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망이던 눈이 너무 생생해서, 새벽 별에 잠을 깨었다. 그러쥔 이불이 축축해 펼친 손바닥은 손톱 자국으로 가득했다. 그립다, 권순영. 내가 살아온 날 기억이 전부 너인데, 혼자 없어지면 어떡하냐.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창문을 연다. 생채기 그득한 얼굴로 너는 맑게도 웃었다. 괜찮은데, 나. 할 말을 잃어 얼이 빠진 얼굴로 널 마주하자 내 팔을 잡아오며 했던 한 마디. 시야를 흐릿하게 만드는 물기를 애써 우겨넣었던 것도 같다. 내가 무너지면, 네가 정말 깨질 것 같아서. 그래서, 잠든 네 손을 잡았다. 그때도 꼭 이런 새벽이었다. 감싼 네 손 그 위로 옮긴 시선에 잡힌 게 흰 팔 사선으로 주욱 그어진 상처만 아니었다면, 우리가 같이 맞을 새벽이었다. 온통 하얗게 변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이 아닌, 하얗게 변해가는 세상을 마주하는 것. 네 세상을 색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빨갛게 찬 네 세상이 어둡게 찢겨지기 전에, 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꼭 너를 닮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온통 하얗고 밝아서, 무엇이라도 어여쁜 손 놀려 채워넣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 할 세상을 펼쳐주고 싶었다. 소복히 담겨가는 눈을 손바닥 펼쳐 마주한다. 살풋 앉았다가도 금방 사그라드는 꼴이, 꼭 누군가와 같다. 순영아. 순영아, 권순영. 나는 부른다고 달라질 것 없는 그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 눈이 와. 네가 내린다. 네가 세상 한가득 내려 내 세상을 채운다. 바람 잘 날마저 너였던 세상을, 굳이 또 너로 채우고 만다.
이런 글은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