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무서운 한파라며 끌끌 거렸다. 나는 그 해 겨울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두고 태어났다고 한다.
오랫동안 아기를 가지지 못하신 부모님은 하늘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나를 마음으로 낳으셨고 키우셨다.
나의 진짜 부모님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물이.. 기적이 나타났으니 크면서 원망한 적도 없던 것 같다.
사실 고아원을 통해 입양을 하신게 아니다. 두 분은 사업차 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셨던 거라고 한다.
어느날 새벽에 나와보니 내가 있었다고, 정말 동화같은 일이었다고 회상하시곤 했던 것 같다.
내 옆집에는 나보다는 조금 일찍 태어난 친구가 있었다. 겨울에 태어난 나와는 달리 여름과 가을사이에 태어났다.
그래서 인지 여름과 같은 뜨거운 열정과 가을의 단풍과도 같은 재능이 있었다. 이름은 이씽, 장이씽.
잘 모르겠다. 무슨 뜻인지도. 그 아이의 이름의 뜻을 알기에는, 내가. 내가 너무 어렸던 것 같다.
"와쏘? 이름?"
비록 중국에서 키워졌지만, 중국말은 아무리 배워도 늘지가 않았다. 집에서 부모님이 한국말을 쓰시다보니까 한국말에 익숙해져버린 나였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이씽이와 매일 싸웠던 것 같다. 이씽이는 중국말을, 나는 한국말을. 둘 다 고집이 세서 괜히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오기와 억지가 되었었나보다.
"这个倔啊!"(고집쟁이!)
"뭐라는거야? 이 .. 이 바보야!!"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이기는 건 나였다. 그래서 본성이 착한 이씽이는 결국 한국말을 배우기로 결심했나보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이해했고, 친구가 되었다.
"对不起"(미안해)
"우웅? 아니야아 나 마니 기다리....지..아..났어..?"
물론 더 배워야 할 것 같지만.
곧 있음 내 생일인데 이씽이가 오늘은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얼마 전에 나간 오디션을 보고 한국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국에 갈 것 같다고.
나에게 최고의 생일선물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자고 어렸을 때부터 약속해왔으니까. 그리고 꿈을 이루는게 서로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거라는 걸 아니까.
"으어어어어- 진짜 가는거야? 한국으로? 나,나도 갈까? 나도 한국으로 갈게!!! 이씽아 ㅠㅜㅠㅜ 우엉어"
너무 기뻤지만 너무 슬펐다.
이 착한 녀석, 한국 가서 말도 잘 안통하는데 사기 당하는 건 아닌지, 밥은 잘 먹고 다닐지.
그래서 그러면 안되는 건데, 울어버렸다. 씽이 앞에서. 내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물이 나오도록. 아주 추하게.
"오..오.... 이름! 왜..왜 우러? 씽가 모 자알모탰어?"
내가 방방 뛰며 좋아할 거라고 예상했던건지 그 아이는 우는 나때문에 차디찬 집앞 골목길에 주저앉아서 나를 살피기 급급했다.
아주 당황한 표정으로. 아주 어눌하고 서툴한 한국말을 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나에게만큼은 한국어를 써주는 씽이었기때문에, 매우 당황스러웠음에도 중국어를 쓰지 않았다.
착한 녀석.
"이름! 울지마....음...쿠리스마쑤 카드 보낼게!! 이름 새엥일도 추카하고 쿠리수마쓰도 추카하고!"
그렇게 씽이가 떠났다. 한국으로. 서울의 어느 곳으로.
부모님께서는 방학 때 보러가면 되지 않겠냐며 나를 달래주셨다. 나도 보러 가는 날만 손 꼽아 기다렸던 것 같다.
어느날 자다가 눈을 뜨니 서울이었다. 이 곳 서울. 대한민국의 수도.
씽이가 있는 곳. 내 친구 장이씽이 있는 곳. 시간은 흘렀고 더이상 옆집 착한 아이 장이씽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엑소라는 그룹에 레이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어눌한 발음으로 열심히 한국말을 했다.
정처없이 걷다가 엑소가 속한 기획사 건물 앞을 지나게되었다.
여자아이들이 가득했다. 지나가는 나에게까지도 엑소라는 단어가 들릴 정도로 씽이는 꿈을 이뤘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카드를 보낸다는 약속도 지켰었다. 지켰던 것 같다. 왜 인지 몰라도 잘 기억이 안나지만.
씽이는 지켰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연히 시상식에서 보게 된 씽이는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짜식- 모양새 안나게, 왜 저러고 있어..
괜히 내 아들같아서 긴장하고 기죽은 얼굴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상을 받은 씽이는 언제나처럼 굽은 허리를 쉽게 펴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자신의 꿈을 이루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린 친구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친구.
같은 꿈을 꾼 그룹의 멤버들과도 어울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 밖에 없었던 아이였는데,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빼앗긴 것 같아 귀여운 질투도 조금은 했다.
