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는 무엇때문에
W. 토마추
지용의 몸 전체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니야-! 고개를 저으며 소리지르는 지용의 모습을 보며 승현은 예의 동정 가득한 분위기를 풍기며 지용을 일으켜세웠다. 지용이 움켜잡아 구겨진채로 책상 위에 널부러져 있는 종이를 제 검지로 가르키며 승현이 말했다. 이거, 그날 교수님 친구분이 저한테 부탁하신건데. 교수님이 이상한 길로 빠지면 이걸 주라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 알겠네요. 교수님-
"젠장, 닥쳐!"
승현이 지금까지 했던 말 중 가장 긴 말이었지만 지용은 신기하다기보다는 공포가 앞섰다. 이 아이는 내 과거를 알고있다. 그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입에 올리지 않았던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에 승현이 조곤조곤 말을 하다 입을 다물었다. 지용은 승현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만세 시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은 통지표에 기록이 남기 때문이었고, 내 친구는 그때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그래서 만세를 부르러 나갈 수 있었던 거야. 자신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꼭 출세해야 되었다고. 그리고 자신의 친우가 죽은 것은 절대로 제 탓이 아니었노라… 횡설수설하고 있는 지용의 눈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승현은 지용을 보며 1919년 3월 1일을 떠올렸다. 그때 승현의 나이는 14살 남짓 되었고 고종 황제의 장례식에서 행렬을 관찰하며 민족 대표가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기만을 기다리다 가끔 옆동네에서 마주치던 형을 만나게 되었다. 큰 일을 앞두고 조금이라도 익숙한 이를 만나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었기에 서로 인사를 나누고 품 속의 태극기를 부여잡았다. 태화관에서 저들끼리 독립 선언문 낭독을 한 민족 대표 33인 대신 한 남학생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했고 승현은 난생 처음 느끼는 짜릿함을 맛보았다. 이 수많은 이들이 한 마음으로 뭉쳤고 자신도 그곳에 함께하고 있다는 희열과 단합되고 있다는 기쁨이 승현을 들뜨게 했다. 민족 최대의 저항이었고 맨몸으로 조선 독립을 외쳤지만 일제는 총칼로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언어로 표현 할 수 없는 잔혹한 행위들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길바닥에 누워 검붉은 색을 내뿜고 있었고, 그 색은 점점 진해져 승현은 물들일 것만 같았다. 승현은 그저 운이 좋아 일본 순사의 눈을 피했지만 지용의 벗이자 승현과 함께 독립을 외치던 청년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탄알에 맞고 말았다. 제 앞에서 스러져가는 생명이 승현의 시야를 뿌옇게 했다. 확실히 14살에게는 잔혹한 감이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총에 맞은 몸을 겨우 가누며 으슥한 골목 구석으로 향했고 여기저기 들려오는 총소리와 비명소리에 눈을 질끈 감은 승현을 다독이며 제 주머니에 있던 펜으로 굴러다니는 종이에 휘갈겨 쓴 편지답지 않은 편지를 내밀었다. 총에 맞은 것 답지않게 해사하게 웃고 있어 승현은 그가 살지도 모른다는 헛된 희망을 품었다.담 사이 사이 핀 꽃들이 승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황과는 이질적으로 눈물나게 소박했고, 소박함에 아름다웠다. 본능적으로 승현은 평범함 내지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풍경을 찾아냈다. 이리저리 얽혀있는 지붕 사이로 햇빛이 내려와 승현의 손을 파고들었다. 승현은 잠시나마 안정됨을 느꼈고 또 다른 일상을 찾으려했다. 물론 그 노력은 울려대는 총소리에 사그라들었다.
"이름이, 승현이라고 했니? 저기 4거리에 사는 권지용이라는 형 친구가 있어.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혹시나…
그 친구가 이상한, 길로, 빠지게 된다면 말이야… 이 종이를 전해주려무나. 임무…란다. 알겠지?"
중간중간에 헐떡거리는 그에 승현은 걱정스럽다는 듯 그를 돌아봤지만 그는 아직도 밝게 미소짓고 있었다. 어서 가보렴. 형이 처음으로 준 임무인데 남자가 책임감 있게 해결해줘야지. 이제는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옅어진 남자의 목소리에 승현은 다급해졌으나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순사들의 말소리에 미로같은 골목길을 헤메고 헤메 한밤중이 되어서야 승현은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승현도 그 형이 죽었음은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눈물이 흐르려했지만 꾹 참았다. 제 부모님도, 하나뿐인 누이도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항상 아이들을 깨우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던 이웃집도 여전히 조용했다. 그래도 울지 않았다. 승현에게는 그 형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맡긴 임무가 있었다. 그걸 위안 삼아 자신은 살아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수많은 꽃들이 총살 된 날이었다.
