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잘 있었어요?
이번엔 너무 늦지 않게 온 거 같은데, 나만의 착각이면 미안합니다(소심)
일단 모두에게 너무 고맙다는 소리 하고 싶어요
독방에서 추천받고 왔다는 댓글들이 많아지면서 진짜
뭐랄까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의 쓰나미때문에
익사 할 것 같은 기분이랄까 (행복)
이글 올린 다음에 전글에 달아준 모든 사람들에게 답글 달아줄 거니까 딱 기다리세요!
한사람의 애정도! 놓치고 싶지 않아!
모든! 내! 사랑! 돌려! 줄거야! (버럭버럭)
이번 화에서는 최대한 연인 분위기를 내보려고 애를 썼어요
쓰긴 썼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헛웃음)
연애, 그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안남(긁적)
무튼 제 글로써 많은 사람들이 설렘설렘 열매 먹고
잠 못들어서
내일 아침 지각했으면 좋겠네요(짓궂)
그럼 모두 사랑해
아이시떼루
워아이니
알러뷰
...
..
.
“다녀오겠습니다.”
집 문을 닫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보충학습 마지막 등굣길이었다. 오늘만 나가면 당분간은 자유롭게 놀고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기분이 들떠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면서 쏟아지는 햇빛을 만끽했다. 올라오던 태풍이 한반도를 빗겨 지나갔다는 일기예보는 오늘의 날씨와 딱 맞아 떨어졌다. 줄곧 비만 뿌리다 가버린 태풍은 온 대지를 익혀버릴 듯 한 더위를 함께 데려왔다. 그래도 아침 바람은 나름대로 선선했다.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한, 비가 갠 다음날의 청량함까지 물고 있어 등굣길 최적의 날씨를 만들어줬다.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정류장에 멈춰 섰다. 평소보다 서둘러 나온 탓인지는 몰라도, 버스정류장은 사람이 없어 한산했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불어나겠지만 아직까진 나 혼자였다. 정류장 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들을 아무 생각 없이 구경했다. 검은 차, 빨간 차. 그 유리에 비친 내 얼굴. 내 얼굴은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없는 알쏭달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5분여를 보냈다. 유난히 고요한 주위가 나를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했다.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아직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음악을 재생시키며 전날 민윤기와 주고받았던 문자들을 다시 봤다.
[또 보고 싶다. 자꾸 보고 싶어.]
[얼른 자자. 빨리 자야 내일이 빨리 올 거 아냐.]
[내일도 학교 앞에서 마주쳤으면 좋겠다.]
민윤기는 알게 모르게 표현을 잘 하는 성격인 것 같았다. 그의 표현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는 일직선 형이었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만나고 싶으면 만나자. 덕분에 우리의 관계가 헷갈린다거나 하는 등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민윤기는 내게 어려운 존재였다. 늘 바라보기만 했었으니까. 아직 곁에 두고 내 사람이라 하는 게 어려운 일인 건 어쩔 수 없었다.
반면에 민윤기는 내게 많은 표현을 해줬다. 그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얼마나 마음 쓰며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또 밤이면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내 손을 잡고 한없이 걷고 싶어 하는지. 민윤기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모든 것들을 오롯하게 내게 전해줬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고 있는 그의 사랑이 반듯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해석을 하는지 민윤기가 알 수는 없겠지만, 그가 나에게 가진 감정만큼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고맙기도 했다. 잘난 것 하나 없는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주는 그의 마음이, 또 그라는 사람 자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우리의 마음은 조심스러운 초봄 같았다. 과연 봉우리가 활짝 피어날지, 아니면 그대로 시들어 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에서 내일을 위해 열심히 고갤 드는 그 봄날의 설렘을 갖고 있었다.
“……….”
민윤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몇 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곱씹고 있으면 시간이 흐르는 지도 모르게 흘러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훌쩍 지나가 곧 버스가 올 때가 다 되어있었다. 벤치에서 일어나 교복 치마를 정리했다. 멀리서 모습을 드러내는 버스를 보며 꽂고 있던 이어폰을 정리해 주머니로 넣고 교통카드를 꺼냈다. 언뜻 보아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 게, 오늘 아침엔 앉아서 등교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서고, 사람들 틈에 끼어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열심히 눈을 굴려 앉을 자리를 찾다가 뒤쪽에 앉아있는 박지민을 발견했다. 박지민도 나를 봤는지, 살짝 손을 들어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무의식적으로 걸어가 박지민의 옆에 앉았다. ‘일찍 나왔네?’ 먼저 말을 걸어오는 박지민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이 일찍 떠졌다고 대답했다. ‘나 깁스 풀었다.’ 그리고 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숙여 그의 다리를 내려다보니, 가뿐해 보이는 맨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도 가벼운 모양인지 발끝을 까딱 거리는 게 기분도 좋아 보였다.