피곤한지 눈을 감고있는 씽이에게 다른 멤버가 장난을 치니 조용히 웃는 모습도 여전했다.
항상 씽이가 피곤하다고 졸면 내가 앞에서 장난치고, 그러면 못말린다는 듯이 항상 예쁘게 웃어줬는데.
"자- 레이씨! 많이 피곤하신가봐요?"
"아..조요? 에헤헤.. 아니에여 피곤하지안슴다!"
"우리가 오늘 찍는게 뭐죠?"
"음...오늘 저희는 교오보옥? 광고를 찌그러 와씁니다"
"크- 역시 레이씨 잘생겼어요- 교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뭐 혹시 학창시절 얘기없어요?"
"하창시절?"
"아, 레이씨 학교다닐때 이야기요. 추억같은거요. 아 뭐..첫사랑같은거?"
"처사랑이요?"
"아하하 발음조심하세요. 처말고 첫 사랑입니다- "
"아하..음.........저는........"
왜 인지는 몰라도 인터뷰하는 씽이의 모습은 슬퍼보였다.
그나저나 씽이에게 첫사랑이 있었던가..? 아.. 초등학교 때 옆반 예쁜이..? 아님..누구더라........
"저는 처엇사랑말구여... 음 제가 진짜지인짜 조아해떤 친구가 이썼는데여"
("그게 첫사랑이에요 레이씨!")
인터뷰를 주도하던 멤버가 아닌 우리 집에서 키운 강아지와 닮은 또 다른 멤버가 웃으면서 놀렸다.
"아 배쿈씨 아니구요- 어쨌뜬!! 칭구가 이썼는데여, 음....멀리 가써여"
"어딜 갔죠?"
"음.. 욮집에 살던 칭군데..음.. 저가 항국에 오고나서 사고가 났때여... 그래소 멀리 가써여.."
"아......................"
"............................."
사고..? 씽이 친구 중에 사고 당한 친구가 있었나..?
옆집..? 우리 이웃 중에 또래가 있었던가...?
"괜차나요! 그 친구가 항쿡어 쓰라고 해서 제가 배웠는데, 친구덕분..에? 이러케 한궁말 잘 할쑤이써서 너무 고마워요"
인터뷰를 하던 멤버도, 옆에서 놀리던 멤버도.
모두가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하...수호씨,배쿈씨 왜 우러요"
"아..정말....."
"아 미안해요 형..난 그런줄도 모르고.."
이 순간 가장 당황스러운건 씽이도 아니고 멤버들도 아니었다.
한국어를 가르쳐주고 옆집에 살던 친구. 씽이가 좋아했던 친구.
나...였어...?
말도 안돼.........
소리쳤다. 발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나를 보지않았다.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씽이조차도 듣지 못했다.
나 여기있는데, 네 앞에 있는데..
왜 씽이 앞에 있는건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무서워졌다.
그러고보니 씽이가 한국 간 이후의 기억도 사실 없었다. 있을거라 믿고싶은 마음에 거짓 기억을 만들어냈나 보다.
"움...그 칭구가 생일이 12월인데, 쿠리스마스랑 가까워서 저가 크리스마스 카드 보내겠따고 약속했는데."
잊지 않고있었구나..씽아.
"음..군데...답장을 못바닸어요. 음,, 나중에 알고보니까 크리스마쓰 때 교통사고 당했따고.."
교통사고..?
그랬나. 나 사고당한 거였구나.
너에게 카드가 왔다는 연락을 받고 뛰어가던 중에 난 사고였나보다.
이로써 내 의문이 풀렸다. 이상하게도 내 마지막 기억이 밝은 불빛이었는데. 나는 매우 기분 좋은 기억인 줄 알았는데
내 마지막은 너가 아니라 자동차의 라이트를 보고있었던 거구나.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씽이를 보기 위해서 나는 이 곳에, 너의 곁에 머문 거였나보다.
씽아-
"아...그렇군요..음...혹시 친구분께 하고싶었던 말이 있어요?"
"아하하 음..그냥 마니, 이 장이씽이 아, 칭구 이름이 성이름 이에요- 레이가 이름을 마니 좋아해따구요- 카드에도 썼는데 답장을 못 바다써요.
배쿈이가 말한 처엇싸랑이 이거..이건가? 음. 그럼 제 첫사랑은 이름, 너야! 마니 보고싶고, 아프로도 보고시플거 가꾸- 그리고 나 엑소다!
내 꿈이었는데, 너가 하늘에서 응워언 마니 해죠서 ..음..고마워. 다음에 ...아주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 때 만나자
그 때는, 지금보다 더 항국말 머찌게 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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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씨도 춥구, 기분도 꿀꿀해서 원래 해피해피만 좋아하는데 ,이렇게 써버렸네요.. 이건 아무래도 번외가 꼭 와야할 것 같은 생각이.
근데 이씽이 너무 예쁜거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