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친구 김태형과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이야기.txt
여느 때와 같이 강의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나와 김태형은 서로 다른 학과이니 시간표도 제각기였다.
오늘 금요일같은 경우엔, 둘 다 오후 수업이 있었고 김태형보다 내가 조금 더 일찍 끝나기에 혼자 집에 온 것이었다.
그나저나 원래 부모님 모두 일을 나가시기 때문에 이 시간이면 집이 비어있는 것은 당연했지만,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식탁 위에 놓인 수상쩍은 쪽지였다.
내가 집에 오자마자 부엌으로 향할 것을 아주 잘 알고있는 우리 집 구성원 중 하나의 소행임이 분명했다.
[ 딸~ 엄마랑 아빠는 주말 동안 태형이네 내려가있을게~ 집 잘 지키고 있어~ ]
"... ..."
요즘같은 스마트 시대에 굳이 이런 자필쪽지를 남기고 간 누가봐도 엄마, 와 아빠는 일을 간 것이 아니라 이모네에 간 것이었다.
평소에도 고등학생이었던 나를 집에 홀로 두고 자주 내려가곤 했지만, 지금의 김태형은 우리 집에 산다.
그 말인 즉슨, 나는 남은 주말을 김태형과 단 둘이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걱정이라기보단, 내가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밥솥이었다. 알아서 해먹으라는 뜻인지 밥솥엔 밥이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버튼 하나만 누르면 그만이니 쌀을 씻어 밥을 앉혔다. 그 다음엔...그 다음엔 뭘 해야하지.
나혼자 있을 땐 잠을 자거나, 굶거나, 아니면 밥을 차려먹기가 귀찮아 시켜먹기가 전부였지만, 김태형과 이틀 내내 시켜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본 반찬이야 집에 있을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어쩌면 김태형이 나보다 요리를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쇼파에 드러누워 티비를 시청했다. 그렇게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찰나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김태형일테니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 거실로 다가오는 발소리는 곧 김태형의 목소리로 이어진다.
"사람 없는 줄 알았네."
"식탁에 쪽지 읽어봐."
"쪽지?"
내 말에 보이지는 않지만, 쪽지를 읽은 것 같은 김태형이 음-하며 그저 그런 반응을 보였다.
아마 김태형에게도 이런 상황이 익숙한 탓이겠지.
나는 그제야 절로 나오는 앓는 소리와 함께 뉘였던 몸을 일으켰다. 김태형은 제 가방과 겉옷을 방에 두고 나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몇 개의 카톡이 도착해있는 휴대폰을 확인하며 김태형에게 등을 기대며 물었다.
"너 요리 잘 해?"
"요리? 글쎄."
"글쎄라고 하면 안 돼. 너가 나 이틀동안 먹여 살려야 한단 말이지."
"벌써부터 먹어 살려야 돼? 앞으로는 어쩌나~"
"돈은 내가 벌테니까. 남자는 조신하게 집안일이나 하세요."
내 말에 김태형이 끅끅대며 웃는 바람에 내 몸까지 같이 흔들렸다. 난 진심이었는데 장난인 줄 아나보다.
꼭 여자가 집안일 하란 법은 없잖아? 와중에 김태형은 내 말에서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필터링하는데 힘을 쏟고 있었다.
"나랑 한 집에서 살게?"
"지금도 한 집인데."
"뭐야. 난 또."
"또 뭐."
"기대했네."
"도대체 뭘."
알면서도 알고싶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뻑하면 저 난리니 도통 장난으로 받아쳐줄 정도가 아니었다.
누가 들으면 아주 몇 년차 커플인 줄 알겠네, 어?
나는 김태형이 갑자기 쇼파에서 일어서는 바람에 그대로 뒤로 자빠졌다. 말이나 하고 일어나지, 좀. 하려던 찰나에 생각해보니 설마 삐져서 저러나 싶더라.
하지만 곧 부엌으로 걸어나 냉장고 속을 확인하고선, 음식을 해먹을 재료가 몇 없다며 나를 향해 소리쳤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김태형이 내게 말했다.
"장보러 가야겠어. 이틀 먹고 살려면."
"지금?"
"맘대로."
"어...지금 가자. 이따 나가려면 귀찮을 것 같아."
뒤로 넘어간 상태로 김태형을 향해 손을 뻗으니 허, 하고 웃으며 내 손을 당겨 일으켜 준다.
그 상태로 방으로 달려들어가 겉옷을 주워입고 나온 나는, 김태형과 함께 집을 나섰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스러워진 손잡기에 새로운 감정은 들지 않았다. 사실 보통 친구일 때부터 그랬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상태로 마트로 향한 적도 생각보다 많으니, 정말 우리는 평소와 같았다.
평소같은 연애, 친구같은 연애. 이것이 내가 생각하던 로맨스 중 하나냐 묻는다면, 그에 대해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다.
"뭐 먹고 싶어, 저녁?"
"너가 가장 자신있는 요리."
"된장찌개?"
"뭐야. 너 된장파야? 나 김치파야. 우리 헤어져."
"된장찌개, 그리고 김치찌개? 라고 하려고 했지. 이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돼."
내가 들어도 참 터무니 없는 우리 둘의 대화가 웃겼다. 남들이 들으면 저게 뭐냐 할지 몰라도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웃겼다.
마트에 들어서자 김태형이 카트를 끌었다. 옆을 쫄래쫄래 따라가던 나는 과자나 유제품 코너를 지날 때마다 이것저것 쓸어담고 싶은 욕망에 몸서리쳤다.
각종 단 것들이 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겨우 그곳을 지나쳐 계속 장을 보고 있었는데, 결국 나는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나 과자 몇 개만 집어올게."