“어제 풀었어.”
“걷는 건 괜찮아?”
“어. 살 것 같아.”
“아프진 않고?”
“전혀. 전보다 훨씬 나아진 거 같아. 진작 하랄 때 깁스 할걸 그랬어. 괜히 여름에 했어, 냄새나게.”
“좀 조심해. 맨날 다리 삐끗하고는 집에서 뻐기지 말고, 다치면 병원 좀 가고.”
“이제 네가 걱정 안 해줘도 그럴 거야.”
박지민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며 박지민은 피식 웃었다. 그리곤 너나 잘하라며 내 머리카락을 쭉 잡아당기더니 언제 묻었는지 모를 밥풀떼기를 떼어줬다.
“헐, 뭐야?”
“뭐긴 뭐야. 네가 나중에 먹으려고 붙여 놓은 거지.”
“아침에 묻었나? 헐, 그럼 여기까지 이거 붙이고 걸어온 거네? 으, 창피해.”
“동네에 너 아침 먹었다고 자랑한 거네.”
심드렁하게 창밖으로 밥풀을 던진 박지민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덩달아 나도 큰 한숨을 쉬었다. 박지민은 잠깐 동안 그렇게 멍하게 바깥만 내다보고 있었다. 뭐라 말을 걸 수 없는 그런 오라를 내뿜으며 잠깐의 적막을 즐겼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유리창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 벨이 울리는 소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박지민의 고요 속에서 나는 과연 무슨 소리를 내고 있을지가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비 같은 건 안 오겠지.”
박지민이 혼잣말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아마, 그럴걸. 조심스럽게 답해주는 내 음성에 고개를 틀어 나를 흘긋 본 그는 잔잔히 웃는 얼굴로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행이네. 이제 김탄소 머리 다 젖고 괴물 될 일은 없어서.’ 그리고 나를 놀리는 것 같은 말을 했는데, 기분이 묘한 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다시 돌아 간 걸까. 예전으로. 우리 둘 다 서먹하지 않았던 그때로. 목 끝이 콱 하고 막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애써 웃으면서 박지민의 손을 쳐냈다. 시끄러워 인마, 나는 괴물이었던 적 없어.
“쉬는 이주 동안 뭐 할 거냐.”
“아직 몰라.”
“하루 정도는 나랑 놀아줄 거지?”
“아니, 내가 왜.”
“뭐가 왜야. 맨날 정호석이랑만 노는 거 지겹다고. 정호석 게임도 못해서 같이 놀면 재미없어.”
박지민은 오랜만에 투덜거렸다. 기분이 좋아져서 또 맞장구를 쳐줬다. 늘 투정을 부리는 쪽은 내 쪽이었는데, 박지민의 이런 모습이 오랜만이라서 흔쾌히 그의 투정을 받아 줬다.
“그럼 나랑 놀면 뭐가 재밌는데? 나도 게임 못하잖아.”
“너는…….”
“……….”
우리가 내려야하는 정거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박지민은 안내 방송을 듣고 손을 벋어 벨을 눌렀다. 삐― 버스 안을 울리는 소리가 내 머리까지 울렸다. 박지민은 나와 진득하게 시선을 맞췄다. 나도 그런 박지민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같이 있으면 그냥 재미있어….”
“……….”
“내리자.”
대답을 미처 다 듣기도 전에 떠밀리듯 내린 나는 한참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었다. 등교하는 학생들의 대열에 스며들어 생각 없이 늘 가던 길을 따라 발끝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내 옆의 박지민 또한 아무 말도 없었다.
Love Like Sugar
W. 독스
10
“나가자.”
“밖에 덥잖아.”
“그래도 더위 꺾였잖아. 아, 나가고 싶다고.”
“너 혼자 나가!”
“싫어!”
박지민은 점심을 먹자마자 징징 대며 밖에 나가자고 난리였다. 아무리 비가 온 후에 더위가 한 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8월 여름 인데 이런 더위에 농구를 하고 싶다나 뭐라나. 아무리 싫다고 해도 팔을 잡고 흔들어대는 통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타임― 을 외치며 그럼 양치질만 하고 나가자고 해도, 그것도 싫단다.
