래 들었지. 
어떤 노래?
이선희나, 김현식이나…
뭐야아, 무지 옛날 노래.


진기는 요즘 TV보고 테레비라고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렇게 장난스레 던지려던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먼 곳을 응시하며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흥얼거리는 종현이, 문득 너무 오랜 시간을 거친 사진 마냥 노오랗게 바래보여서.
















진기는 오늘도 저보다 먼저 피아노 방에 와 앉아있는 종현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새벽 4시, 아무리 생각해도 종현이 제 집에 있다가 나온 건 아닌 것 같았다. 진기는 몰려오는 궁금중을 애써 가라앉히고 여전히 저를 보며 웃는 종현에게 다가갔다. 


종현아.


초연한 얼굴을 한 종현이 진기의 눈을 마주한다. 마치 모든 것을 다 알고있단 표정으로, 울 것 같은 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진기는 편의점에 들러 사온 빵을 종현의 손에 쥐어주며 먹어, 하고 말했다. 잠깐 머뭇대던 종현이 빵을 도로 진기에게 돌려준다. 왜 안먹어? 진기의 물음에 그저 고개를 휘휘 저으며 그 자리를 떠난다. 천천히, 천천히 방 문 앞까지 걸어간 종현이 문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그러나 문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종현아.


이름을 부르는 진기가 눈물을 뚝뚝 흘린다. 종현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을 뻗는다. 하지만, 그 손은 진기에게 닿지 못했다. 산 사람에게 망자의 손은 닿을 수 없었다.














종현은 제 손으로 옮겨붙은 불길에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다. 이미 이리저리 밀리고 깔려 핏덩이가 된 금발의 교습 선생은 그런 종현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고, 종현은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무작정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르르, 벽 기둥이 무너지는 소리가 종현의 뒤를 위협했다. 그리고 달구어져 뜨거운 문고리를 이미 망가진 손으로 돌려 밖으로 나온 종현은 금방 그 앞에서 물을 뿌리던 남자들에게 이끌려 찬물세례를 받았다. 마구잡이로 데인 온 몸이 그제서야 식어가기 시작했다.

외출중이었던 부모님은 다행히도 멀쩡했다. 활활 타오른 불길 속에서 잃은 것은 피아노와 피아노 선생, 그리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제 미래였다. 종현은 멍하니 평생 되돌릴 수 없을거라는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붕대를 풀고나니 확연히 드러난 흉측한 제 손에 그는 큭큭대며 웃었다. 모두가 종현을 미쳐버렸다고 했다. 피아노밖에 모르던 아이가, 피아노를 잃고 제 온전한 정신까지 잃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종현은 잿더미가 된 제 피아노 방에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제가 가장 아끼던 두가지를 머릿속으로 그렸다. 항상 내 곁에 있던 선생님과 그와 함께 연주하던 피아노. 종현은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온전치 못한 의자의 잔해를 끌고와 피아노가 있던 자리에 세웠다. 천천히 그 위를 밝고 올라가 가져온 단단한 피아노 줄을 여러번 제 목에 둘렀다. 그리고 반쯤 무너져내린 천장에, 꼼꼼히 매듭을 지었다. 줄에 베인 손에서 피가 흘렀지만 상관 없었다. 어차피 곧 제 온 몸을 적실 것이기에. 종현은 매듭의 상태를 확인하고 꿀꺽 침을 삼켰다. 그리고, 제가 올라서 있던 의자를 거세게 차냈다. 구석으로 처박힌 의자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종현은 고통 속에서 까무룩 잠에 빠졌다.










 




종현아…


진기가 덜덜 떨며 종현의 어깨를 잡았다. 손 안에서 으스러진 형체에 그는 비통한 울음 소리를 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려버린 다리가 제멋대로 널부러져 우스꽝스러운 자세가 되었지만, 종현은 그런 진기의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없었다. 미안해, 미안해. 종현의 울리는 목소리에 진기는 귀를 틀어막았다. 거짓말, 종현아, 거짓말이지… 이거, 다 꿈이지. 종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여태까지 나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은 다 꿈이야. 진기야, 전부 거짓이야. 이 방을 나가는 순간 너는 꿈에서 깨어날거야. 진기가 바라는 답이 아니었다.


어디에도 나는 없어. 나는 이미 20년 전에 세상에서 지워진 사람이야.


 왈칵, 진기에게서 무언가가 잔뜩 쏟아져 내렸다. 그것은 눈물 같기도 했고, 붉은 피 같기도 했으며, 종현만을 고스란히 담았던 제 심장 같기도 했다.
















***

상, 하로 나눠서 쓰려고 했으나 그냥 여기서 끝.
이 이후에 진기는 종현을 잃은 공허한 마음을 예술혼으로 승화시켜 엄청난 곡을 씁니다.
그리고 공연에서 그 곡을 연주하다 클라이막스에서 맨 앞줄 끝에 서 있는 종현의 얼굴을 보게되고
격정적인 연주 끝에 심장마비로 즉사하며
이후 종현의 손을 잡고 하늘나라에서 행보카게 살겠죵ㅎㅎ




제일 앞쪽에서 공연 보기로 한 거, 지켰어.

대답 안하더니.

그떈 그 방을 떠날 수 없없었으니까.

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것을 거기에서 잃었으니, 그 곳의 지박령이 되어 버린거지.

……

근데, 가장 소중한게 바뀌었어. 그래서 움직일 수 있었어. 
…네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게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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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어유ㅠㅠㅠㅠㅠ너무슬픈결말이예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2
리즌이에요ㅠㅠㅠ앵님은 새드를 좋아하시는거같아여ㅠㅠㅠ근데 완전새드도 아니고ㅠㅠㅠ그게 매력이긴한데ㅠㅠ아쉬워서ㅜㅜㅜ흑흑흑 하늘에서는행복하길바래요 음악가 현유♥컨셉은 참 좋아해여 제가ㅋㅋㅋㅋㅋㅋㅋ잘보고갑니다ㅜㅜ
10년 전
독자3
결말이...ㅠㅠㅠ 슬픈데 슬프지 않고 ㅠㅠㅠㅠㅠ 잘보고가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10년 전
독자4
와 뭔가심오하고 ㅠㅠㅠㅠㅜ슬퍼여 ㅜㅜ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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