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이 놈은 안 늦는 날이 없어.”
“하루이틀이냐. 그냥 놔둬.”
요근래 비만 쏟아지더니만 오늘 아침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었다. 물론 그와 비례하여 날이 좀 더워지긴 했지만, 그깟 더위 쯤은 우리에겐 아무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비가 오는 일주일 동안 공 한번 못차본 탓이었다. 하루라도 공을 차지 않으면 입으로 식빵을 굽는다는 식빵전설의 기성용과, 공을 차지 못한 날 새벽 두시 쯔음엔 감성이 촉촉하게 젖은 트윗을 날린다는 구자철은 내일은 비가 쏟아져도 공을 꼭 차자는 무언의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렇게 거짓말처럼 날이 개다니. 적어도 오늘은 녀석들이 교실 뒷자리에서 하루종일 퍼질러 자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날 아침부터 자철이가 성을 내고 있는 이유는 다름아닌 기성용 때문이었다. 우리 셋은 늘 같이 학교를 가곤 했는데, 집이 제일 먼 내가 자철이네 집으로 가면 거기서 자철이와 만나 성용이네 집으로, 그리고 셋이 모여 학교로 향하는 루트였다. 나야 워낙 아침잠이 없어서 늘 제 시간에 자철이 집 앞에 도착하고, 자철이 녀석 또한 워낙 성실해서 한 번도 늦어본 적이 없었다. 문제는 마지막 코스인 기성용이었다. 성용이가 제 시간에 나온 적은 정말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자철이는 고 구자철스러운 눈썹을 꿈틀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녀석은 당장 전화라도 할 기세였지만, 그 기세는 얼마못가 꺾여버리고 말았다.
“아냐. 이대로 넘어 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아!!!”
“뭘 아침부터 그렇게 쫑알대냐?”
자철이의 뒷통수를 축구공인양 뻐엉 때리며 등장한 기성용에 의해서 말이다.
찌질이들
성용x자철
“야, 기성용. 너 진짜 맨날 늦을래?”
“니가 우리 엄마보다 나한테 잔소리 더 많이 하는 거 아냐?”
“아 진짜? 내가 잔소…. 야, 이게 아니잖아!!”
“야, 구자철 존나 얼굴 빨개지는 거 봐.”
“야!!”
약이 오를대로 올라서 씩씩대는 자철이와 반대로 성용이의 얼굴은 여유만만 그 자체였다. 처음에는 나도 매번 늦는 성용이에게 불만이 있었지만, 그 패턴이 삼년을 넘어서자 그냥 해탈해버리고 말았다. 성용이가 좀 늦게 나오긴 해도 신기하게 지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에비해 자철이는 삼년동안 단 하루도 잔소리를 멈춘 적이 없었다. 내가 보기엔 구자철의 의지가 기성용의 것 보다는 한 천만배 쯤 더 강해 보였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기성용과 구자철의 관계는 그야말로 ‘까고 까임’ 이었다. 기성용은 유난히도 구자철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했다. 나쁜 의미의 괴롭힘은 아니고, 그냥 쉴 새 없이 장난을 걸었다. (하지만 구자철에게는 절대적으로 나쁜 의미의 장난이리라) 녀석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 쉴새없이 구자철을 괴롭히는 것이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었다. 둘이 친해보이기는 하는데 내적으로 앙숙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런 내 의심은 얼마못가 풀리고 말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구자철의 리액션이 훨씬 재미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구자철은 놀리는 재미가 있다, 뭐 이런 말이 되겠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를 까고 까이면서도 힘든 일이 생기면 바로 의지하는 걸 보면, 그냥 기성용과 구자철은 찰떡궁합이라고 밖에 생각 할 수가 없었다.
* * * *
그렇게 평화롭던 그들에게 일이 터진 건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나는 여느때와 다름 없이 제 시간에 구자철의 집 앞으로 향했다. 그러나 녀석은 제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삼년이 넘는 동안 단 한번도 늦기 라는 걸 해본 적이 없는 녀석이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구자철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결국 기성용의 집에 도착해야 할 시간조차 훌쩍 넘겨버렸고, 나는 성용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전했다.
그리고 기성용은 전화를 끊은지 5분만에 구자철의 집 앞에 도착했다.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10분이 넘는 거리였다. 온 몸에 땀을 흘리며 헉헉거리던 기성용은 주저없이 바로 구자철네 집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두들기는 거지, 거의 문을 부술 기세였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야, 구자철!! 문 안 여냐?!”
여전히 꿈쩍않던 문은, 끝이 없이 쩌렁쩌렁 울리는 기성용의 목소리에 결국 열리고 말았다. 삐리릭 하는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기성용이 그토록 목 놓아 부르던 얼굴이 보였다. 근데 문제는…….