결국 협상 끝에 30분만 나갔다가 들어오기로 했다. 들어올 때 박지민이 아이스크림을 사줘야 한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운동화로 갈아 신고 나간 농구코트는 덥고 뜨거웠다. 계단을 오르면서 오만상을 했더니 박지민은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 더 구기지 말라며 키득댔다. 김태형에게 빌린 농구공을 바닥에 튕기며 신나게 코트 안으로 뛰어 들어간 박지민은 들어가자마자 보기 좋게 골을 넣었다. 어떻게 그렇게 던지는 족족 골이 들어가느냐고 신기한 얼굴로 묻는 나를 비아냥거리듯 ‘원래 될 놈은 돼.’ 라고 대답한 박지민이 얄미우면서 밉지가 않았다.
“야, 던져봐.”
박지민이 내 쪽으로 던진 공을 엉겁결에 받아들었다. 삐죽이며 골대 앞으로 선 나는 힘차게 공을 던졌지만, 힘없이 날아간 공은 림만 맞고 바깥으로 튕겨 나왔다. 되돌아오는 공을 순발력 좋게 받아낸 박지민은 나를 보며 웃었다. ‘너 일 학년 때 자유투 만점 맞지 않았었냐?’ 묻는 그 말에 입술을 삐죽이다 고개를 숙였다.
잠깐 잊고 있었던 민윤기가 다시금 떠올랐다. 박지민은 복잡한 내 속내는 모르고 열심히 공만 넣어댔다. 혼자 하는 농구가 꽤 익숙한지, 공을 던지고 다시 돌아오는 공을 받아 다시 던지는 폼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바위처럼 서있는 나를 보고 내 쪽으로 공을 던진 박지민은 다시 던져보라며 눈짓했다. 기억을 더듬어 검은 테이프가 붙어있던 곳을 찾아 발을 붙이고 선 나는 예전의 민윤기가 알려줬던 그 방법 그대로 팔을 쭉 뻗었다. 역시 림을 맞고 나온 공이었지만, 아까보다는 꽤 보기 좋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을 보며 박지민은 오― 하고 반응을 했다. 저만치 굴러가는 공을 주우러 달려간 박지민의 뒷모습에 자꾸만 민윤기가 겹쳐 떠올랐다.
“있잖아. 진짜 너랑 윤기 얼굴만 알던 사이였던 거 맞아?”
“……….”
내 물음에 공을 줍던 박지민의 등이 움찔했다. 공을 주우려 숙였던 허리를 펴는 동작들이 느리게 진행되었다. 바닥에 공을 한 번 튀긴 박지민은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게 또 왜 궁금한데. 전에 대답해줬잖아.’ 까칠하게 대답하는 박지민의 목소리도 무섭지 않았다. 내 쪽으로 걸어오는 박지민을 쳐다보며 눈을 느리게 깜박였다. 박지민의 표정은 아직까지 넓은 호수의 표면처럼 너무도 잔잔했다.
“그럼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상관이 없는 거지?”
“무슨 말?”
“음, 민윤기와 관련된 어떤 말.”
“……어.”
박지민의 목소리가 떨렸다. 눈의 깊이가 깊어지는 게, 내가 할 말을 어렴풋이 짐작해보려 하는 것 같았다. 마른 침을 삼켰다. ‘남자친구 생기면, 나한테 제일 먼저 말해야 해.’ 귓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박지민의 먼 목소리에 또 한 번 침을 삼켰다. 아랫입술이 달싹거리면서 가슴 끝이 꽉 막히는 것 같은 게, 아무래도 긴장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떨고 있는 내 얼굴을 보다 박지민은 다시 공을 튕겼다. 통, 통, 통. 바닥에 부딪혀 올라온 공을 받는 박지민의 손에 시선이 머물렀다. 민윤기의 손과는 정 반대의 손. 작고 뭉툭하고 무심해 보이는 손. 저 손으로 나는 참 많은 챙김을 받았었지. 내가 하려하는 이 말을 하고난 후에도 박지민은 계속해서 저 손으로 내 머리에 묻은 밥풀을 떼어 줄까. 눈에 낀 눈곱이나 볼에 붙은 속눈썹도 떼어줄까. 대체 나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 뭘까.
“나 윤기랑 사귀게 됐어.”
