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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온앤오프 몬스타엑스 샤이니
챠루그레이 전체글ll조회 1575l 1

02

 

"뭐야?나 주려고 산거야?"


막 들어온 찬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아..이 빼빼로?이거 연지 줄 건데.차마 그렇게 말하기엔 찬열의 얼굴이 너무 신나보여서 나는 똑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버버댔다.그러고보니 찬열의 손에도 빼빼로가 있었다.뭐지..만든건가?찬열이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말했다.


"이거 줄게,너도 줘."
"..어?이거 니가 만든거야?"


아니 받은거지.찬열이 실실 웃었다.어느새 내 손엔 찬열이 준 빼빼로가 얹어져있고 찬열은 내가 산 천원짜리 아몬드빼빼로 봉지를 뜯고 있었다.집에 갈때 연지한테 주려고 했었는데….어느새 봉지를 다 뜯고 빼빼로를 두 개씩 먹고 있는 그의 모습에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어제 길을 돌아서 멀리 가서까지 사온 빼빼로였는데..비록 천원짜리긴 해도.아쉬운 마음에 툴툴대고 싶었지만 또 그렇게 말하면 상처 받을까봐 말하진 못하겠다.헌데 찬열이 준 빼빼로는 단정한 포장지에 안에 예쁘고 정성스러워보이는 모양인 게 꼭 여자아이의 것 같았다.이걸 받느라고 지금 들어온건가..

"이거,여자 애가 준거 아니야?"

찬열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이런거 줄 애도 있구나,부럽다.하긴 찬열이는 발렌타인데이때에도 초콜릿을 많이 받았다고 했었지.난 부모님한테도 받은 기억이 없는데.아,딱 한 번 있었다.내가 초등학생 때 집으로 돌아오다가 왠 꼬마애가 날 보고 다가오더니 형,이거 가질래요?하고 묻더니 내가 벙쪄있자 조그만 초콜릿 몇개를 주고 달아났었다.아마 그 애도 초콜릿을 받은 모양인데 먹기가 싫었나보다.아무튼 그나저나 찬열이한테 주려고 정성스럽게 만든 것 같은데..이렇게 내가 먹어도 될까.나는 고민하다가 찬열에게 빼빼로 하나를 들이댔다.그래도 너한테 준건데 하나는 먹어! 내 말에 찬열이 입으로 빼빼로를 앙 베어물었다.

 

 

"아,1교시 시작하겠다."
"1교시 뭐야?"
"국어.김나경이야 조심해.저번처럼 자다가 등짝 맞으면 안되잖아."


찬열이 비웃듯 픽 웃어보인다.안잘거거든!나는 왠지 발끈해서 쏘아댔다.어?너 화낼 줄도 알아?찬열의 놀리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지만 무시했다.나는 책을 펴서 저번에 잔 바람에 못한 필기들을 찬열의 책을 힐긋 보면서 베꼈다.이번엔,진짜 안자야지.하지만 그 선생님 수업이 졸린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목소리만 들으면 자장가를 부르는 것처럼 잠이 쏟아지는 걸 어떡하리..나는 눈을 치켜뜨며 입을 꾹 다물었다.마침 문을 열고 국어선생님이 들어왔다.언제나처럼 딱딱한 대나무회초리로 교탁을 탕탕 치니 아이들이 제법 조용해졌다.


"자,70쪽 펴고-"


그래,저 목소리다.저 나른하고 늘어지는 목소리.나는 책 한 장을 더 넘겨 70쪽을 폈다.찬열도 어느새 안경을 쓴 채 샤프를 뱅뱅 돌리고 있었다.항상 느끼는거지만 찬열이는 수업시간에 참 집중을 잘한다.본받아야할텐데.나는 눈을 부릅뜨고 칠판을 쳐다보았다.또각또각 꼭 눌러쓴 분필소리가 내 귀에 박혀들어왔다.반복적으로 리듬을 타듯 또각또각,또각또각,또각또각…

 

 

 

 

 

 

 

 

 

 

 

 

 

 

 

...야.
야 임마.
백현아,너 요즘 내가 좀 편했니?만만해졌어?씨발새꺄.
연지한테 안들키고 싶으면,조용히 해라 뒤지기 전에.
왜 안 울어 씨발,울어 미친놈아!
.....또 다쳤어?이번엔 계단에서 넘어졌다고 하게?그냥 솔직하게 말해!
너 방금 입술 깨물었냐?
왜 그렇게 있어?너 설마 발기했냐?미친 씨발..
나..사실 가끔 지쳐.
백현아,그러니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세훈이네 반에 장애인새끼는 펠라도 해줬다더라,넌 어떻게 생각해?

