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독스에요
나 한달 안넘기고 온 거 같은데! 아닌가? (머쓱)
맨날 늣개 온다고 모라하지 마오, 난 채서늘 다해써 (feat.새오)
가진 직업이 뭐라고는 말을 할 수 없지만,
삼 교대를 하는 일이다 보니 시간 잡고 글을 쓰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네요.
틈틈이 밥 먹다 잠깐 쉴 때, 혹은 출퇴근 길에 차에 앉아서 핸드폰에 메모하듯 적어놓은 글로
이야기를 만들어 풀어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려워요 (울먹)(투정)
그래도 약속을 한 만큼 한 달 채우기 전에 들고 오려고 애를 많이 썼어요
뭣보다 우리 독자님들께 하루빨리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애가 타서
어쩌면 완성도가 낮은 글을 부랴부랴 들고뛰어왔는지도 모르겠네요
제 글을 독방에서 추천받고 오셨다 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왜 제가 갈때마다는 그 추천하시는 분들을 만날 수가 없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데 애통해요
나도 독방 지박령인데! 매일 잠들기 전 출석하는데 왜!
모쪼록 제 글 추천해주시는 분들 모두 사랑 받으세요.
내가 진짜, 프리미엄 브아피 암호닉 티켓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도 알아주시구요.(웃음)
럽랔슈는 13화를 끝으로 고딩생활을 청산 할 겁니다.
저에게도 끔찍했던 고쓰리 시절은 시간을 달려서 없애버릴 거예요(웃음)
무엇보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너무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안ㄴ...(울먹)
우리 고등학교 생활은 열심히 즐겼잖아요?
이제 성인답게 놀아보자구요(껄껄)
14화부터는 대학 캠퍼스 생활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배경의 럽랔슈도 기대 많이 해주세요
오늘도 내 사랑들 내가 많이 사랑해요
나의 오늘에 선물 같은 당신들
많이 좋아하고, 또 고마워
...
..
.
Witness - Farewell
“놀이동산은 잘 다녀왔어?”
“응.”
“밥은.”
“먹었어.”
어쩐지 오랜만에 마주보고 앉은 기분이었다. 조금 어색한 공기를 무마시키려 민윤기는 내게 애써 질문을 던졌지만, 돌아오는 게 내 짧은 대답뿐이라 그런지 입술을 꾹 닫더니 길게 늘어뜨렸다. 그에게서 들리는 한숨소리가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나도 어쩐지 나도 긴 한숨을 내뱉을 것 같았으니까.
우리 앞에 놓인 달달한 에이드에 떠있던 얼음이 다 녹아 버려 그 맛이 밍밍해 질 때까지도 우리는 서로의 눈치만 봐대고 있었다. 나는 민윤기가 나에게 화가 나 있지는 않은지, 만일 그가 내게 화가 나있는 상태라면 무슨 말로 그 때 내가 뱉었던 그 말에 대한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었지만, 민윤기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 할 수가 없었다. 말없이 가만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이 따뜻한 것도 시린 것도 같았기 때문에. 그 헤아릴 수 없는 눈빛을 받고 있자니 손을 가만 두기가 힘들었다. 쉼 없이 소매 끝을 매만지는 나를 보던 민윤기가 기다리다 지친 듯 먼저 ‘탄소야’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올린 나와 진득하게 시선을 맞추던 그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내 옆으로 와 앉았다. 그러다 멀뚱히 저를 쳐다보고만 있는 나를 품으로 끌어안더니 또 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의 큰 숨에 내 머리칼이 흔들렸다.
“미안해.”
들려온 말은 기대 했던 말이 아니었다. 아니, ‘기대’보다는 ‘예상’이란 표현을 쓰는 게 더 맞을까. 예상외의 반응에 뒤통수를 후려 맞은 듯 멍하니 민윤기의 하얀 목덜미만 보고 있었다. 나는 민윤기가 내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만큼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래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가 먼저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지― 그 생각뿐이었는데 다짜고짜 들려온 미안하단 사과에 모든 사고 회로가 멈춰 서버리는 기분이었다. 가만히 코를 그의 어깨에 파묻었다. 민윤기의 어깨에서는 늘 풍겨오던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내가 너무 속이 좁았지.”
“……….”
“생긴 건 안 그래가지고 보기보다 질투가 많아, 내가.”
낮게 울리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슬픈 것 같았다. 자괴하는 느낌. 어쩐지 우리 사이에 일어난 다툼이 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한 목소리여서 괜히 가슴이 시큰거렸다. 가만히 손을 들어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우리의 다툼은 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너무 많이 좋아하기 때문에 생긴 기대와 그에 미치지 못한 상황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굳이 말 하지 않아도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다. 평소처럼, 내 속을 꿰뚫던 그 실력 그 대로 내 속을 봐주길 바랐다. 사소한 다툼이더라도 그로인해 민윤기가 마음고생을 하는 건 싫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질투가 났었나봐. 다른 남자랑 놀겠다는 말에 참을 수가 없었나봐. 정말 네 말대로 어쩌면 나보다도 너를 더 잘 아는 애들일 텐데, 또 그만큼 너랑 가까운 친구들일 텐데. 내가 너무 생각이 짧았어. 그렇게 터무니없이 친구랑 놀지 말라고 했으니, 너는 얼마나 어이가 없고 기가 찼을까.”
“……….”
“미안해.”
