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꿨다. 십년여전 죽은 도경수가 나를 찾아왔는데 한손에 칼을 들고 있었다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분명 부인과 침대에서 잠을 자고있었는데 멀고아득한 새벽녁쯔음 발소리가 들렸다 눈을떴을때 도경수가 안방 문턱에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봤다 옆자리 누워있을 부인은 없었다. 도경수는 옛날을 그리워하듯 교복을 곱게 차려입었다 나한테 점점 다가왔는데 움직일수 없었다. 가위에 눌렸나보다 생각했다. 도경수가 한발짝 다가오자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다음날 또 도경수가 나왔는데 이번엔 두발짝 걸었다 문턱을 넘어섰고 날 보는 눈빛은 여전했다. 그래서 무서웠다. 꿈에서 울었다. 도경수가 무서워서 운건가? 아니면 미안해서 운건가. 잘 모르겠다. 다음날에는 세발짝, 그 다음날에는 네발짝이였다 다섯발짝이 될쯔음에는 보폭을 크게했다. 갑자기 쿵. 다가오는 도경수에 놀라서 가위에 풀려났다. 다음날엔 여섯발자국일까. 그러면 침대에서 벗어난 나의 발과 도경수가 맞닿을까. 안경을 쓰고 업무를 보다가 한쪽팔을 쓰다듬었다. 팔뚝이 시렸다.
나는 부인에게 말했다. 안방에서 잠을잘수 없으니, 서재에 이불을 깔고 자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번엔 작가시점으로 꿈을꿨는데 도경수가 여섯발자국을 도달하고 침대에 있을 나를 찾고있었다. 부인은 새삼모르게 자고있었다. 부인은 상관 없다는듯, 도경수가 무너져내렸다. 침대 아래 웅크리고 울었다. 소리는 안들렸다. 그냥 어깨가 떨린다는걸로 알수있었다. 근데 왜 귓가에서 소리가 들리는듯 싶은걸까. 눈을 감고있었는데 귓가에 강렬히 들리는 도경수의 울음소리에 눈에 힘을줬다. 기억한다. 이 울음소리를. 도경수는 나의 괴롭힘에 죽었다. 도경수는 나를 좋아했다. 사랑했다. 나는 도경수를 싫어했다. 증오했다.
열아홉이였다. 도경수는 열아홉때 죽었고 그래서 나도 열아홉에 멈춰있다. 도경수가 죽고 나도 죽었다. 죄책감은 상상할수 없어서, 3년간 방에 틀어박혀있었다. 어려서 그런것이다. 도경수가 동성애자라는게 나에게 고백함과 동시에 소문이나서, 끔찍하게 괴롭힘당하는 도경수를 감싸주지 못할망정 같이 괴롭혔다. 자살할줄은 몰랐다. 수능이 끝나고 대학생이되서 내가 고백하면 받아줄줄알았다. 이기적이여서 그런 생각을 할수 있었나보다. 도경수는 정갈하게 쓴 편지를 내 책상서랍에 넣었고 난 그 편지를 ‘사랑’ 이란 단어가 나온 뒤로 읽지 않았다. 사랑했어? 사랑해서 미안해? 무슨 말일까 생각했는데 읽기가 무서웠다.
도경수의 울음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고 내 추억회상도 끝났다. 나는 번뜩 눈을떠 서재의 책장 어딘가 꽂혀있을 도경수의 편지를 찾았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사이에 끼여있었다. 나는 쉼호흡을 길게하고 편지를 펼쳤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왜 도경수는 나를 찾아온거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무서웠는데도 억지로 읽었다. 이것이 내 죄값이라면.
‘
데려갈게
니가 날 잊어버리는 날에
잊지말아
응?
알겠지?
백현아 ’
귓가에 다시끔 도경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