“너 얼굴, 이 씨발, 이거 뭐야.”
구자철의 얼굴에 시퍼런 멍과 함께 피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는 것이었다. 자철이의 얼굴을 본 기성용은 약 2초간 할 말을 잃었다가, 떠듬떠듬 말을 이었다. 워낙 착하고 성실해서 누구와 마찰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었던 구자철의 얼굴에 상처범벅이라니, 이건 천하의 기성용도 있을대로 당황 할 상황이 맞았다. 잔뜩 놀란 우리완 다르게 자철이는 차분히 그저 어제 넘어져서 난 상처들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결국 기성용의 머리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그 입에서 식빵이 구워지기 시작했다.
“씨발, 말이 돼? 어떻게 넘어지면 하루 아침에 얼굴이 좆병신이 돼냐.”
“…야. 그냥 상처 좀 생긴 것 뿐인데 내 얼굴이 왜 좆병신이야.”
“니 얼굴은 원래 병신이었는데 그딴 거 붙이니까 좆병신이지 뭐야, 씨발. 헛소리 하지 말고 제대로 말 해. 누구한테 줘터졌냐?”
얻어터진 서러움 때문인지, 니 얼굴 병신ㅋ 이란 소리를 들은 충격 때문인지 자철이의 눈가가 점점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곧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구자철을 보며 야 씨이발, 너 지금 울어?! 하며 쩔쩔 매는 기성용의 모습이란…….
결국 한참 후에야 구자철은 질질 짜며 모든 얘기를 털어놓았다. 어제 우리와 헤어져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 앞을 지나는데 웬 중딩 무리가 자신을 불렀댄다. 뭔 일인가 싶어서 멈췄더니만 그 중딩 무리가 다짜고짜 돈 있냐며 시비를 터왔고, 나이를 잊은 중딩들에게 화가 난 구자철이 연장자를 공경해야 한다며 훈계를 늘어놓았고……. 그리고 그 중딩들에게 얻어터졌다는 뭐 그런 얘기였다. 그 얘기를 듣는 와중에도 기성용은 끊임없이 식빵을 굽고 있었다.
“야, 구찌질이. 넌 씨발 좆중딩들한테 얻어터지고 그냥 집에 왔냐?”
물론 기성용은 중간중간 구자철 까기도 잊지 않았다. (아마 기성용에게 구자철 까기란 본능이 아닐까)
그리고 모든 얘기가 끝나자마자, 기성용은 사건이 있었던 그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나와 자철이가 부르는 소리는 이미 안중에도 없는 듯 보였다.
* * * *
그 후 우리가 기성용을 만난 시간은 학교가 끝난 후인 저녁 6시, 만난 장소는 구자철의 집 앞이었다. 녀석은 구자철네 집 담벼락에 몸을 비스듬히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구자철은 녀석을 발견하자마자 뛰어갔고, 내가 그 뒤를 따랐다.
“너 어디갔었어, 이 새끼야! 학교는 왜 안 온……헉.”
구자철의 잔소리가 또 시작되려는 찰나 기성용의 고개가 들렸다. 그의 얼굴에는 구자철의 것들 보다 훨씬 더 심한 피딱지들이 생성되어 있었으며, 얼마나 얻어맞은 건지 얼굴이 아예 부어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서있기도 힘든지 벽에 기대있던 몸이 스르르 미끄러져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버리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구자철은 이 처참한 기성용의 꼴을 보더니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눈치였다.
“구자봉…. 오빠가 걔네 다 죽여버리고 왔다. 존나 멋있지.”
“내가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병신아….”
????
이 오글거리는 상황은 대체 모다? 저기 혹시 다리미나 고데기 있어요?
무슨 인터넷소설 속 일찐짱 남주마냥 구자철을 바라보며 피식 웃는 기성용은 뭐고, 그거에 또 감동받은 건지 뭔지 씨발 목소리가 촉촉히 젖은 구자철은 뭐냐고요. 제 눈 앞에서 저것들이 지금 게이소설 쓰나요. 이젠 아예 부둥켜 안고있는 저 것들을 멀찍이 서서 바라보자니 정말이지 난 죽을 맛이요, 나의 멘탈은 붕괴로다.
“…찌질이들…….”
결국 나는 뜨거운 우정? 사랑?에 휩쌓여있는 그들을 뒤로 한 채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오늘 본 장면들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존나 나쁜 의미로 말이다.
호현 쓰고 있다가 갑자기 그냥 문득 기성용이랑 구자철이 보이길래.. 그냥... 썼어요...
그야말로 뻘글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결론은 호모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