다시 한 번 미안하다 말하는 민윤기에게 고개를 저어 대답했다. 그가 내게 미안해야 할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천천히 그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얼굴을 올려다봤다. 강아지처럼 축 쳐진 눈 끝으로 피곤함이 걸쳐져 있었다. 잠을 못 잤구나― 알 수 있었다.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가 내게 늘 해주던 그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볼을 어 만졌다. ‘네가 미안해 할 건 없어.’ 그리고 말했더니 민윤기는 또 다시 나를 와락 끌어안아 버릴 것처럼 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어쩌면 잘못은 네가 아니라 내가 했는지도 몰라.”
“……….”
“아무리 친한 친구래도, 남자친구인 너한테 ‘너보다 친한 애들’이라고 말해버린 건 예의가 아닌데.”
“……….”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이어진 내 사과에 민윤기는 그제야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도 예쁜 게 말까지 예쁘게 하네.’ 그리고는 한껏 밍밍해진 에이드로 다 말라버린 입술을 축였다. 내 머리를 쓰다듬던 민윤기의 손은 자연스럽게 내 손등위로 올라와 내 주먹을 감싸 쥐었다. 따뜻하고 큰 손이 내 손을 감싸 쥐자, 얼었던 마음이 녹은 듯 내 안에 평화가 찾아왔다.
“사과 해줘서 고마워.”
“네가 먼저 사과 했잖아.”
“그래도 고마워. 이렇게 사과 해주는 여자는 드물잖아. 이 여자가 내 여자 친구라니, 나 복 받은 놈인가 봐.”
“아, 뭐야. 닭살 돋아.”
“고맙다고. 내 여자 친구 해줘서 고맙다고.”
민윤기의 달달해 터질 것 같은 말에 내 심장이 다 녹을 지경이었다. 각설탕을 입에 넣은 것 마냥 온 입이 달았다. 물 맛 밖에 나지 않는 에이드를 마셔 봐도, 달짝지근한 향이 코끝에 남아돌았다. 입맛을 다시며 컵에서 내 손으로 옮겨온 물기를 털어내자, 민윤기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가져가 냅킨으로 남은 물기를 닦아주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 나를 향한 애정이 묻지 않은 게 없었다.
“별로 맛없어졌지.”
“응.”
“하나 다시 시킬까.”
“아냐, 그냥 일어나자. 우리 데이트 해야지.”
내가 먼저 옆에 놓인 가방을 챙기며 일어나자 민윤기도 웃는 얼굴로 따라 일어나며 컵이 놓인 쟁반을 들었다. ‘가자.’ 그리고 남은 손으로 내 손을 잡았다. ‘안 무거워? 두 손으로 들어도 돼.’ 위태롭게 찰랑이는 에이드를 보며 말했더니 고개를 모로 젓는다. 여전히 손은 내 앞으로 내밀고서.
“말했잖아. 손 안 놓을 거라고.”
“……….”
“뭐해. 얼른 잡아.”
고집스런 눈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못 이기는 척 손을 잡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나를 제 쪽으로 잡아당기는 민윤기가 싫지 않았다. ‘김탄소. 어쩔 수 없는 척 연기도 하고, 많이 여우 됐다?’ 웃으며 하는 그의 말에 내가 아니라며 얼굴을 붉히자 민윤기는 아무래도 좋다며, 이러나저러나 제 여자 친구만 해달라고 했다. 또 이렇게 들어온 민윤기의 잽훅에 원 펀치 녹다운이 되어 쓰러지는 순간이었다.
귀까지 달아오른 열을 식히며 또 다시 다짐. 어떤 상황에서든 민윤기 앞에서는 긴장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Love Like Sugar
W. 독스
12
일주일간의 짧았던 방학이 끝나고, 우리 모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교복을 입고 오르는 등굣길에서 박지민은 손을 붕붕 흔들며 내 옆으로 걸어왔다. 아직 푹푹 찌는 더위에 헉헉대며 걷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박지민은 내 앞으로 들고 있던 생수병을 내밀었다. ‘마실래?’ 고개를 저으니 혀를 쯧쯧 차더니만 ‘체력이 그따윈데 어떻게 고삼 생활 버틸래.’ 라며 나를 타박했다.
“고삼 대비해서 운동도 좀 해놓고 그래라.”
“체력이 안 좋은 게 아니고 더위를 타는 거거든? 그리고 편의점에서 생수를 왜 사냐. 사려면 음료수를 사야지.”
“더운데 물이랑 음료수 가릴 정신은 있나 보네.”
“생수는 맛없어. 보리차면 몰라도.”
“까다롭기는. 민윤기는 뭐라 안하냐?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데.”
“윤기한테는 안 그러거든?”
“……이중인격자.”
박지민은 눈귀를 좁히고 나를 보았다. 그 시선을 피하던 나는 그냥 픽 웃고는 가방을 고쳐 맸다. 학교가 가까워질수록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더 자주 눈에 띄었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다 괜히 핸드폰을 한 번 봤다. 얼굴을 나란히 맞댄 채 행복하게 웃고 있는 나와 민윤기의 사진을 보고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와서 서둘러 주머니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내가 웃는 꼴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던 박지민은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웃음이 가시질 않아서 헤헤 하고 웃었더니 ‘이래서 애인 있는 것들은 안 돼.’ 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박지민의 퉁명소리에도 전혀 기분이 상하지가 않아서 자꾸 보고 싶은 나와 민윤기의 사진을 다시 꺼내 보고 집어넣었다.
“화해했냐?”
“어?”
“엊그젠가, 민윤기랑 싸웠었잖아.”