 


"..!!"


눈이 번쩍 뜨여졌다.순식간에 잠이 확 달아나고 심장은 달리기라도 한 듯 미친듯이 뛰어댔다.사방은 시끄러웠고 난 여전히 교실 안이었다.교실...그래 교실.분명히 안존다고 했는데 어느새 졸았었나보다.그 새에 악몽까지 꾸다니 별 일이다.잊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오랜만에 꿈속에 등장한 그 모습에 심장이 많이 놀란 것 같았다.생생한 그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남들은,다 잊고 잘 살아갈 그저 어린 날의 장난이었던 것을 난 아직도 깊숙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내가 싫었다.옛 기억 하나 잊지 못해서 발버둥 쳐대는 꼴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으니..나는 안도와 답답함의 한숨을 폭 내쉬었다.그나저나,옆을 보니 찬열은 없었다.어디 간거지..나는 교실 안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교탁 앞쪽에서 김종대와 찬열이 대화하는 것을 발견했다.


"..."

웃고 떠들면서 이야기하는 게 퍽 재밌어보였다.김종대랑도 친했었나….내가 너무 관심이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다른 문젠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하고 있는 둘은 충분히 친해보였다.하긴 쟤는 반에서 시끄럽기로도 유명하지.찬열이랑 잘 맞을 것 같긴 하다.문득 그런 생각을 하니 찬열과 제가 왜 친한 친구인지 의구심이 샘솟았다.왠지 저 옆편에서 웃고 장난치며 노는 찬열의 모습이 나와 있을 때보다 즐거워보여서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그러고 보면 난 반에서 친구를 여러 명 둔 적이 없었다.아니 둘 수 있을리가 없었다.초등학교때도,중학교때도 난 왕따였으니까….


연지건 찬열이건 마찬가지였다.그저 나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생겨서 맹목적으로 한 사람만을 계속 바라본 듯했다.더군다나 연지는 초등학생때 유일하게 말을 걸어준 친구여서 더욱 그랬다..난 이때까지 잊고 지낸 듯 보였다.연지도 찬열도,나 아닌 다른 친구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 말이다.이 말도 안되는 소외감이 웃기기도 했지만 조금은 씁쓸했다.찬열은 뭐가 저리 즐거워서 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이야길 할까.혹시,나랑 있는 게 재미없어져서 이제 쟤네랑 다니면 어떻게 하지.금세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

 

어?찬열이 뒤를 돌았다.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김종대에게 무어라 말을 하고는 나에게 다가와서는 이제 깼어?하고 자리에 앉았다. ...조금 감동이었다.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온거네.음울했던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그래 맞다,착한 찬열이 그럴 리가 없었다.애초에 그런 문제로 날 멀리 할 거였다면 나와 친해지고 싶지도 않아했겠지.찬열의 속마음은 알 수 없겠지만 나와 지내는 것도 꽤 괜찮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명 그럴 것이라..믿고 싶은 나였다.찬열을 볼 듯 말듯한 시선으로 그에게 말 한 마디를 건넸다.


"나,니가 쟤랑 친한 줄 몰랐어."
"어?그냥 운동 같이 하다보니까 그런거지 뭐."
"..."
"왜 또 멍해?지금도 졸려?"
"아니거든..!그 선생님 목소리가 자장가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 뭐.."


내 반박에 찬열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책 펴자마자 어찌나 그렇게 기절잠을 자는지,뭔가 네가 자는 모습이 가엾어보였니 뭐니 찬열이 뭐라 주저리를 늘어놓았다.좀 깨워주지 그랬어.내 말에 찬열이 깨우면 화낼 것처럼 잘 잤어-라고 했다.그리고는 또 무슨 할 말이 생각났는지 주절주절 이야기를 풀어놓는다.내가 딱히 말을 주도하지 않아도 찬열은 항상 이렇게 내게 먼저 자신의 말을 들려주었다.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참 좋은 친구를 둔 느낌이었다.그가 인상을 찌푸리고 또 웃음 짓기도 하며 말을 하는 모양새가 꽤 귀여워보여서 웃음이 나왔다.

 

 

 

 

 


'배연지랑 언제부터 친했어?'

