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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혜곡초등학교 2학년 6반의 담임이다. 그리고 꽃에 물을 주는 일을 한다. 누군가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로 해 왔던 일을 왜 지금까지 하고 있느냐 묻는다면 어렸을 때부터 해 왔던 일이기도 하고, 또 여기 꽃집에 아직도 잎사귀들과 함께 숨쉬고 있는 것만 같은 그 애와의 아름다운 복숭아 빛 추억들이 내 마음 속 가득히 꽉꽉 차있기 때문이라고 말해둘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그 애는 누군데? 하고 다시금 되묻는다면, 하고 싶은 말은 많겠지만 난 그냥 그에게 '복숭아를 닮은 빛나는 아이였어요.' 라고만 하고 싶다. 그 애는 복숭아를 닮은 하얗고 곱상한 외모도 있었지만, 독서밖에 몰랐던 미성년 시절 쑥맥 김동영에게 독서와 공부 말고 새로운 감각을 주었던 아이였기도 하니까. 아무튼, 나 혼자만 간직하고 싶으니까 그렇게만 말하고 다니겠다. 게다가 그 애는, 남자애도 아니고....
여자애였으니까.
도화소녀
「桃花少女」
구상/글
천국의 아이들 (Heaven's Child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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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화초들에 각각 물을 주느라 오래 구부려 있던 탓에 아려오는 허리를 두드리고 있으면, 어느샌가 꽃밭에서 놀고 있던 동네 아이들은 옆에서 나름 응원을 한다. 너도나도 내 어깨하며 다리, 허리에 고사리 손을 올리고선 그 고운 목소리로 힘내라는 식의 말들을 건네는데, 이럴 때마다 귀여워 죽는다. 선생님 하길 잘했다 생각하면서.
"제비선샌님 힘내여!"
"맞아! 이거 우리가 해드릴까여?"
"그래! 제비쌤, 이거 민형이가 다 한대여!"
"아 내가 언제! 나 혼자 한다고 안했거든 이동혁?"
"에이, 자자 그만! 동혁이랑 민형이랑 화해하고. 선생님 들어가서 일해야 되니까 너희들 오늘은 집에 가도 돼."
그렇게 꽃집 안쪽으로 아이들을 들여보낸 뒤에는 잠시 허리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곤 한다. 저녁이 막 시작되고 노을이 지는 서울 변두리의 하늘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름답지 않았던 날이 없다.
열아홉 학생 시절에 길을 잃고 해매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꽃집. 지금 나는 이곳에서 편찮으신 주인 아주머니를 도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고, 덤으로 이 동네 아이들을 도맡아 보살피고 있다. 후자는 아무래도, 직업병이다.
이제 와 여유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를 떠나 교대를 졸업한 후 쉴틈없이 살아온 내 자신이 처량하기도 그지없었다. 이름이는 내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때 쯤 돌아오겠다며 말없이 미국으로 떠나 버렸고, 그 애가 가고 이곳에 남겨진 나는 정말 죽은듯이 공부만 했다.
어린 난 공부만이 그 애를 되찾아 오는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내가 나왔던 초등학교의 국어 선생님으로 다시 이 동네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지내면서 쉬거나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면 나의 어린시절이 배어 있는 꽃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한다.
찻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던 순수한 열아홉부터, 아홉 살배기 산골 아이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스물다섯의 젊은 남선생님이 될 때까지. 아주머니와 아이들과 꽃집은 마치 내 기억 속 교복을 입고 있는 이름인 마냥 나를 정겹게 반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슬슬 교복을 벗고 선생 티가 제법 나기 시작할 무렵에, 나의 기다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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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반장 인사!"
"차려엇, 선생님께 경례!"
안녕히 계세요-
초등학교 2학년치고 제법 멀쑥한 키를 가진 반장 영호가 종례를 끝마치고, 저마다 등에 조그만한 배낭을 맨 방과후 꽃집 멤버들(동혁이, 민형이, 재민이를 비롯한 여러 아이들) 이 퇴근 준비를 하는 내 교탁으로 다닥다닥 붙어서는 항상 묻던 진부한 질문을 던진다.
"쌤! 근데 그 누나 예뻐여?"
음, 그럼 나는 장난스레 턱에 검지를 대고는 괜히 궁리하는 척을 한다.
개구쟁이 동혁이가 아쉬운 듯 짧은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했다. 그게 퍽 귀여워 하하 웃고 있으면 민형이가 옆에서 옷깃을 잡아끌며 새침하게 말한다.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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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아무도 없잖아."
아이들을 먼저 보낸 후 뒤따라 온 꽃집 안에 뭔가 있나 싶어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는데, 사람은커녕 아무것도 없고 깜깜한 내부만이 날 반겼다.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다 싶어 주위를 둘러 보면, 졸졸졸 길을 잘만 따라가던 아이들이 사라진 거였다.
