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w. 정국학개론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장을 뒤졌다. 슬슬 여름 옷을 꺼내야 할 때가 다가와서는 둘째 치고,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울이 되어서는 단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옷장을 열자마자 퀘퀘한 냄새가 쏟아져나왔다. 숨을 참으며 단정히 옷걸이에 걸려져 있는 옷 하나하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한 가지. 남색의 교복 마이, 왼쪽 가슴에 박혀 있어야 할 이름 석 자는 어디 가고, 성이 빠진 채 두 글자뿐이다. 정국. 옷을 꺼내어 주머니를 뒤졌다. 먼지만 나오는 오른쪽 주머니와는 다르게 왼쪽 주머니에서 쪽지 한 장이 나왔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것이라 그런지 여전히 종이는 빳빳하다.
씨걸 010 xxxx xxxx
*
나는 흔히 말하는 베스트 프렌드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물론이고, 아마 중학교 시절도 딱히 베스트 프렌드라고 할 것까지 없는 친구들과 나름 잘 지냈던 것 같다. 대학교는 사회 생활의 일부라며, 친구의 개념보단 동기의 개념이 더 크다는 말에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내 옆에 있는 게 아저씨가 아니라면 혼자 있는 게 익숙했다. 그리고 파릇파릇한 신입생이 되었을 때, 나는 캠퍼스의 로망보단 어떻게 하면 엠티를 재주 있게 빠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나에게 처음으로, 그러니까 엄마와 오빠가 떠난 후 아저씨와 호석 오빠를 제외한 낯선 사람이 다가왔다.
" 안녕. "
익숙하지 않은 시선에 먼저 눈길을 피한 것도 여러 번. 그 아이는 끈덕지게 나를 물고 늘어졌고, 그 덕에 점심은 늘 그 아이와, 수업도 늘 그 아이와. 그리고 결국 엠티도 가게 되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말이 비단 남과 여의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었는지, 어느새 그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즐거웠고, 그 아이가 먼저 다가오지 않아도 내가 먼저 그 아이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 연주야, 오늘 학식 된장찌개래. "
" 헐, 미안. 내가 미리 말을 안 했다. 나 규태랑 점심 먹기로 했는데… "
김규태가 우리 사이에 끼어든 건 순식간이었다. 겨우 몇 달을 함께 지냈다고, 혼자 있는 게 어색해지기라도 한 건지, 학식에서 혼자 숟가락을 들고 있는 게 낯설었다. 한동안 연주는 김규태와 점심을 함께 했고, 겹치는 수업이라도 있으면 수줍게 웃으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과 내에서 둘의 열애설이 파다하게 퍼졌을 때,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연주에게 물었다. 김규태를 좋아하냐고. 연주는 얼굴을 붉혔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둘을 응원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주는 결국 김규태와 우리 과의 공식 씨씨가 되었고, 혼자 있을 나를 배려해서인지, 우리는, 그러니까 연주와 김규태, 그리고 나는 늘 함께였다.
*
" 연주 학생회 회의 있다고 먼저 나갔는데… "
" 연주 만나러 온 거 아닌데. "
" 꼭 날 보러 온 것처럼 말하네. 지금 여기 너랑 나밖에 없는 거 알고는 있어? "
" 너 보러 왔어. "
언젠가부터 김규태가 나에게 연락을 하는 횟수가 잦았다. 함께 버스를 타고 하교를 할 때도, 연주를 창가쪽에 앉힌 후 나를 제 옆자리에 앉히고는 은근슬쩍 닿아오는 손이 기분 나빴다. 의도였는지, 실수였는지,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나에게 흑심이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집 근처니 잠깐 만나자며, 갑작스레 연락을 한 적이 세 번이 넘었고, 연주가 학생회로 인해 바쁠 때면 늘 나를 밖으로 데리고 가 점심을 사 주었다. 연주의 남자 친구라 거절하지도 못하고 억지로 끌려다니기를 몇 번. 아저씨에게 상담 아닌 상담을 받은 후, 더 큰일이라도 나기 전에 제대로 끊어내야겠다,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김규태에게서 늘 오던 그 연락이 왔다.
[ 집 근천데. 오늘도 안 돼? ]
*
" 나를 부르는 이유가 뭐야? "
" 좀 걷자. "
김규태가 먼저 걸음을 옮겼고, 조금 텀을 두고 그를 따라 걸었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모습이 여유로웠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 날카롭게 끊어낼 준비를 하고 왔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를 부리는 그 모습이 얄미워, 얼굴을 찡그리며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 이제 그만 연락했으면 좋겠는데. "
" 뭐래. 누가 들으면 내가 너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줄 알겠다. "
" 그러니까. 관심 없으면 연락하지 말라고. 이런 말 하는 것도 우스운데, 난 연주한테 오해받을 생각 전혀 없어. "
" 그래, 우리가 오해받을 사이가 되긴 하냐? 야, 친구끼리 만날 수도 있는 거고, 뭐 그런 거지,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해? "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이, 매끄럽게 반응하는 모습에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런 반응을 예상한 게 아닌데. 틀린 말이 아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선 김규태가 조용히 움직이던 발을 멈추고는 뒤를 돌아선다. 어느새 그를 따라 들어간 내가 그를 올려보았고, 그가 소름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손목이 잡힌 건 순식간이었고, 그 어두운 골목에서 나는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눈부터 질끈 감았다. 손이 거칠었고, 나는 무자비하게 발을 굴렸다. 남자는 역시 남자인 걸까, 저항할 수 없는 무거운 몸, 강한 손아귀에 온몸이 정지한 듯 멈춰졌다. 골목 안은 뜨거운 숨소리로 가득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눈물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싫다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겁에 질렸고, 아마 김규태는 그걸 아는 것 같았다.
