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사용설명서 번외
부제 : 만나서 반가워.
W, 술레술레
하루하루가, 낯설고 무섭다. 내 침대 옆에 있던 백현이가 없다. 날 사랑해라고 속삭이며, 웃던 변백현 그 사람이 없다. 한달이라는 시간이 이렇게나 무섭구나. 백현아 넌 어디에 있니? 어디에 있을까. 폐기처분이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소리 없이 울고 또 울었다. 뒤늦게 뒤쫓아갔지만 그만 사라져버리고 없었고, '변백현'이라는 사람은 무섭게도 사라져버렸다. 내 옆에서 웃으면서 'OOO'이라고 부르던 사람이 없어져 버렸다. 백현이가 압구정에 갔을 때, 가지고 싶었던 반지가 내 책상 위에 있었고, 백현의 물건을 하나하나 버릴려고 서랍을 열었는데 편지한통이 있다. 설마, 설마….
안녕, OO.
너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 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 서랍을 열었다는 건 네가 이 서랍을 열었다는 증거겠지?
난 지금쯤 사라지고 없을거고…, 로봇이라는 게 너무 싫을때가 많았어.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모습을 볼때마다, 만지고 싶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내가 너무 한심했어. 내가 처음 눈을 떳을 때, 너가 내 앞에 있었잖아.
화창한 빛보다, 더 근사한 빛이 나에게 오는 줄 알았어. 아마도 난 그 떄 널 반했을거야.
이런 말을 해봤자, 넌 울고 있겠지. 울지마.. 내가 뭐라고.. 그냥 로봇일뿐인데...
사람은 인연이라는 게 있잖아. 그러니까, 언제든 나랑 똑같은 사람을 만나면, 꼭..꼭..붙잡아줘.
그리고 내가 만져도 아까울 사랑하는 OOO에게 이 편지를 드립니다.
이 편지를 다 읽으면서 불안했던 말음이 한층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지만, 너무 싫었다. 아직 내 옆에서 웃으면서 있을 변백현이 없으니까. 내가 무서우면 날 안아주던 그가 없잖아. 너랑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 거니? 몇 분이 지나도, 몇 시간이 지나도 그 자리에서 편지를 10번, 20번 다시 읽었다. 한글자 한글자 열심히 쓴 백현의 편지를 보며 울고 웃고, 또 설레고 보고 싶다. 너가 이렇게 가버리면, 난 어떻게 하라고.
백현이가 사라지고 수정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김종인한테 배신을 당할 때도 이만큼 울지 않았는데, 변백현이라는 남자는 나에게 너무나 큰 숙제를 남기고 가버린 게 아닐까? 그 날 휴대폰을 붙잡으며 '백현이가, 백현이가' 이 말만 수없이 많이 한 거 같았다. 곧장 수정이가 와서 나를 달래고 또 달랬다. 로봇을 사랑한 비련한 여주인공이 되어도, 그 로봇을 사랑했으니까, 후회는 없을 거라고 끝까지 사랑 할 자신이 있다고. 수정한테 말을 했지만, 수정인 아무 말 없이 '응, 알았어' 만 말해줬다.
편지를 들고, 베란다에 갔다. 화창한 오후지만, 쨍쩅하게 울리는 태양소리, 지나가는 새소리, 슬며시 나를 감싸안아 가버리는 바람이 있지만, 내 곁엔 '변백현' 그 사람만 없었다. 나에게 큰 짐만 넘기고 간 그를 밉다고 증오를 해봤지만, 그 미운 것도 증오도 다 사랑에 일부이기에, 그냥 떠올리지 않으면 되니까, 그러면 되니까 바쁘게 알바를 하고 바쁘게 반찬을 만들고 청소를 했다. 나의 행동에 수정과 세훈은 몸에 무리가 간다고 그만 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조금만 쉬어도, 조금 여유가 생겨도 '변백현' 이 내 머리에 찾아와 말을 걸어오니까, 그러니깐 안된다.
"어서오세요!"
나의 힘찬 인삿말에, 지나가던 남자가 풉, 하고 웃더니 자리에 가버린다. 왜저래?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주문서를 들고 그 손님에게 가서 '손님 무엇을 시키겠습니까?' 라고 묻자, '여기선 뭐가 제일 맛있습니까?' 라고 답을 한다. 내가 어, 여기는 다 맛있어요! 라고 활기차게 말을 했더니,
"여기 직업은 활기차서 좋네요?"
"네?"
"보기 좋다고요."