언제 찬열이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솔직히 그의 입장에서 볼 때,반이건 학교건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는 내가 여자인 친구 한 명과는 자주 이야기를 하고 또 하교도 같이 하는 모습에 의문이 들긴 했을 것이다.그렇게 지내다보니 찬열과 같이 있을 때 연지와 마주치기도 하고,매점에서 보기도 하고 밥 먹다가 마주치기도 하고.아무튼 찬열과도 친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친해진 연지여서 궁금할 만도 했다.음..초등학교3학년때였나,4학년때였나.내 말에 찬열이 경악했다.진짜 오래 됐다 너네.그럼 서로 초등학교 앨범도 가지고 있겠네?놀란 얼굴을 해보이며 그렇게 말했었다.


초등학교 앨범만 가지고 있을까,그 힘들었던 때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연지가 없었다면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학교에 가면 날 괴롭히는 아이들때문에 힘들었고 집에 가면 항상 잦게 일어나는 가정폭력때문에 괴로웠었다.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찬열에게 쉽사리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나는 미소로 무마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마쳤었다.

 

"무슨 생각해?나 밥 다 먹었는데."


찬열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날 쳐다봤다.아..급식판을 내려다보니 반도 채 먹지 않은 음식물들이 눈에 보였다.그냥 다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음식물들을 국칸으로 쓸어담았다.배 안고파?묻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사실,다 먹은 사람 앞에서 밥 먹는 게 부담스러워서이긴 하지만.음식물들을 버린 후 식판을 올려두고 찬열과 함께 식당을 나섰다.

 

"야 백현아,나 너네집 가면 안돼?오늘."
"....왜?"
"그냥,너도 우리 집 온 적 있잖아"


복도를 걸으면서 찬열의 말을 듣는데 꽤나 난감해졌다.하긴 찬열의 집을 가본 적이 있기는 했다.또렷히 기억이 나는게,찬열의 집은 49평의 꽤나 넓은 집에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가구들이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친절하고 상냥한,또 찬열에게 상당히 관심이 많아보이는 아주머니가 있어서이기도 했다.찬열은 집에서 불평을 많이 하는 편인지 아주머니의 말에 틱틱대는 것을 자주 목격했다.난 그 모습을 보고 솔직하게 말해서 찬열이 조금 어려보였었다.내 소원 중 하나를 꼽으라면,첫번째는 엄마의 관심.으로 꼽을 것인데.찬열의 집에 간 뒤 홀로 집으로 돌아갈 때 자연스레 마주한 내 현실에 찬열이 내심 부럽기도 하여 서러워 눈물이 찔끔 난 것은 비밀이었다.


그렇게 곱게 사랑받으며 자라온 듯 해 보이는 찬열을 우리 집에 들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암울한 분위기에 같이 있는 것마저도 달가워않는 엄마와 폭언과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때문에 한시도 편할 날이 없는 우리 집에,찬열이?나는 찬열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작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차마 연지에게도 꺼내지 못한 가족사였다.난,위로와 보살핌은 좋아했지만 동정은 혐오했다.하지만 나의 가족사는 동정해 마땅했기에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았었다.그리고 적어도 연지와 찬열에게만은 묻어두고 싶었다.그건 꼭,내 마지막 자존심같기도 했다.

 


"응?가면 안돼?"
"안돼.."


말끝을 흐리며 대답했다.하지만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이 다 드러났는지 그는 제발 딱 한 번만 가보자고,정말 궁금하다고 나를 지독히도 졸라댔다.진짜 안된다니까?내 말에 찬열이 왜 안되는데-하고 물어왔다.정말 오늘따라 끈질긴 찬열이었다.이유가 있으니까 그러는 거 아냐.내 말에 찬열이 얼굴을 구기며 그러니까 왜 안되냐고?하고 지겹게 물음표를 찍었다.나는 더는 대답하기도 싫어져 고개를 저었다.이유가 뭔데?찬열이 또 다시 물었다.아 글쎄 안된다니까!결국 찬열의 물음에 짜증이 폭발한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치는 상황까지 가버렸다.


"...."


나도 내가 소리친 후 놀라 입을 다물었다.찬열도 충격이 컸는지 눈만 두어번 깜빡였다.반년이 넘게 찬열과 지냈지만 내가 작게나마 소리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그만큼 짜증이 났다는 말이기도 했다.찬열이 잠시 멍을 때리는 듯 하더니 서운한 듯 알았어-하고 대답했다.으,순식간에 어색한 상황이 되어버렸다.나는 기분이 상해보이는 찬열의 표정에 어떡하지-생각하며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미안"

 

찬열이 괜찮다며 작게 웃었지만 상황은 그대로였다.나는 문을 열고 반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지만 찬열은 자리에 잠시 앉아 책을 올려두었다가 곧바로 반을 빠져나갔다.아-진짜 어떡해.화났나봐.어쩐지 죄책감이 들어 책상에 고개를 파묻었다.차라리 다른 핑계를 대며 거절할 걸 그랬다.제대로 된 이유도 말 안해주고 안된다고 소리만 쳐버렸으니….긴 한숨을 내쉬었다.찬열이는 착하니까 금방 풀리겠지?제발 그랬으면 좋겠다.텅 빈 옆자리에 금세 외로움을 타는 기분이었다.

