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그 이후, 무사히 지나갔다.
하지만 아침마다 교문에서 마주칠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어깨에 매어있는 가방끈을 손에 꽉 쥐며 학교 앞에 다다라 발걸음을 뚝 멈춘다.
이 모퉁이를 돌면, 바로 정문이 보이기 때문에 그애가 있을 것을 생각하며 입술을 깨문다.
등교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 나를 돌아보는 것 같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발을 디뎌본다.
생각이 복잡해진 나와는 달리, 선도부장은 평소와 같은 얼굴로 내게 인사한다.
아니, 평소보다 더 때깔이 좋은 것 같다.
"오늘은 일찍 왔네?"
"......"
"잘가~"
무슨 말을 꺼내지 못하게 하려는 듯, 서둘러 나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온다.
갑자기 욱하는 느낌에, 코끼리의 한보한보처럼 쿵쾅쿵쾅 걸어 들어간다.
그 이후로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듯 했지만
"...어제 몸 안 좋아서 푸른 교실 못하고 수업 받았다며?"
"....네."
"오늘 8교시에 선도부실로 오라고 하셨어."
"......아.."
"..가봐."
"...안녕히 계세요."
아침 조회 후, 잠시 나를 따로 불러내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건 짐작대로였다.
한 켠으로는 괜찮을 거라고 다독이지만 한 구석이 불안한 건 사실이다.
터덜터덜 교무실에서 교실까지 걸어오니, 남자애들 사이로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친다.
딱히 감정을 드러내는 것도 싫어서 그냥 무시한 채로 내 자리에 앉는다.
괜찮을 거다.
일단 선도부실로 오라고 하셨으니까 분명 선생님이 직접 감독하실 거다.
그래야만 한다.
아니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어, 왔냐.
이리와."
선생님께서는 슬리퍼를 끄시며 매 하나를 들고 일어나신다.
복도에 퍼석퍼석- 하는 슬리퍼 소리가 계단으로 옮겨진다.
왠지 익숙한 경로를 따라 가보니 다름 아닌 음악실이다. 내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진다.
"여기 청소해.
별로 더러운데 없으니까 혼자해도 무리되진 않아."
"...네."
"죄송합니다. 좀 늦었어요."
"..!!!"
선생님께서 음악실 문을 연지 얼마 안돼서 녀석이 뛰어왔다.
나는 놀란 눈으로 녀석을 쳐다본다.
선생님이 매를 쥔 손으로 뒷목을 긁적거리시며 물으신다.
"너네 사귀냐?"
"예?!"
"...뭘 놀라.
아무튼 쓸데없는 짓하다 걸리면 둘 다 맞는다."
"(웃으며) 쓸데없는 짓이라뇨."
"내가 너니까 믿고 간다.
나 바빠서 먼저 갈테니까 청소 확실히 해. 나중에 검사 다 한다."
"..!!...선생...ㄴ.."
선생님을 부르려고 내가 입을 벙긋거리자, 녀석이 내 손바닥을 쥐어서 손으로 꾸욱 누른다.
아파서 인상이 절로 구겨진 채로, 어느 새 내 옆으로 와 있는 녀석을 노려보니 아직 선생님을 바라보고 서 있다.
선생님이 계단으로 내려가시는 걸 끝까지 지켜본 뒤에야 녀석은 문을 닫고 고갤 돌려 나를 내려본다.
나는 손에 힘이 빠지자마자 그 손을 뿌리친다.
"아..."
"...별 것 아닌 것 같고 그러지마."
"....하, 참나..."
"빨리 청소해."
선생님이 나가셨으니 바로 협박을 해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와 떨어져서 자리를 잡는다.
나는 잠시 멍해있다가 아차 싶어서 녀석에게 말을 던진다.
"네가 여기 왜 있어."
"...선생님한테 말했으니까."
"...무슨 말."
"..네가 빈혈이 있어서 봐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시던데."
"......."
'나를 그새 병자로 만들었구만?'
화를 내려다 후 하고 머리카락을 불고 몸을 돌려, 청소도구를 챙긴다.
빗자루로 바닥을 쓰니, 쓸려진다기보다는 빗자루에 붙어간다.
날리는 먼지를 먹기 싫어서 고갤 뒤로 빼며 쓸고 있다.