결국 말을 해버렸다. 공을 튕기던 박지민의 손이 살짝 멈췄다. 그러다 금방 하던 대로 공을 튕기며 골대를 노려봤다. 허리를 펴는 동시에 팔을 뻗은 박지민의 손에서 떠나간 공은 림 안으로 정확하게 빨려 들어갔다. 골대 밑으로 떨어진 공을 이번엔 주우러 가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박지민은 숨만 고르고 있었다.
“정호석보다 너한테 제일 먼저 말하는 거야.”
“……….”
“네가 남자친구 생기면 제일 먼저 말하라고 했었잖아.”
“…그랬었지.”
숨을 고르던 박지민은 저쪽 만치 굴러간 공을 주우러 갔다. 너털거리는 걸음을 보고서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남은 감정은 후련함과 걱정스러움. 둘 뿐이었다. 무엇이 걱정인지는 몰라도, 박지민의 넓은 등을 보면서 자꾸 나는 녀석과 나 사이에 남은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하고 있었다. 박지민이 끊어내려 해도 끊어지지 않을 연결고리. 끝까지 녀석을 내 곁에 둘 수 있을 그 이유.
박지민은 의외로 덤덤했다. 볼을 타고 흘러 내려와 턱 끝에 맺혀 떨어지는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축하해.’ 라고 말할 뿐이었다. 박지민은 저만치 굴러간 공을 주워와 옆구리에 끼웠다. 내 앞까지 다가와 멈춰 선 박지민의 키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컸다. 그동안 나는 왜 그를 작게만 느꼈었지. 이제와 나는 왜 박지민이 이렇게 크게만 느껴지는 거지. 복잡한 속을 털어보려고 일부러 길게 호흡했다. 그런 내 속이 충분이 짐작된다는 듯, 박지민은 웃어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드디어 해냈네. 우리 김탄소.”
“……….”
“욕심 부리면서 연애 좀 해. 너 충분히 그래도 돼.”
나를 끌어안는 박지민의 말. 늘 위로를 얻고 기대 울었던 박지민의 말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용기를 얻고 있었다. 박지민은 뭐라해도 나에게 큰 소나무 같은 친구였다. 늘 곁을 내주고 어깨를 빌려주며 내가 걷고 있는 진흙길도 괜찮다 해줄 수 있는 그런 친구. 그 그늘 아래에 주저앉아 있던 나는 결국 그가 내밀어준 줄기를 붙잡고 일어났다. ‘너는 충분히 그래도 된다. 너는 그래도 괜찮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이다.’ 위로를 얻었다. 용기를 얻고 힘을 얻었다. 박지민의 말 한마디에 나는 천군만마를 얻었다.
“잘 만날게.”
“그래, 싸우지 말고 오래 만나. 민윤기가 괴롭히면 바로 말하고. 쥐어 패주지는 못해도 너랑 같이 씹어줄 수는 있어.”
“치, 알았어.”
“내려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박지민은 다시 한걸음 내 곁으로 돌아왔다.
“나는 빵빠레 먹을래.”
“싼 거 먹으라고 1500원짜리 먹지 말고.”
“아, 왜애. 그럼 뽕따.”
“뽕따? 그건 콜.”
내 손을 떠난 줄 알았던 추억과 그리움을 가지고, 다시 곁으로 돌아왔다.
*
깁스를 푼 박지민의 다리를 보자마자 정호석이 했던 말은 오늘은 네가 날 자전거 뒤에 태우고 집까지 데려다 줘야함―이었다. 박지민은 그 말을 웃음으로써 무시했지만 정호석이 끝까지 바득바득 우기는 바람에 끝내는 정호석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하교를 했다. 죽을상인 박지민과는 달리 기분 끝내준다던 정호석은 박지민의 엉덩이를 연신 때리며 ‘달려라, 달려!’를 외쳐댔고, 내일 보자는 인사를 미처 다 하지도 못한 박지민은 괴성과 함께 열심히 페달을 구르며 사라졌다. 오늘을 시작으로 약 2주간의 방학이 시작되지만, 저놈들과 연락이 닿는 이상 쉬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헛웃음으로 교문을 벗어났다.
요즘엔 핸드폰을 손에서 놓는 일이 없어졌다. 민윤기와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탓도 있었고, 이유 없이 답장이 늦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민윤기의 성격 탓도 있었다. 종례가 끝났다는 문자를 시작으로 줄기차게 오고가는 문자가 자연스러워졌다. 이제 연애 일주일차가 막 지난 나와 민윤기는 한창 깨가 떨어지고 있었다.