“아, 응. 화해했지.”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던 박지민은 머뭇거리며 나를 보다 ‘누가 먼저 사과했는데?’ 하고 물었다. 딱히 잘못 한 것은 없었을지라도 사과를 먼저 한 사람은 민윤기였기 때문에, 그가 먼저 사과 했다고 답하니 박지민은 놀란 눈으로 ‘민윤기가 먼저 미안하대?’ 라며 다시 되물었다. 나는 뭐가 이상하냐는 듯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나를 보던 박지민은 입술을 꾹 다물고 늘어뜨리면서 비쭉이는 게 뭔가 탐탁치가 않은 듯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왜 그러냐고 물어도 박지민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계속 고개만 저어댔다.
교문을 넘어 학생들로 바글거리는 학교 현관을 지났다. 각자 사물함 앞에 서서 실내화로 갈아 신으니 저만치서 걸어 들어오는 정호석도 보였다. ‘정호석!’ 이름을 크게 부르니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정호석은 우리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듯 더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무슨 일로 일찍 등교?’ 나를 향해 묻는 정호석에게 웃는 목소리로 ‘새 학기라 새 마음 가지셨나봐.’ 하고 나 대신 대답한 박지민은 먼저 교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오― 거리는 정호석의 옆구리를 멋쩍게 툭 친 나도 박지민의 뒤를 따라 교실 안으로 서둘러 들어왔다.
일주일 동안 못했던 이야기가 뭐 그리도 많은지, 교실 안은 북새통이었다. 인사를 건네는 애들에게 마주 인사를 해주면서 일주일간의 짧은 안부를 물었다. 내 자리로 와 책상 위로 가방을 벗어 내려두자 뒤에서 김태형이 툭 건드렸다. 고개를 돌리고 장난스러운 얼굴로 인사를 건넨 김태형에게 눈인사를 해줬다. 의자를 꺼내 앉을 때쯤, 정호석도 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책상위로 내려놓았는데, 그건 영어 단어 모음집이었다.
“헐, 너 학교 오면서도 공부했어?”
“아니, 공부는 아니고. 일주일 동안 놀면서 아무것도 안하다보니까 머리 굳은 거 같아서. 그냥 좀 본 거였어.”
“야, 그런걸 보고 공부라고 하는 거야. 시켜서 하는 건 숙제, 알아서 하는 건 공부.”
“그래서, 시켜서 해오라던 수학 숙제는 했냐.”
“……에?”
“수학이 전년도 수능 수리영역 풀어오라고 했던 거 기억 안 나냐.”
“흐에에?”
망했다―를 외치자마자 박지민이 등장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나를 가리킨 박지민은 ‘얜 또 뭐가 망했대?’ 라고 물었다. 정호석은 나를 보며 혀를 끌끌 차다가 ‘수학 숙제 안했대.’ 라고 대신 답해줬다. 뭘 그렇게 내 입장을 대변해주는 사람은 많은지, 또 뭘 그렇게 내 속들을 잘 아는지 탄식하기가 무섭게 박지민의 얼굴이 빠른 속도로 굳는 게 눈에 들어왔다. 뭔가 예기치 않음을 짐작한 정호석도 덩달아 얼굴을 굳혔고, 박지민은 짧게 ‘시발.’ 하고 내뱉었을 뿐이었다.
“아, 뭐야. 너도 안 해왔어? 왜 쌍으로 지랄이야. 내가 이것들이랑 다니다 명이 줄지.”
“야, 혹시 수학이 너한테만 내준 숙제 아니냐? 나 왜 들은 기억조차 없냐?”
“어디를 놀러 가네 마네, 너희가 듣는 둥 마는 둥 했겠지. 너 같은 멍청이들 있을까봐 내가 칠판 구석에도 적어 놨었는데, 그것도 못 봤지?”
“……칠판 구석 어디.”
“저기, 새끼야.”
정호석이 가리킨 ‘칠판 구석’에는 정말 뭔가가 적혀있었다. ‘수학 방학 숙제. 2015년도 수능 수리영역 풀어서 해석까지 해오’ 누군가 칠판 청소를 하다 끝마무리 단어를 지운 듯 했지만, 그 단어쯤 없어도 저건 분명 수학 숙제라는 건 알 수가 있었다. 어떡해― 소리 지르는 나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던 정호석은 교실 앞으로 나갔다. 교탁 앞에 선 정호석이 주먹으로 쾅쾅 내리치자, 실내는 잠깐 조용해졌다.
“혹시 몰라서 묻는데, 수학 숙제 안 해온 사람.”
“무슨 수학 숙제?”
“아, 자식들 다 생전 처음 듣는 사람처럼 왜 그러냐.”
나와 박지민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짜증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리던 정호석은 숙제를 안 해온 인원의 수를 파악하더니만 어디론가 나갔다. ‘고등학생이 방학숙제가 웬 말이야. 당연 없을 줄 알고 생각도 안했네!’ 내가 소리를 빽 지르자 박지민은 시끄럽다며 입을 툭 때렸다. 교실 안은 이번엔 숙제 이야기로 다시 시끄러워졌다.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쉰 박지민은 정호석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제 꿈자리가 안 좋다 했다.’ 탄식 같은 박지민의 말에 머리칼을 쥐었다. ‘무슨 꿈 꿨는데’ 하고 물어봤더니 누군가한테 손바닥이 터지도록 매를 맞는 꿈을 꿨다고 했다. ‘우리의 미래, 아니 오늘이었나 봐.’ 한숨 섞인 소리를 내뱉으니 박지민은 책상 위로 길게 누웠다. 개학 첫날부터 이렇게 일진이 사나워서야. 2학기는 또 얼마나 스펙터클하고 판타스틱하게 지낼지 기대가 되어 머리가 지끈하고 아파와 나도 박지민을 따라 책상 위로 엎드렸다.
“머리 아프다.”
“나도.”
“정호석은 어디 간 거지.”