이 남자 나한테 작업 거는 거야? 뭐야. 짜증이 나서 인상을 찌푸리니, 웃음소리가 더욱더 커지더니 '아메리카노 한잔만 주세요' 라고 한다. 허, 꼴랑 이거 시킨다고 나 이렇게 부린거야? 화가 났지만, 손님은 왕이라는 사장님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메리카노 한잔. 말만 하고 멍하게 가게 주변을 살폈다. 백현아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아. 어쩌면, 너가 없어서 이렇게 바쁘게 사는 걸 수도 있어. 근데 이런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
아메리카노를 서빙을 하는 찰라에, 어떤 남자와 부딪쳐 버려서 쏟았다. 아, 하고 멍하게 바라보자, 부딪친 남자가 성질을 내며 '사장 나오라고 해!!' 라고 소리를 쳤고, 난 죄송하다며 사과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남자는 더욱더 화를 냈는데, 갑자기 아까 그 남자가 우리 사이를 끼어들더니 지갑 안에 몇 장의 수표를 꺼내 그 남자에게 주면서 '직원이 잘못했다고 말을 하면 사과를 받아주는 것도 예의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나를 붙잡아 '괜찮아요?'라고 묻는다. 난 고개를 작게 끄덕였고, 나와 부딪친 남자는 돈만 받고 가버린다.
"감사합니다."
"그 쪽도 조심 좀 하고 살죠? 매사에 그러면 알바를 할 수나 있겠어요?"
"…어쩔 수 없으니깐요."
"…."
"어떤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일을 하는 거에요. 당신이 상관할 바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와 화장실로 들어가, 울렁거리는 속을 다 토해버렸다. 바닥에 기대어, 폰에 있는 배경화면을 보았다. 사랑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나와 함께 사진을 찍던 백현을 생각하면서. 자리에 일어나 문을 열려고 했는데 여자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는데, 왜…왜….
"당신 괜찮아요?"
"…변, 백현…?"
"…네?"
백현아? 수도 없이 입속에서 맴돌던 이름을 내뱉었다. 내 눈앞에 있는 남자가, 변백현과 너무 동일하게 닮았다.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풀썩, 주저 앉았다. 나랑 같이 주저 앉아 나를 바라보는 그, 아니 백현과 닮은 남자. 난 서서히 고개를 들어 그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깊고 진한 검은 눈동자, 오똑한 눈, 그리고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입술…, 너무나 닮았잖아.
"제 이름이 변백현이라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네?"
"…아니, 제 이름 변백현 맞아요."
"…하…미쳤네, 미쳤어 하…, 죄송해요. 당신은 그 변백현이 아닌데, 제가 착각 할 수도 있겠네요."
주섬주섬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내 뒤를 따라오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손님을 받았고 알바가 끝나가도 그 남자는 자리에 앉아 날 기다렸다. 알바가 끝난 뒤, 옷을 갈아입고 카페를 나오자, 벽에 기대 폰을 만지는 남자를 보며 지나쳐버렸다. 다시는 혼란속에서 살기는 싫으니까. 가방끈을 부여잡고 걸어갔다.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했다. 그 순간 차가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갔고 남자가 날 감싸안아 옆으로 피신시켜주었다.
안기는 순간, 특유의 백현의 향기가 내 코를 스쳤고, 난 입술을 꽉 꺠물어 머릿속을 생각했다 ' 이 사람은 변백현이 아니다.' 라고…. 하지만, 생각할수록 변백현과 너무 닮은 점이 많았다.
"당신 미쳤습니까? 생각이 없어요? 옆에 차가 지나가면…!"
"…."
"왜, 왜울어요? 내 품에 안기는게 싫었어요?"
"…당신, 정말 내가 아는 변백현 아니에요?"
당신이라고 해줘요. 한달전만해도 내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내 이름을 불려주던 그라고 말해달라고요!!! 입술을 깨물어도 눈물을 흐를 수 밖에 없었다. 날 쳐다보던 남자는 고개를 돌리더니 '미안해요' 라는 말만 남기고 가버린다. 붙잡으려고 남자의 옷깃을 잡으려고 하는 순간 넘어졌고, 무릎이 까였는지, 아파왔지만 일단 남자를 붙잡는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따라가니 뒤를 돌아보며 내 모습을 보니 깊게 한숨을 쉰다.
"왜, 당신이 내 눈에 거슬리는지 이유는 알 수 없는데…."
"…."
"당신이 아는 '변백현'이 이 꼬라지를 보면 참, 한심스럽겠다."
내 손목을 잡고 근처에 있는 약국에 가서 밴드와 연고를 사고 바지를 걷어 발라주는 모습이 예전에 백현과 너무 흡사하다.
"맨날 넘어져요?"
"…덜렁거려서요."
"하, 참 어이가 없네. 당신 이름이 뭐에요?"
"OOO(이)에요."
"아프지마요."
왠지 내가 아프니까, 라는 말과 함께 밴드 큰걸 붙여주며 일어선다. 그리고 나에게 손을 내밀자 나도 얼떨결에 손을 잡았다. 그리고 '집이 어디에요?' 라는 물음에 근처에요 라고 답을 하니, 참 답답한 여자야? 내가 이렇게 물으면 집주소를 말해줘야지 근처가 뭐야' 라는 말을 하며 날 이끌었다. 순간순간 넘어질뻔했지만, 남자는 궁시렁 거리면서도 다해주었다.
집에 도착하자, 혼자 사냐는 물음에 네, 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집에 들어와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전에 백현과 찍은 사진이 걸린 걸 보고 '나랑 닮았네. 많이' 라고 한다.