[박지민이랑 정호석 둘이서 먼저 가버렸어.]
[나 교문 근처야. 같이 가.]
[알았어, 기다릴게.]
교문 근처라는 민윤기의 말에 가던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길목에 서서 곧 나타날 민윤기를 기웃거리며 기다렸다. 교문 근처라더니 왜 이렇게 늦지. 문자나 한 번 보내볼까 싶은 심정에 핸드폰을 들어 올렸을 때, 멀리서부터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민윤기가 눈에 들어와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미안, 좀 늦었지.”
“교문 근처라면서.”
“사실 그때 교실이었는데, 너 기다리게 하려고 교문 근처라고 거짓말했어. 미안.”
“아, 뭐야.”
“같이 가고 싶어서. 내가 왜 거짓말 했는지 알잖아.”
민윤기는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은근히 미소 짓는 그 얼굴에 내가 사르르 녹아버린다는 것을 어쩌면 알고 있는 지도 몰랐다. 이번에도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미소를 짓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 같은 건 절대로 싫어하는 사람인데, 왜 다신 거짓말 하지 말라는 소리조차 할 수 없었는지 나도 알 지 못했다. 그저 민윤기가 나를 보고 웃는 게 좋아서, 이런 거짓말 정도면 몇 번이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까지 생각해 버렸었다. 민윤기는 내 어깨에 손을 걸친 채로 걸음을 뗐다. 그를 따라 나도 걸음을 옮겼고, 우리 주변을 스쳐지나가던 몇몇 학생들의 시선이 우리에게로 와서 꽂히는 것도 느꼈다. 나랑 민윤기가 잘 어울릴까. 또 소심해지려 하고 있었다. 순간 박지민의 목소리가 귓등을 울리면서 움츠리려 했던 어깨를 활짝 폈다.
‘너 그 정도로 매력 있는 애니까.’
그래, 나도 내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까. 박지민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당당하게 걸음을 뗐더니 민윤기가 옆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기분 좋아?’ 묻는 민윤기의 목소리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더니 귀엽다며 내 머리에 얼굴을 부비는 민윤기 때문에 잠깐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이제 방학이야.”
“그래봤자 이 주 밖에 아닌데.”
“이 주 밖에― 라니. 얼마나 많은 걸 하면서 놀 수 있는데?”
방학에 민윤기는 신이 난 듯 했다. 매일 같이 만나서 놀자는 민윤기의 말에 혀를 내둘렀더니 금방 또 싫은 거냐고 묻는데 그 모습이 퍽 귀엽기도 했다. 민윤기에게서 귀여운 얼굴이 보이다니. 전에 볼 수 없었던 얼굴이라서 함지박만 하게 웃었더니 민윤기는 또 내 볼을 꼬집어 댔다. ‘어떡해, 귀여워. 미칠 거 같아.’ 민윤기는 곧잘 내 볼을 꼬집었는데, 꼬집히는 볼이 아프지는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사랑받는 기분. 귀여움 받는 기분. 민윤기 옆에 있으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이제 방학인데 오늘 데이트 하고 들어가자.”
“데이트? 어디서?”
“영화 볼래? 이번에 영화 개봉 많이 했잖아.”
자연스럽게 데이트 신청을 하는 민윤기의 술법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민윤기는 거절 할 수 없게 하는 마법 같은 걸 부리지는 않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그가 하는 말마다 흔쾌히 수락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그를 좋아하는 탓이기도 했지만 이건 민윤기가 너무 구렁이 담 넘듯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유도하는 탓도 있었다. 여자 친구를 많이 사귀어 봤을까. 원초적인 궁금증이 떠올랐다. 오롯하게 그가 내 것이었으면 하는 동물적 본능 말이다.
민윤기는 내 옆에서 걸으면서 무슨 영화를 보아야 좋을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나는 그런 그의 옆에서 잠자코 그의 혼잣말을 듣기만 했다. 간간히 민윤기의 말에 맞장구도 치면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도 말하면서 그와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노력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이 사람이 많은 시가지로 들어왔고, 멀리 보이는 영화관을 보면서 영화를 정하는 데에 막바지 스퍼트를 올렸다. 결국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기로 했다. 함께 볼 수 있는 가벼운 영화가 그것뿐이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사람이 많아지면서 어깨에 치이는 일이 잦아지자 민윤기는 내 어깨를 손으로 감쌌다. 그리 작은 줄 몰랐던 내 어깨는 민윤기의 한 손안에 모두 가려졌다.