“수능 문제지 프린트 하러 가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우리 뒷바라지.”
“미안하긴 한데, 정호석이 우리 뒷바라지 조금 더 해서 숙제 하는 것도 도와주면 좋겠다.”
“내말이.”
모처럼만에 박지민과 입을 모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대화 주제가 비록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엿 같은 지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꽤 심도 깊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우리의 엎드린 100분 토론은 한참동안이나 진행되다 앞문을 열고 들어온 정호석으로 인해 끝이 났다. 더운 한숨만 푹푹 쉬며 우리 예상대로 들고 온 인쇄물을 교탁 위로 내려놓는 정호석을 보다 눈치껏 자리에서 일어났다. 삐죽대며 정호석 옆으로 걸어가 손을 걷어붙였다.
“도, 도와줄까?”
“……망할 것들.”
나와 박지민에게 인쇄물 한 뭉치씩을 얹어준 정호석은 알아서 나눠주라고 했다. 정호석이 자리로 돌아가 앉기가 무섭게 숙제를 해오지 않은 애들이 손을 들었다. 나는 내가 서있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차례대로 인쇄물을 나눠주었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다 박지민은 들고 있던 인쇄물 안을 뒤적였다.
“야, 야! 한명씩 달라고 해!”
그리고 가장 깔끔하게 인쇄 된 종이를 골라 내 책상에 올려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귀 끝이 확 달아오를 것 같은 게 영 기분이 이상했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며 애써 모른 척 하고는 말았다. 어디선가 많이 봤었던 것 같은, 꼭 나와 닮은 것 같은 그 모습이 눈에 아려 고개를 돌리니 자연스럽게 옛일이 떠올라 회상했다.
‘나만 깨끗한 프린트 골라서줬네.’
‘……어?’
‘고마워, 탄소야.’
내가 꼭 민윤기에게 그랬었던 짓. 받는 그는 몰랐겠지만, 그의 뒤에 서있었던 내가 해줄 수 있었던 남모를 챙김에 느꼈던 혼자만의 뿌듯함. 그리고 뒤늦게야 밀려드는 공허함. 그 과거속의 나와 박지민의 어깨가 많이도 닮아있다고 느낀 건 오롯한 나의 착각일까. 아니면…….
“아직 안 받은 사람?”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털어냈다. 다음으로 떠오르려던 생각은 아무래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허튼 생각이 박지민의 기분을 이해하게 만들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왠지 그 기분이 무슨 기분인지 알아버리면 안될 것 같단 생각에 비겁하게 그냥 모른 척 하려는 거였다.
*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드는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보다 절실하게 들어 오르는 야간 자율학습 시간, 정신 차리고 미리 공부 좀 해두라는 담임선생님의 으름장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상 위로 픽 고꾸라졌다. 아홉시가 간당하게 넘어가고 있는 이 시간이 내게는 졸음이 피크로 몰려오는 타이밍이었다. 연신 고개를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고 있는 나를 몇 번이고 깨우던 정호석도 이제는 지쳐버렸는지 더는 건드려오지도 않았다. 아예 겹친 팔위로 얼굴을 묻어버린 나는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조금만 자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차피 곧 있으면 야간 자율학습이 끝날 무렵이었기 때문에, 좀 잔다 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는 합리화로 말이다.
교실 벽에 걸린 시계 초침이 열심히 째깍 거리며 돌아갔다. 반에 들어 올 때마다 너희도 금방 고삼이 될 터이니 그때 가서 발등에 불 떨어지지 말고 지금부터 열심히 공부하라시던 선생님들의 성화에 못 이겨서인지, 아니면 이제야 다들 정신을 차린 건지 자율 학습 마지막 시간까지도 모두 책에 얼굴을 묻고 열심히 공부 중이었다. 그 속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사람이 나 하나뿐인지, 누구 하나 자습에 집중 못하고 부스럭대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엎드려있기가 민망해져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잠을 잔 것도 아닌데, 엎드려 있었던 짧은 시간동안 정신이 말똥해진 기분이었다.
“……….”
핸드폰으로 인터넷 강의를 틀어 놓고 책과 번갈아 보며 뭔가를 열심히 필기중인 정호석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대학을 가고 싶다거나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하는 그런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어도, 나아가려는 방향이 분명하게 있는 사람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진즉에 공부 좀 그만 하라며 건들었겠지만, 시기가 시기인건지 아니면 정호석의 학구열에 기가 눌린 건지 그러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도 않았다. 양심상 덮었던 책은 도로 펴 두었다. 그리고 턱을 괴고서 창밖을 우두커니 쳐다봤다.
검은 창문 안에는 행복해 보이는 것도 혹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도 같은 내 얼굴이 있었다. 학창시절의 끝자락을 걷고 있는 내게 과연 이런 근심걱정 없는 얼굴이 어울리는 지 의문이 들어 괜히 볼을 매만졌다. 하긴, 요즘 윤기 덕에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긴 했지. 괜히 또 민윤기 생각이 나서 배시시 웃으며 핸드폰을 살짝 꺼냈다. 자습이 끝나기까지 시간은 5분도 남아있지 않았다. 윤기랑 비슷한 시간대에 끝나서 집에도 같이 가면 좋겠다. 자연스럽게 또 민윤기 생각이었다. 지금 윤기는 뭘 할까, 공부를 하고 있을까 아니면 역시 나처럼 싱숭생숭한 마음에 엉덩이를 들썩이고 있을까.
금방이라도 집에 가버릴 것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손에서 짧게 진동을 했다. 민윤기인가 싶어 핸드폰을 확인하니 의외로 박지민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앞에 앉은 박지민의 뒤통수를 짧게 보다 문자를 확인했다.
