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안은 아수라장이었다. 한낮의 전쟁통을 방불케 하는 그런 광경. 여기저기 흩뿌려진 검붉은 피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검은 양복을 입은 시체들. 그 한가운데에 한 소녀가 있다. 온몸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피와 체액을 뒤집어쓴 채 혹여 아직 누군가 살아 있을까, 털끝을 세우고 경계하며 근처에 있는 권총을 쥐고서 떨고 있는 소녀가 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해도 한 가족의 단란했을 가정집이 지금은 모두 불타 앙상한 뼈대만 남아 황량해진 집 안이 훤히 내비쳤다. 100평이 조금 넘는 그 커다란 공간. 그 속에서 지금 살아 있는 이는 고작 한 명, 그 소녀뿐이었다.
소녀는 눈물이 나왔지만 허벅지를 꼬집으며 울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눈 앞에 바로 보이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목숨을 잃어서 눈도 채 감지 못하고 죽은 부모와 제 언니의 새까만 눈동자도 쳐다보지 않으려고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다른 곳을 쳐다봤다.
소녀는 부모님을 끌어안고 울고 싶었다. 왜 벌써 가냐고. 하다못해 언니라도 남겨주지 그랬냐고. 왜 하필 나 혼자만 살려놓고 갔냐고. 이 모든 불행이 제 아버지 행적의 대가인 줄도 모르고. 소녀는 그 이후로도 조준한 권총을 든 채 몇 시간을 죽은 이들 사이에서 창밖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참이 지나 밝았던 하늘에 어둠이 내리고 달이 떴을 때, 소녀는 그제서야 정신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 손에는 아까부터 들고 있었던 권총을 꼭 쥐고서. 그리고 꿈을 꾸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나를 데려가는 꿈. 별빛이 내리고 밝은 빛이 비추는 어딘가로, 누군가가 마중을 나오는 꿈.
어쩌면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녀가 있는 그 곳 앞에, 검은색의 고급 세단 한 대가 멈춰 선다.
-강남구 청학동 39-3번지. 도착했습니다.
[정재현이가, 딸래미가 둘 있어.]
-예, 회장님.
[들어가서 둘 다 죽어 있으면 말고,]
-..........
[살아있는 애가 있으면 데려와.]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남자가 휴대폰을 자켓 주머니에 넣고 매캐한 연기가 나오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빛이 없어 깜깜한 탓에 불편한 듯 연신 눈을 찌푸리던 남자가 곧 무언가 보이는 듯 너덜너덜한 문짝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가 있는 방이었다. 쥐죽은 듯 누워 있는 소녀의 목덜미에 두 손가락을 대어서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남자가 조심스럽게 소녀를 안아올려 밖으로 나가 조금 전의 그 고급 세단에 태웠다. 시동을 건 남자는 차를 출발함과 동시에, 다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됐나.]
-한 명이 살아 있습니다. 꽃무늬 원피스를 입은, 19세 전후의 나이로 추정됩니다.
[수고했다. 우리 집으로 데려오게.]
-Night Sakura-
中本悠太
-예.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백미러로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는, 남자의 양복 자켓에 달린 금장 명찰이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당신의 구두와 나의 운동화.
그리고, 그 사이의
「명왕성: 134340 I」
글/구성
천국의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