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아해의 시간
W.전라도사투리
배를 띄워 다가오면 알겠지 내가 섬이 아닌 빙산인걸
-에픽하이 '춥다'中
08.
학교를 마치고 밤 늦게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집은 캄캄한 어둠에 먹혀 버린듯 아주 깜깜했었다. 단 한 곳만 빼고. 아버지의 방. 아버지의 방 많이 유난히 환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온지 3일 만이였다. 기본적인 예의로 인사는 해야할 것 같아 걸음소리를 낮추고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가자 코 끝을 마비시킬 정도의 술 냄새가 방안 가득히 장악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아버지에게 시선을 향했다. 아버지는 침대에 등을 보인 채 누워있다 나의 인기척에 몸을 밍기적 일으켜 세워 나와 시선을 마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에 보이는 눈물.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 몰랐지만 곧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아버지에 눈물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헤어졌어.' 슬픔에 가득 잠긴 목소리. 나의 생모가 떠나갔을 때도 덤덤하던 그가 떨리고 물기 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처음에는 그냥 인사만 하고 올라갈 생각이였으니 아버지의 푸념을 들어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헤어졌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그냥 고개만 숙이고 뒤돌아 방으로 돌아가려 하는 발걸음을 아버지의 무겁고도 슬픈 목소리가 내 발목을 꽉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와 헤어진 이유는 물론 나. 남우현 때문이였다. 그녀는 아버지 만을 바라보며 살아왔고 아버지 또한 그녀 많은 바라보며 살아 오셨다. 나의 생모와 몸을 섞어 나라는 인간을 가졌고 나의 생모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녀는 그것을 용서해 주었다고 했다. 단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하지만 그녀는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고 집에서는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로 인해 지쳤던 것이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자신과 결혼을 하자고 말했었고 아버지는 매번 웃으며 거절하였다고 했다. 아이 엄마의 자리를 나에게서 뺏고 싶지는 않다고 말이다. 그녀는 결국 아버지에게 이별을 고했고 아버지는 여자를 붙잡았지만 이미 지칠대로 지친 그녀는 아버지의 곁을 떠났다. '우현아. 나 살기싫다.' 아버지의 말이였다. 푸념을 다 내뱉은 후 나온 아버지의 말. 그러면서 옆에 두었던 그라목손이라 쓰여있던 통을 꺼내 놓았다.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알았다. 아버지는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던져 주며 자신의 마지막을 촬영해달라고 부탁을 해 왔고 처음에는 그를 거절했다. 사지가 떨리고 하얗게 변하는 머릿속. 처음으로 보는 아버지의 화내는 모습. 그리고 그의 협박.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의 그런 모습은 지금의 나보다 철이 덜 들은 모습 같아 보였다- 그에게 무릎을 꿇어 보였다. 가지말라고 당신마저 가버린다면 정말 나는 혼자라고. 울면서. 그렇게 애원했다.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 데 그게 아니였다. 바보같이 혼자 강한척은 다 해 놓고 결국 나는 나약한 인간이였고 아이였다. 아버지는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고 울지 말고 카메라에 자신의 모습을 잘 담기나 하라고 윽박을 질렀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죽어버리겠다고 말 하는 아버지 때문에.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촬영을 시작했고 혹시나 울음 소리가 세어 나갈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시간을 벌고 싶었다. 누군가 이 적막한 집을 찾아와 아버지를 막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어둠에 갇힌 집을 발견하지는 못 했다. 자신의 마지막 말을 남긴 아버지는 제초제를 열어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한 사람. 정말 나는 혼자가 되어 버렸다.
*
나의 말에 김성규는 언제나 그렇듯 한참이나 아무런 말이 없었다. 하지만 김성규는 나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 꽉 잡아주었다.
"나도 사랑이라는 거 잘 몰라."
"...김성규..."
"솔직히 알고싶지도 않아. 근데.."
"..."
"너 한테는 알려줘야 될 거 같다."
살며시 웃는 김성규. 나에게는 과분한 그의 웃음. 모든것이 나에게는 과분한 그의 모든 것이였다. 그끝을 알 수 없는 벼랑의 끝에 서있는 나에게 찾아온 김성규라는 따듯한 바람. 김성규로 사랑을 이해하고 아버지와 나의 생모를 이해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은 해 볼것이다. 사랑으로 인해 가정을 버리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고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놓아버려 죽음으로서 그 곁에 맴돌겠다는 그들를.
김성규를 반에 대려다 주고는 다시 교무실을 찾았다. 적막감. 몇 몇 선생들은 나를 보며 수근 거리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아까 놈과의 주먹다짐이 초래한 결과일 것이다. 사춘기 시절 이후로 나름 반듯한 이미지로 살아왔다고 자부했것만 반듯한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였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사람들의 가십거리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한 순간. 그것을 인간들은 즐기고는 했다. 눈에 보이고 듣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인간들. 얼마전 한 연예인의 학력위조의 의심을 받아 진실을 요구했던 사건. 그 연예인은 대중들이 요구하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사실이 되는 근거를 보여주고 주장했지만 대중들은 '위조다. 모든 것이 조작이다.' 라는 말을 쉽게 내뱉었고 또다른 증거를 보여주어봐도 '저것도 조작이다.' 라는 말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내뱉기 일수였다. 자신들이 생각하고 싶은대로 내뱉는 이기적인 인간들. 그들은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었던 것이다. 열등감 또는 가십거리를 놓치기 싫은 욕구들. 이들은 김성규를 알고 있을까. 김성규라는 아이가 지금 무슨 일을 겪고 무슨 일로 힘들어 하는 지 알고 있을까. 알게된다면 어떻게 할까.
"아. 우현이 왔구나. 치료는 잘 했고?"
담임의 앞으로 가니 업무를 보던 중이였는 지 내가 온 인기척을 뒤늦게 알고 나를 쳐다 보았다. 그러고는 예의상 묻는 말로 고개를 작게 끄덕이니 담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상담실로 이끌었다. 어쩐지 무거워지는 발걸음.
"어머니가 오셨어."
역시나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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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겁나 내용이 엄슴ㅋ 이래뵈도 7키바라는 게 함정ㅋ
아무래도 8화 부터는 우현이 과거가 조금 길것 같아요...ㅠㅠ 걱정마세요. 9화 까지만 과거 내용이 조오금 길 것이여라...흥ㅇ흐흐흐흐
아마도 15화가 아해 완결일 듯? 그럼 105키바? 정도 나올것이여요. 번외는 모르겠어욤ㅠㅠ 흐흐흐흐흐ㅠㅠ