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현장 떨어졌어. 가자.”
“아. 어제 4차까지 달려서 존나 피곤한데…. 이번엔 또 무슨 사건인데?”
“살인이래.”
책상에 엎어져있던 종현이 아이씨- 하며 몸을 일으켰다. 기범은 수첩을 주머니에 쑤셔넣곤 건너편 책상으로 고개를 돌렸다. 늘 그랬듯 따로 말하지 않아도 민호는 현장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종현 역시 대충 펜과 수첩을 챙겨 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범이 형사로 살면서 살인사건이란 심심찮게 마주하게 되는 일이었고, 그건 민호와 종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살인 현장이라는 말에도 이젠 익숙하게 차 키를 꺼내드는 민호를 따라 기범과 종현은 서를 나섰다.
수사일지(2002~2012)
-上-
민호x종현
“이름은 윤진수. 나이 30세고요, 딱히 직업은 없고 그냥 노가다 뛰는 사람이었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알코올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에 빠져 살았다고, 옆집 남자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줄줄이 이어지는 수사보고에 기범은 그저 몇번 고개를 끄덕였다. 기범의 손에 펼쳐져있는 수첩에는 윤진수, 30세, 노가다, 알코올중독 등의 간단한 단어들이 적혀졌다. 종현은 이미 하얀 천으로 덮혀있는 시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주변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기범과 종현은 같은 해에 경찰이 된 동기이자 편한 친구였지만 둘의 수사 스타일은 극과 극이었다. 기범은 정확한 증언이나 현장증거에 포커스를, 종현은 자신의 형사로써의 감각에 온 집중을 다했다. 민호는 그들이 경찰이 된 지 3년 후에 들어왔지만 기범과 종현의 장점을 아우르는 수사 스타일로 벌써부터 경찰청의 촉망받는 엘리트였다.
“…어우. 이거 상태가 좀 심하다.”
한참동안 주변을 기웃거리던 종현이 시체 위에 덮혀있던 흰 천을 거둬내자, 주변에서 한창 조사중이던 모든 경찰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건 종현도 마찬가지였다. 시체는 발과 손이 꽁꽁 묶인 채 침대 위에 뉘여져 있었는데, 온 몸에 칼자국이 나있었다. 마치 소세지에 난 칼집 같은 것이 온 몸에, 그것도 아주 깊게 나있었으며 그걸로는 모자랐는지 생식기는 아예 잘려있었다. 그리고 엽기적이게도 그 잘려나간 생식기는 시체의 입에 물려져있었다.
그러나 싸늘하게 식은 윤진수의 시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단연, 그의 오른쪽 손목에 새겨져있는 ‘3’이라는 숫자였다. 아마 칼로 그어서 만든 듯, 피가 빨갛게 올라와 선명한 3의 모양을 띠고 있었다.
윤진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왠지 낯설지 않은 이름에 종현은 조금 더 고개를 숙여 시체를 자세히 살폈다. 묶여있던 손목과 발목에 줄에 긁혀 잔뜩 난 생채기가 강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단 말이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종현을 지켜보던 민호가 그러다가 정말 토하겠다며 종현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아, 하긴. 어제의 과음으로 종현의 속은 이미 잔뜩 엉켜있었다. 역시 최민호 세심하네. 종현이 씨익 웃으며 민호의 가슴팍을 툭툭 쳤다.
“하여간 둘 사이 존나 수상하다. 어? 최민호 너한테 나는 선배도 아니냐? 맨날 김종현만 챙겨.”
하여간 저 둘은 허구언날 붙어서 꽁냥꽁냥이지. 투덜거리는 기범에게 종현은 가만히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워주었다. 저 애새끼 또 초딩 짓 하는 거 봐라! 하며 혀를 쯧쯧 차던 기범의 어깨를 민호가 살짝 잡으며 웃는다. 알았어, 내가 그만 한다, 그만 해. 오늘도 말리는 건 최민호, 참는 건 김기범이었다.
민호는 종현이 들어오고 딱 3년이 되는 날에 들어온 후배였는데, 첫 사건부터 종현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처음에는 귀찮아하던 종현도 끝까지 자신만을 따라다니는 민호의 끈기에 항복하고 말았고, 둘은 벌써 일년 째 모든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베스트 콤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단순히 콤비라는 단어로 설명되는 개념은 아니었다. 민호는 종현에게 경찰 선배 이상의 대우를 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어쩌다가 넘어져서 조금 긁히기라도 하면 바로 약국까지 뛰어가 약을 사오는 그런 극진한 대우라고 할까. 덜렁거리는 종현의 옆에서 늘 자상하고 꼼꼼하게 챙겨주는 민호가 종현도 싫지는 않아보였다. 아니, 오히려 이젠 종현에게 민호가 없으면 서운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는게 더 정확했다.
* * * * *
“아, 김기버엄. 존나 치사한새끼, 먼저 가버리구우….”
“수사할 게 있으시다잖아요. 선배도 이제 그만 마셔요, 속 상할라.”
“우응? 어쭈구리. 이게 김종현 간을 뭘로 보냐? 내 간은 슈퍼 간이거드은.”
