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입니다.
…부상자는 세 명, 그 중 두 명은 심각한 중상…
그 차량은 인기그룹 비투비의 멤버 정일훈이 타고있던 것으로… “
큰 사고였다.
눈 앞이 흐려졌다.
머리속엔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속보를 다 듣지도 못하고 뛰쳐나와 무작정 택시를 잡았다.
`우리 일훈이`
떨리는 손을 간신히 붙잡고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한 두번 쯤 울렸을까, 달칵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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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난 진짜 아니냐? “
마음을 숨긴 장난스러운 고백.
“가족끼리 어떻게 사귀냐.“
20년을 친구로 지냈다.
아니, 일훈이만 그랬다.
나는 15년만 일훈이를 친구로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자꾸만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어색한 것을 죽어도 싫어하던 너.
그래서 나는 진지한 고백 한 번 안했다.
아니, 못했다.
너를 못보느니 차라리 이렇게 내 마음을 숨기는게 나아.
“야, 뭐해. 무슨생각해. 얼른.“
그가 내게 손짓했다.
이리와.
얼른 내 옆으로.
나는 웃었다.
그래 나는 계속 여기 이렇게 있을게.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어제처럼.
오늘처럼.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빨리. “
.
.
“무슨 생각하냐니까! 야! 빨리! 숟가락에서 죽 다 흘리잖아!“
“어..?어어.“
아이 참.
너는 언제나 내게 짓던 표정으로 나를 한 번 흘깃.
“야! 내가 닦을게. 묻어 저리가.“
내가 짐만 된다는 듯, 그리고는 궁시렁 궁시렁.
아니 뭐 잘하는게 없냐.
죽 떠먹여주는게 어렵냐.
다쳤을 때 부려먹으려 했더니.
내가 널 챙겨주는게 빠르겠다.
귀여워. 픽 웃었다.
“비웃냐?“
아니. 조잘대며 휴지로 침대 이불을 닦는 네가 예뻐서 웃음이 났어.
“그러게. 왜 사람을 놀라게 해. 왜! 얼마나 놀랐는데..“
“아니… 정일훈이라는 이름이 흔한지 누가 알았냐고. 이제 오보라고 다시 나갈거야.“
“너 솔직히 안아프지?“
그러자 억울한 표정으로
“야! 나 아파! 어깨도 쑤시고… 다리, 다리도 아픈거같고…“
이그.
또 쓰러진 척 한게 분명하다.
매니저는 또 애가 약하다면서 놀라서 무작정 병원으로 입원시켰겠지.
내가 정일훈을 하루 이틀 봐?
“그래도 와서 너 돌봐주고 나밖에 없지?“
방긋 웃는 내 얼굴에 어이없다는 듯, 그래그래. 하는 일훈이.
그리곤 고마워.
내 머리를 헝크러트린다.
내 얼굴이 빨개진 것 같은데.
“너… 너 뭐 먹고싶은거! 말해. 사올게!“
깜짝놀랐네.
달아오른 얼굴을 들킬까봐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겨울인데도 덥네.
눈은 못마주친 채로 더듬거리며 말하는 내 얼굴을 한 번 쳐다보더니
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으며 일훈은 말했다.
“그냥 내 옆에 있어.“
일훈이는 자기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모른다.
시크한 말투 속에 나를 위한 마음이 숨어 있다는 걸, 그게 나를 설레게 하는걸 절대 알지 못한다.
일훈이 내 손을 잡아 당겼다.
덕분에 나는 일훈이의 침대에 풀썩, 이상한 자세가 되어 버렸다.
일훈이 무릎 위에 내가, 내 허리엔 일훈이의 팔이, 일훈이의 어깨엔 내 손이 살포시.
"야, 갑, 갑자기 당기면 내가…"
심장 소리가 일훈이에게 들리면 어쩌지, 그런 고민을 하다가 문득, 일훈이는 정말 아무렇지 않구나.
슬퍼졌다.
이렇게 가까운데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볼 수 있었다. 일훈이는.
나는 눈도 못마주치겠는데 말이야.
그러다 일훈이가 픽- 웃는다.
뭐야, 왜 웃는거야.
어리둥절 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니. 왜 웃었냐면."
일훈은 변명같지 않은 변명을 시작했다.
"갑자기 너가 예뻐 보이는거야. 그게 너무 어이가 없잖아."
내 얼굴은 다시 빨간색, 네 얼굴은… 네 얼굴도 빨간색?
나는 황급히 너를 밀어내는데, 왜 나는 네 마음속으로 한 걸음 걸어 들어간 것 같은지.
어쩌면, 5년간의 내 짝사랑이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좀 달라보인다. "
일훈은 내게 눈을 맞췄고,
" 그러니까 예쁘다는 말이야."
나는 일훈이에게 입을 맞추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