[벌써 야자 끝났냐. 공부 하기는 했냐.]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가득한 문자였다. 입술을 삐죽이고 빠르게 답장을 보냈다. ‘너나 잘해라. 내내 엎드려 잠만 자는 거 다 봤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들썩거리며 웃는 박지민의 어깨가 보였다. 자기도 잠만 잤으면서 나한테 뭐래. 펼쳐놓았던 책을 덮고 가방을 열어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내일까지 해야 하는 공부들을 몇 가지 더 챙겨 넣었다. 그러는 사이 핸드폰이 한 번 더 울렸다.
[오늘도 민윤기랑 같이 가?]
너무나도 당연한 문자 내용이었지만, 어쩐지 여러 번 읽게 하는 문자였다. 화면을 가만히 쳐다보다 박지민의 뒤통수로 시선이 옮겨갔다. 박지민은 좀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답장이 참 힘들었다. 너무 당연한 대답을 너무 힘겹게 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박지민이 작게 기침했다. 박지민도 핸드폰 화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다. 너도 나도 가벼운 문자에 뭐 그리 대답하기가 힘이 든 걸까. 문득 생각이 들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때맞춰 울리는 종소리에 나처럼 가방을 집어 들고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와 바닥이 마찰하는 요란한 소리는 학교 전체에서 울리고 있었다. 예상과는 달리 나는 조금 미적대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호석은 마침종이 치고 나서야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과 강의를 보고 있던 핸드폰을 정리했다. 박지민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그대로 바지 주머니로 찔러 넣으면서 의자에 걸린 가방을 어깨로 걸쳐 맸다. 박지민에게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정호석 빨리빨리 안 해?”
“무슨 종치기 오 분 전부터 가방을 싸기 시작 하냐.”
“그래야 종치면 나가지.”
박지민과 정호석은 평소처럼 티격태격 그랬다. 그 안에서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집어넣었고 책 정리까지 마친 정호석은 웬만한 사람들이 교실을 다 나간 후에야 가방을 맸다. 리더라는 자리가 그랬다. 늘 뒤에서 모든 이들을 봐줘야 하는 그런 불편한 자리였다. 에어컨을 틀어 놓고도 활짝 열린 창문을 보며 정호석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쟤들도 뇌가 있겠지.’ 그리고 창문을 닫으면서 중얼거리는데, 그 광경에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정호석은 말수가 없었다. 계속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는 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지 싶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지 않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보나마나 진로에 대한 문제이겠거니 했다. 워낙 정호석의 집에서 녀석에게 거는 기대가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서 그냥 정호석을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겠다 싶었다. 박지민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인지 말없이 나와 시선만 주고받았다. 축 쳐진 어깨로 나가자며 문 앞에 선 정호석에게 그러마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걸음을 뗐다. 공부를 못하는 내가 녀석의 기분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가 않아서, 그냥 그러는 척이라도 해버리자고 그렇게 생각했다.
“먼저 갈래?”
“같이 안가고?”
“나는 들를 데가 있어서.”
‘이 시간에?’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정호석은 나와 박지민에게 손을 대충 흔들어주고는 반대쪽 복도로 걸었다. 멀어지는 정호석을 빤히 보는 나를 툭 친 박지민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한 보 박지민의 뒤에 서서 따라 걸었다. 교실을 벗어나 현관문으로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도 한참을 걸은 기분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었다. 여름도 낮게 깔린 어둠을 이기지 못했다. 아직 덥긴 해도 전에 비해서 많이 시원해진 밤공기는 하굣길을 그리 텁텁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교문이 가까워지도록 아직 박지민과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았다. 어쩐지 박지민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반면에 박지민은 내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민윤기는.”
“어?”
“같이 간다며.”
“아직 연락이 없네. 안 끝났나봐.”
박지민의 물음에 민윤기를 잊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핸드폰을 확인했지만, 아직 민윤기에게서 연락이 와있지 않았다. 늦게 나오려나. 입술을 쭉 내밀고 학교를 돌아봤다. 몇몇 군데 아직 켜진 불들이 남아있었다. 나를 흘깃 본 박지민은 주머니로 손을 찔러 넣었다. 그리고 턱 끝으로 교문 너머에 서있는 몇몇 학생들을 가리키며 ‘쟤네 민윤기랑 같은 반이잖아.’ 라고 말했다. 박지민이 가리킨 곳을 보니 정말로 눈에 익었던 얼굴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없지? 고개를 갸우뚱 하며 입술을 핸드폰을 다시 내려다 봐도 민윤기의 문자는 없었다.
“여기서 기다려야겠다.”
교문을 통과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박지민도 내 옆에서 걷다 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고개를 빼고 교문 쪽을 기웃거리는 나를 내려다보던 박지민은 손가락을 튕겨 내 이마를 딱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마를 감싸 쥔 나를 보며 혀를 쯧 찼다.
“밑도 끝도 없이 기다리지 말고 어디냐고 먼저 문자해봐.”
“그러는 게 나을까.”
“말을 안 해주면 네가 기다리고 있는 줄 민윤기가 어떻게 아냐. 걔가 신도 아니고.”
“아냐, 윤기는 신이야. 남신.”
“미친. 돌았네, 아주.”