영화관 앞에 도착해서 나는 박지민을 떠올리게 되었다. 박지민과 자주 왔었던 영화관이기 때문이었다. 표를 끊는 줄에 서서 민윤기는 연신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왜 자꾸 얼굴 보고 웃느냐 묻는 내게 보기만 해도 좋다는 그런 오글거리는 대답을 해놓고 계속해서 웃어댔다. ‘영화 보면서 손잡아도 돼?’ 그리고 묻는데 귀까지 열이 화르륵 타올라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민윤기는 그런 내모습도 귀엽다며 볼을 잡아 당겼다. 볼이 말랑해서 좋다는 칭찬 아닌 칭찬도 빼놓지 않았다. 민윤기 옆에 있으면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는 일은 내 몫이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영화 시작 시간 금방이야. 좀 앉아 있다가 팝콘 사서 들어가자.”
민윤기는 표를 끊어 내 얼굴 앞에서 펄럭이면서 의자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옆에 나란히 앉은 나는 영화관 로비에 걸려있는 TV에 눈을 고정시켰다. 끊임없이 영화 예고편이 재생되고 있는 화면은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때우기에 적절했다. 한참 화면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손에 영화표를 쥐어준 민윤기는 내 앞으로 와 무릎을 꿇고 앉더니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 같은 내 운동화 끈을 다시 좋게 묶어줬다. ‘그거 알아?’ 리본 매듭을 지으면서 말문을 연 민윤기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운동화 끈이 자꾸 풀어지면 애인이 생길거래.”
“왜?”
“끈이 자꾸 풀어진다는 소리는, 이렇게 나처럼 묶어줄 사람이 생긴 다는 뜻이라던데.”
리본이 풀리지 않게 꽉 조여 준 민윤기는 내 신발 위에 묻은 작은 먼지도 툭툭 털어줬다. 그리고 나를 반듯하게 쳐다보는데 그 눈이 너무 진하고 깊어서 그 속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앞으로 신발끈 풀리면 다른 사람 말고 나한테 와.”
“……….”
“나한테만 묶어 달라고 해야 돼.”
“……….”
“대답.”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민윤기는 또 씩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 착하다.’ 그리고 말하는데 그 말이 꼭 어린애를 취급하는 말 같아서 기분이 나쁘려다가도, 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민윤기의 시선에 금방 또 괜찮아지면서 나중엔 기분이 좋은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사랑받고 있구나― 의심 없이 느낄 수 있었다.
“있잖아, 윤기야.”
“응. 왜?”
민윤기는 다시 내 옆 의자로 올라와 앉았다. 무릎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대답하는 그의 낮은 목소리에 목을 가다듬었다.
“지민이한테 말했어. 우리 사귀는 거.”
내 말에 민윤기는 퍽 놀란 얼굴을 했다. 왜 그런 얼굴을 했는지는 몰라도, 전혀 의외의 말이라는 듯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말을 잘못 꺼냈나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말은 마무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말을 마무리 지어야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민윤기가 ‘뭐래?’ 하고 물어왔다. 생각지 못했던 반응에 잠깐 놀라 멍해졌다가 금방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잘 됐대. 싸우지 말고 오래 사귀라고.”
“박지민이 그랬어?”
“응.”
“참나.”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뱉어낸 민윤기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거의 자기 혼자 하는 혼잣말 식으로 중얼거렸다.
“속 좋은 새끼. 결국 또 혼자 착한 척이네.”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귀를 기울이려는 찰나 영화 시작 15분 전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와 민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팝콘 사서 들어가자.’ 다정한 얼굴로 돌아온 민윤기는 팝콘이 있는 쪽으로 성큼 성큼 걸어다가 말고 뒤돌아 물었다.
“콜라? 사이다?”
나도 얼떨결에 대답했다.
“사, 사이다!”
“콜.”
‘콜.’ 박지민의 목소리가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왜 자꾸 박지민에게서 민윤기를 보고, 민윤기에게서 박지민을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 머리를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때렸다. 민윤기에게 집중하지 못하느냐고. 이 소중한 시간을 허튼 생각으로 보내버릴 참이냐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그리고 민윤기에게로 뛰 듯 걸어갔다.
“나 카라멜 팝콘 먹고 싶어!”
박지민의 말대로, 욕심내며 연애 좀 해보려고. 민윤기에게 한껏 사랑받으며 연애를 해보려고.
