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이랑.. 넥타이 착용 안했고..."
"아아~ 선배, 네?"
"(웃으며) 으이그, 그러니까 잘 좀 하고 다니지."
"한 번만요, 네네?"
"그럼 넥타이만 체크할테니까 다음부턴 잘하고 다녀~"
"감사해요, 선배님!"
교문 앞 풍경.
아침 조회시간을 3분정도 남겨두니 등교하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그런 아이들을 하나하나 체크하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김명수. 선도부장이다.
김명수는 우리학교 아이돌로써, 여자학생들의 남신이시다.
그렇다고 여자애들한테만 잘하는 것뿐 아니라, 남자애들에게서도 꽤 높은 신용을 얻고 있다.
같은 반인 나로써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나와 친분이 있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어, 오늘은 지각 아니네?"
"아... 응."
"빨리 들어가. 또 벌점 받겠다."
"응, 고마워."
모두에게 친절할 뿐.
얼굴정도만 아는 것 같아도, 상대의 이름을 불러주는 아이다.
덕분에 선생님들 사이에도 평판이 자자하다.
어째, 거물 유명인사 같다고나 할까.
"야야, 오늘 단추푼 것 봤어?!"
"야 쩔어, 진짜. 목선으로 땀줄기 흘러내리는데 하마터면 범죄 저지를 뻔했다."
같은 반 여자애들의 키득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아마도 그애 얘긴 것 같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앞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게 들이댄다.
"야, 너도 봤어?"
"어...........반장...?"
"어어. 오늘 더워서 단추 2개나 풀어가지고 지금 반 애들 난리다, 난리."
"아..."
"오늘같이 더운 날이 고마울 때도 있더라."
앞자리 아이는 웃으며 그 말을 하고는, 다시 다른 애들과 수다를 떨기 바빠보인다.
난 오히려 그런 반 아이들 반응에 반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처음엔 나조차도 그애의 외모에 반해서, 학기 초엔 넋놓고 구경할 때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은 어쩐지 연예인을 쫓는 기분이 되는 것 같아서 일찌감치 관뒀다.
"야, 앉아라!"
선생님의 등장에 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나는 맥아리 없이 책상에 턱을 괴고 선생님의 말씀을 귓등으로 들으며 멍을 잡고 있다.
선생님의 말씀이 중반으로 치닫았을 쯤, 뒷문이 열리고 그애가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어, 빨리 앉아."
선도부장은 아이들을 다 잡고 들어오기 때문에 항상 선생님 말씀 중간에 들어온다.
아, 참고로
"이상. 반장."
"차렷. 경례."
"안녕히 가세요~"
녀석은 선도부장을 맡으면서도 반장을 떠안았다.
다들 어색한 학기 초에, 전에 반장을 맡았던 애들 중 추천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사양않고 반장까지 도맡기로 했다. 대단하긴 대단하다.
.
.
.
수업은 어느 새 2교시가 되었고, 나는 수업 내용은 귓등으로 들으며 내 왼쪽 라인에 있는 같은 반 남자아이의 등을 바라보고 있다.
저런 선이 참 좋다.
가늘지 않고, 굵지도 않은 저런 선은 교복을 입었을 때 더욱 빛나는 것 같다.
하염없이 등을 보다 쏟아지는 잠 때문에 몸을 웅크렸다.
꿈뻑꿈뻑... 아... 자면 벌점 받을지도 모르는데...
.......
"...아...."
'...응...?'
".....아... 일어나봐."
"아, 안 잤어요...!"
자리에서 기립해서 눈을 떠보니, 반 애들은 한 명도 없다.
아예 불까지 꺼져 있었지만,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이 있어서 교실 안은 환하다.
나는 눈치를 보며 눈알을 옆으로 굴려본다. 반장은 의외로 웃음을 참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억지로 웃는 듯한 얼굴이다.
그래도 조금은 멋쩍은 내가 뒷목을 긁적이며 반장에게 묻는다.
"뭐....야...? 왜 아무도 없어...?"
"컴퓨터 시간이야."
"..아.... 큰일났네... 빨리...."
"...저기...."
"..?"
"....우리 그냥 땡땡이 안 칠래?"
"......"
범생이에게서 너무 의외의 말이 나와서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고작한다는 말이 이거다.
"...어...?.."
동의도 아닌 대답에 그애는 예쁘게 웃으며 나의 손목을 덥썩 잡는다.