*
승현이 담담하게 꺼낸 제 친구의 마지막에 지용은 주먹을 세게 쥐었다. 문득문득 자신을 깊숙히 찌르는 고독감 혹은 공허함이 이곳에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을까. 자신은 그저 잊으려 발버둥쳤던 것 뿐일까. 슬픈 일이 있어도 웃음을 잃지 않던 친구와 묵묵한 승현은 참 닮은 듯 닮지 않아 있었다. 정확한 것은 둘 다 지용을 초라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만세를 부르러 갈 것이라 말하며 동참 의사를 묻는 친구의 앞에서 지용은 작아졌고 저를 동정하는 승현의 앞에서 지용은 또 작아졌다. 쌍방으로 나를 힘들게 하는군. 지용은 자조적으로 웃으며 눈을 감았다. 친구를 잃은 후로 성공하려 미친듯이 공부만 했다. 딸린 입이 많았다. 지용의 노모와 감옥에 잡혀가고, 총살당한 형제들의 조카들도 있었고 단번에 가장을 잃어버린 친구의 가족들도 있었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둔 지용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이미 상권은 일본에게 넘어가버린 탓이었다. 현실은 처절했다. 책에서 나오던 이상적인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가진 자는 가진 것으로 배를 불려 나갔고, 없는 이들에게는 없는 만큼, 조금 더 있는 이들에게는 조금 더 있는 만큼 빼앗아가며 점점 더 배를 불렸다. 그래서 지용은 저를 모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에서 일본에 호의적인 척, 친일파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습득력이 빨라 일본어를 배워둔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제 친구를 죽인 일본의 덕을 보는 것이 매일 밤 죄책감에 괴로워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죄책감과는 별개로 워낙 능력이 좋아 월급도 많이 받았다. 일본 때문에 좋지 않아진 가정형편을 친일파의 가게에서 받는 월급으로 연명해나가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잃은 것도 분명히 적지 않았다. 아니, 많았다. 지용의 어머니를 곰살맞게 보살피던, 결혼을 약속했던 이도 지용이 그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제 곁을 떠나갔다. 하지만 처음으로 제 조카들의 입이 미어터질만큼 쌀밥을 먹였기에 적어도 지용은 만족했다. 제 알량한 자존심이나 이미 죽은 친구와의 의리는 지키면 좋겠지만, 가족들의 배를 불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지용과 생각이 달랐다. 지용이 친일파 가게 밑에서 일한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자 친구가 만약 제가 돌아오지 못한다면 부탁한다 했던, 친구의 아내는 엉엉 울어대며 지용을 욕했다. 당신이 쥐여준 돈이 다 일본놈들의 더러운 돈이었냐며, 내 남편이 목숨 걸고 외친 대한 독립은 어디에 두고 왔냐며 울부짖었다. 일본놈 손을 거친 쌀을 먹느니 굶어 죽겠다고 했다. 그런 친구의 아내를 보며 지용은 위태하게 서 생각했다. 그럼,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그 소식은 자신의 노모에게까지 흘러 들어갔다. 어릴때도 그 흔한 매 하나 맞지 않았던 지용이 20살이 되어서 제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어머니는 친구의 아내와 같은 말을 늘어놓았다. 지용은 휘청거리며 생각했다. 그렇다면 난, 어머니가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일까? 불효를 해야만 용서가 되는 것일까? 나는 어머니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을.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소란스러운 바깥을 바라보며 지용이 제 친구를 죽인 것과 마찬가지라며 수군거렸다. 그 수군거림은 곳곳의 집에서 제 부모들의 대화소리를 듣고 있던 아이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조카들은 지용이 밉다했다. 일본의 앞잡이인 삼촌을 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럼에 지용은 생각했다.
이곳을, 떠나야겠구나.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구나.
대한민국 임시 정부에 월급의 일부를 매달 조달하던 지용은 그것을 그만뒀다. 사람들이 그리도 되길 원해 저에 대해 단정지어놓고 쑥덕대던 친일파가 되었다. 그리고 승현은 간신히 연명해가며 그것을 모두 보았다.
이제야 지용은 승현이 저에게로 향하고 있는 동정과 분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지용은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승현은 지용보다 더 먼저 지용의 상처를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지용을 증오했다. 승현과 지용의 관계는 정의될 수 없었지만 애증과도 같았다. 외로운 둘은 무섭도록 닮아 있었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둘 다 암흑에게 제 주변 것들을 잠식당했지만 지용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였고 승현은 이상을 쫓았을 뿐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지용에게는 지켜야 할 이들이 있었고 승현은 제 몸뚱아리 하나와 지용에게 전해주어야 할 종이 쪽지 하나 뿐이었으니, 결코 같지는 않았다. 지용은 제 노모의 생사를 물었다. 이미 1년 전 3년상을 마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처받음을 인정하니 서러움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지용은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저를 비난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래, 지용은 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모두에게 상처입었다.
난, 난 말이야… 응, 그냥 모두가 가난하지 않게 살았으면 해서. 안 힘들었으면 해서. 그래서, 그랬는데. 아무도, 아무도…
지용의 말이 승현의 입술에서 길을 잃었다. 승현에게 동정의 향은 더욱 짙어졌고 지용의 얼굴에서 슬픔의 기색도 점점 진해져갔다. 지용 대신 승현이 울어주었다. 27살의 교수에게서 20살의, 자존심과 우정까지 버려가며 노력했지만 결국은 상처받은 어린 가장이 겹쳐졌다. 내가 다 봤어요… 교수님이 노력한거 내가 다 봤어. 승현의 잔잔한 목소리가 지용의 입 언저리에서 맴돌았다. 승현의 목소리는 단단해서 무엇을 물어보던 담담하게 대답해 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지용은 물었다. 넌, 대체 어떻게 살아온거니. 승현의 마음 속에서 동정으로 덮여버린 분노가 다시 일어났다.
참 이상한 관계였다. 암흑에게 상처입은 둘 중 하나는 암흑을 받아들였으며 하나는 생채기가 남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순백을 유지해나갔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사람은 정반대의 사람에게 끌린다고 했던가, 그리고 그 둘은 서로에게 끌리고 있었다.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 승현은 알고 있었음에도 지용에게 미친듯이 끌리고 있었다.
작가의 말 |
허허 아마 이제 자주 못올거라서 연속으로 계속 올리는 중이에요 빅뱅 독방에 제 글 언급되는거 저 보고있어요..부끄...... 사실 저 관종이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거 되게 좋아해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헿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언급해준분들 감사!!! 감자감자!!!!! 고구마염!!!!!!!!!!!!!!!!!!!!!!!!!!!!!!!!!!!!!!!! 야 사랑해!!!!!!!!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