별로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키득대는 내가 웃겼는지, 박지민도 픽 웃음을 터뜨렸다. 박지민 말대로 민윤기에게 여기서 기다리겠다고 먼저 문자를 보냈다. 바로 답장이 오지는 않을 것 같아 핸드폰은 주머니로 넣었다. 들린 게 없어 어색해진 손은 괜히 비벼봤다. ‘하지 마, 그러다 닭똥냄새 나.’ 박지민의 엄한 태클에 헛웃음을 터뜨리며 손가락으로 녀석의 배를 쿡 찔렀다. 단단한 배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지자 나는 ‘박지민, 왜 배에 힘 주냐? 자신 없냐?’ 하고 또 장난을 걸었다.
배고프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더니 박지민은 가방에서 사탕 몇 알을 꺼내 내 손에 쥐어줬다. 포장을 벗겨내고 입에 넣은 사탕이 입 안 가득 기분 좋은 청포도 향을 풍겼다. 침이 나와 꼴깍 삼켰다. ‘저녁 깨작거릴 때부터 알아 봤다.’ 박지민의 말투가 비아냥거리는 말투였는데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너는 대학 걱정 안 되냐.”
“성적 맞춰서 가면 되는데, 뭘.”
“엄마는 뭐라 안하셔?”
“엄마도 나 공부 못하는 거 알아서 괜찮아.”
“……자랑이다.”
박지민은 또 혀를 끌끌 찼다. ‘자꾸 나 보면서 혀 차지 마, 인마.’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고 박지민의 배를 아프지 않은 정도로 때리니, 녀석은 윽― 하고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웃었다. 그 모습이 웃겨서 웃으니 박지민은 볼에 사탕을 넣은 내 모습이 바보 같다며 따라 웃었다. 한참 웃다 박지민이 사레에 들려 미친 듯 기침을 하는 바람에 녀석의 등을 두드려 주느라 웃음이 멎었다.
“자기 침에 사레들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너 때문 아냐.”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못생긴 얼굴로 날 웃겼으니까 너 때문이지.”
“헐, 억지 부리는 것 봐.”
정말 어이없다는 내 표정에 박지민은 또 한 번 푸흐― 하고 웃었다. 기침하느라 맺힌 눈물을 닦아낸 박지민은 공기 중으로 후우 하고 긴 숨을 내뱉었다. 그 옆얼굴을 보다가 또 허튼 생각이 들어서 고개를 숙였다.
“너랑 대학교 같이 다니면 좋겠다.”
내 말에 박지민은 말없이 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시선이 느껴져 나는 고개를 들고 박지민의 눈과 마주했다. 박지민은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속을 알 수 없는 그 얼굴이 오랜만이라 괜히 눈을 몇 번 깜박거리고 다시 고개를 숙여버렸다.
“왜?”
박지민의 되물음엔 쉽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무슨 이유에서 일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나에게도 되물었다. 그냥 못 들은 척 대답을 말아 버릴까 하다가도 나를 빤히 보는 박지민의 시선은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들어 박지민을 살짝 올려다봤는데도, 여전히 박지민은 아까 그 눈빛 그대로 나를 보고 있었다. 대답을 피하긴 힘들겠구나― 생각했다.
“음, 그냥…… 내 마음 잘 알아주는 사람이랑 같이 다니고 싶어서? 너 만큼 내 속 잘 아는 사람은 또 없을 것 같거든. 만나기도 힘들 것 같고.”
“……….”
반대로 이번엔 박지민이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찾아온 침묵에 나는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기만 했다. 분위기가 너무 어색해져 버려서 박지민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박지민은 한참 말이 없었다. 내가 말을 잘 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별로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아 눈을 또랑또랑하게 뜨고 박지민을 올려다봤다. 박지민의 눈은 복잡했다. 마음을 읽을 수가 없을 정도로 복잡한 그 눈 안에서 내가 박지민을 보고 있었다. 박지민은 살짝 부은 듯 한 그 눈을 손으로 비볐다. 그러자 박지민의 눈가가 조금 빨갛게 달아올랐다.
“나도… 너랑 같이 대학 다녔으면 좋겠다.”
박지민의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며 ‘왜?’ 하고 되물었다. 박지민은 대답을 망설이지 않았다. 마치 이유를 생각하고 말을 한 사람처럼, 곧바로 이유를 말했다.
“너만큼 나를 웃게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 만나기도 힘들 것 같고.”
“……….”
순간 원인 모를 불안감이 온 몸을 휘감아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날 보던 박지민은 잠깐 동안 그 진지한 얼굴을 지우지 않았다. 앙 다문 입 안에서 물고 있던 청포도 사탕이 아찔할 정도로 달게 느껴졌다. 눈을 몇 번 깜박이는 사이에 박지민은 슬며시 웃는 얼굴로 변했다.
“네 얼굴이 오죽 웃기냐. 너만큼 못생긴 사람은 없을걸.”
“아, 박지민 죽을래? 진짜?”
손을 높이 치켜드는 나를 보며 박지민은 얼굴을 찌푸렸다. 금방이라도 맞을 준비가 된 사람처럼 목을 웅크린 박지민이 웃겨서 웃음이 탁 터지던 찰나, 멀리서 민윤기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틀었다. ‘어디 있는지 한참 찾았다.’ 내가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던 민윤기는 내 옆에 선 박지민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 박지민도 매한가지였다. 민윤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표정을 굳히고는 내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친구랑… 같이 있었네.”
“아, 응. 어쩌다 같이 기다렸어.”