그리고는 다른 반 앞을 쏜살같이 지나가며 나를 계단으로 끌고 올라간다.
환한 교내의 빛이 그애의 하복 상의를 반짝여준다.
"...그런데 넌 왜 안 갔어...?"
"..나도 잤어. (웃음)"
'네가?'
하고 물으려다 그냥 말을 삼키고 약간은 어색한 공기 때문에 시선을 괜히 다른 곳으로 돌린다.
반장이 나를 데려온 곳은 다름 아닌 학생회의실이었다.
선도부장의 특권인가보다.
먼지가 좀 쌓인 학생회의실의 공기가 빛에 비춰서 조금은 뿌옇게 보이지만 갑갑해 보이지는 않아 좋다.
반장은 창가에, 나는 회의실 탁자 앞에 앉아서 어색한 공기를 주고 받고 있다.
학생회의실 눈구경도 잠깐인지라, 몸을 돌려 반장을 바라보니 햇빛에 머리가 갈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잠깐 반장을 구경하는 사이, 눈이 마주치려 해 나는 반사적으로 고갤 돌린다.
나의 뒷통수에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 괜히 꼬물거린다.
"...그 애 좋아해?"
"...어...?"
"태성이."
"....에?"
"풉. 뭐야 그 반응은?"
"아, 아니..."
"...아니라는 거야?"
".....응?"
"......"
내가 태성이의 뒷태를 너무 빤히 바라본 모양이다.
말 없이 쪼그라져 있는데,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몇 번 나더니 반장이 어느 새 내 옆에 와 있다.
나는 괜히 긴장이 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옆을 슬며시 쳐다본다.
꽤 진지한 눈을 하고 있다.
"..확실하게 말해줘."
"......"
나는 어쩐지 작아져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손톱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레 그애에게 대답한다.
"아니야... 그런거..."
"...그럼?"
"..어?...."
"그런 게 아니면 뭔데."
"....그냥.."
"......"
"...그런데 그건 왜?"
"..중요하니까."
"......"
휘둘리는 것 같아 조금 발끈해서 이유를 물었더니, 조금 의외의 답이 나와버렸다.
긴장해서 입술이 말라온다.
고민을 거듭하다, 적당한 표현을 찾아 헤메고 있다.
반장은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나를 그대로 주시하고 있다.
"...그냥... 멋있다고 생각한 것 뿐이야.. 됐어?"
"......"
"......."
"...어디가?"
"어?"
"어디가 멋있다고 생각했냐고."
"...그런 것까지 말해야 되는 거야...?"
"......"
"..나 그냥 지금이라도 수업 들어갈래."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나를 들추는 것이 왠지 불편해져,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나의 반댓손이 멈출만큼, 그애가 다른 쪽 손목을 강하게 잡아 돌려세운다.
"말해야 돼."
"...야, 아파..."
"..말해. 빨리."
"......"
어쩐지 반장같지 않다. 아주 살벌한 눈을 하고 있다.
분위기도 무섭고, 손목도 아파서 뿌리치려는데 힘이 너무나 완강하다.
내가 흘러내려오는 머리를 고갯짓으로 넘기며 그애를 째려본다. 물러설 생각이 없는 눈이다.
"...난 아니야?"
"...뭐?"
"..네가 좋아할만한 애가 아니냐고."
"......"
"......"
이 무슨 앞뒤 없는 질문이지.
때마침, 수업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린다.
난 그애가 잠시 벙쪄있는 틈을 타 손을 뿌리친다.
그애의 얼굴이 일그러지는가 했더니, 곧 문 앞을 가로막는다.
"...이따 보자."
"......"
"넌 이제 피할 수 없을 거야."
그 말을 끝으로 하고, 그애는 문을 열어 등을 보인다.
그 등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쓰여있는 듯 보였다.
"어디 갔었어? 뒤늦게 교실로 찾으러 왔는데..."
"아... 그냥..."
"땡땡이 친 거야?"
"..어..."
"좋았겠네~"
"...왜 나 안 깨웠어."
"아, 미안. (웃음)
아직 반장이 있길래 별 생각 않고 나갔지."
"......."
"엇. 그러고 보니...
둘이서 땡땡이 친 거야? 이열~"
"아니야."
"...알아. 너 별로 관심없잖아, 반장한테."
"......"
"...그런데 반장이 깨울 줄 알았는데..."
"..걔도 잤대."
"?? 그래?
이상하다... 분명 반 나갈때까지만 해도 안 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