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신드롬(White syndrome)
w.일요일아침
세상에 완연한 White는 없다.
벌써 사흘 째 있는 일이었다.그는 늘 오후 다섯시 쯤을 넘기면 카페로 들어와 누굴 기다리는 것 마냥 세시간 정도를 가만히 앉아만 있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손바닥만한 노트를 꺼내어 무언갈 끄적이기도 하는 것 같았고,또 그 노트에 무언갈 적을 땐 힐끔힐끔 카운터를 쳐다보는 일도 드물게 있었다.쌍커풀이 없는 것 치곤 맑고 또랑또랑한 눈을 처음 마주했을 때,별안간 희안하다는 생각을 했다.도대체 누구길래,무슨 일이 있길래 매일 이곳을 밥 먹듯 들리는걸까,그것도 혼자서.주문하는 메뉴는 늘 같았다.망설이듯 쭈뼛쭈뼛 걸어와,끝내 목소리는 내지 않은 채,손 끝으로 메뉴판을 가르켰다.아메리카노.아메리카노를 받아 든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커다란 머그잔속으로 시럽을 듬뿍 뿌려댔다.그것을 자리에 들고 가 앉은 그는 조심스레 머그잔을 입에 대었다.한 모금.목젖이 꼴딱ㅡ 하고 넘어감과 동시에 그가 입모양으로 중얼거렸다.아,뜨뜨….
딸랑ㅡ
언제 들어도 기분좋은 종소리에 시선이 자동적으로 가게 문으로 향했다.역시나 카운터를 향해 쭈뼛쭈뼛 걸어오는 날이 선 발걸음에,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했다.퍽이나 어색한 걸음으로 카운터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란 우스꽝스럽기보단,선심써서 귀여운 정도였다.오늘 역시 그의 손끝은 ‘아메리카노’ 글씨 위에 머물렀다.그래봤자 시럽 왕창 넣어 먹을거면서.혹여나 마셔 본 커피종류가 아메리카노 밖에 없어 줄곧 아메리카노만 고집하는걸까.주문을 받지 않고 뭐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보던 그가 눈을 한 번 꿈뻑였다.키가 나보다 대략 10cm는 더 작아보였다.발갛게 물든 손끝으로 메뉴판 위를 다시 한 번 톡톡ㅡ치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메리카노 시럽 왕창 넣은 것 보다,카라멜마끼아또가 더 달콤한데.”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정말 아메리카노밖에 마실 줄 아는게 없는건가.고개를 숙인 그의 앞으로 진동벨을 내밀었다.진동울리면 받으러 와요.그렇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푹 숙인채로 끄덕거렸다.귓볼도,손 끝처럼 발갛게 물이 들어있었다.돌아서며 본 양 볼도 언뜻 발갛게 물이 든 듯 보였다.
왠일인지 오늘은 한시간도 채 머물지를 않았다.밀려드는 주문은 경수에게 맡겨놓고,그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 볼 요량으로 카운터에만 서 있었다.오늘 넣은 시럽의 양은 조금 적었다.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급하게 아메리카노를 마시고,손바닥만한 노트를 펼쳐 글씨를 써 내렸다.열심히 무언갈 적던 페이지를 찢은 그가 네모 반듯한 모양으로 쪽지를 접었다.한참을 망설이듯 창 밖 한번,카운터 한번,쳐다보던 그가 이내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쟁반을 들고 걸어왔다.희고 통통한 볼이 금새 발갛게 물이 들었다.쟁반 위에는 조그만한 크기의 쪽지가 있었다.돌아서서 가게 밖을 나가는 발걸음은 어쩐지,들어올 때와 달리 다급하다고 느껴졌다.
[말을 하지 못해요]
[웃는게 참 예쁜 것 같아요.]
[내일은 카라멜마끼아또 마셔 볼래요…]
쪽지를 읽음과 동시에 웃음이 푸스스 새어나왔다.말을 할 줄 알건,하지 못하건.상관이 없었다.나를 보던 동그란 큰 눈과,내게 오기까지 늘 망설이던 발 끝에서부터 발갛던 손 끝,귓볼,통통한 두 볼 까지.어쩐지 한 발짝은 다가온 느낌이라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동등하게 대화 할 수 있는 방법은 수화뿐이었다.조만간 수화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완연한 White는,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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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와용! 말을 하지 못하는 민석이와,작은 카페를 꾸리고있는 루한이의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일종의 프롤로그와 같은 형식이구요,다음부턴 이 편 분량보다는 길게 쓸 예정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