*
영화는 그리 재미있지도 그렇다고 해서 시시하지도 않게 끝이 났다. 미적지근한 영화도 민윤기랑 함께 보니 재미있게만 느껴졌다. 이련 표현은 삼류 소설에서나 나오는 줄만 알았는데, 사실 말 그대로 영화에는 하나도 집중 할 수가 없었다. 옆에서 들리는 민윤기의 숨소리, 가끔 하는 헛기침 소리.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게 너무 즐겁고 행복해서 어쩌면 영화가 시시하지 않게 느껴졌는지도 몰랐다. 영화관을 나오면서는 묘하게 달라진 분위기를 느꼈다. 유독 영화에서 나오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스킨십 장면에서 고개를 돌리면 민윤기를 느끼지 못한 게 아니었다. 나와 함께 그런 장면을 보는 게 부끄러웠던 걸까. 아니면 그냥 우연일까. 아무튼 간에 민윤기는 영화관을 나오면서 어색한 걸음으로 내 옆에 섰다. 나는 그런 민윤기마저도 좋았다.
내 옆에서 쌩쌩 지나는 차들을 보다 민윤기는 자연스럽게 나를 인도의 안쪽으로 잡아 당겼다. 저와 내 자리를 바꾸면서 민윤기는 ‘여자가 바깥쪽에서 걷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면서 씨익 웃다 고개를 돌리는데, 그 모습은 가히 반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깔린 어둠에 나란히 걷고 있는 이 길이 왜 이렇게 운치 있어 보이는지. 분위기에 취해, 민윤기에 취해 나는 정신이 빠진 듯 웃었다.
“영화 그냥 그랬지.”
“응. 그냥.”
“다음엔 액션 보자. 둘 중 하나라도 재밌어야지.”
“아냐, 나 액션도 좋아해.”
“그럼 다행이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민윤기는 영화 속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의 사랑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며 비평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너무나도 개방적인 연애 아니냐며 투덜대다 저를 빤히 보는 내 시선에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어느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이브닝 파티에서 만나서 눈이 맞고 그러냐고. 주변 눈치 안보고 키스하고 집에 찾아가고 하는 건,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잖아.”
“그렇지.”
“내 말은, 그러니까 그게 너무 개방적이다― 이런 거지. 고등학생이면 고등학생다운 연애나 사랑을 해야 하는 거잖아.”
“근데 윤기야.”
“어?”
“왜 아까부터 자꾸 내 눈을 못 봐?”
그랬다. 이제야 확실하게 느낀 거지만, 아까부터 묘하게 달랐던 민윤기의 태도는 내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유를 물으니 민윤기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내 얼굴을 몇 번 보다 다시 눈을 돌려버리는 민윤기는 가늠하기 힘들었다. 뭐가 문제지. 고개를 빼 돌아간 민윤기의 얼굴을 억지로 보려 애를 쓰니, 민윤기는 하지 말라며 내 양 볼을 붙잡았다.
붙잡힌 상태에서 걸음이 멈춰졌다. 가만히 시선을 주고받던 나도 기분이 이상해졌다. 민윤기가 침을 삼키자, 그의 목울대가 일렁였다. 순간 언뜻 어떤 기억도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도.”
“……….”
“언젠가 그 주인공들처럼 뽀뽀도 하겠지?”
“……….”
“너무 서두르지는 않을 거야. 너 준비 될 때까지 기다릴 거야.”
“……….”
“그러니까 그 여주인공처럼 나를 떠나버릴 생각 같은 거, 절대 하지 마. 알았지?”
민윤기가 꺼낸 말은 의외의 말이었다. 상상도 하고 있지 않았던 말. 두 눈만 끔뻑대고 있는 나를 보다 민윤기는 잡은 내 얼굴을 흔들었다.
“대답.”
“……응.”
“아이, 착하다.”
그리고 또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가자.’ 말하며 내 볼을 놓아주는 민윤기 옆에 찰싹 붙어 섰다. 민윤기 말대로 우린 언젠가 뽀뽀도, 포옹도 하게 되겠지. 내가 준비 될 때는 언제일까. 무엇보다 민윤기는 준비 된 나를 어떻게 알아줄까.