"많이, 닮았죠. 그래서 놀랐어요."
"그럴 만도 하네요."
그러면서도 '그래도 제가 잘생겼어요' 라고 웃으며 내가 주는 커피를 한모금 마신다.
"그 사람 많이 사랑했어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이 사랑했어요."
"과거형이네요."
"…지금도 진행중이구요."
"그 사람은 좋겠네요. 아직까지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고, 난 언제 사랑을 해보나."
이런저런 말을 주저없이 말을 하다가, 시간이 지났다면서 다음에 연락을 할테니 자신의 번호를 종이에 적고 나가버린다. 씻고 나와 종이를 확인해보니, 전화번호와 '웃어요 많이' 라고 적혀 있다. 슬며시 그 말에 웃었는데 뭔가, 기분이 묘했다. 닮으면서도 안 닮은 그 두사람이 왠지 모르게 하나일 거 라는 기분에.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도 맨날 카페에 오면서 커피를 시키고 나를 향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남자. 백현이가 없는 동안 웃지 못한 웃음을 그 남자때문에 많이 웃었다. 왠지 날 미소 짓게 한다고 오는 걸 알긴 알았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징,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자가 와서 폰을 확인해보았다.
[ 행복하십니까? ]
라는 문자에 어리둥절하게 폰을 쳐다보았고, 다시 문자 하나가 왔다.
[ 미래의 로봇 아니, 사람을 만난 기분은 어떠십니까? ]
미래의 사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그러고 이내 그 남자를 보자, 머리를 헤집으며 미소를 짓는다.
"OOO?"
"…네?"
"OO."
"…."
"…만나서 반가워."
이 말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내 입술에 작게 뽀뽀를 하는 남자를 향해 놀란 표정을 짓자, 처음에 백현을 만났을 떄의 미소를 머금고 내 이름을 부른다.
"다시 돌아왔어. OO아. 이번엔 로봇이 아닌 인간으로."
아무말 없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자를 보았다. 그러니, 그 때 사진관 앞에서 두동강이 났던 사진을 내밀었다.
"편지에 썼는데, 다시 만나면 붙잡아달라고."
"…설마…. 아니야 무슨…."
"미래에선 너와 난 이루어지지 않아."
"…."
"내가 너 대신 죽어, 근데 내가 빌었어 한번더 너와 있게 해달라고…."
"…."
"그래서 어떻게 된건지, 눈을 떠보니 너가 있었고, 난 로봇이 되있더라고 그리고 한달 뒤, 눈을 떠보니까 병원이었어. 그것도 미래의 병원이 아닌 과거의 병원."
난 도저히 못 믿는 듯, 백현을 바라보았다.
"근데, 넌 날 잊기 않고 기억해줬어. 날 만나자마자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난 너가 행복했으면 그냥 갈려고 했는데…."
"…그 딴말 하지마. 너 때문에…내가 정말…."
"그러니까, 내가 왔잖아."
작게 쥔 손으로 백현의 어깨를 쳤다. 미웠다. 미래의 만남을 과거의 만나으로 바꾸었던 변백현이 너무 미웠다.
"미래에선 여기서 너와 만나 사랑을 하게 돼."
"…."
"우리 다시 사랑할래? OO아?"
암호닉
가란/새콤달콤/뿌잉/하트/치케/루루/세큥이/쫑쫑/라인/아이스초코/멍멍이/낑낑/여세훈/다이어트/공룡/셜록/꿀징/
핫뚜/엑휘혈/정듀녕/지렁은이/비타민/타래/긴가민가/검은콩/블리/판다/갈비찜/크림치즈/강지/립밥/됴르르/준배삐삐/루루/됴륵/평화의상징/조화/
♥ 내가 많이 사랑합니다 ♥
이해를 못하신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 나온 장소 '카페'에서 원래 여기서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백현과 여주였지만, 그 후에 백현은 여주 대신 죽게 되고,
백현은 한번더 여주와 지내고 싶다고 소원을 빌었는데 눈을 떠보니 로봇이 된 자신과 만나게 된 여주.
그리고 한달 뒤, 눈을 떠보니 자신은 미래의 병원도 아닌 과거의 병원에서 일어났습니다.
( 아, 근데 로봇은 진짜 인조인간입니다. 영혼만 변백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마지막에 폐기처분이라는 말도 진짜 로봇은 폐기처분 되었습니다 )
그리고 다시 백현은 여주를 만나러 카페에 들립니다. 미래에선 백현과 여주가 사랑하는 장소에서.
거기선 여주가 일을 하고 있었고, 똑같이 자신에게 '어서오세요!' 라는 말에 웃은겁니다.
좋게 좋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습니다. 재미있으셨나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메일링을 하실려면
( 암호닉/ 이메일 / 성의글) 또 (이메일 /성의글) 이렇게 해주세요. 그러면 오늘 아니면 내일 도착합니다.
변백현사용설명서를 사랑해주신 독자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쓰고 다른 것도 찾아 뵐 것 같네요. 신선한 소재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