하지 마, 제발. 제발 그러지 마.
연주의 얼굴이 스쳐지나갔고, 옷이 뜯어지고 있었다. 아저씨가 생각났고, 곧 찬바람이 맨살에 닿았다. 무릎부터 다리가 떨려왔다. 아무것도 손을 잡고 있지 않았지만, 무언가에 강하게 눌린 듯 나는 그저 누워서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 하나가 없는데, 그게 너무 서러웠다. 왜 너는 없을까. 왜 하나도 없을까.
*
" 아가씨, 진짜 큰일 날뻔했어. "
" 네……. "
" 앞으로 밤에 돌아다니지 말고. "
" 네……. "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따뜻한 머그컵이 쥐어져 있었고, 어떤 큰 것이 내 몸을 감싸고 있었다. 내 앞에는 신신당부를 하는 경찰 아저씨가 있었고, 나는 아마 경찰 아저씨에게 집에서 곤히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저씨의 번호를 불렀던 것 같다. 곧 경찰서로 아저씨가 달려왔고, 내 꼴을 보고선 얼굴을 찡그리며 경찰과 대화를 나누었다. 경찰 아저씨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를 품에 감싸듯 안고 나온 아저씨가 내 양 어깨를 붙잡아 세웠다.
" 다친 덴 없어? "
" ……. "
" 내가 미안해. "
" ……. "
" 내가 괜히 끊어내라고 해서. "
" …아저씨. "
안도의 한숨인지, 뭔지, 깊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인 아저씨가 내 부름에 답하듯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맞추었다. 새카만 눈을 빤히 쳐다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까와 똑같은 하늘. 별 하나가 없는 하늘. 그리고 나를 붙잡던 억센 손길. 여기저기 뜯어진 옷. 눈을 질끈 감으며 아저씨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 …무서웠어요. "
*
그때의 기억은 살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때 내 몸을 감싸고 있던 남색 마이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싶지도, 알 이유도 찾지 못했는데. 딱히 남색 마이에 어떤 이름이 박혀 있는지, 주머니엔 뭐가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오를까 봐.
엠티에서 나를 감싼 전정국의 목소리가, 또 그 품이 익숙하다고 생각은 했었다. 초면에 씨걸을 모르냐는 그 물음도 이제서야 이해가 갔다. 전정국이었으니까. 그때, 나를 구해준 게. 그때, 나를 안아준 게.
" 나 진짜 멍청인가. "
휴대폰을 들어 종이에 적혀 있는 번호를 쳐보았다. 씨걸. 작년부터 내 휴대폰에 있었던 번호인 것처럼 종이에 적혀 있는 번호와 꼭 들어맞는 번호에 헛웃음이 나왔다.
*
밤에는 음악을 들으면 위험하다는 담임 선생님의 오늘의 말씀을 듣고 이어폰을 고이 접어 바지 주머니에 구겨넣은 정국이 노래를 듣는 대신 흥얼거리며 발을 사뿐히 움직였다. 지름길이 있었지만 낭만 없는 큰 길을 싫어하는 정국은 늘 가로등이 있는 이 길을 택하곤 했다. 오랜만에 야자를 끝까지 하고 온 정국은 하품을 쩍 하며, 자기 전에 서든 한 판이나 하고 잘까,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지개를 켜며 무심코 고개를 돌린 그 곳에는.
정국은 호기심이 많았다. 고등학생이었고, 한창 혈기왕성할 나이였다. 그리 이르지도,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시간에 이런 곳에서 거사를 치르는 행위를 보고 싶은 정국이 조심스럽게 발을 움직였다. 그리고 거사가 흔히 포르노에서 보던 그런 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을 알게된 정국이 망설임 없이 골목길로 들어섰다.