녀석은 가만히 피아노 앞에 앉아서 팔을 걸친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뭐하자는 건지.
내가 녀석에게 등을 돌려, 음악실 의자 밑 사이를 쓸고 있는데 손길이 느껴진다.
기분 나쁜 손길은 치마 아래서 나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오고 있다.
내가 몸을 부들거리며 황급히 엉덩이를 뒤로 뺀다.
"뭐해 지금!!"
"...허벅지 만졌는데."
"......"
"생각보다 부드럽다."
"....미... 미쳤냐...?"
'이런 변태XX.'
내 치마는 그리 짧지 않음에도 녀석은 밑으로 손을 쑤욱 넣어서 내 허벅지를 만진 모양이다.
나는 손에 들린 빗자루가 힐끔보여 녀석에게 들이민다.
"가까히 오지마."
"오, 때리시게?"
"......."
"그러지 않는 게 좋을텐데."
"닥쳐."
"오, 무서워라."
녀석의 눈에 광기가 어려보이는 것 같다.
그 표정이 조금 무서워져서 빗자루를 뻗은 팔이 조금 떨리는 것 같다.
내가 이렇게 방심하는 사이, 녀석이 빠르게 발을 내딛어서 내 팔을 옆으로 쳐낸다.
그리곤 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퍼붓는다.
"...!"
"......"
자연스럽게 내 입술 위로 혀가 닿았을 쯤, 정신을 차리고 밀어낸다.
숨을 뱉으며 손등으로 찝찝한 입술을 닦는데 녀석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부드럽다."
"...XX."
녀석은 웃으며 다시 내게로 다가와서는 음악실의 긴 의자에 나를 강제로 눕힌다.
내가 버둥거리며 저항하니, 녀석의 얼굴이 구겨진다.
힘 겨루기 대결도 아니고 나는 있는 힘껏 내 팔을 붙잡고 있는 녀석의 힘에 맞서고 있다.
순간, 힘이 빠지니 내 팔이 내 몸으로 바짝 붙으며 녀석의 얼굴과 가까워진다.
"......"
"......"
손을 들길래 뺨이라도 때리려나 싶어 고갤 돌려 눈을 질끈 감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부드럽게 나의 얼굴을 매만지는 녀석이다.
내가 또 멍해져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니 어딘가 슬프고 애달픈 얼굴로 나의 머리칼을 조심스레 넘겨주고 있다.
나를 잘생긴 눈으로 내려보고 있는 그애에게 입을 연다.
"..너 이럴 필요 없잖아."
"...?"
"너 정도면 예쁜 애들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고, 너 좋다는 애들도 널렸잖아."
"......"
"...지금 그만두면 그냥 평생 입 다물고 살게."
"....네 말이 맞아."
"......"
"..그래서 네가 걸린 거야."
"....뭐?"
"......."
"....!..야! 하지마!"
"......"
"하지 말라고..!!"
내 목에 미끌거리는 혀가 느껴지지마자, 내가 녀석의 등을 있는 힘껏 때리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고 내게 파고드는 녀석에게 배려따위는 하고 싶지 않아졌다.
녀석은 내가 땡깡부리는 아이라도 된 마냥, 덤덤한 등으로 내 구타를 다 받는다.
때릴 힘이 다 빠져나가서 얌전해진다.
땀이 난다.
"얼마든지 때려."
"......"
"...난 네 안을 괴롭힐 거거든."
때리라고 말할 때는 상처받은 고양이 얼굴을 하더니,
괴롭힌다는 말을 할때는 싸이코같은 얼굴을 비추는 녀석이 희한하다.
나의 교복 치마를 들춰버리고는 스타킹을 내리려는 녀석의 행동에, 내가 펄쩍 뛴다.
벌떡 윗몸을 일으켜서 스타킹을 내리고 있는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 버둥거린다.
"하지 말라고...!!"
"......"
녀석은 갑자기 얌전해져서 손을 멈추더니 나의 실내화를 벗긴다.
그리고는 다시 스타킹을 끝까지 내려 바닥에 떨어뜨린다.
미간을 좁힌 채로 노려보고 있는데도, 꿈쩍않고 내 발을 잡는 녀석.
녀석은 내 발등에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