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연애의 공식 00
w.우왓
시끄럽게 귓전을 때리는 자명종 소리에 이불에 파묻혀 있던 하얀 목덜미가 움찔했다. 손을 아무리 멀리 뻗어 휘둘러도 잡히지 않는 시계에 준면이 결국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몸을 일으켰다. 숙취에 찌들어 지끈거리는 머리에 축축 늘어지는 몸뚱아리가 무거웠다. 저 멀리 나가떨어져 있는 자명종 시계를 향해 엉금엉금 기어 기어코 버튼을 누른 준면이 그 자리에 풀썩 엎어졌다. 아, 진짜 죽겠다. 박찬열이 따라주는 술을 겁도 없이 홀짝홀짝 받아마신 게 죄라면 죄였다. 망할 놈의 회식. 망할 놈의 박찬열. 한참을 엎어진 채로 있던 준면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강의를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
아무리 학교 앞 자취방이라 해도 강의 시작 10분 전에는 집을 나서야 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가 깨작깨작 세수를 한 준면이 옷장을 헤집어 대충 청바지와 셔츠를 걸쳤다. 스툴에 걸터앉아 양말도 신고 머리도 몇 번 빗질하다 보니 시간은 휙휙 잘도 흘렀다. 불과 이십 분 전 내던진 자명종 시계를 보고 기겁을 한 준면이 어제와 같은 가방을 둘러메고 다급하게 문을 나섰다. 쾅, 하고 닫힌 문 너머로 준면의 발소리가 빠르게 멀어져 갔다.
간신히 출석을 부르기 전 착석에 성공한 준면이 한숨을 내뱉었다. 어제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제 잔에 술을 붓던 박찬열은 결국 쓰러져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술도 그리 세지 않은 주제에 박찬열은 항상 허세를 부린다. 찰지게 소맥을 말던 그 손놀림을 떠올린 준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가방을 열었다. 어제와 다를 것 없는 가방 속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던 준면이 그 틈에 끼어 있는 이질적인 책 한 권에 머리 위로 물음표를 띄웠다. 저게 뭐지.
꺼내든 책은 표지부터가 화려한 네온 오렌지색이었다. 눈을 찌르는 번쩍번쩍한 색깔에 작게 미간을 찌푸린 준면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표지를 들췄다. 정말 이게 뭘까. 그냥 주인 잃은 노트인가.
어?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검정색 활자에 준면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연애의 공식? 왜 이런 게 내 가방에 들어있는 거야!
[연애의 공식]
Chapter 0. Prologue
누가 볼세라 황급히 전공책으로 튀는 표지를 가린 준면이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아무리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모태솔로여도 찌질하게 연애비법서나 찾아보는 남자로 낙인이 찍히기는 싫었다. 게다가 이렇게 촌스럽게 생긴 건 더더욱. 다행히 준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학생은 없는 듯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준면이 몸을 축 늘어트렸다. 어느 새 교수가 들어와 출석을 부르고 강의가 시작되었다. 전공책의 쪽수를 찾아 펼친 준면이 펜을 들었다. 그래! 학생이라면 강의시간엔 필기를 해야지!
결의에 차 펜을 들었지만 온통 그 낯부끄러운 제목의 책에 생각이 쏠린 준면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궁금하다. 궁금해 죽겠어. 교수의 말에 집중을 해보려 애썼지만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 교수는 무슨 옹알이를 하나. 궁시렁거리며 입술을 물어뜯던 준면이 다리가 달달 떨릴 지경이 되어서야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궁금한 건 인간으로서 당연한 거지. 게다가 책 안쪽에 주인 이름이 써 있을지 누가 알겠어! 따위의 자기합리화를 하며.
주변의 눈치를 보며 전공책 위로 슬쩍 책을 올린 준면이 표지가 보이지 않도록 얼른 책을 펼쳤다. 다시금 보이는 두꺼운 고딕체로 쓰인 제목에 준면이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페이지를 한장 더 넘겼다.
[성공률 99.9%, 누구라도 상관 없습니다. Dr.B가 알려주는 연애의 공식!]
문구 하고는, 하며 콧방귀를 팽 뀌는 머리 속의 자신과 달리 현실의 준면은 이미 입을 헤 벌리며 다음 장을 펼치고 있었다. 목차는 대충 넘기고, 머릿말도 대충 넘기고. 커다랗게 제 1장이 적힌 쪽을 찾은 준면이 혀를 내어 마른 입술을 축였다. 어디 보자. 그래서 첫 번째 공식이..
"선배."
갑자기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이듯 들린 목소리에 준면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책을 황급히 덮었다. 휘둥그레 뜬 눈으로 돌아본 뒤에는 세훈이 몸을 굽힌 채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준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놀라요. 여기 앉는 사람 없죠?"
"어, 어."
다행히도 세훈은 별 의구심을 가지지 않는 듯 했다. 준면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조용히 착석한 세훈이 가방을 벗고 앞머리를 두어 번 쓸어넘기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어제 회식 때는 그리 많이 마시지 않는 것 같더니, 그래도 꽤나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팔을 받치고 올린 고개에 온통 시커멓게 그늘이 내려 와 있는 세훈의 얼굴이 굉장히 피로해 보였다. 준면이 전공책을 끌어와 튀는 표지를 슬며시 가리며 입을 열었다.
"피곤해 보인다. 해장은 했어?"
"선배도 마찬가지네요. 늦게 일어나서 해장은 아직."
"나돈데. 속 쓰려 죽겠다.."
"그 얘기는 지금 나한테 해장국 사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잉? 아니야! 앞쪽에서 열의에 차 강의를 이어가는 교수를 의식해 작게 손사래를 치며 부정하는 준면을 보고 푹 웃은 세훈이 팔을 뻗어 준면의 손을 잡아내렸다.
"그냥 내가 살게요. 맛있는 집을 알거든."
저번에 얻어먹은 것도 있고. 말을 마치고는 웃어보이는 세훈의 얼굴에 준면이 떼었던 입을 다물었다. 알았으니까 강의나 들어. 괜히 툴툴댄 준면이 다시 고개를 돌려 교수를 바라보았다. 세훈의 손이 닿았던 손목에 약간 열이 오르는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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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곰손이라 1편이 언제쯤 올라올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질러놓고 시작합니다.ㅋㅋㅋㅋㅋㅋㅋ 풋풋한 캠퍼스 세준이 보고싶어!! 하는 제 내면의 샤우팅에 자급자족 시작.헿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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