 

 

 

 

-


"빼빼론 받았어?"
"응?아니-"


연지는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밤오늘 찬열이 내 빼빼로를 먹지 않았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자-네거 사왔어.하고 웃으며 줄 수 있었을텐데.나는 아쉬운 마음에 땅만 보며 걸었다.밤공기는 역시 차다.찬열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조금 뒤늦게 반으로 들어오더니 그 이후론 아무렇지 않아보였다.하긴 그렇게 화날 일도 아니었으니까.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찬열에게 여러 말들을 주고 받았었다.비록 찬열때문에 빼빼로를 못주긴 했지만 화해-라고도 말하기 사소하지만-한 게 어디야,하고 자기합리화하기로 했다.

 

"백현아 잘 가,내일 봐!"
"..어?아 응!"


그렇게 멍하니 땅만 보고 걷다 보니 어느새 집 근처에 다다랐나 보다.나는 말을 더듬으며 연지에게 대답한 후 작게 손을 흔들고는 고개를 돌렸다.휴우-.나는 오늘만 해도 몇번째인지 모를 한숨을 쉬었다.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어쩐지 요즘 들어 더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진 것 같다.아마 학교에서의 생활이 편해져서일까?나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느리게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걸으며 생각했다.

 


불이 환하게 켜져있는 것이 보인다.나는 조심스럽게 문 근처에 서서 쉼호흡을 했다.내 오랜 습관이었다.이렇게 집에 들어가기 전 일말의 긴장과 준비를 한 후 문을 여는 것이 흔했다.나는 잠시 몇초간 문고리를 잡고 있다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쨍그랑-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소리에 온 몸이 경직되어버렸다.곧,들려오는 소리에 나는 직감했다.순식간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닥쳐!!!"


한 발자국 내딛은 현관 앞엔 내가 서 있었고 문은 끼이익 닫혀 잠궈졌다.그리고 그런 내 앞엔 난장판이 된 거실과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는 아버지,그리고 눈물방울조차 흘리지 않은 채 맞고만 있는 엄마가 있었다.아버지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 붉었다.술에 심하게 취한듯 보였다.거실 바닥엔 깨진 유리잔 파편과 담뱃재,그리고 막무가내로 던져놓은 책들과 음식들이 가득했다.평소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었다.

 

무엇이 아버지를 화나게 했는지는 알 수 있을리 없었다.그저 엄마는 반복적으로 맞고 신음하며 조금의 반항조차 하지 않고 죽은듯이,정신이 나간 듯이 그렇게 맞고만 있었다.나는 온 몸이 덜덜 떨렸다.피딱지가 생긴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손톱이 자리한 손을 자꾸 움켜줬다 폈다 하며 아버지와 엄마 앞에서 갈팡질팡했다.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거지.이성을 잃은 아버지의 발길은 멈출 줄을 몰랐고 엄마는 숨조차 쉬지 않고 그저 힘 없이 그것을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뭘 보고 서 있어?"


아버지의 독을 품은 눈이 나에게로 고정되었다.나는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뭘 보고 서 있느냐고.아버지가 다시 되물었다.살기가 느껴지는 그 한 마디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한 발자국씩 발을 내디뎌 엄마를 지나쳤다.심장이 아팠다.내 얼굴을 스치는 엄마의 표정에 칼에 베인 듯 고통스러웠고 훅 끼치는 냉기 서린 분위기에 심장이 아렸다.엄마.


"눈 깔아!!"

아버지의 고함에 귀가 아파왔다.한 발씩 내딛는 발걸음이 가시밭길같았다.아버지와 엄마의 사이.그것은 살얼음판이 아니었다.깨져버린 얼음판,몰아닥치는 폭풍이었다.그리고 그 폭풍사이에 난 휩쓸려 찢기고 더럽혀졌다.너덜너덜해진 나,어쨌든 그 모습마저도 나인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이었다.나는 이렇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어야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으..으으..읏..!"