OO의 옷을 분주하게 벗긴 후, 휴대폰을 들어 촬영하던 규태의 손길이 멈추었다. 정국이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고, 허공에서 눈이 마주친 순간 규태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리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 야, 고딩. 가던 길 가라? "
" 가던 길 가면, 하던 일 계속 하려고? "
" 말이 짧네, 고딩이. "
OO를 두고 일어나려던 규태의 턱을 정국이 발로 차올린 건 순식간이었다. 평소 축구를 좋아하던 정국이었으니, 단 한 번의 발길질로 K.O. 당하는 건 당연했고, 겨우 발길질 한 번에 넋이 나가버린 규태를 뒤로 하고 OO를 일으켜 들어올리려던 정국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눈을 질끈 감았다. OO를 벽에 기대게 한 후, 마이를 벗고는 눈을 감은 채 조심, 조심 너에게 덮어 준 정국이 뒤를 돌아, 어쩔 줄 몰라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다, 휴대폰을 꺼내 경찰서로 전화를 넣었다. 여자를 혼자 두고 가고 괜찮을까 잠시 고민하던 정국이 OO가 뒤척이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곧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돌아가려는 정국을 붙잡은 건 미약한 울음소리였다. 복잡한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정국이 OO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무릎을 가슴에 딱 붙인 정국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허공에 휘젓던 손을 어색하게 OO의 어깨에 대고 토닥였다.
" …괜찮아요. "
정국의 19년 인생, 태어나서 처음으로 한 위로였다. 살짝 벌린 입가에서 신음을 내던 소리가 점차 줄어들고, 정국이 OO에게 가까이 대었던 몸을 떼어냈다. 그렇게 한참을 쪼그려 앉아 OO를 물끄러미 보았다. 선명한 눈물 자국이 새겨져 있는 OO의 볼을 살짝 쓰다듬던 정국이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이내 일어났다. 쓰러져 있는 규태를 골목길에서 질질 끌고 나오자마자 경찰이 도착했다. OO가 무사히 경찰차에 탑승하는 것을 본 정국이 한숨을 푹 쉬며 그제서야 발을 움직였다. 주머니에 손을 쿡 집어넣고 만져지는 이어폰을 든 정국이 집으로 돌아가며 문득 든 생각.
" 아, 내 마이. "
옷을 유난히도 잘 잃어버리는 정국은 늘 주머니 또는 옷 안쪽에 별명과 함께 전화번호를 기록한다. 정국은 이번에도 역시 마이 주머니에 번호를 넣었으니, 전화가 오겠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전화는 오지 않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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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너무 늦게 왔죠 죄송해요 앞 내용 기억도 안 나실까 걱정이네요... 연중을 한참 고민하다 염치없이 뒤늦게 와서 연재합니다 독자님들 죄송해요 기다려 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감히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BGM~ 스탠딩에그- Little 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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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뭉실 ㅈㅈㄱ 웃웃웃 맑공 정콩국 새별 손가락 비비빅 형뚜 0418 오구리 방치킨 시나브로 슈테른 뿌야 냥냥이 미니미니 플랑크톤회장 소뿡 핑크보이 열아홉 부랑이 정꾸 이과생 인사이드아웃 미늉기 꾸꾹이 잼잼 방구대왕뿡뿡 핑슙 꽃님 조막부리 예에에 방탄나라정국공주 토끼 물고기 고구마 침을태태 ♡오렌지♡ 또또 막꾹수 인연 937 용용이 흥탄 이부 푸딩 사용안함 너를위해 스미마셍 민이 큄 #원슙 요를레히 스며들면 태권브이 몬무이 현지짱짱 소녀 민빠답없 기타치는소녀 요맘때 독자1 야끙 태태뽀뽀 호리호리 슈가몽 후엥 정쩔 수저 민트 오레오 코코팜 은류 박듀 윤아얌 계피 꿀떡맛탕 그로밋 작가님사랑해여 알라 히동 화원의낭자 윤기쟁이 태형워더 변탄소 태태한침침이 피닝 초코송이 슙꽃 젤리 규짐 디디 김치만두 지민쓰짝사랑 요덮아놀쟈 정국이마누라 달다리 1013 골드빈 맴매맹 탱탱 818 기화 여름밤 흥탄♥ 본시걸 태퉤 얌냠 영감 호빗 론 전장꾸 쿠마몬 초코 태태퉤 국쓰 몽쉘 돌핀이 괴물 8개월 웬디 비림 체리 달똥달 디즈니 토끼총총 꾹꾹이 허니꿍 썸남 김태형보스 아짓 꼬이 초딩입맛 침침 달콤윤기 팅커벨 자몽에이드 맴매야 쟉하 언더더쎄임문 97꾸 딘시 모매아 몽슈 아틸다 이삐 꾸꾸야 슈팅가드 땡스투전정국 사람 토마토마 스 J 밍꾹 박듀 매직핸드 꽃소녀 복숭아 즌증국 문현 밤비 슙큥 지금당장콜라가먹고싶다 SAY 정구기데발염 호비의물구나무 윤기야 ☆요다☆ 레인보우샤벳 오페라 김치찌개 치명 증원 너와나의연결고리 정국아블라썸 김데일리 피짜 미리내 빈글 즌증구기 태퉤 REAL 차문남 핫초코 진간 ☆이현☆ 자판기 아침2 민트초코칩 맙소사 호시야 내손종 우메 소청 메이♥ 비키트박뿡 살구잼쿠키 꾸기쿠키 무지개 218 검정볼펜 지금당장콜라가먹고싶다 0207 이만총총 즴니 섹시태형 0000 윤비 미리내 꾸기까비 상처 민블리 쵸니 sssssss 행복 메비포유 현지 딸기빙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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