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 번만 제발 세훈아, 내가 원래 이런 부탁 잘 안 하잖아." 여자친구가 진짜 화났어 헤어질 거 같아서 그래, 그 날만 나가주면 된다니까? 제발 오세훈. 영화 조감독 일을 하던 친구는 하루만 대신 알바한다 생각하고 나가달라고 내게 부탁을 해왔다. "그래." "진짜? 야 존나 고맙다. 내가 다음에 밥 한 번 살게 꼭." 여자친구랑 안 헤어져도 될 거 같다고 다 네덕이라며 웃는 친구를 바라봤다. 그렇게 좋을까. 일은 생각하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다. 날이 더운 탓도 있지만 땀이 온 몸을 뒤덮었다. "안녕하세요!" 우중충하던 촬영장에 주인공 배우가 당차게 인사하며 들어섰다. 그 덕에 촬영장의 분위기가 조금 밝아졌다. "어, 준면씨 왔어?" "네! 감독님.어…. 안녕하세요!" "아, 예…."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받았다. 처음 보는 날 보며 살짝 당황한 듯 했으나 곧 다시 환하게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종인이 오늘 못나온다고 대신 나왔어. 준비하고 있어, 바로 들어갈테니까." "네!" 그럼. 준면이 세훈을 향해 웃으며 돌아섰다. 난 티비를 자주 본다던가 인터넷을 잘 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김준면은 알았다. 20대 배우들 중에서 혼자 존재감을 보이며 최근 데뷔와 함께 급성장하는 배우였다. 연예계는 2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마스크라며 그를 칭찬했고, 대중은 그를 언제나 주시하고 따라다녔다. 그러는 것이 피곤하지도 않은지 준면은 언제나 웃는 모습을 잃지 않았고 대중은 그의 외모 뿐만 아니라 내적인 면도 찬양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젊은이들에겐 거의 종교같은 존재였다. 난 오늘 그를 처음 봤다. 근데 그는 내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감탄이 아니고 충격이었다, 내가 감탄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김준면. 그는 매력적이다나 잘생겼다와 같은 인간에게 빗대는 표현으로는 감히 형용할 수도 없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흠잡을 곳이 없었으며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아름다운 춤을 보는 것과 같았고 목소리 또한 천사의 목소리를 듣는 듯한 착각을 들게했다. "조감독! 뭐해 빨리 준비해 곧 촬영 들어갈 거야." "네." "우리 그만 헤어져." "너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 "끝내. 우리, 진짜 지겹다." "잠시만, 경아야. 경아야!" 준면의 연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준면 그 자체에 혼이 나갔다. 별 볼 일 없는 삼류 로맨스 영화 속에서도 그의 표정, 몸짓, 목소리 하나하나 놓칠 수 없었다.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그를 주시했다. "Ok, 컷!" "수고하셨습니다!" 여기 저기서 서로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고 나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허리를 숙이고 다녔다. "수고하셨어요." 김준면이었다. "아, 예…." "어, 준면씨 수고했어. 내일도 이대로만 가자고. 어?" "네, 감독님도 수고하셨어요." 인터뷰가 있어 먼저 가보겠다며 촬영장을 나가는 준면을 눈으로 좇았다. 갑자기 준면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아니, 마주쳤다. 꽤 오랜시간 준면의 시선이 내게 머물었다. ㅡ나야 좋긴한데, 갑자기 왜? "그냥. 일이 생각보다 재밌는 것 같아서." ㅡ어쨌든 고맙다. 종인에게 남은 일주일은 내게 나가도 되냐고 물었다. 종인은 안 될 게 뭐가 있냐며 좋아했고 나의 선택에 의문을 갖는 듯 했다. 다른 생각은 없었고 단지 김준면에게 조금 다가가고 싶었다. 전화를 끊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 봤던 그가 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김준면, 김준면, 김준면. 이름을 되뇌었다. 사람들이 왜 그를 종교와 같이 떠받들며 찬양하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성스럽다, 라는 표현이 제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울리는 그를 보며 난 흑심을 품었다. 지극히 하얀 대상을 보며 검은 마음을 가졌다. 아이러니였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