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은 멍청하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세계 3차 대전 이후 나라는 개편되었다. 정권은 국군 위주로 편성되었고, 그 가운데에는 조선시대 왕과 같은 군주가 존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모계 사회였다는 것 정도. 대중들은 멍청하고 아둔하다. 성씨가 세습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씨만 같지 않으면 대물림된다 해도 독재가 아니라 생각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둔하고 우매한 일인가.
물론 간혹 그에 반발하는 몇몇 사람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모두 총살 당했다. 공개처형장에서 울리는 총성 속 어느 날은 다른 이들의, 또 어느 날은 내 총알이 발사되었다.
공개처형의 방식은 간단했다. 4명의 사형집행인이 모여 카운트에 맞춰 동시에 사형수를 쏜다. 그 순간 사형집행인은 사형수를 볼 수 없다. 이미 맞춰진 네 개의 총구를 통해 날아가는 것은 세 발의 공기탄과 단 한 발의 실탄이다. 이는 사형집행인들의 심리를 고려하여 고안해낸 방법이라고 했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양심 같은 것.
실탄과 공기탄의 차이는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알아챘다. 내가 쥔 총에 담겨 있는 하나의 총알이 실탄일지 공기탄일지 나는 항상 직감하고 있었다. 손에 총을 쥐는 순간, 알게 되어있다. 그렇게 나는 몇 번, 실탄을 쏜 적이 있다.
양심에 가책을 느낀 적이 있냐 묻는다면, 글쎄. 사실 나에게 양심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양심, 그런 것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였다. 엄마를 잃은 뒤, 난 더욱 더 철저하게 나를 내 직업 안에 가두고 생활해왔다. 사는 것은 간단하지만 단조로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날 그 직업 안에서 꺼내셨다.
'별아.'
'예, 아버지.'
'서울에 교도소 하나 있는 것, 알지?'
'한강구 교도소 말입니까?'
'그래, 그 곳.'
어둠 속에서만 있다가 갑자기 빛을 만나면,
'그 곳에서 네가 의무과에 있어줬으면 하는구나. 너 그래도 간호학과 출신이잖니.'
어쩔 도리 없이,
'할 것은 많이 없다. 그저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보고 병세가 악화되지 않도록 주사만 제 때 놓아주면 돼.'
눈이 멀어 버린다.
눈이 멀어 버린다는 것은 곧 사리를 분별치 못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 눈 앞의 빛이 정말 빛일지 빛만 가득해 또 다시 앞을 못 보게 될 구렁텅이일지 모른다는 뜻이기도 했다.
'네가 그 곳에서 편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해놨다고 하더구나.'
사형집행인이라는 직업을 권유하셨던 아버지와 이 날의 아버지는 비슷했다.
'할 수 있지?'
나 또한 역시 비슷했다.
'예, 아버지.'
선택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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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씨."
"네, 소령님."
"아, 언제까지 소령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나 소령 짤린 지 얼마나 됐는데....... 불평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짤렸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눈 밖에 났다고 표현하는 게 맞나. 조용히 그의 위치를 다시 한 번 고려했다.
"별씨, 별씨는 어쩌다 이 곳에 오게 되었어요?"
차마 너 때문에요, 라는 말을 할 수는 없어 다른 말을 고심했다.
"아버지께서 보내셨어요."
가장 적절한 말이었다. 거짓말도 아니고,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직접적인 이유였으니까.
"아버지께서? 아버지께서 왜요? 아버지는 뭐하시는데요?"
내 대답 한 번에 따라붙은 수많은 물음표들을 그저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내가 본 그는 항상 말이 많았다. 웃음도 많았다. 물어볼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밉지 않았다. 선한 이목구비 때문일까. 그가 항상 웃고 있기 때문일까.
"아버진 육군 소령이십니다.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어? 어?!"
그는 눈을 동그랗고 크게 떴다.
"그럼 윤이일 소령님 따님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우와!"
그는 해맑게 웃었다. 그의 눈이 반짝였다.
"저 윤소령님이랑 같이 작전 수행한 적 있어요. 그 때 정말 멋있었는데......."
"전 잘 모릅니다."
"에이, 따님이 아셔야지! 그 때 소령님이 얼마나 멋있었는데요."
조잘조잘 그는 내가 이해하지 못할 군사적 상황들을 쉬운 말로 풀어 설명했다. 그는 어려운 단어를 굳이 써보이며 나에게 자랑하듯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지금 이 곳에 갇혀있는 첫 번째 이유였다.
그는 대중과 친해지는 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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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입니다. 아직 감이 잘 안 오시죠ㅜㅠ 다음편이랑 합치려다가 그냥 나눠썼어요... 나는야 즉흥쨍... 손이 가는 대로만 쓰겠다는 의지... 아마 곧 다 풀게 될 테니 조금만 답답해하시어요...8ㅅ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