"얼른 갔다 와. 나머지 장 보고 있을게."
마트에서 나혼자 전력질주를 하며 과자코너로 향했다. 먹고싶었던 것들을 손에 한움큼 집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나를 부른다.
몇 시간 전까지 학교 강의실에서 같이 있었던 정국이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돼지스러운 모습일 때 마주치다니. 수치스럽구만.
"안녕. 정국아. 오랜만이네. 하하."
"그러네. 네 시간만이지, 아마?"
"너도 과자사러왔니?"
"응. 넌 이미 많이 산 것 같네."
"못 본 걸로 해줘. 박지민한텐 다이어트한다고 큰소리 쳐놨단 말이야."
나는 김태형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정국과 수다를 떨었다. 수다까진 아니지만 아무튼 시간을 좀 잡아먹긴 했다.
정국과의 대화가 거의 끝나가려던 참에, 이번엔 김태형이 감감무소식이 된 나를 찾아와 버렸다.
그러고보니 그 날 이후로 정국 앞에서 김태형과 둘이 있는 모습을 보인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예의상 숨기려 했더니만 오늘 이렇게, 이런 식으로 밝혀질 줄은 생각치도 못했다.
나와 정국이 서있는 모습을 보고 약간 표정이 안좋아진 김태형은 카트를 질질 끌고 내 옆까지 왔다. 그 모습을 보던 정국은 눈치껏 내게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손인사를 한 나는, 정국이 떠나고 나서야 김태형의 눈치를 살폈다.
"왜 이렇게 오래 안오나 했네."
"흫...친구 만나고 그러면 그럴 수도 있지..."
"쟤가 그냥 친구가 아니니까 하는 소리잖아."
"...화났어?"
"아니. 짜증나."
"...왜 짜증이 났을까?"
"니가 인기 많아서 짜증나."
나 때문에 화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약간 들 뻔 했는데, 방금 싹 사라졌다. 살다살다 내가 인기 많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내 이십 년 인생에 겨우 두 번 고백 받은거 가지고, 그것도 한 번은 지가 한거면서 누가 누구보고 인기가 많대?
의아한 표정으로 김태형을 바라보니, 김태형은 아직도 나를 흘겨보며 어느샌가 찌푸려진 내 미간을 꾹 누른다.
"뭘 잘했다고 인상이야."
"내가 인기가 뭐가 많다고 난리야, 너는."
"그래서 잘했어, 지금?"
"...아니."
"알면 됐어. 장 마저 보고 집 가자."
아직 김태형의 얼굴에 남아있는 삐짐의 기운을 찝찝함에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얼굴에 철판을 깔아보기로 했다.
내가 모태 애교없기로 유명하지만 애교를 부리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안넘어갈 남자, 아니 김태형은 없다.
그렇다고 되도 않는 혀짧은 소리는 절대 못하겠어서, 먼저 카트를 끌고 이만치 앞서나가있는 김태형의 옆으로 달려가 팔짱을 꼈다.
그것으로도 흠칫하는것이 내겐 느껴졌다. 님은 이제 끝났음. ㅂㅂ.
"화 풀었어?"
"...어."
"아닌 것 같은데~"
김태형의 팔을 꼭 붙잡고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딱히 애교 섞인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김태형에겐 충분히 먹히는 방법이었다. 개꿀인데, 이거.
평소엔 만리장성 못지않게 철벽을 치던 내가 갑자기 이러는 모습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좋긴 한가보다. 김태형도 어쩔 수 없는 남자였으니.
내가 그닥 노력을 하지 않아도 김태형의 화는 풀리고 있었다. 나는 좀 더 김태형에게 얼굴을 가까이했다.
평소에 김태형이 하던 짓을 내가 하니 되려 당황하는 쪽은 김태형이었다. 이것도 하다보니 재미가 있었다. 어느 덧 나는 나도 모르게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하면 화 풀건데?"
"...화 안 났다니까."
"응?"
"...아."
하지만 김태형의 급 정색에 감았던 팔을 풀었다. 설마 너무 심하게 해서 다시 화를 돋구었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고개를 숙이고 웃고있었다.
존나 심장 떨어질 뻔.
"진짜, 그런거 어디서 배워왔어."
"내가 뭘?"
"오늘따라 귀엽네. 김탄소."
"음, 나도 알아."
"얼씨구, 뻔뻔해지기까지."
사랑하면 닮는다는 소리는 난 잘 모르겠고, 김태형하고 지내다보니 나의 성격까지 달라진다는 것은 알겠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김태형처럼 뻔뻔하고 능글맞은 성격이 아니었는데, 분명.
"아무튼 앞으로 조심해. 다음부턴 이런거 안 통해."
"너 지금 나 관리하는거야? 나 관리하는 남자 별론데. 헤어져."
"관리 안 할게. 그니까 헤어지자고 그만해."
"그래."
"내가 널 어떻게 이기냐. 정말..."
-
못.이.겨~^^~♪♬
안녕하세여 오랜만에 들고왔습니다
사실 이미 예전에 제가 생각했던 완결 부분을 연재하고, 방학이 끝나기 전에 연장 연재하느라 스토리 전개가 거의 없네여
개강 후에도 쓸 것 같긴하지만...두 작품을 오래 끌고가진 못할 것 같아요
다른 작품도 많이 사랑해주세요! 이미 이 작품으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
독방에서 제 작품 추천 글 보면 얼마나 기쁘던지ㅎㅎㅎ막 자다가도 트위스트 춤을 춘다니까요 제가...
~♥~ ~♥~〈 소꿉친구 김태형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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