엷여덟, 그 비참함과 아름다움 01
w.라쿤 |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자를 좋아했다. 유치원 때는 뭣도 모르고 그저 남자가 좋다며 여자 선생님보다는 남자 선생님을 좋아했고, 초등학교에 들어서면서는 웬 남자아이에게 고백까지 했다. 아직도 그 남자아이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그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고 그 엄마는 우리 엄마에게 말했는지 어느 날은 엄마가 와서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그 일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그 당시 꼬꼬마였던 나는 엄마의 눈물이 보기 싫어 무작정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후로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 어렸을 때에 '남자를 좋아하면 안 돼.'라는 생각을 머릿속에 박아놓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중학교에 들어서면서는 그 생각을 부정했다. 대체 왜 내가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는 건데? 그렇게 몇몇 남자아이들에게 당차게 고백을 하고는 좌절했다. 결코, 나는 내가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된다는 그 생각, 아니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이 나라가, 이 사회가, 이 세상이 그랬으니까.
안녕하세요. 남자아이들의 목소리가 교실을 웅웅 울렸다. 그리고 교탁 앞에 선 선생이 교실 끝부터 끝까지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성규는? 선생의 입에서 '성규'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교실 곳곳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글쎄요-
"어디서 몸 굴리다 오나 보죠."
기어코 한 남자아이가 큰 목소리로 말하고야 말았다. 선생이 놀란 표정을 짓다가 큼큼,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꾸짖음을 주나 했던 선생은 오늘 수업 열심히 해, 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반을 나갔다. 선생이 아무 말 못하는 거 봤냐? 존나 웃겨. 지가 생각하기에도 김성규는 존나 더러운가 봐. 한 아이를 중심으로 모여든 남학생들은 입에 김성규를 올리며 욕을 해댔다.
드르륵-
"왔냐, 게이?"
그만둬, 더러운 애랑 말 섞지 말고. 그러다 너도 게이 될라. 성규를 쳐다보던 아이들이 그 말에 웃어젖히며 성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교실의 구석에 다다른 성규가 팔을 베고 책상 위에 누웠다. 그리고 두 눈을 꼭 감았다. 이게 내 일상이었다. 욕먹고, 맞고. 단지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망가진 내 일상. 그중에서 제일 망가진 것은 바로 나였다. 이 상황이 익숙한 나.
선생의 말에 교실은 곧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와중에도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만 끔뻑이고 있었다. 이제 얼마 안 가 저 아이도 날 욕할까, 내가 더럽다며 때릴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손으로 팔을 감쌌다. 그리고 뜬 눈을 꼭 감았다. 두려움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였다. 그냥 쭈그러드는 것. 그게 내 최선이었다.
"자기소개 좀 해보자."
아뿔싸. 그 빈자리는 내 옆자리다. 두 눈을 더 질끈 감았다. 사방에 들리는 웃음소리와, 전학생을 걱정하는 듯 조롱하는 목소리와, 뚜벅뚜벅 걸어오는 전학생의 발걸음 소리가 함께 어우러져 나를 더 두렵게 만들었다. 팔을 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을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윽고 의자를 빼는 소리가 들리고, 나의 몸은 딱딱하게 경직됐다. 마치 주위의 공기가 나를 죄어오는 기분마저 들었다.
"이름이 뭐야?"
말 걸지 마.
"나는 남우현인데, 너 내 말 듣고는 있니?"
아니, 안 듣고 있으니까 말 걸지 마. 내뱉지 못한 말들이 머릿속을 웅웅 울린다. 내가 말이 없자 옆의 남우현이라는 얘가 고개를 숙여 내 밑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웠던 터라 눈을 차마 감지 못했다. 눈이 마주치자 우현은 눈을 반으로 접어 웃어 보였다. 왜인지 가슴이 뛰었다. 다시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냥 놀라서 뛴 거라고, 눈이 마주치니까 놀라서 뛰는 거라고. 앞으로 더 망가질 나를 위한 최대의 변명이었다.
"너 왜 내말 씹어? 이름이 뭐냐니까?"
깔깔. 나를 비웃는 웃음소리가 또다시 주위를 울린다. 한 번 열렸던 나의 입은 다시 굳게 닫혔고, 잠시나마 뛰었던 가슴이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품은 내게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현실은 헛된 희망을 부수려는 듯 매섭게 달려든다. 결국, 나는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휩쓸린다. 이리저리 휩쓸리다 보면 온몸은 상처투성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정신없이 휩쓸리는 와중에 내 상처까지도 보살필 여유가 없다. 그렇게 상처는 자꾸만 더 깊어질 것이고 마침내 죽음까지 다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절대 변치 않을 것이다. 나에겐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는 게 없으니까. 나는 한낱 게이일 뿐이니까.
"성규야. 일 교시 영어인데 준비 안 해?"
우현이 내 오른쪽 팔을 툭툭 치며 물었다. 대꾸를 안 해주면 금방 떨어져 나가겠지, 하며 다문 입술을 더 세게 다물었다. 야, 자냐? 책상 밑에서 꼼지락거리던 손을 들어 귀를 막았다. 듣기 싫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막다 못해 파고 있었다. 점점 힘이 들어가는 손이 어느 순간 탁, 하고 풀렸다.
"지금 전학생 꼬시냐? 유혹하려면 집에서 해. 왜, 너 그거 잘하잖아."
한 아이가 발을 들어서 내 책상을 발로 찼다. 그에 나는 쿵,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이제 울지도 않는다, 아파하지도 않는다.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기를 원할 뿐이다. 귀를 사정없이 파고드는 욕설들에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을 감았음에도 차마 막지 못한 손에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김성규, 일어나."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그 따스함에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우현이 손으로 먼지를 털어주었다. 너는 어째서, 어째서 나한테 이렇게……. 그동안 이 따스함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에 설움이 북받치고 두려웠다. 마치 내가 누리면 안 될 행복을 누리는 것만 같아서, 나에게는 너무 괴분한 따스함이라. 그리고 그 두려움은 사실이였고, 현실이 되었다.
"왜 자꾸 당하기만 하는데, 너 게이 아니잖아. 응?"
심장이 쿵, 하고 바닥 끝까지 떨어진다. …그렇지, 난 게이가 아니야 우현아. 머릿속으로 몇 백번을 되새겼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는게 아니라고, 우현이 너는 더더욱 아니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머지않아 바뀌고 말았다. 나는 우현이를 좋아하는게 아닐 '거라고'. 하지만 결국 나는 나에게 손을 건네오는 네게 무너져내리고야 말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해 우현아. 정말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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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이 기다리셨죠ㅠㅠㅠㅠㅠ 엉엉 진짜 보고싶었어요ㅠㅠ
진짜 하...답글도 달고싶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눈물 바다)
아무튼 진짜 사랑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