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하자 이 새X야
01
쾅쾅 발소리를 내며 옥상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전정국한테 전화가 와야 할 타이밍인데 말이지. 아주 한 대리고 나발이고 가서 머리채를 잡아?
"뭐 하십니까 지금?"
"ㅇ..안녕하십니까.."
"계속 그렇게 걷다가는 건물이 무너지겠네요"
담배를 태우러 왔는지 담뱃갑을 손에 쥔 민 팀장은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내가 뭘 잘못했던가, 아침에 제출한 디자인에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니면 같이 낸 기획안에 오타라도 있었나
"생각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요, 아무 잘못도 안 하셨습니다"
"아? 네? 저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것보다 저 담배 피울 건데요"
"네? 저는 담배 안 해요"
내 말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던 민 팀장이 헛웃음을 짓더니 담뱃갑을 마이 안주머니에 다시 넣고는 옥상 정원 벤치에 앉았다.
"같이 피자는 게 아니라, 담배 피울 건데 안 내려가냐 말한 겁니다."
"..."
"얼굴 빨개지셨는데요"
"..."
"혹시 창피"
"아니거든요?"
민 팀장이 대놓고 깔깔 웃더니 벤치에서 일어났다. 민 팀장이 갑자기 일어나 놀란 멍청한 나는 휘청. 그걸 본 민 팀장은
"ㅋ"
제기랄, 전정국 씹으러 왔다가 있는 창피 없는 창피 다 팔았다.
"저희 부에 재미있는 사람은 남준 씨 하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 저 안 재미있는데"
"덕분에 기분 좀 나아졌어요. 고마워요"
아 역시 발랄깜찍 나란 여자. 사람 기분도 좋게 만들고 그러는 거지. 아 너무 좋아서 몸에 진동이 느껴져 진동이...진동?
"전화 온 거 같은데요?"
"누군지 알아서 안 받아도 돼요"
안 봐도 전정국이 분명하다 물론 다른 사람이면 뭐 나중에 미안하다고 하면 되는 거고 사실 폰 봤을 때 전정국이라고 써있으면 받아버릴 거 같아서
"알면서 안 받는 건 뭡니ㄲ"
"네?"
"전화 건 사람이 전 팀장인가 보죠?"
"네?? 그걸 어떻게!"
놀란 눈으로 민 팀장을 쳐다보고 있는데 몸이 확 돌아갔다. 나랑 한참 차이 나는 키 하며 아주 많이 본 넥타이 하며
"전정국?"
"민 팀장님은 식사 안 하시나 봐요"
"오늘 오전 회의에서 누가 저한테 꼽을 주는 바람에 입맛이 떨어져서요"
"아, 그래요? 그거 참 안 됐네요"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인 거지. 나는 빠져야 하는 상황 같기도 하고 내가 껴서 말려야 할 상황인 거 같기도 하고.. 일단은 민 팀장님이 기분 나쁜 이유가 회의 때 안 좋은 일 때문인 건가? 아니 전정국은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지?
"전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민 팀장과 전정국 사이에서 알 수 없는 스파크가 튀기도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가 온화하게 웃은 민 팀장은 전정국이 아닌 나를 쳐다봤다.
"옥상에서 내려오면 제 방으로 오세요"
"아.. 네!"
할 말을 하고 쿨하게 등을 돌린 민 팀장이 옥상에서 내려가자 전정국에 귀가 꿈틀꿈틀 거린다.
"너 귀가 꿈틀한다? 지금 나한테 화났냐?"
"민 팀장 뭐야"
"넌 뭐야. 너 나랑 밥 먹는다고 해놓고 갑자기 한 대리랑 먹는 건 뭐하는 짓인데"
"민윤기 팀장이랑 뭐냐고"
"뭐가 뭐야 우리 부 팀장이잖아"
"팀장?"
"너 내가 무슨 부에 있는지도 몰라?"
내 말에 전정국은 넥타이를 확 풀더니 이마를 짚고는 마른 세수를 한다. 무슨 내가 잘못을 한 마냥.
"너 완전 웃긴다. 지금 누가 누구한테 화내는 거야"
"밥은"
"넘어가려고 하지마. 밥? 누가 나랑 한 점심 약속 펑크 내서 안 먹었어"
"안 먹었어?"
"그래 안 먹었어"
뭐라도 먹자 그럼. 말을 하곤 내 손목을 잡아 이끄는 전정국.
"야 전정국"
"우리 마누라 내가 점심 약속 마음대로 취소해서 화났어?"
"..."
"내가 미안해 응? 그렇다고 점심 안 먹으면 몸에 안 좋잖아. 시간 넉넉하니까 점심 사줄게"
"너랑 할 말 있어"
"먹으면서 얘기하자 자기야"
*
일단 먹기는 먹는다. 배가 고파 남들 앞에서 꼬르륵 소리 내는 것보단 낫겠다고 생각한다. 전정국이 스킬을 사용했다. 초밥을 좋아하는 걸 이용해 내 화를 풀려는.
"한 대리랑은"
"일 때문에 그랬어. 할 얘기가 있어서"
"나한테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미안해 상황이 상황이었어"
그놈의 상황 타령은 어디 가지도 않나. 전정국에 상황은 항상 나에게 안 좋게 흘러가는 것 같다. 하필 경리부에 한 대리냐고 왜! 왜! 우리 회사에 절세미녀랑 왜!!
"일찍도 먹었네"
"먹다가 나왔어"
"웬일이래"
물을 홀짝이던 전정국이 넥타이를 만지작 만지작, 코를 긁적긁적.
"아니, 네가 전화를 안 받으니까.."
"..."
"걱정돼서 그랬어"
난 참 단순하다. 장점인 듯 단점인 듯 이 단순한 면은 내가 전정국과 관계 유지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다. 아마 내가 단순하지 않았다면 난 전정국과 결혼하지도 연애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 지금 웃었지"
"안 웃었어.."
"화 풀린 거지?"
항상 전정국한테 지고 만다.
"앞으론 안 그럴게 자기야"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될 걸 알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