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지-바보야
여주야 왜 연락이 이렇게 안돼.
여주야...?
김여주 당장 카톡 받는다 실시.
가뜩이나 기분도 구린데 계속해서 울려대는 핸드폰에 액정을 들여다보면 이석민이 아주 그냥 사람하나 잡을 듯이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짜증나는 기분 탓에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애써 진정시키며 한글자 한글자 느리게 답을 보냈다. 나. 진짜. 너무. 짜증나. 그렇게 카톡을 보낸지 몇초도 되지 않아 바로 사라지는 숫자에 살짝 웃었다. 역시 이석민. 누가 지 아니랄까봐. 그렇게 또다시 밀려오는 짜증에 가만히 침대에 누워 천장만 째려보고 있으면, 초인종이 다급하게 울렸다. 딩동 딩동- 멈출줄을 모르고 계속 울리는 소리에 쿵쾅거리며 현관을 열면, 이석민이 집에서 바로 나온건지 꽤 흐트러진 모양새를 하고 거친 숨을 내쉬며 문 앞에 서있었다. 그에 의아해 일단 들어오라며 손짓하면, 이석민은 "부모님 안계셔?" 하며 내게 물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대답하자, 이석민은 또 제 미간을 찌푸리더니 내게 말했다.
"야, 너 혼자 있는데 이렇게 문을 함부로 열어주면 어떡해."
또 시작되는 잔소리 폭탄에 알았다며 신경질적으로 대꾸하자, 이내 조금 풀죽은 모습으로 거실 쇼파에 앉는 석민이다.
"그래서, 우리 여주 기분은 또 왜 이렇게 안좋으실까."
다정스레 물어오는 이석민 탓에 더욱더 칭얼거리게 된다. 아니, 나 또 김영희랑 싸웠잖아. 그런 나의 대답에 석민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어보인다. "아, 또 싸워, 무슨 맨날 싸워 너네는?" 이해가 안된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묻는 석민이 괜시리 더 얄미워져 맞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인상을 확 찌푸리면, 석민은 알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알았어 알았어. 그래서 이번엔 누가 잘못한거 같은데." 석민의 말에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음..몰라. 영희? 조심스레 내뱉자 석민은 쇼파에서 내려와 내 맞은편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내게 눈을 맞춰온다.
"여주야, 네가 잘못한거 없어도, 지는셈치고 여주가 먼저 사과해. 그럼 진짜 여주가 잘못한거 없이 화해하는거야."
그런 석민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면, 석민은 이내 으이구,거리며 내 머리를 흐뜨려트린다. 이제 시간이 늦어 가봐야겠다는 석민의 말에 현관까지 배웅해주면, 석민은 뒤돌아 내게 입을 연다
"우리 여주, 기죽지말구, 응? 기분 풀어 얼른."
그에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면, 석민은 한번 씨익 웃더니 이내 내게 손을 흔들며 멀어진다.
이석민과 난, 태어날 때부터 옆집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된 현재까지 서로의 옆집에 거주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석민과 난 항상 함께였고, 남들보다는 조금 더 까다로운 내 성격을 석민은 누구보다도 더 잘 이해해주고 다독여주었다. 자연스레 내가 제일 따르는 사람도 석민이었고, 항상 조금 더 높은 눈높이에서 날 챙겨주는 석민에게 나도 온전히 기대는, 우린 가장 친밀한 그런 사이였다. 역시나 다른날과 다를 것 없이 집앞에서 석민을 만나 학교로 들어서면, 석민은 내게 어제 영희랑은 잘 풀었냐며 살짝 걱정이 되는 듯 조심스레 묻는다. 그에 웃으며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다, 마침 앞을 지나가는 영희한테 해맑게 손을 흔들어 보이면, 석민은 제가 더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며 웃는다. 그런 석민을 따라 웃으며 인사를 한 뒤, 교실로 들어가면 갑자기 영희가 내 소매깃을 잡아당기더니 중요한 말이라도 하려는 양 목을 가다듬는다. 그에 의아해 왜?하고 물으면 영희는 대박이라며 내게 제 핸드폰을 보여준다. "야, 이 선배 진짜 잘생겼는데 너 맘에 든다고 소개시켜달래!" 그런 영희의 말에 혹해 내 앞에 내밀어진 사진을 보면, 세상에. 완전 내스타일. 영희는 내 표정을 본건지 씨익 웃어보이고, 자기만 믿으라며 유유히 멀어진다. 그렇게 사라지는 영희의 뒷모습은 정말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웠다고 당당히 자부할 수 있다. 3교시가 막 시작했을 무렵, 울리는 진동에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액정을 보면, 왠 처음보는 사람의 카톡이 와있었다. 멍하니 액정만 보고 있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옆자리에서 영희가 내 팔꿈치를 툭툭 치며 씨익 웃는다. 얼마나 시간가는줄 모르고 카톡하는데에만 열중하고 있었을까, 어느새 내 옆자리에서 급식실에 가자며 조르는 석민의 팔에 이끌려 급식실에 앉아 깨작대며 언제 답장오나, 기다리기만 하고 있으면, 느닷없이 이석민이 제 젓가락 뒤쪽으로 내 볼을 두어번 친다.
"야, 김여주, 너 뭐하냐. 밥 안먹어? 니 소세지 내가 다 먹는다?"
그에 알았다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 이석민은 제 의자를 뒤로 빼더니 허? 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낸다.
"뭐야, 김여주. 핸드폰에 뭐라도 숨겨놨냐?"