아니, 얘들이 대체 어딜 간 거야?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아이들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항상 가던 꽃밭에도, 꽃집 뒤편의 아이들이 비밀 아지트라 부르던 오래된 평상에도 없었다. 불안해지기 시작한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어디가 어딘지 제대로 분간숨이 차오를 때까지 이곳 저곳 뛰다 보니, 생각지도 못한 곳과 마주했다. 기억 속 그 곳.
"...어."
그 곳에는, 그 애와 나의 학창시절 추억이 가득한 학교가 있다.
내 몸은 이미 정문을 지나고 있었다. 항상 완장을 차고 장부를 든 채 아이들 하나하나를 죽 훑어보던, 선도부장이었던 열아홉의 김동영을 회상해 본다. 이름이가 오지 않았던 날마다 1교시 종이 칠 때까지 정문도 닫지 않고 무작정 기다렸었지. 지금 상황과 비슷한 듯하다. 언제 올까. 난 아직도 너와의 추억이 바로 어제 일인 듯 생생한데, 넌 날 기억하고 있을까. 나는 2년 동안, 정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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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여, 누나?"
"제비 선샌님이 뽀뽀했어여?"
제비 선생님.
아이들이 이십오 살 노총각이라며 첫 부임 날 내게 붙여준 별명이었다. 설마 했는데, 여기 있을 줄이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얘들아! 하고 뛰어갔다.
"음... 그래서 동영이가 어떻게 했냐면."
재민이가 제일 먼저 뛰어오고, 뒤이어 삼삼오오 모여있던 아이들이 주르르 뛰어왔다. 떼를 지어 모여 있던 군중이 와르르 흩어지고, 내 눈에 보인 건-
"..어. 너..."
"잘 있었어, 동영아?"
수많은 군중들, 그리고 그 속엔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그 애가 거짓말처럼 거기 서 있었다.
"한국 오자마자 여기로 뛰어왔어. 꽃집 갔다가 옛날 생각나서 이리로 왔는데, 아이들이 있는 거야. 애들 얘기하다가 들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김동영 선생님이라고.."
"보고 싶었어."
"...왜 말이 없어, 똘똘이가? 고개 좀 들어 봐-"
열아홉의 그 때와 겹쳐진 순간. 살며시 고개를 들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2년 만에 마주보는 이름이와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순간의 순간, 그리고 투시.
2년 만에 마주보는 이름이와 나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순간의 순간, 그리고 투시.
그 애는 약속대로 더욱 당찬 사람이 되어 돌아왔고,
나는 그런 그녀를 반기기 위해 많이 성숙해져 있었다.
"넌 항상 내가 먼저 하게 만들어."
고백도 먼저, 속마음 얘기도 먼저, 애정표현도 먼저.
"그리고, 찾는 것도 먼저."
"............"
이제, ..다시 갈거야?
그건 왜?
그냥..가지 마.
내가 물으니까 그녀가 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해사했던 그 웃음만은 내 기억 속 그녀의 모습과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넌 내가 어떻게 해 줘야 지각을 안 할래, 응?"
"음, 네가 키스해 주면?"
지금은 달라야 할 것이다. 아니. 달라야 한다.
낙서가 새겨진 너의 책상에 복숭아빛 벚꽃이 피면,
나는 너와 같은 말을 할 거야.
"옆에, 앉아도 되지?"
꽃내음을 타고 너에게 날아갈 거야.
"....복숭아다. 진짜 복숭아야."
우리가 열아홉이 됐든, 스물 다섯이 됐든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는 언제나 달콤한 법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첫사랑인 내 경우는 더.
너무나도 달달해서 그녀인지, 꽃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네게서 풍기는 단내음은 우리를 듬뿍 취하게 만든다.
"응, 나야 나. 복숭아."
늦여름을 가득 머금은 두 잎이, 포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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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천국의 아이들입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보고 싶었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제가 진짜 기적적으로 메모장 계정을 다시 소생시켜서 바로 헐레벌떡 쓰려고 달려왔어요 저 잘했죠ㅠㅠㅠㅠ!!!(오열)
이번 글은 저번 공지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첫사랑을 주제로, 많은 독자님들이 말씀해주신 동영이를 주인공으로 구상했어요 예~~~~~~ 근데 이번글이야말로 개연성 똥인것같지 않아여???? 갑작스런 만남 클라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열일하는 도영이 이미지...물론 첫사랑 하면 정재현이라지만...첫사랑 동영이도....넘나 기억조작인 것.....
아 그리고 민형이 불맠 메일링ㅋㅋㅋㅋㅋㅋㅋㅋ여러분 지금 안해요 제가 다 공지 올릴게요 다들 급해지셔서 맠ㅋㅋㅋㅋㅋ벌써 이메일 주시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구 ㅣ엽다...♥ 공지글은 제가 다음주중으로 올리죠! 그때 댓글에 이메일을 달아 주시면 되겠습니당 ^o^
그럼 여러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열사병 조심하시구요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