걷는데 손등이 자꾸만 스쳤다. 점점 더 기울어가는 해가 어둠을 몰고 왔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들이 하나둘 씩 밝혀지기 시작하며 우리의 그림자도 점점 길어졌다. 시가지에서 멀어지면서 들리는 발걸음 소리도 확연히 줄어들었다. 우리 집은 민윤기의 집보다 더 멀리 있었다. 그냥 먼저 집에 들어가도 된다는 내게 굳이 집까지 데려다 줘야겠다며 제 집을 지나친 민윤기는 아까부터 말이 없었다. ‘내가 그때, 너 집까지 데려다 줄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르지.’ 그 말을 끝으로 민윤기는 묵묵부답이었다. 나도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함께 걷는 이 공간 속에 흐르는 적막까지도 좋았다.
손등이 부딪쳤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나누는 이야기 없이 길만 걷는데, 자꾸 손등이 부딪치니 온 몸의 모든 신경이 그 손으로 쏠렸다. 손이 화끈하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민윤기는 아무 반응도 없는 것 같았다.
“크흠.”
민윤기는 골목이 크게 울리도록 헛기침을 했다. 덩달아 나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일어날 것 같은 기분을 알까. 바싹 타는 입술을 혀로 훑어내는 데, 순간 훅하고 뭔가가 들어왔다.
“손등이 자꾸 부딪치네.”
민윤기가 부딪치던 손을 덥석 잡았다. 놀란 눈으로 민윤기를 올려다보는 내게 자상한 미소로 화답하며 ‘손잡고 가도 되지?’ 묻는 민윤기는 반칙이었다. 내가 고개를 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어버버 거리는 내게 더욱 환하게 웃어주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민윤기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떨려서 고개를 숙였다. 민윤기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서있을 수가 없었다. 손끝에서 전해져오는 따뜻한 체온은 아빠와 엄마와 마주잡던 그 손의 느낌이 아니었다. 찌릿찌릿하게 전기가 통하는 것도 같고, 저릿한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심장이 다시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민윤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금방이라도 자리에 주저앉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손, 너무 잡고 싶었어.”
“……….”
“네 친구들은 맘껏 잡는 이 손을, 나는 왜 이제야 잡았을까.”
“……….”
“앞으로 맨날 잡고 다닐 거야. 손에서 땀이 나도 잡고 다닐 거야.”
민윤기가 말했다. 그 말마다 진심이 녹아있어서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전해지는 그 마음에 내가 너무 가득 들어 있어서, 민윤기가 더 좋아질 것 같았다. 이미 충분이 마음 넘치게 좋은데, 더 좋아질 것 같았다. 가까워지는 집이 싫었다. 멀리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저 아파트 건물이 우리 집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가서 달력에 표시해놔.”
“…뭐라고?”
“오늘 윤기랑 손잡은 날, 옆에 하트. 이렇게.”
어색해진 분위기를 무마시키려 민윤기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을 했지만, 나는 그의 마음을 백번 헤아리고 웃어줬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진짜 해놓을 거야. 오늘 날짜에 동그라미 치고 윤기랑 손잡은 날. 하트.’ 그러자 민윤기는 활짝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었다.
“진짜, 김탄소 너 데일리로 사랑스러워서 숨을 못 쉬겠다.”
그에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매일 멋있어서, 매일 떨려서 숨을 못 쉴 것 같은 그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오늘보다 내일 더 좋아질 그 설렘에 잠 못들 그 기분을, 너와 마찬가지로 나도 느끼고 있으니까.
글을 쓰는 제게 원동력이 되어 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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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어둠 속 향기를 흩뿌리고 간 사람아
내게 다시 돌아와 주오
눈 멀은 내 가슴 속 양초의 심지를 심어 놓고
밤마다 태워 빛을 밝히리니
그대 그 빛 따라 부디 내게 돌아와 주오
* 혹시 암호닉 빠지신 분은 댓글로 저를 때려주세요! 몹시 심하게 쳐주세요!
* 날로 늘어가는 암호닉들을 보면서 뿌듯하지만 무거워진 어깨도 느낍니다. 이제 내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생겼구나,
끝까지 안고 가야 할 내 사람들이 생겼구나 느낍니다. 그러니 부디, 그대 내 곁을 떠나지 말아주오.
* 아무래도 민윤기 이름 옆으로 박지민 이름도 새겨 넣어야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박지민 지분률 거 참(껄껄)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참 사랑하겠습니다(쪽)
*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 사랑합니다 (쪽) 오타나 탈자는 애교로(찡긋) 댓글로 알려주시면 더욱 좋아요
* 암호닉 신청 방법은 따로 없어요. 그냥 던지고 도망가시면 쫓아가서 뽀뽀해드립니다. 지구 끝까지(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