민윤기의 눈은 박지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박지민은 민윤기를 보던 시선을 거두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답답한 숨 소리였다. 민윤기와 박지민을 번갈아 보는 나를 봤는지, 박지민은 내 어깨에 짧게 손을 얹었다가 내렸다. ‘나 먼저 갈게.’ 그리고는 살짝 웃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박지민이 멀어지는 순간까지도 민윤기는 박지민을 계속 보고 있었다. 내가 제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는 줄도 모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나 하는 건지, 횡단보도를 지나 코너를 도는 박지민을 끝없이 보고 있었다. 잡은 민윤기의 손을 살짝 잡아 당겼다. 그제야 번뜩 정신이 드는 듯, 나를 내려다보는 민윤기를 짐짓 화난 얼굴로 째려봤더니 민윤기는 그제야 사르르 녹아내리는 미소를 지으며 ‘아, 미안.’ 하고 내게 말했다.
“내가 박지민이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
“아니, 아니.”
“근데 왜 그렇게 죽일 듯이 노려보는 거야?”
“에이, 질투 나니까. 내 예쁜 여자 친구가 남자랑 있는데, 아무리 친구래도 질투 난다고.”
민윤기는 내 어깨를 살짝 그러쥐었다. 물 흐르듯 유하게 상황을 모면하는 민윤기의 화술을 알면서도 넘어갔다. 누그러든 내 표정을 확인한 민윤기는 내 어깨를 끌어당겨 천천히 제 품으로 안았다. 귀와 볼이 민윤기의 가슴에 부대끼면서 콩닥콩닥 뛰는 그의 심장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었다. ‘오늘도 진짜 보고 싶었어. 학교 안에서 우연히 마주치기가 뭐 이렇게 힘들지?’ 가슴을 울려 전해지는 민윤기의 목소리는 보다 낮고 보다 부드러웠다. 입 안에 있던 사탕이 다 녹아 없어질 때 즈음, 민윤기가 나타나 사탕보다 더한 달콤함으로 나를 감싸 안았다.
“나도 보고 싶었어.”
“너도 나 보고 싶었어?”
“당연하지. 그래서 복도에서 괜히 너 찾아서 두리번거렸어.”
“자꾸 귀엽지 마. 그렇게 귀여우면 나 너무 힘들어.”
푸흐흐 웃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달콤해서 그의 품에 안겨서 잠깐 눈을 감았다. 죽일 듯 박지민을 노려보던 그 눈빛을 어느새 잊어버리고는 그저 달콤함에 취해서 잠이 쏟아졌다.
“졸리다.”
“오랜만에 야자 하려니까 힘들다, 그치?”
“응. 집에 가자마자 잘 것 같아.”
“안 돼, 나랑 통화해야지.”
“당연히 너랑 통화 하다 자야지.”
품에서 떨어져 나와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같은 방향을 향해 걸음을 뗐다.
“또 방학이었으면 좋겠다.”
“안 돼. 또 늦잠 자느라 내 연락 안 받으려고?”
“한 번 그랬거든?”
“한 번 하면 두 번 하기도 쉬운 거야, 원래.”
내 머리를 헝클이는 민윤기의 큰 손이 좋았다. 언제까지고 이 큰 손이 내 손만 잡아줬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민윤기가 내 머리를 헝클어 주길. 언제까지고 민윤기가 나만 끌어안아 주길.
“그래도 예쁘니까 봐준다, 내가.”
언제까지고 민윤기가, 내게 예쁘다 말을 해주길.
*
“그래서 선생님이랑 대학 면담 좀 하느라 늦었어.”
“말을 하지, 그럼 안 보챘을 텐데.”
“아냐, 네가 문자했을 때 거의 이야기 끝나가던 참이었어.”
민윤기는 슬슬 진로를 계획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게 늦게 하교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나서도 계속 운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빼고 모두가 진로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괜히 마음이 이상해져버렸다. 고등학교 2학년 2학기는 이제 제법 미래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이구나― 괜스레 깨닫고서 손끝에 일어난 거스러미를 물어뜯었다. 민윤기는 그런 내 손을 말없이 끌어 내렸다.
“너는 무슨 길로 나갈지 정했어?”
“아니.”
“그럼?”
“사실, 아직 생각도 안 해봤어.”
“그러면 이제 슬슬 생각해 봐야지.”
“…응.”
민윤기는 제법 오빠답게 듬직한 면이 있었다. 내게 뭐가 하고 싶은지 묻는 그에게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더니 진학할 대학보다는 하고 싶은 것부터 생각하라고 했다. 이어 대학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며 너무 대학에 얽매이지도 말라는 조언을 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어느새 벌써 우리 집 앞에 도착해있었다.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우리 아파트 현관에 민윤기는 벌써부터 아쉬운지,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아무리 부수적인 거라지만, 그래도 대학까지 같이 가면 좋겠다.”
“응.”
“대학 멀리 떨어지면, 그래서 매일 못 보면. 진짜 못 살 거 같은데.”
“나도.”
현관 계단을 올랐다. 세 계단을 올라 유리문 앞에 멈춰 섰다. 민윤기와 나는 마주보고 서서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눠야 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조심히 들어가.”
“너도. 들어가서 바로 자버리지 말고, 꼭 연락해.”
“알았어.”
“김탄소.”
내 이름을 부른 민윤기는 꽤 진지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손을 내 어깨에 얹는 게 묘하게 기분이 이상했다. 올려다보는 눈과 내려다보는 눈이 진득하게 얽혀있었다. 민윤기는 입술을 깨물다가 나를 끌어안았다. 내 머리까지 감싸 안은 그의 큰 손이 멀어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나 너 진짜 많이 좋아해. 알지?”
“……….”
“사랑해. 이말 해주고 싶어서 불러 봤어.”
웃음 터질 듯 간지러운 그 말에 민윤기의 어깨로 얼굴을 묻어버렸다. 그에게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아무 대답도 못하고 있는 내가 귀여운 듯 웃던 민윤기는 ‘대답’ 하고 말했고, 나는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얼른 대답.”
