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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가을 축제다 뭐다 준비할게 많아서인지, 방송반은 무대 설치때문에 바쁘게 돌아간다. 촬영담당인 나까지 덕분에. '대학 축제에 촬영담당이 뭐 필요하다고' 하고
불퉁이는 내게 쏟아지는 비난들에 '그럼 민호는 나랑 큐시트 정리할래?' 하는 이진기의 말에 난 또 그저 끄덕끄덕 했을뿐. 잠시 친구네 과방에 다녀오겠다는 걸 보냈더니,
이진기가 없는 사이에 내려 온 김종현은 옆에서 계속 축제 맨 앞자리에 자리 좀 맡아달라며 쫄랑쫄랑 쫓아다니고, 정신 사나워 죽겠다고 좀!
" 새끼 왜 성질을 부리고 난리야 "
" 아 진짜 좀 가라 너. "
" 아 그니까 좀 맡아줘! 꼭 봐야 하는게 있어서 그래 "
" 절대 싫어. 그런 귀찮ㅇ.... "
" 어? 종현아! 방송반까진 왠일이야? "
'아 진기형- 민호 저 놈이..'로 시작해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종알종알. 그럼 또 이진기는 좋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김종현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답해 주는데, 귀찮게 달라붙는 김종현이 귀찮을만도 하건만. 집에 동생이 있다고 하더니 아마 그 다정함이 모든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인가보다. 하는 마음이 들면서 김종현이 옆에서 종알 거리는 소리엔 더이상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그냥 '아 저런 사람이랑 내가 친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약간 흐뭇할뿐? 김종현을 향해 또 환하게 웃어보이는데, 그래 저 웃음이지.
형, 형에게 내가 조금은 특별한 감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 그거라구요 그 미소.
*
" 안녕, 나는 11학번이고, 아나운서를 맡고있어. 남자는 지원을 안해서 나뿐이네 하하.
주위에 목소리 좋은 아이들 있으면 꼭! 데려와줘. 요즘엔 누나들이 어찌나 새로운 후배를 원하던지.
나 완전 아나운서실 외톨이 신세야! 아참 이름은 이진기고, 언론정보학과야! "
동글동글한 인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흰 피부와 아이같은 웃음을 짓는 이진기는 말 그대로 햇살같았다. 처음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명 한명 눈을 맞춰가며 이야기를 하는 것이 퍽 다정스러워 보였다. 제법 키가 큰 내게 눈길을 주었을때 멀뚱히 쳐다보는 내가 우스웠는지 또 풉- 하고 아이같이 웃음을 터트렸는데, 나 또한 웃지 않을수 없었다.
" 민호? "
" … 네? "
" 너 인기 되게 많겠다! "
하나 둘씩 방송부로 뽑힌 아이들이 부실을 빠져나갈 때 누군가 톡- 건드는 손길에 고개를 돌려보니 이진기가 그 눈에 잔뜩 신기함을 담곤 나를 쳐다보며 한다는 소린 정말 실없는 소리였다. 인기 많겠다는 이야기로 시작한 이야기는 부실에 친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데 친하게 지내자는 말로 끝을 맺었지만. 내가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자
" 싫으면 안 그래두 돼! 나는 그냥, 그냥 물어만 본거야!"
" 아니요. "
" 응? "
" 왜 물어만 봐요. 친하게 지내면 되지. 잘 부탁 드립니다 선배님. "
감정표현이 쉽게 드러나지 않는 내 표정을 보곤, 갑자기 조금은 당황한 듯 손을 내저으며 말을 하는 폼이 어찌나 귀여운지, 하마터면 그 하얀 손을 잡을 뻔 했다. 짐짓 웃음을 참으며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자, 뭐가 그리 즐거운지 두 손으로 내 손을 잡고는 잘생긴 후배가 생겨서 너무 좋다. 누나들이 난 안 잘생겼다고 구박하는데! 하곤 애 처럼 혼잣말을 하는데, 다 들어 놓고도 뭐라고 하셨어요? 하고 되묻자 아니야 하곤, 혀를 살짝 내밀며 눈을 곱게 접고 웃는데.
그래. 그 땐 그냥 대학에 대한 설레임인줄만 알았는데,
*
" 아싸! 선배 진짜 고마워요! "
" 응? 형이 그 정도도 못해줄까봐~ 민호도 그냥 장난 친 걸꺼야! 그나저나 종현이가 무슨 무대를 그렇게 보고싶길래 그럴까? "
" 흐흐. 저희 학교 축제에 누구를 초대했는데, 무대를 가까이서 보어주고 싶어서요! 선배 진짜 너무 고마워요! 다음에 커피 쏠게요! "
" 하하-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럼 난 자판기 밀크커피로! "
결국은 자리를 맡아준다는 말을 듣게 된건지, 잔뜩 신이 난 얼굴의 김종현이 나가고 조용해진 부실속에서 내가 정리해놓은 큐시트들을 차례대로 넘겨보는 선배에게, 나도
실없는 소리 한번만 할게요. 그냥 흘려 듣는거에요. 평소 조금 바보같은 선배처럼.
" 선배 "
" 응? 민호야 니가 정리 너무 잘해놔서 내가 할게 없다! "
" 행운이에요. "
" 그러게. 너랑 같이 큐시트 정리한다고 하길 잘했다~ 다른 애들은 전꺼랑 섞어놔서 힘들었는데. "
그거 말구요. 먼저 나한테 말 걸어준거. 나한텐 그게 행운이에요. 너무나 많이. 말하지 못해도, 가까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미소를 늘 만날 수 있어서. 내 마음이 닿지 못해도.
그거 알아요 선배? 내가 지금 선배 좋다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매일 웃어주는 선배가 좋다고, 항상 무슨 일이든 나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 해주는 선배가 좋다고. 그렇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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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치세요 여러분..♡ 첫 글이라 댓글이 하나도 없을거라고 예상했는데, 여섯분이나 댓글을 달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ㅠ.ㅠ 미뉴 커플링 덕이라고 생각해요. 똥손을..치세요 여러분..☆ 너무 오글거린다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원래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ㅎㅎ 민호의 시점으로 약간은 오글거리게 적게 될 것 같아요. 간간이 번외는 또 다르겠지만! ㅎㅎ 아무튼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구요! 사실 인티에서 처음 적는거라 암호닉이라는 것도 첫 글 쓸때 처음 알았는데! 암호닉 신청해주신 앨리님! ♡ 제 사랑을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