전날도 술을 과하게 마셨다며 하루종일 퀭해있던 종현이 주도한 술자리였다. 살인 사건 수사 전에는 꼭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셔줘야 한다며 기범과 민호를 끌고 술집으로 들어온 종현이었다. 그러나 사건현장서부터 뭔가 기분이 찜찜하다던 기범은 얼마 못가 수사할 게 있다며 서로 돌아가버렸고, 결국 남은 것은 종현과 민호 뿐이었다. 원체 술을 잘 입에 대지 않는 민호 덕분에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초록 병들은 다 종현의 것이었다. 이제 그만 마시라며 말리는 민호의 말에도 헤롱헤롱 거리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종현이 귀여운지 민호는 가만히 웃을 뿐이었다.
“야, 민호야아. 형이 너 믿는 거 알지?”
내가 너 무지 믿는다구…. 믿을 놈 너 뿐이다, 알지?
중얼거리던 종현이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민호는 아프지도 않은지 금새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곯아떨어진 종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알아요, 선배. 참으려 해도 민호의 입가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 * * * *
“아야야…….”
종현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붙잡은 채 눈을 떴다. 눈이 핑핑 돌기는 하지만 익숙한 천장이며 이불이 여기가 종현의 집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집에 기어와서는 잤구나. 술냄새가 가득한 숨을 뱉으며 종현이 몸을 일으키려는데.
“…으아악!!”
허리가 부러지는 듯한 고통이 척추를 따라 찌르르 올라왔다. 더군다나 엉덩이 쪽이 화끈거리는게 무지하게 따끔따끔한데…. 종현은 연이어 몰이치는 고통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찍 짜내며 고개를 내려 제 몸을 훑어보았다. 잔뜩 구겨진 시트에는 드문드문 피가 묻어있었고, 자신의 몸에는 실오라기 하나도 걸쳐져있지 않았다. 대체 이 상황은 뭐, 뭐야?! 미처 당황할 틈도 없이 종현의 방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잘 잤어요?”
민호가 싱긋 웃으며 종현의 옆에 앉았다. 종현은 이게 대체 뭔가 싶어 그저 어벙허게 민호를 올려다 볼 뿐이었다.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종현이 귀여운지 아까보다 더 환하게 웃은 민호가 종현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었다.
“이, 이, 이거 뭐야? 내가 너랑 왜 우리 집에, 이거 피는 왜, 내 허리는……?”
잔뜩 당황했는지 민호의 손을 쳐내지도 못한 종현이 더듬더듬 말을 뱉었다. 민호는 여지껏 띄우고 있던 웃음기를 싹 집어 넣고는 종현의 어깨를 잡았다.
“기억 안 나요?”
어엉? 대체 뭐가 기억이 안 나냐는 건데……?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다는 표정의 종현을 본 민호가 깊게 숨을 뱉었다. 종현과 다르게 술냄새는 나지 않았다.
종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제 얘랑 술을 마셨고, 얘가 꽐라 된 나를 우리집에 데려다 줬고, 눈을 떴더니 내가 다 벗겨져있고, 아래는 욱씬거리는데다가 허리가 부서질 것 같은 건………
“잤는데. 선배랑 나.”
그래. 잤구나, 내가 너랑……어?
순식간에 머리 끝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종현이 황급히 이불을 끌어다 몸을 덮었다. 내가 얘랑 잔건 그렇다 치고, 내 엉덩이가 데인 듯 화끈거리는 건, 내가 얘한테 당했… 그러니까 내가 깔렸다는 거잖아. 평소에는 잘 굴러가지도 않던 머리가 도록도록 소리를 내며 힘차게 굴러가고 있었다. 민호는 충격에 빠진 종현을 안았다. 나는 좋았는데, 선배는 싫어요? 바로 귓가에다 낮에 울리는 목소리에 종현의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했다.
“아, 아니! 나도 싫지는 않은데…….”
사실, 좀 좋은 것 같기도 해.
중얼거리는 종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민호가 종현을 더욱 꽈악 안았다 놓아주었다. 얼른 씻어요. 밥 먹으로 가게. 평소보다 더 다정한 것 같은 민호의 목소리에 종현 또한 살짝 웃으며 대답하려는 찰나. 종현의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졌다. 액정에는 [김기범] 이라는 세글자만 덩그러니 떠있었다. 이 시간부터 얘가 왜 전화지? 의아한 종현이 지체없이 바로 통화버튼에 댄 손가락을 끌었다.
“여보세요.”
-야, 김종현. 너 지금 어디야.
“나 집이지, 임마. 왜 그러는데?”
-지금 또 살인 사건 났는데. 어제 그 새끼인 것 같아.
“어?”
-연쇄살인 인 것 같다고, 병신아!
핸드폰을 넘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기범의 목소리에, 민호와 종현의 시선이 공중에서 마주치며 굳었다.
여러분 하이 다시다시다시다에요 '-')/
수사일지(2002~2012) 는 총 5화, 상 중상 중하 하로 계획 하고 있구여, 연쇄살인사건과 그걸 추리하는 내용이랍니다
잠복근무와는 다르게 아예 결말까지 내놓고 시작하는 거에여 이번엔 꼭 좋은 작품 쓸 거라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샤이니 전부 다 출연시킬 계획이에여(물론 아주 짧게 등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ㅋㅋ)
장르가 장르다보니까 막 알콩달콩 달달터지는 로맨스보다는 사건 중심으로 전개시킬 생각입니다 다들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
댓글 많이 달아주시면 저는 참 기분이 좋겠네요 예, 그냥 그렇다구요 네, 예, 그렇습니다.. (저 절대 구걸 하는 거 아님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