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w. 정국학개론
BGM ~ 난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 - Acoustic Cafe
00
바람이 찼다. 창문을 통해 본 바깥은 온통 알록달록했다. 주말 내내 틀어박혀 있어서 그런지 몸이 뻐근했다. 방 문고리를 잡았다 놓기를 반복했다. 왜? 라고 묻는다면 늘 그렇듯 이유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00-1
밖이 시끄러웠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가방 끈을 억세게 쥐고 현관문을 나섰다. 현관문을 닫고 나서야 구겨진 신발을 고쳐 신었다. 이사를 온 건지 옆집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밑으로 사다리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다리 바로 앞에 잔뜩 놓여져 있는 퀘퀘한 박스들에 얼굴을 찡그렸다. 먼지가 묻지 않으려 애를 쓰며 발을 움직였다. 사람들 다 다니는 통로에 이삿짐을 두는 건 어느 나라 센스야. 마음속으로 온갖 욕을 뱉으며 열려져 있는 집 안을 살짝 들여다 보았다. 하얀색 민무늬의 벽지. 아무런 꾸밈 없는 모습에 곰팡이로 물들여져 있는 내 방의 한쪽 구석이 떠올랐다.
" 안녕, 고딩. "
낯선 목소리. 순식간에 앞을 치고 나오는 낯선 몸통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돌렸다. 조금 위에 있는 하얀 머리통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능청스럽게 인사를 뱉은 나른한 목소리는 곧 내 이름 석 자를 불렀다. 정확히는 읊었다. 왼쪽 가슴에 부착되어 있는 명찰을. 이름을 다 내보이고 나서야 급하게 명찰을 손으로 가렸다. 그랬더니 그 나른한 목소리가 나른한 웃음을 내뱉더라.
민윤기.
아저씨와 나의 첫만남.
00-2
아저씨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가끔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유감스럽게도 그 시간은 늘 내가 야자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저녁은 먹었냐는 물음에서부터 개인적인 생활까지 공유한 사이까지, 이웃 사이 그 이상임은 분명했다. 나는 늘 라디오 DJ였고 아저씨는 늘 청취자였다. 뻔한 얘기를 들어주었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복받쳐 우는 건 늘 나였고 달래주는 건 또 늘 아저씨였다. 아무런 말 없이 나를 안아 준 그날, 나는 확신했다. 나는 아저씨를 좋아하는구나.
" 시집 갈 거라니까요. "
" 어쭈, 누가 너 받아준대? "
" 아, 갈 거예요! "
" 들어나 보자. 누구한테 갈 건데? "
" …아저씨한테. "
00-3
" 담배 너무 자주 피우는 것 같아요. "
" 담배가 내 낙이야. "
" 낙이 무슨 그래. 세상에 즐거운 일이 얼마나 많은데. "
" 다 컸네. 이런 말 할 줄도 알고. "
아저씨는 내 은근한 고백에도 도통 답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너무 어리고, 또 여자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잠시 접어두었다. 욕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잠시만 접었다가 성인이 되는 그 순간부터 활짝 열어둬야지. 아저씨는 내가 아저씨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늘 변함 없이 같은 모습으로 같은 곳에 함께 있어 주었다. 그래서 좋았다. 너무 좋았다.
" 고딩. "
아저씨는 내 이름을 알면서도 부르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저씨는 그랬다. 첫만남, 그 이후로 아저씨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걸 본 적이 없다. 가끔 이름을 불러달라 징징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그냥 웃을 뿐, 이름 석 자, 겨우 그 석 자를 불러주지는 않았다. 한 번은 대학생이 되면 대딩이라고 부를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때 아저씨는 웃지 않았다. 웃음기를 뺀 그 얼굴이 익숙했지만 또 낯설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아저씨의 호칭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낯설어서.
" 고딩. "
아저씨가 불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나른한 목소리로. 별 하나 없는 하늘, 뭐가 좋다고 생글생글 웃으며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금세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는 웃고 있었다. 왜요. 왜 그렇게 웃어요. 내 물음에도 아저씨는 그저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냥 웃었다. 왜 웃는지, 뭐가 이렇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웃었다.
" 언제 클래. "
00-4
" 집에서 나와. 집 구해 줄게. "
" …괜찮아요. "
요즘 들어 아버지의 폭력이 잦았다. 엄마도 오빠도 떠나버린 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는 건 무섭지 않았다. 하나 무서운 게 있다면 아버지였다. 밤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마주하지 않기 위해 방문을 잠갔다. 물론 열쇠는 아버지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멍이 끊이지 않는 날이 없었다. 몸에는 늘 가득했고 가끔 얼굴에 시퍼렇게 생기는 날엔 비비를 진하게 바르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걸려 혼이 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을 지워오라고 하시던 선생님은 내 시퍼런 얼굴을 보시고는 그 이후로 말을 아끼셨다.
" 나오라니까. "
" 진짜 괜찮아요. "
" 고딩. "
" 진짜예요. 저 진짜 괜찮아요. "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도 그랬다. 나는 괜찮다, 나는 괜찮다 혼잣말로 수백 번, 수천 번은 되뇌였던 말. 누군가 나를 동정하면 나는 그렇게 말해야지. 나는 괜찮다고. 나는 아버지가 무섭지만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아니라고. 나는 정말 괜찮다고. 그리고 아저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개인적인 생활을 모두 알고 있는 아저씨는 그 집에서 나올 것을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 졸업할 때까지는 있을래요. "
" 말 안 듣지. "
" 진짜 괜찮아요. "
" 너 그러다… "
" 대신. "
" ……. "
" 저 스무 살 되면 데려가야 해요. "
아저씨는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저씨와의 만남 딱 2년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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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한 글이다! 라고 할 수 없는 글이에요 막무가내로 쓴 글이라 두서도 없고 스토리 진행도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고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남자 주인공은 정국이에요 윤기가 아니랍니다 스토리 진행을 위해 프롤로그로 내보인 거예요 프롤로그와 앞으로 진행될 여러 편들은 분위기가 아마 많이 다를 거예요 많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주 조금은 다를 거예요 사실 제 글 분위기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둡지 않은 글이에요 딱 말해드릴 수는 없지만 밝다면 밝은 분위기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여주는 고등학생, 1화부터는 대학생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그것도 대학교 2학년!) p.s. 전남좋 텍본은 제작 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