그런 이석민의 물음에 아니라며 얼른 핸드폰을 숨기고 밥 먹는데에 열중을 하자, 석민은 이상하다는 듯, 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원찮게 젓가락질을 해나갔다.
집 가는 길, 걸어가는 내내 핸드폰만 주구장창 들여다보는 내 옆쪽으로, 맘에 들지 않는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젓는 석민이 보였다. 그에 괜히 찔려 뭐, 왜. 왜. 하고 물으면, 석민은 또 의심스럽다는 눈초리로 눈을 가늘게 뜬 채, 날 보며 입을 열었다.
"김여주 너, 오늘 이상하네?"
그런 석민의 물음에 괜히 발끈하며 이석민 쪽으로 몸을 돌리면, 석민은 이때다, 하고선 갑작스레 내 왼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곤 액정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이석민의 시선이 핸드폰 액정으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이내 석민은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야 너 뭐야!! 얘 누구야!!!"
그런 석민에게 알거없다며 도로 핸드폰을 빼앗자, 석민은 저답지 않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내게 삿대질을 했다.
"야 나 너 그러라고 김영희랑 화해시킨거 아니다 김여주. 그놈이랑 다시 연락하기만 해봐."
그런 석민의 말에 도리어 내가 더 목소릴 높이며 뭐, 어쩔껀데! 하고 윽박지르자, 석민은 신경질적으로 한번 마른세수를 하더니, 내게 말했다.
"그럼 나 너 진짜 안볼꺼야, 김여주."
그런 석민의 대답에 잠시 벙쪄있었다. 뭐, 안본다고? 그리고 몇초간의 정적 후, 나는 그럼, 이제 나 보지마. 라는 한마디와 함께 석민을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된거, 아주 그냥 다 제 마음대로 하라지.
그렇게 이석민과의 냉전과 맞바꾼 그 오빠는, 나와 연락하기 시작한지 몇일 되지 않아 다른 선배와 사귀기 시작했다. 잔뜩 굳은 표정의 영희가 머뭇머뭇 말해오는 그 오빠의 소식에 난 눈물을 가득 담은 채 집에 뛰쳐가 울기만 했고, 우는 와중 끊임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신경쓸 겨를도 없이 그냥 베게 가득 눈물을 적시기만 했다. 그렇게 퉁퉁 부은 눈으로 들어선 교실엔 더이상 날 반기는 이석민은 없었고, 그에 난 더더욱 울적해질 뿐이었다. 그냥 그때 이석민 말 들을껄. 그렇게 시무룩한 표정과 우울한 기분 그대로 야자를 끝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아, 이렇게 어두운데 이석민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 무섭게 보이는 학교 정문 앞에 서있는 익숙한 모습에 이끌려 그쪽으로 향하면, 그곳엔 아직도 부루퉁한 표정으로 땅을 보고있는 이석민이 있었다. 내 어색한 운동화코를 본건지, 이석민은 자세를 바르게 펴곤, 제 두손으로 팔짱을 껴보이더니 아직도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기다린거 아니다."
그에 괜스레 웃음이 나와 알았다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이다 살짝 웃으면, 이석민은 제 앞의 팔짱을 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웃지말라며 툴툴댔다. 제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밤늦은 시간 탓에 날 기다렸을게 분명한 이석민의 모습이 새삼 대견스러워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친구 헛사귄게 아니야. 그렇게 뻣뻣한 자세를 풀 생각 안하는 이석민과 묵묵히 걷고만 있으면, 집 앞 가로등 앞에서 갑자기 이석민이 가던 길을 멈췄다.
"야, 김여주." 그렇게 그는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고 가만히 뜸을 들였다. "그때 내가 너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거 알지." 석민은 이 말을 하고선 아이씨, 하며 제 머리를 한손으로 탈탈 털었다.
"니가 연락하던 걔, 원래부터 소문 안좋았었다고."
갑작스레 잔뜩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을 하던 석민은, 이내 말을 멈추곤 내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내가 김여주 너 이렇게 생각해주는 이유, 알아?"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질문을 던진 석민은, 가로등불 아래에서 은은히 비치며, 그렇게 서있는다. 생각해보면 이석민은 항상 그랬다. 남들보다 조금 더 쌀쌀맞고 가시돋힌 내 곁에서 그 누구보다 따뜻하게 감싸주었고, 그렇게 지금 이 모습처럼 항상 내 곁에 남아주었다. 생각에 잠긴 내가 말이 없자, 석민은 이내 제 허리를 굽혀 내 눈높이에 맞춘 후, 내가 줄곧 좋아했던 그 미소를 지어보인다.
"내가 여주 너 이렇게 많이 생각하는 이유, 별거 없는데 그걸 못맞추네."
"너 진짜 바보지."
"너랑 처음 알게 된 그날부터, 나 너 진짜 좋아했는데."
"지금 친구로써 말하는거 아니고, 남자로써 말하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아직도 머릿속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 이석민은 더 환히 웃곤, 내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다시금 입을 연다.
"그럼 여주 너는 이제부터 내 친구가 아니라,"
"여자친구 하자."
꽃봉오리 |
꽃님들, 오랜만이에요! 만개왔어요 만세! (이거... 라임인데....) 남사친 석민이와의 아슬아슬 줄다리기! 라는 느낌을 살려보려 애썼는데... 잘 느껴졌나요! 하루하루가 많이 바쁠 우리 꽃님들, 글 읽구 기운 내서 우리 으쌰으쌰 합시다! |
꽃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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