방문을 열려던 손이 멈추고 엄마의 신음에 자동적으로 고개가 돌아갔다.엄마의 얼굴은 새빨갰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아버지의 크고 굵은 손이.어머니의 목을 있는 힘껏 조르고 있었다.나는 순간적으로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커다래진 눈에 눈물이 한 방울 툭 흘렀다.꼭..내게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나는 머릿속에 새하얘졌다.엄마의 가느다란 목을 움켜잡은 그 손은 너무 힘을 주어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뭐하시는거에요!!!"


나는 급히 아버지를 향해 소리치며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엄마의 목을 조르던 그 손을 겨우겨우 억지로 떼어내고,아버지의 그 흉한 손을 꽉 눌러잡은 채 나는 그 살기 어린 눈과 대면했다.나는 너무 두려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하지만 정말 그대로 두었다면 엄마가 죽을 것 같았다.내 눈을 마주한 아버지의 동공에는 아무 것도 담겨져 있지 않았다.잠시 내게 손을 잡힌 채 가만히 있던 아버지가 픽-하고 낮은 비웃음을 자아냈다.온 몸의 털이 빳빳히 서는 느낌이었다.


순식간이었다.아버지에게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한 순간에 난 비참하게 바닥으로 나뒹굴어졌다.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입 안 가득 느껴지는 피맛에 정신이 확 깼다.입 안이 터진 것 같았다.입술을 통해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뚝뚝 떨어졌다.나는 곧바로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무서웠다.아버지가,또 다시 무슨 짓을 할 까봐.하지만 더 무서운 것은 엄마를 향한 폭력이었다.차라리,때리려면 저를 때리세요.울음 섞인 음성이 도르르 굴러갔다.엄마가 좋아하지 않을텐데.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지금 이 상황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엄마를 향한 위협을 보호하는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허.."

아버지의 크고 부르튼 입에서 어이 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아버지는 더는 때릴 생각이 없는지 몸을 돌려 엄마를 쳐다보다가,또 시선을 돌려 재떨이를 들더니 내 방쪽을 향해 세게 던져버렸다.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깨져버린 재떨이에 나는 주먹을 쥐었다.엄마는 잔뜩 입술을 깨물어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아버지는 그렇게 물건들을 하나 하나 집어들더니 내 방쪽을 향해서 하나,둘,셋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물건들을 던지고 깨부쉈다.


..토가 나올 것 같았다.아버지는,언제나 나에게 거대한 폭군이었다.그 폭군은 언제나 나의 모래성을 짓밟아 형태를 망가뜨리고 즐거워해왔다.아버지는,아버지는...항상 그렇게 날 짓밟으며 살아온 형체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흉물스러운 폭군이었다.난 내가 딛고 있는 이 곳이,내가 살아오며 가장 오래 머무른 그 곳이 아니길,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그런 사람들이 있는 그 곳이 아니길 빌었다.꿈이라면 지금 당장 깨고 싶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이것은 현실이었다.

 


난장판이었다.잔뜩 깔린 유리파편들과 온갖 물건들.그리고 아버지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던지며 포효하고 있었다.더럽다,역겹다.나는 머릿속이 새하얗다 못해 텅 비어버렸다.빠른 걸음으로 급히 향한 곳은 현관 앞이었다.더는 싫었다.이 숨 막히는 답답함과 잔인한 냉기에 질식해버릴 것만 같았다.나는 도망치듯 현관문을 열고 집 안을 빠져나와버렸다.앞이 뿌옇게 흐려졌다.하지만 애써 입을 꾹 다문 채 나는 그것을 꾸역꾸역 삼켜냈다.그리고는 숨을 뱉어냈다.탁 트인 밤공기가 내 몸속 가득 스며들었다.나는 숨을 깊게 내쉬었다.

"하아...하아..."

-그런데,

 

 

 


"..백현아"

 

쓸쓸하리만치 텅 비어야만 할 집 앞에,왜 네가 그런 표정을 하고 서 있는 것인지.나는 내 앞에 서 알 수 없는 표정을 하고만 있는 찬열과 마주했다.

 

내 입술에선 피가 한 방울 흘러 바닥에 툭 떨어졌고,그 뒷편에선 쨍그랑-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가 정확하게도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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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백현이가 가정사에 대해서는 연지에게도 찬열이에게도 말을 안하는군요...근데 찬열이는 어떻게 백현ㅇㅣ네 집앞에온건지......ㅜ
10년 전
챠루그레이
아마 다음편에서 거기에 대해 조금 풀어쓸까해요ㅎㅎ
10년 전
독자2
백현이불쌍하네요 ㅜㅜ 흐규흐규 ㅜㅜ
10년 전
독자3
백현이 가정사를 찬열이가 알아버렸네요..찬열이 반응이 궁금하다느유ㅜㅠㅜㅠ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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