“무, 무슨 대답.”
“가는 게 있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지.”
민윤기는 짓궂게 그랬다. 얼굴을 묻고 고개를 저어도 민윤기는 꼭 내게서 같은 말을 들어내고야 말겠다는 듯 그랬다. 조심스럽게 눈을 맞추고 ‘꼭 말해야해?’ 하고 물으니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민윤기가 내뱉었던 말 그대로를 읊었다.
“사…랑해.”
“다시.”
“……사랑해.”
“좀 더 진심을 담아서 해줘야지.”
“윤기야, 사랑해.”
입술을 꼭 깨물고 한 말이었다. 좀 마음에 들게 했는지, 민윤기는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내 볼을 잡아 늘렸다. 얼굴 못생겨질 텐데, 걱정했지만 그 손을 뿌리치지는 않았다. 민윤기는 여전히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의 허리에 자연스럽게 둘러진 내 팔을 내려다보며 민윤기는 또 한 번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느 때보다 다정한 손길로 내 흐트러진 머리를 정리해주는 민윤기의 손끝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뽀뽀 하고 싶다.”
“……….”
그의 입에서 떨어져 나온 말에 깜짝 놀란 내가 그를 올려다보자 민윤기는 또 웃었다. 한없이 웃기만 하다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고는 ‘근데 안 할 거야.’ 라며 입을 뗐다. 안도하는 마음 반, 아쉬워하는 마음 반으로 숨을 폭 내쉰 나의 머리를 계속해서 쓰다듬다가 손을 내려 내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에게 안긴 꼴이 된 나는 팔이 묶여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말했지 내가. 한 번 하면 두 번도 하기 쉬워진다고.”
“……….”
“인간의 욕심이란 게 그렇잖아. 하나를 가지면 둘도 갖고 싶고 셋도 갖고 싶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똑같아. 뽀뽀 하면 또 하고 싶고, 또 다른 걸 하고 싶고 그럴 거야.”
“……….”
“그런데 내 욕심을 채우고자 절대 널 힘들거나 난감하게 하고 싶지 않아. 찰나의 이성을 놓쳐서 너의 신뢰를 잃는 일 같은 거 절대 안 할 거야.”
민윤기는 천천히 호흡을 했다. 그의 품에 안겨, 나도 그의 호흡을 따라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기를 반복했다. 진지한 목소리로 민윤기는 내게 또 다른 믿음을 주고 있었다. 천천히 내 등을 토닥이는 민윤기의 손 박자에 맞추어 편안함을 느끼면서, 이 남자의 매력과 자상함의 끝은 어디인지가 궁금해졌다. 나긋하게 내려앉은 민윤기의 목소리와 이 밤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따뜻한 눈빛에 얼굴이 훅 달아올라 아직 가을이 오려면 멀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너도 사람이니까 작지만 분명 내가 가진 욕구와 같은 욕구가 너에게도 있겠지. 아주 없다 하면 거짓말일 테고.”
“……….”
“어른이 되어서 해도 충분히 늦지 않는 일이니까. 그때까지 너를 아껴주고 싶은데, 괜찮지?”
“……응.”
“우리 대학 가도 계속 만날 거잖아.”
확신에 찬 그 목소리에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와 버렸다. 맞아, 우리 대학 가도 계속 여자친구 남자친구 할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더니 민윤기는 마음에 든다는 듯 내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리고 가볍게 나를 안았다가 놓아 주었다.
“얼른 들어가.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아냐.”
“집에 들어가서 씻고 전화해. 그럼 나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랑 얼추 맞을 것 같다.”
“알았어. 조심해서 가.”
“응. 사랑해, 탄소야.”
“……나도.”
민윤기의 말마따나 한 번 한 사랑한단 소리는 두 번 하기도 쉬웠다. 처음이라는 게 늘 그랬다. 시작하기가 힘들지, 막상 하고 나면 그 일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걸 사람들은 ‘익숙함’ 이라고 불렀다. 익숙함은 때로는 이롭게, 때로는 해롭게 우리의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그 익숙함의 흑과 백을 잘 구분해서 이용하면 된다. 어려운 일은 익숙함으로 보다 쉽게, 소중함은 익숙해지지 않아 매일 소중하게.
그럼으로써 우리는 보다 더 나은 오늘, 행복할 내일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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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용 / 알바하는 망개 / 메이♡ / 럽라잌슈가 ♥
투박한 자물쇠로 굳게 닫힌
네 마음을 내가 열지 못하는 이유는
내 손에 열쇠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 손에 너무 많은 열쇠가 달린
열쇠 꾸러미가 들려있기 때문이다
* 이제부터 윤기의 이름 옆으로 지민이 이름도 넣어야겠어요. 아무래도 그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리
* 저 만큼이나 제 글의 비지엠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이번화부터는 플레이어 아래에 아티스트와 곡명을 적어 놓을 예정이에요
저로 인해 좋은 곡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말이 참 듣기가 좋으네요.
* 늘어난 암호닉 목록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책임감에 무거워진 어깨를 추켜 올립니다.
책임감은 때로는 자랑거리가 될 수 있죠. 여러분은 제 자랑거리 입니다.
(누락된 암호닉이 있으시다면 주저말고 말씀해주세요! 모두 제탓입니다! 잇츠 마이 오운 폴트!)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쪽) 오타나 탈자는 애교로(찡긋)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 작가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독스님이라는 호칭이 더 좋아요(쪽)
* 암호닉 신청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연재된 글의 가장 마지막글에 해주세요.
신청 방법은 따로 없어요. 구분하기 쉽게 [네모괄호] 안에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해드립니다. 지구 끝까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